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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합리적인 사고를 강조했던 실학자였다. 정민 교수에 의하면 귀양지에서도 과수를 심고 채마밭을 가꾸어 자급자족하였을 뿐아니라 근처의 자투리땅을 매입해서 그곳의 소출로 생활을 꾸릴 정도로 재테크에도 상당히 능했다고 한다. 그가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재목감이 되는 나무와 과실수, 누에를 치는 데 필요한 뽕나무를 심고 채마밭을 일구어 집안을 일으키는 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또한 해배되어 귀향한 후에는 직접 인삼포를 경영하고 채소밭을 가꾸었으며 가축을 길러 큰 부자는 아니어도 궁하게 살지는 않을 정도로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100세 수명의 시대를 앞두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에 강박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수입없이 살아가야 할 노후 시기가 3,40년으로 늘어나다 보니 한창 자라는 아이들 교육비며 주택 자금,게다가 노후 대책까지 감당하려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성공 재테크에, 부자되는 법에 목을 멜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 우리에게 다산은 어떤 가르침을 들려 주었을까? <다산 정약용의 부자론>이라는 장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산이 생각한 '부'의 개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 보기 전에 먼저 그가 말한 두 개의 저울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

다산은 세상에는 두 개의 저울, 즉 시비(옳고 그름) 저울과 이해(이득과 해로움) 저울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저울들로 네 가지의 등급이 생겨 난다고 했는데, 다음과 같다.

첫번 째 :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

두번 째 :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

세번 째 :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

네번째 : 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 들이는 것.

이에 대한 정민 교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평범한 우리들이 늘 접하는 갈등이 바로 두번 째와 세번째에 있다는 것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슬쩍 끼어드는 차들을 예를 들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줄서 있다가 새치기를 당하면 그 순간 나는 두 번째 경우가 되어 몰상식한 상대에게 화를 낼 것이다.

반면에 내가 슬쩍 끼어들었다면 세 번째 입장이 되어 자신의 운전실력이나 순발력을 스스로 대견해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리저리 차선을 옮겨다니며 과속과 난폭 운전을 일삼던 누군가가 마침 교통경찰에 걸리게 되면 네 번째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문제가 시작된다. 모두가 첫 번째 등급대로 살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독립투사들의 희생의 결과를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친일파 후손들이 부를 대를 이어 누리는 것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하지만 현실은 늘 정의롭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사람를이 무의식적으로 세 번째 경우를 자신이 남보다 유능하고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거나 자만하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피해 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점점 더 손해를 본다는 이유로 옳은 것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의 획득에 있어서 이러한 현상이 점점 기득권과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사이의 간격을 점점 더 깊고 넓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뺏지 않으면 빼앗기는 세상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정민 교수는 결국은 '행복권 추구'라는 요인이 관건이라고 부연한다. 돈을 벌지 못해 불행한 사람들과 돈을 벌어도 불행한 사람들이 모두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결국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의 유혹과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개인의 진지한 고민과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이에 대해 다산은 '생각을 바꾸라' 고 조언한다.

"내게 없는 물건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고 한다. 내게 있는 것은 깨달아 굽어보며 '이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대개 내몸에 이미 지닌 것이다.하지만 보통 내가 지닌 것은 내 성에 차지 않는다.사람의 뜻은 성에 찰 만한 것만 사모하는지라 건너다보며 가리켜 '저것'이라고 한다. 이는 천하의 공통된 관심이다. (..... ) 가버린 것은 좇을 수 없고, 장차 올 것은 기약하지 못한다. 천하에 지금 눈앞의 처지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죽을 때까지 미혹을 못 떨치고 오로지 '저것'만을 바란다. 하여 '이것'이 누릴 만한 것임을 잊은 지가 오래되었다."

다산이 <어사재기於斯齋記>란 글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다산은 부자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스스로 자신의 재물이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곧 진정한 부자의 길은 바깥을 향한 욕망을 잠재우고 내 안에 풍요를 깃들이는 데서 성취된다고 정민 교수는 부연한다.

돈이 많아도 욕망이 잠들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깥에서 보는 부의 기준이 나의 행복과 풍요의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내게 없는 '저것'을 욕망하느라 내게 있는 '이것'이 누릴 만한 가치있고 수중한 것임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나자신을 돌아 보았다. 현실적으로 나는 '부자'였던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부자'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더구나 3,4년 전만 해도 나는 내게 없는 '저것'에 매달려 내 성에 도저히 차지 않는 현실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계절의 순환이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도 즐거움도 보지 못한 채 사계절 내내 빛도 들어 오지 않는 동굴 속에 있는 사람처럼 동굴의 냉랭함을 느끼며 1년 내내 추위를 겪으며 살았었던 것 같다.

다행히 힘든 시기들은 지나가게 마련이라 이제는 조금씩 지금 내가 가진 '이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줄 알게 되었고 또한 '이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힘든 시기 덕분인지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죽을 때까지 미혹을 못 떨치고 오로지 '저것'만을 바란다'는 구절의 참담함을 알 것도 같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산은 매우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을 한 실학자였다. 따라서 그는 집안을 일으키고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들을 유배지에서나 해배 후 고향에서나 변함없이 이어나갔다. 다산 초당을 강학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가꾸어 가기 위해 노력했을 뿐 아니라 직접 나무를 심고 채마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했으나 다산에게 있어서 부의 축적은

목적은 아니었다.

그에게 부는 군색하지 않게 집안을 꾸리고 삶의 품위를 지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재물을 가장 확실하게 보존하는 방법은 바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었다.

"형체 있는 것은 부서지기 쉽고, 형체 없는 것은 없애기가 어렵다. 스스로 자기 재물을 쓰는 것은 형체로 쓰는 것이다. 남에게 재물을 베푸는 것은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형체를 형체로 누리면 다 닳아 없어지기에 이르나, 형체없는 것을 마음으로 누리면 변하거나 없어지는 법이 없다.(......)그런데도 내가 능히 죽은 뒤에까지 지니고 가서 아름다운 이름이 천년토록 전해진다. 천하에 이 같은 큰 이익이 있겠느냐? 단단히 잡으려 들면 들수록 미끄럽게 빠져 나가니, 재물이란 미꾸라지다."

베풂과 나눔이야말로 재물을 잃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장한 다산의 이 가르침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부자로 사는 법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이었다.

혹자는 베풀만한 재물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베풀만큼 재물이 있다면야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다고 콧웃음 칠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살아 보니 과연 이만하면 되겠다 하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부를 과연 내가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또 당첨과 같은 횡재를 만나지 않는 한 어차피 앞으로도 그만그만하게 살아갈 것이다. 아니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내게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돈이 많건 적건 재물에는 만족이 없으니, 주어진 현실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라는 다산의 가르침이 더욱 마음에 다가 온다.

금전만능주의 시대에 '욕심내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살며 베품과 나눔을 실천한다'는 말이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고 다소 패배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진 적도 있었다. 정민 교수의 말처럼 '순리를 따라 타박 타박 걷는 걸음으로는 뒤처질 것만 같고 낙오되어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될 것만 같아 불안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돈'과 '성공'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가는 지금, 다산의 가르침이 내게 힘을 보태 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