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가신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시며 물질만능풍조의 현대인들에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져 주고 어린왕자가 사는 조그만 별로 가버리셨다.  한평생 잘못된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환경과 자연에 대한 한없는 관심을 보이시고 크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포용하셨던 이 시대의 정신적 큰 어른이셨던 법정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며 그 분이 남기신 큰 뜻을 되새겨 보는 것도 남은 우리들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법정스님은 같은 언어와 핏줄, 그리고 풍습을 가진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겪고 난 후 가슴속에 남아 있는 전쟁의 공포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 싶은 심정으로 출가를 하게 되지만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본분을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맹목적이고 형식적인 수도생활을 하는 한국불교의 현실에 갈등과 고뇌를 하게 된다.  이런 고민은 스승인 효봉스님이 생전 행한 ‘불교정화운동’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법정스님은 ‘불교사전’과 ‘불교성전’의 편찬 작업에 동참하고 종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종교인사, 지식인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점차 넓혀 나갔다.  함석헌, 장준하 선생 등의 주도로 결성된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 참여하여 문필가이자 반체제인사로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군사 독재자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으로 수행자로서 갈등을 하던 중 1975년 소위 인혁당 사건으로 주동자 8명이 사형언도 그 다음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존재의 무력감을 느끼고 출가수행자로서의 원위치로 돌아가 자신의 그릇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걸망 하나 걸치고 송광사 불일암에 들어가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홀로 보내게 되고 법정스님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강원도 두메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는 곳(水流花開)에서 새소리를 벗 삼고 넉넉한 햇살 속에서 스님은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자유로운 수행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비정한 시대는 그를 그냥 산속에서 수행하도록 놔두지를 않고 속세를 다시 기웃거리게 만든다.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군사 독재자들에겐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고 갈 길을 못 찾고 혼란 속에 빠져 있는 세상의 이웃들에게는 간디의 말을 자주 꺼내 들었다.

   “ 절망에 빠질 때마다 나는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에서나 진리와 사랑이 항상 승리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p.91)

   1994년 창립된 ‘맑고 향기롭게’는 지난 15년 동안 ‘자신을 경계하고 작은 것이라고 감사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법정스님의 뜻에 따라 각종 봉사와 나눔 운동을 실천해왔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를 의미한다.  1997년 12월에는 한 때는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시주받아 호화롭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유행이 된 이 시대에서 이 절만은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청정 도량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길상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절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더더군다나 무소유를 실천하고 계시는 법정스님의 것도 아니었다. 흙탕물에서도 연꽃이 피고 요정이었던 곳에도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길상사 개원식 때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찾아 와서 축사를 해 주시고 그에 대한 답례로 이듬해 명동성당 축성 100돌 기념식에는 법정스님이 참석하여 특별강연을 하기도 하는 등 종교의 벽을 허무는 행보가 이어졌다.

   법정스님은 순수한 신앙보다는 세속적인 상업주의에 오염된 절이나 교회에 자성을 촉구하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괴되어 가는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분야보다 지대하였다.  결국 정치권력을 향한 마지막 비판 역시 대운하에 관한 것이었다.  법정스님은 무수한 자연자원을 끝도 없이 채취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서구식 개발의 신화 속에 지구 환경의 오염은 가속화 되고 대량소비체계로 인해 인간의 착취와 존재의 상품화로 매몰되어져 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성과 무한경쟁을 질타하고 문명의 해독제는 자연(自然)임을 역설한다.  아울러 교육에 대한 해답을 가정의 핵심인 어머니에게서 찾고 어머니들의 영향력과 역할을 절실히 당부하기도 한다.  스님은 자신에게 닥친 병고도 자신을 찾아온 친지로 여기고 어르고 달래시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한다. 그에게 있어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내려놓는 것이고, 채움만을 위해 살아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이다.  그에게 있어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아는 것이고,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그에게 있어 아름다운 마무리는 개체인 나를 뛰어 넘어 전체와 만나는 것이고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과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하는 것이고 단순해지며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

   스님은 가셨지만 스님은 가시지 않으셨다. 그가 평생을 몸소 실천하셨던 ‘무소유’의 정신은 끝없는 탐욕에 물들어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에 남아 청정하고 순수한 해독제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고 ‘맑은 가난’은 소비와 욕구충족에 혈안이 된 우리들의 생활에 욕구충족만을 위한 삶의 공허함을 깨닫고 의미를 채우는 삶으로의 깨달음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기회(一期一會)인 지금 순간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는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깨어 있음이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무소유의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