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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전원주택이니 땅콩집이니 하며 마당이 있는 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상적인 주거 형태라고 하면 공기좋고 물좋은 곳에 나무와 꽃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 그리고 사시사철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을 키워 먹을 수 있는 채마 밭이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그런데 18세기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 문화가 발달하면서 전원의 삶을 동경하고 도시를 벗어나 삶의 여유를 회복하고자 하는 바램들이 서울 생활을 하는 양반들 사이에서도 퍼져 나갔었다고 한다.

사는 모양이 달라졌다고 해도 18세기에나 21세기에나 서울 살이가 녹록하지 않기는 매 한가지였나 보다. 국가의 녹봉만으로는 겨울철 땔감 구하기도 어려워 냉방에서 떨며 지내다 병들기 일쑤여서 벼슬에서 떨려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것을 기뻐하는 벼슬아치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와중에 정원가꾸기 열풍은 자신의 거처 안에 자연을 끌어 들여, 척박한 도시 생활에 찌든 삶의 여유를 회복하고픈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는데 다산 정약용도 젊어서부터 정원가꾸기에 관심이 많았으며 고향집과 귀양지에서도 정원과 원림 조성을 통한 이상주거 실현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그동안 전혀 몰랐던 다산의 새로운 면모라서 그야말로 '다산의 재발견'라고 할 수 있겠다.

다산이 말하는 이상적인 주거를 이루기 위해서는 앞에는 시내가 흘러가고 뒤에는 적당한 높이의 산이 배경이 되어주며, 산자락에 안겨 터 트인 너른 들이 있지만, 밖에서 보면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 터를 잡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주거 내부공간을 꾸미는 법을 보면, 순창서 나는 눈처럼 흰 종이로 도배를 하고, 문미 위의 좁은 여백에는 산수도를 엷은 먹으로 희미하게 그려 놓는다.

문곁에도 고목과 죽석을 그리고, 그 곁에 시를 지어 뜻을 기탁한다. 방안에는 책장 두 틀을 세워 1,300 ~ 14,00권의 각종 서책을 꽂는다. 학문의 이치를 탐구할 경학서, 일상생활에 필요하ㅏㄴ 실용서, 삶의 운치를 더해줄 예술서, 인생의 정리를 담은 각종 시집 들로 구성된 장서들이다.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책상 아래 오동 향로에 하루 두번씩 옥유향을 한 판씩 피운다.

정민 교수의 말그대로 소박하지만 문아(文雅)한 삶, 다만 지적 탐구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서책에는 욕심을 부린 다산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또한 마당에 대해 언급한 글은 정말 세밀하고 깔끔하게 잘 정리된 모습 그대로이다. 가림벽을 갖추고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고 안쪽에는 온갖 종류의 화분을 놓아 운치를 더하고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심고 붕어를 키운다.

이 연못의 물은 채마밭을 가꾸는데 필요한 수원이 될 뿐 아니라 운치도 있고 화재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용도도 있었으니 얼마나 지혜롭고 현실적인가!

채마밭 역시 구획을 잘 정리하여 온갖 종류의 채소를 키워 먹을 거리를 키워 낸다.

이 모든 내용을 제자 황상이 몇 년 뒤 다산 초당에 적용하였고 다산 초당의 풍경을 통해 다산의 말이 실현된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니, 황상이 얼마나 스승의 가르침을 귀히 여겼고 다산 또한 그러한 황상을 아꼈을 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렇듯 다산 초당이 증명하듯, 다산의 이러한 이상주거론이 그 당시에 유행하던 다른 이들의 산문들과 차별화되는 것은 단순히 머리 속의 상상에서 나온 관념적 이상론이거나, 일종의 유희가 아니라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학문과 예술, 경제 활동의 조화를 통해 구현될 수 있는 삶의 구체적 방식의 중심 안에 주거라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강진 유배 기간동안 다산 초당의 경영으로 다산의 이상주거론은 구체화되었고 해배 후에는 여유당과 주변 원포(과수원과 채소밭)의 경영으로 이어짐으써 다산 자신이 자신의 이론을 실천에 옮기고 증명한 셈이다.

경제활동과 학문,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적극적인 그의 삶의 방식은 그가 말한 이상주거론의 모델과 함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뜻깊은 의미를 남긴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연을 벗하며 여유자적 음풍농월하는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나는....

다산!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빛나는 그의 모습에 감탄하며 그가 남긴 저작들을 발굴하고 연구하여 훌륭한 책으로 엮어낸 정민 교수의 열정에 역시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 책의 서설에 저자가 밝인 그간 다산 자료를 찾으려 다니면서 겪은 우여곡절만으로도 충분히 그랬었다.

내용은 꽤 방대하지만 매우 흥미롭고 새롭게 배울 내용이 많아 당분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