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잃고, 가장의 권위를 잃은 여기 사오십대의 남자 조한도가 있다.
바둑 기원을 차려놓고 한 명당 5 천원 남짓을 받으며 생활을 연명하는 허름한 현실 앞에 그는 도전장을 내민다.
성인(聖人)이 되고 말겠다는 터무니 없는 결심을 말이다.

그런데 이 남자가 정말 성인이 되고 싶긴 한건지, 제멋대로의 성인 수행의 지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속의 모든 것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굳센 다짐으로 구박만 하는 아내 대신 빵집의 몽을 몰래 탐내는 탈선을 시작한다. 남몰래 그녀의 풍만함과 젊음을 지켜보는 그는 여자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속으로 삭히며 기회를 기다린다.

이 모든게 성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고는 고고한 걸음걸이로 걸어보며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수행이 시작되고 그의 이러한 수행 과정에는 끔찍하리만큼 아끼던 돈으로 목 놓아 우는 죽기 직전의 닭을 사들이거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겠다는 둥 정말 작정이라도 한 듯 흥청망청 써버리고만다.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집에서 쫓아낼 것 같은 그녀의 부인에 대한 반항심일까? 아니면 가장으로서의 버팀목이 아닌 갈 곳을 잃고 서성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작은 위로였을까. 심지어 몽을 위해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겠다며 남은 금 몇 돈을 팔 생각까지 이르른걸 보면 정말 작정하고 세속을 삼켜버리겠다는 그의 우스운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그치만 그가 사온 닭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가 돈을 준 흑인 여성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스쳐가버린다. 그에게 남은 것은 또 제로다.

그가 성인이 되기로한 계기는 매일 구박하던 아내를 이해하기 위한, 바꿔말해 그녀의 잔소리를 무시하기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고 탈선의 정당성이었다. 소심한 그의 탈선의 시작이었던 여자 몽. 다가서지도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며 그녀와의 사랑을 수십번 속으로 되뇌인다.부인의 잔소리에 제대로 버럭할 줄도 모르던 소심한 이 남자는 왜 하필 이 남자는 빵집의 젊은 아르바이트생 몽에게 위로를 받아야 했는가.

어쩌면 그에게 빵집의 몽은 가정에게 느낄 수 없었던 포근함과 편안함이 었을것이다. 결코 그녀의 성격이 푸근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매일 보고 있는 몽은 언제나 젊음의 풍만함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너무나도 좋은 수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내의 억척스럽고 강인한 모습이 아닌 여리고 순수한 모습.

그치만 어디까지나 몽은 조한도의 사랑이 아니다. 오로지 외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상상하기에 바빴던 그에게 몽은 단지 당장이라도 거친 욕설을 내뱉을 아내 대신 선택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렇게라도 위로를 받을 곳이 필요했던 조한도는 결국 몽과의 로맨스도, 버젓한 연극계의 복귀도 꿈꿀 수 없게 되어버리지만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보잘것 없고 때로는 비참할 지라도 그 어떠한 성인의 위치보다 더 위대한 자신만의 자리로. 현실 속의 사오십대의 가장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