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에 읽어보는 소설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소설쪽은 마음이 잘 가지 않았는데,

 

기본적인 안전판이 없는 장르라서인가보다.  어떤 책은 우주에서 날아온 혜성만큼 강렬하고 참신한데

 

간혹 몇몇은 읽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좌절과 실망감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냥 바삭바삭 말라버린 감성을 항변하기 위해 지어낸 나의 변명일까?

 

~ 해야 한다식의 자기개발서가 나의 목록을 가득채우고 있는 요즘

 

작가가 묘사한 세상처럼

 

더이상 움직이지 않은 완벽하게 짜여진 판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심적 위로 혹은 마취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손에 잡고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는데 아마 3시간 반정도 걸린것 같다.

 

지루한 책에서 발견되는 얼마나 남았나 넘겨보기, 훑어보기도 없고

 

그 3시간의 공백이 눈한번 깜박한것처럼 빠르게 지나간 것을 보면 꽤나 재미있었던 것이 틀림없나보다.

 

 

기자출신이어서인지 문장이 날카롭고 예리하다. 지금 우리 20대의 군상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써내려갔고  그가 정확하게 목표로한

 

연령대에 걸려 있는 나로서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만 " 예리하게 도려낸 것 같은 통증" 을 느꼈다. 나의 비루한 생각이 읽힌것처럼.

 

 

처음에는 요즘 자주 등장하는 인터넷 소설들같은 가벼운 책일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현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상황인식이 인상적이었고

 

이를 묘사함에 있어

 

어설픈 치기나 과장없이  화살처럼 날아가 과녁에 꽃히는 듯한  표현으로

 

통쾌함과 명석함을 보여주었다.

 

 

자살이란 가장 극단적이고, 비록 작가는 이것이 적극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가장 소극적이고 자기연민적인 해결책이다.

 

 

 

초반의 몰임감에 비해 후반부의 결말은 다소 인위적이다.

 

물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답이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더라도

 

마지막에 극적인 반전을 보이며 띄운 희망의 메세지는 어쩐지 김빠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떠한 결말을 맞이해야 속이 후련했을까? 물론 나는 모른다.

 

 

그가 전업 작가가 아니고 그 바쁘다는 기자로서 틈틈이 이 소설을 완성했다는 것에 경의로움을 감출 수 없다.

 

불과 나보다 몇살 많지 않음에도 그동안 축적되온 경험이 존경스럽고

 

두리뭉실하게 뭉게지 않고 정확하게 집어내는 필력에 놀랐다.

 

마치 어렴풋하게 떠오른 영상에 매직팬으로 윤곽을 그리듯

 

그의 글을 읽으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가끔 이런 책을 접하면 나의 사고가 얼마나 아직도 한정적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풀어나가는 초고수들이 많은가 놀란다.

 

-------------

 

세상도 뭔가 그럴 것 같았다. 이 세상은 사실 허점 투성이여서, 야심만만한 젊은이가 나타나 초패왕이나 카이사르처럼 칼을 휘두르면 적들은 마분지로 만든 인형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다. 동기 녀석들이 기껏해야 부모에게서 용돈을 타 쓰는 주제에 경제가 어렵다고, 취업이 안 된다고 우중충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나는 오히려 지금이 주식을 살 때고 부동산을 살 때라고, 내가 돈만 있으면 그랬을 거라고 큰소리 쳤다. 그리고 공부는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든 것도 없고, 허풍을 치는 것 외에는 잘 하는 일도 없고, 전망도 없는.

 

단지 정상인이라면 감히 넘을 생각조차 못하는 어떤 선을 살짝 넘기만 하면 돼.

 

나는 상대방에게 '수컷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남자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놈한테는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녀석. 내게는 세상 많은 것이 우습게 보였고, 남자들은 자신이 우습게 보이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나는 그저 비겁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중산층의 자식일 뿐이야

 

너무 쉬운 길로만 걸어왔다는 데이 죄책감을 느껴. 독립운동가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자수성가한 사람 이야기만 들어도 부끄러워. 안전하게만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러워.

 

어쨌든 바쁘고, 뭔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 같은 것을 네게 줄 테니까. 아니, 적어도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할 거리를 줄 테니까 말이야.

