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타이밍이다.” 이렇게 이 책은 삶을 정의하며 시작한다. 시간과 공간과 기회와 만남, 이 모든 점들이 만나는 타이밍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의 연속.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왜 이렇게 시작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 책의 끝 페이지까지 다 읽었을 때 알 수 있었다. 그 타이밍이라는 것이 책 전체를 훑고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에는 참 편안하게 읽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고,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의 이력에서도 느껴지듯이, 참 차분한 책 한 권을 읽게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임을 곧 깨달았다.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 전에 읽을 페이지를 정해놓고 읽기 시작했지만, 뒷부분이 궁금했던 나는 뒷부분을 마저 읽고 새벽이 넘어서야 잠들 수가 있었다.

 

칼럼니스트인 하수경, 그녀는 인지기능왜곡현상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 모든 사물을 흑백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물론 시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심리적인 문제였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프로젝트가 맡겨진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진전을 둘러보고 그것에 관한 감상을 쓰는 작업이었다. 흑백 밖에는 구분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 일을 무사히 완수하기 위해 정신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된다. 의사는 ‘블랭크스폿’을 거론한다. 블랭크스폿은 기억의 빈 공간을 의미한다. 즉, 특정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된 기억들을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하수경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나름대로 사진전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준비를 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사진전에 전시되는 작품 중에서 유독 한 작품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 작품에서만 색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녀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억의 빈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모든 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흑백의 색밖에는 구분할 수 없었던 그녀였기에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그 직업을 통해 사진전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고, 그 일을 통해 블랭크스폿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고, 그리고... 읽는 내내 그녀의 시선을 따라 블랭크스폿 그 깊은 곳으로 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삶은 타이밍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지금 나의 삶도 시간과 공간, 기회와 만남 속에서 어떤 접점을 이루며 나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그 수많은 타이밍들이 지금 현재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했듯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 속의 만남과 사건들이 미래의 그 어떤 타이밍을 정확히 계산하며 흘러가고 있지는 않을까? 삶은, 타이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