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현재의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불편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이 초기설정 값이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지금을 돌아보는 몇 년 전 혹은 몇 십 년 전의 초기값을 보게되는데, 이 책의 학자들이 흘려주는 이야기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게 된다.

    이 책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그 나라의 정치 혹은 정치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국민이 왜 중요한지 행간에 가득 들어있다. 이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 이야기는 그와 그 주변에 있는 각 국의 주요 대사, 백악관 막후에서 움직이고 있을 사람들이 누구인지 관심을 갖게 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미국의 번영과 안정일까 아니면 개인의 명예와 부의 축적일까. 전지구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최소한 미국민의 안녕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해서 묻게 된다. 

    "국제적 차원에서 협력할 기회와 능력을 저해해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것입니다...(중략)...20세기 전반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지금이 훨씬 위험합니다. 전 인류의 실존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에도 정치가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까요(p.30; 유발 하라리)." 

    "예를 들어 전통 사회에서 기르는 돼지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합시다. 그 돼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우선 사람을 보내 대화를 시도합니다. 죽을 때까지 상대해야 할 사람이므로 완전한 적으로 돌리지 않도록 가장 먼저 감정적인 면을 해소하기 위해 애씁니다. 전통 사회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 중 경이로운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미국에서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변호사와 보험회사에 연락하거든요. 타인인 상대와 만날 일은 없지요. 상대가 자신을 증오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p.86; 제레드 다이아몬드)."

    "우리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인식하면서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테지만, 반대의 결과도 나올 수 있습니다(p.104; 닉 보스트롬)."

    "기업에서와 달리 정치에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상정하거나 불필요하게 논점을 흐리며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을 아직도 구사합니다. 참으로 졸렬하지요(p.135; 린다 그래튼)."

    "상위 1퍼센트가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는 세계 기업들을 보면 알기 쉽습니다. 어느 분야든 재벌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점점 늘고 있응니까요. 그 기업들은 과학기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원이 타사보다 많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p.160; 다니엘 코엔)."

    "미국에서는 10년마다 인구센서스가 시행됩니다. 그 결과를 토대로 행정구역을 재편하고 선거구와 의석수를 조정하는 거죠. 이때 컴퓨터를 이용해서 대부분이 공화당원뿐인 구역이나 민주당원뿐인 구역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치우친 것입니다...(중략)...공화당은 민주당 텃밭에서 세력을 키우려고 애쓰기보다 공화당이 이길 확률이 높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전력을 쏟아부은 것이죠(p.181-182; 조앤 윌리엄스)."

    "트럼프와 공화당은 2016년에 승리를 거머쥐고 나서 2017까지 무려 1년간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시기에 오바마가 했던 모든 것을 되돌리는 데 열중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트럼프는 취임 첫날부터 오바마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던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해왔죠(p.192; 넬 페인터)."

    "제 개인적으로 정신적 합의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은 북한의 체제를 전복시킬 의도가 없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단순한 휴전이 아니라 영구적 평화에 도달하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평양에 대표를 파견해 언젠가는 대사관 설치로 이어지도록 하는 소통 시스템과 공동 경제 프로그램과 관련해 협의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중략)...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충분한 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에 대한 반대가 거세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실현할 기회를 잡지 못한 거죠(p.214-215)."

    마지막 장의 이야기는 몰랐다. 1994년과 20세기 말의 우리나라의 현실인데 왜 이런 서사적인 문장들은 생략되고 뉴스에서도 어느 시점부터 한 쪽 편에 불리한 혹은 유리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공화당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주시할 만하다.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력과 뉴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인데 실제로 무엇인가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쩌면, 이제는 생각없고 대안도 없는 정당으로 묘사된 민주당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치인과 만나서 공화당화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30년 후를 학자들이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잘 사는 나라들이 그렇지 못한 나라들에 대해 취해야 하는 태도, 기술과 인간 삶의 조화,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대담자들은 일본과 미국, 혹은 선진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을 보면 흥미로운 틈새를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