 

"뭐죠? 안 되는 놈들은 뭘 해도 안되는 건가?"

 

사회는 본래의 유동성을 상일했으며, 노동자의 업무는 세밀하게 정해져 있다. 가회 역시 고정되어 개인은 출발부터 열린 미래를 갖지 못한다.

 

이제는 적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앞으로 재미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야만과 관료주의의 중간 상태에 있었을 때.

 

적은 정해져 있고, 무엇을 위해 싸울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테니. 이미 적들이 내 아버지를 살해하고, 내 조상을 욕되게 하고, 우리 부족의 여인들을 범한 상태. 나는 그저 무기를 들고 싸우러 나가면 되는 거다. 복수.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단어이던가. 이 단어는 어떤 이유도 묻지 않는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 모든 회의로부터 그를 구해줄 수 잇는 가장 강력한 동기. 사랑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는 열정.

 

복수와 정복은 결코 완성되어서는 안되었다. 이뤄지는 순간 그 과제는 곧 거대한 공허로 변해버릴 테니까. 그 목표는 언제나 두어발 앞에서 빛나고 있어야 했다.

 

내가 그 의미를 알고, 그 이야기에서 뽑아낸 가치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좀더 단순한 이야기.

 

너희도 죽기 전에 마지막 할일이 하드디스크에 야동 지우는 거라고 농담하잖아.

 

 

나는 사람이 저마다 검거나 붉거나 푸른 색깔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색들이 어울려서 세상이라는 화포에 어떤 이미지를 그려낸다는 상상을 했지....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이상 없어. ..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잘난 녀석이 잘난 체도 안 하고 유약해 보이지도 않으면 흠 잡을 데가 없어서 기죽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대신 잊히는 데도 15분이면 충분하지.

 

어떤 것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다. 아주 작은 균열, 아주 작은 실패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마치 끝없는 구멍속으로 빠르게 떨어지면서 다음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는 끊없이 펼쳐진 미로를 둥둥 뜬 상태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성공의 가치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 사이의 모순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했고, 무엇보다 그 모슨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지닌 젊음이였다.

 

너무 천박하다고 생각해 경멸해 마지 않은 상대와 지극지극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이 합격하면 애를 낳지 않고 그 대신 남들이 좆같이 양육비에 쓰는 돈을 전부 유흥비로 쓰면서 다시는, 다시는 씨발 이렇게 궁상맞게 살지 않을거야.

 

실업자로 살면서 몇 끼는 쫄쫄 굻어봐야 정신을 차릴 새끼.

 

장국영의 영화 속 캐릭터는 매번 추와 닮기도 했다. 실제로는 대단한 도전도 반항도 하지 않으며, 심오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머리도 없고, 상처를 잘 받으며, 무책임하고 자기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점에서 그랬다.

 

내가 세상에 할 수 있는 복수는 그 정도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지금처럼 날카로울 때 죽고 싶어.

 

나는 우리가 확실히 어떤 선을 넘었음을 느꼈다.

 

우리 관계를 다시 정립하지 못한 채, 추와 세연을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잇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지 못한 채, 그냥 외로움을 못 이겨 추와 화해했다.

 

두 녀석은 머리도 별로 좋지 않았고 공부에 의욕이 없는데 그렇다고 성깔이나 악다구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치도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심히 염려스러웠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녀가 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걸까 싶어 불안했다.

 

손님들마다 한 번씩 쓰다듬고 목을 만지고 지나가는데, 정작 그 자신은 사람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 피곤한 개말이다. 사람 손을 탈대로 타서 이제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손님이 귀찮기만 하지만 소니님에게 짖거나 손님을 물었다간 주인에게 맞는다.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약이 아니라 머리를 멍청하게 해서 기쁜 일이고 슬픈 일이고 못 느끼게 만드는 약이야.

 

가능한 한 공손하고 비굴하게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인생은 아무 진출 입구가 없는 외길 고속도로를 목적지도 없이 계속 달려가야 하는 것과 비슷했다.

 

우리 모두가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나는 셈인걸 감안하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감정에 북받쳐 사표를 내거나 갑자기 산티아고로 순례 여행을 떠나거나 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