오랜만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렸다가 귀신에 홀리듯 이 책을 샀다. 미나가와 히로코의 <거꾸로 선 탑의 살인> 참 많은 소설을 썼지만 한국에서는 2010년에 들녘에서 출간된 이 책과, 2014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만 번역되어 있다.

미나가와 히로코는 처음 들어본 작가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환상 미스터리의 대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라니. 더욱이 이 작가는 1930년 한국 서울(경성)에서 태어났고, 실제로 <거꾸로 선 탑의 살인>도 1980년대 작품이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매우 고루한 느낌이 들고, 마지막의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은 조금 억지스러움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세 가지의 전혀 다른 듯 혹은 하나의 이야기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얽히고 섥혀 있고, 마지막 해소되기 직전까지 이 미스터리의 끝을 잘 모르겠단 생각에 책을 놓지 못했다. 더욱이 여고생들의 어찌보면 참 풋풋한 사랑(?) 이야기였다. 정확히 어떤 작품이었는 지는 기억이 나질 않고, 또 실제로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양의 여학교에서는 선배와 후배가 sister로 묶이고 이것이 '사랑'의 한 종류의 감정까지 발전되는 소설이 하나 있었다. 뭔가 희안하고 이해는 가지 않지만 기숙 학교의 폐쇄된 공간에서의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각별한 사이가 된 선/후배 간의 관계가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는 했다. 사랑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고, 우정을 쌓아 가면서 사춘기의 소녀들의 성장통이랄까. 여하간 그런 이해가 되는 그런 감정을 절묘하게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거꾸로 선 탑의 살인>은 1940년대 말,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도쿄를 중심으로 학교 여학생들이 공부가 아닌 공장 일을 하는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장기부터 황국 신민 등 당시의 시대 배경을 제대로 함축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보면 참 듣기 싫은 단어가 많이 나오는 시기이지만 일본인도 피해자다 라는 어조는 일절 없는 소설이기 때문에 그다지 읽는 데는 문제가 없다. 딱히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부분도 없고. 여하간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공습이 참 많았고, 이 때문에 기독교 **여학교와 도쿄 도립 ++여학교가 한 곳에 보여 일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같이 일하게 된 미와 사에다(이하 사에다)와 아베 킨코(이하 아베)는 어떤 계기로 친해지고, 사에다는 아베에게 책 한권을 건네준다. 제목은 '거꾸로 선 탑의 살인' 사에다는 이 책을 친했던 코우즈키 선배에게 받았으며, 시다라 쿠니코가 1편을, 코우즈키 선배가 2편을, 그리고 자신이 3번째로 글을 쓰고 있는 책이라고 했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교환 일기와도 같은 일기 형식의 책이었지만, 또 그 안에는 '거꾸로 선 탑'이란 제목의 소설이 완결나지 않은 채로 시다라와 코우즈키 선배에 의해 나누어 적혀 있는 책이었다. 사에다는 아베에게 이 책을 주면서 왜 코우즈키 선배가 죽게 되었는 지 밝혀달라고 부탁하면서 이 책의 실질적인 이야기기 시작된다.

 

 

 

 

 

이 책의 '거꾸로 선 탑'은 한 미션 스쿨(여학교)에 외국인 교사가 죽고 그의 친구이자 새로운 외국인 교사가 부임하게 된다. 이전 외국인 교사가 살던 교사동에 머물게 되는 데, 그에게 유창한 영어로 학교의 첫 부임 때 곤란한 사건을 해결해주었던 여학생이 흘리듯, 이전의 외국인 교사가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받은 열쇠로 연 서랍에서 외국인 교사가 남긴 일기장을 보며 의문에 빠지게 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고, 이 책의 내용은 뭔가 생뚱맞다 싶은 느낌도 강하게 들지만 나중에 진실과 맞물리면서 처참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로 변모하기 시작하나.

사실 이 사건의 키는 의외로 '시다라 쿠니코'가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주인공 무리를 스토커하는 인물이지만 마지막 단편적인 증거자료를 가지고 범인을 제외하고 유일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게 되는 인물로, 그 과정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은 나와 있지 않은 채, 범인이 단순히 나와 비슷한 어둠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라는 의문으로 납득시켜주려고 해서 조금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301p의 짧은 소설에 세 가지의 이야기를 섞어 이런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니, 더욱이 그냥 무심코 지나친 이야기들이 모두 사건 해결의 키워드가 되었다. 화자는 아베이지만 사에다, 코우즈키 등의 시점에서도 책이 이야기 되기 때문에 약간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꽤 절묘하고 정확하게 나누어 주어 누구의 시점인지는 확연히 알 수 있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또 '거꾸로 선 탑의 살인'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실제 손으로 쓴 듯한 글씨체를 이용해서 더 몰입도가 좋았다. 안타까웠던 것은 세 사람의 필체가 모두 같았다는 것과 이 소설 외의 일기들은 기본 글씨체였다는 점. 아베와 사에다의 이야기, 책 속의 일기, 소설의 글씨체가 전혀 달랐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조금 복잡해보일 것 같단 생각도 들지만, 나름 색달랐을 것 같다.

 

 

 

 

아쉬움이 조금 많이 남는 소설이다. 그래도 1980년대에 읽었더라면 이 미스터리에 엄청 감동받았을 것 같단 생각도 들고. 여러모로 참 괜찮은 소설이었다. 책 표지도 근사한데 번역된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뿐만 아니라 번역되지 않은 일본 원서의 표지도 참 이쁘면서 소름끼치더라. 특히 <거꾸로 선 탑의 살인>의 표지는 이쁘장하고 섬뜩한 느낌인 데 책을 다 덮고 표지를 보면 이 표지에 숨은 뜻을 알고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 책에는 다양한 화가와 그림이 나오는 데, 이에 대해서도 잘 정리하여 뒷 면에 소개해준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책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 그림이 나왔을까 싶어 뒤에서 그림을 보며 읽는 데 참 느낌이 강렬했달까.

 

돌연 내 몸이 거꾸로 쏟아졌다. 화가가 내 양 발목을 붙잡고 거꾸로 세웠다. 머리로 피가 몰리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 몸은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나는 흔들리는 시계추가 되었다. 이윽고 발이 바닥에 닿았다. 눈을 커다랗게 떠보았으나 온통 어둠뿐이었다.

눈앞이 핑 돌았다. 번개에 맞은 느낌이었다.

눈을 세게 감았지만 빛이 눈 속을 찔렀다.

눈꺼풀에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얇은 눈꺼풀을 아래로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 부드러움이 내 눈을 가만히 뜨게 했다.

번개? 아무 것도 없었다. 천정에 전등이 있을 뿐이었다. 눈 앞에는 회색의 벽이 있었다. 화가는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화가의 손은 내 왼쪽 어깨를 붙들고 오른쪽 어깨를 가볍게 눌러 빙글 돌려 앞뒤의 방향을 바꾸었다.

침을 삼켰따. 벽에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내 상반신이 비쳤다. 머리가 아래로 가 있고…….

나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뒤쪽에 있는 알몸의 화가도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매달려 있었다.

나는 실신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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