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정의를 내렸다.  도도한 세계역사의 흐름도 사실 따지고 보면 강대국의 입김에 작용한 측면이 큰데 시중에 나와 있는 세계사의 대부분이 서양사 위주로 기술된 것이 그 반증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관점 즉, 사관(史觀)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를 차치하고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국한시키더라도 그 기술상에 있어 객관성의 유지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관에 의해서 기술되었느냐에 따라 그 평가는 천양지차로 다르게 된다.  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다방면에 걸쳐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을 보더라도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높이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왕실중심의 서술방식과 당론에 의한 곡필(曲筆)의 문제 등이 제기 되고 있다. 

   기존의 역사관점에서 조금 비껴나 색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들여다보고 인물이나 일화를 중심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와 그 속에 얽힌 풍습이나 어원을 기술한 책이 바로 《조선유사》이다.  동ㆍ서양의 역사, 문화, 풍속, 인물을 연구하고 국내 최초로 지식정보 사이트 ‘만물유래사전’을 운영하고 계시는 박영수 테마역사문화연구원장님이 쓰셨다.  기존의 딱딱한 역사서나 무조건 암기해야하는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소설 한 편 읽는 기분으로 술술 읽어  나가는 동안 역사에 대한 지식은 물론 그 속에 담겨 있는 해학이나 교훈을 느낄 수 있다. 왕조중심의 서술에서 탈피하여 일반 민초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역사서에서 자주 보았던 인물들의 인간적인 고뇌나 삶의 아픔을 가까이서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鄭道傳)도 ‘유학(儒學)의 도(道)를 전하다’라는 이름과 ‘학문과 경세에 최고봉이 되라’는 뜻에서 한양 삼각산 세 봉우리를 따서 지은 아호 삼봉(三峰)이 그를 견제하던 집권세력에 의해 길에서 얻었다는 의미로 낮춰 부르고 여자와 인연을 맺은 곳이 단양 삼봉이라는 식으로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다.  청백리의 표상으로 알고 있던 황희 정승도 뇌물수수, 관직알선, 친인척 비호 등 여러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수시로 탄핵을 받았다고 기술되어 다소 놀라기도 했고, 조선 성종 때의 학자인 손순효는 문장도 뛰어 나고 성리학에도 밝아 국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인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은잔으로 하루 한 잔만 마시라는 왕명을 어기지는 못해서 은잔을 풀잎처럼 얇게 쳐 늘여서 큰 술잔으로 만드는 대목에선 그 기지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한 삼당시인(三唐詩人) 혹은 팔문장(八文章)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최경창과 가무뿐만 아니라 문장과 서화에도 재주 있는 여류문인 홍랑과의 안타까운 순애보 앞에선 마음이 애잔해지기도 한다.  검소하고 준비성 강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많았던 정홍순의 일화에서 사람사이 신의(信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었고,  정조 때 호조판서였던 김재찬의 이야기에선 아들을 정승으로 키운 어머니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에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책은 본문내용 외에도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의 어원이나 풍습에 대한 설명을 ‘문화이야기’라는 별도의 코너를 통해 설명해 놓아 상식을 함양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두루마기와 숙주나물, 삼계탕의 유래에서부터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영문을 모르다’, ‘안성맞춤’의 유래 등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가 내용 중간 중간 등장하는 현대식 삽화를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이 책의 내용을 제한된 지면에 모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직접 읽어 보면서 느끼는 재미는 오롯이 독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을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다루지 못한 진짜 조선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민중의 삶이 또 하나의 역사의 큰 물줄기라는 인식을 넓혀 주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며 일독해 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