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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다시 암이 재발해서 투병 중이라 연재글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장애인으로서 온갖 역경을 딛고 유학을 다녀 왔고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따뜻한 글을 많이 쓰는 작가로 유명해 졌으며 그녀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평판도 그 무렵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후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도 한 평범한 개인에게 주어진 운명치고는 야속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장교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고인의 마지막 수필집이 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장교수의 글을 하나 하나 읽어 가면서 장교수의 안타까운 생애와 맞물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제목에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교수의 글은 뭐랄까 너무 솔직하고 꾸밈없이 담백해서 오히려 불편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목소리 크고 건망증도 심하고 정리 정돈과는 거리가 먼 그런 사람 같았다.

마감일에 쫓기거나 아예 마감일을 넘겨서 글을 쓰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나 쓸 거리가 떠 오르지 않아 헤매다가 그 에피소드 자체가 글감의 실마리가 되는 일이 자주 아주 자연스럽게 글속에 녹아 있었다.

그런 그녀의 글들을 통해 받은 인상으로 짐작하건데 장교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서로 가까이 하기 싫어 했을 사람이었을 것 같았다.

스스로 게으르고 '무위의 재능'이 있다고 털어 놓는, 30분에서 1시간까지 약속시간을 어기기 일쑤이고 접촉사고 때문에 늦었다는 변명도 서슴치 않았다고 고백하는 장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솔직함에 내가 되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비행기 탑승시간을 어겨 일어났던 대 소동을 마치 남의 일처럼 그대로 서술한 글을 읽고서는 정말 두손 두발 다 들고 '와! 장교수님, 정말 대단하시군요.~'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었다.

나로서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고백하고 나서도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각오나 확신을 스스로에게 갖지 못하는 그녀의 글을 읽고는 과연, 장교수는 그저 솔직한 사람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마음에 들어 하던, 비난을 하던 상관없이 '나'는 그저 '나'이고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어쩌랴 하는 자신감이 그렇게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낙천적이고 난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자신의 헛점 투성이의 모습을 굳이 감추고 꾸미려 들지 않았던 장교수의 사람됨이 사람들의 마음에 쉽게 다가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나 성향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사실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의 사소한 몇가지의 일면들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단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그 몇가지 일면들을 통해 나와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확연히 있음을 알게 된 후에 마음을 열기도 쉽지는 않았다.

장교수의 책을 읽는 초반에 내 마음이 그러했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뭐랄까 그 글들에 온전히 다 담기지 못했을 어떤 것이 조금씩 느껴지는 듯 했다.

툭툭 끊어지고 연결 고리가 없는 짧고 가벼운 이야기들 하나 하나 개별적으로 읽을 때는 그 의미가 잘 읽혀지지도 않고 그래서 다소 짜증스럽게 느껴지던 글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조각그림 맞추듯 이어지니 알듯 말듯, 보일 듯 말 듯한 어떤 그림이 조금씩 드러 났다.

하지만 다 읽은 후에도 속 시원하게 장영희 교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고인이 된 작가에 대한 예로 끝까지 책을 성실하게 읽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 싶다.

책을 통해 장교수와 소통하고 공감했다고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하지만 그래도 감동받은 이야기들도 많이 있었다.

다음은 '너는 누구나?'라는 글의 끝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작은 위로가 되어 준 글이었다.

" 토마스 머튼이라는 신학자는 "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창살없는 그 감옥에 나를 가두고 온갖 타이틀만 더덕더덕 몸에 붙인 채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 고인이 된 장교수는 창살없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을까? 이제는 자신이 누군인지, 자신이 지상에 남긴 흔적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를 알게 되었을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