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스티븐 브라이어스의 ‘엉터리 심리학’이란 책은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겪은 엉터리 심리학의 사례들을 회상해 보도록 하는 책이다. 최근 나는 한 불교 승려의 불교 비판서를 읽었다. 일반적으로 불교는 마음을 정교하게 분석한 종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책에서 저자는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을 소홀히 하고 고정불변의 족쇄처럼 업(業)과 윤회를 활용하는 교리적 경직에 대해 비판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문제의식을 수용한다면 불교가 아무리 정교하게 마음을 분석해도 그런 경직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점이 바로 엉터리 심리학 정확하게는 엉터리 불교심리학의 사례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그 저자는 아귀, 축생, 지옥, 수라, 인(人), 천(天) 등 여섯 가지의 차별적 세계를 돌고 도는 것으로 설정된 윤회를 과연 붓다가 나누었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으며, 다섯 가지도 일곱 가지도 아닌 여섯 가지(육도윤회)라고 딱 잘라 분류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치료자로 불교 명상을 활용한 정신치료로 각광을 받고 있는 마크 엡스타인은 육도윤회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을 선보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축생계는 욕망이 지배하는 상태로, 지옥계는 편집증과 공격성 및 불안감이 지배하는 상태로, 아귀계는 만족할 줄 모르는 갈망의 상태로, 천상계는 인간의 절정 경험으로, 아수라는 경쟁적이고 유능한 자아 상태로, 인간계는 자기동일성의 문제를 추구하는 영역으로 나누었다.

관건은 무엇일까?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위의 승려와 정신과 의사의 진단은 각기 설득력 있는 답안이라는 것이다. ‘엉터리 심리학’의 저자인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는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이다. 그가 쓴 ‘엉터리 심리학’(원제는 psychobabble)은 엉터리 심리학의 신화를 폭로한 책이다. 그는 엉터리 심리학 법칙을 18 가지로 나누었다. 자존감을 높이면 성적이 올라간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별에 살고 있다?, 내 안에 상처받은 아이가 들어 있다?,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나의 콤플렉스는 부모 탓이다?, 마음을 치유하면 몸도 건강해진다? 등...

저자는 ‘카네기 인간관계론’, ‘마음의 해부학’, ‘루이스 헤이의 ’치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등 전 세계적으로 수 천만부에서 수 억부가 팔린 심리학 책들을 언급한다.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 쉬우니까 그렇게 많은 책이 팔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충분히 고려해 쉬운 설명으로 대안이나 해답을 제시한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릴 리는 없다. 그 책들이 나름으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기여를 하겠지만 어쩌면 독자가 읽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들려주는 것에서 별로 나아가지 않은 것은 아닐까?

사실 요즘 심리학 책은 처세서나 자기 계발서, 더 나아가 힐링 서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이미 그런 책들(처세서, 자기 계발서, 힐링 서적)이 지닌 공허함,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처방이라는 편협함은 널리 비판을 받고 있다. 그들을 향해 저자는 이론을 사실이라 잘못 생각하고 희망 사항과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한다면 스스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엉터리 법칙으로 소개된 것 가운데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엉터리 법칙 9)는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두고 하는 이야기인 듯 하다. ’연금술사‘는 소설이 아니냐, 하겠지만 현실에서 소설이 하는 기능과 심리학 책들이 하는 기능이 명확히 나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김형경 작가가 정신분석적 이론가를 연상하게 하는 정도의 구성력으로 치유의 기능을 담당하는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쓴 심리 치유 기능의 소설을 보고 감동한 사람에게 당신이 받은 감동과 치유는 소설에서 비롯된 것이니 무효라고 말할 수 없듯 동화적 세계나 상상 속 세계를 다룬 소설을 본 사람이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심리학 책이 아닌 소설로부터 받은 영향이니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별히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별에 살고 있다(엉터리 법칙 7)는 내용은 관심이 많이 가는 내용이다. 남성 안에 여성적 심혼(心魂)인 아니마가 있고 여성 안에 남성적 심혼(心魂)인 아니무스가 있다는 융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역을 공유하는 존재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자 안에서도 개인 차가 있고 여자 안에서도 개인 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 性인 sex와 사회적 性인 gender의 복합체라 해야 옳다. 저자가 실험 결과를 인용하며 말했듯 남자들의 신경계가 여자들의 신경계보다 더 예민할 수 있지만 얼굴에 아무런 표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 하다 보니 그 감정의 변화가 다른 경로를 통해 드러난다는 이야기도 가능할 것이다.(105 페이지 참조)

어떤 분야에서이든 고정된 역할 부여는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도록 유혹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고정된 역할이라 했지만 엉터리 심리학은 결국 다양한 변수를 버리고 일부 제한된 변수만을 취하기에 고정된 입장과 편견 등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공허한 심리학적 진실을 가르치며 힐링을 강조하고 자기 계발을 독려하는 책들은 결국 모든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외면하게 한다.

엉터리 법칙 8로 소개된 내 안에 상처 받은 아이가 들어 있다는 가장 흥미로운 논점을 안겨준다. 상처 받은 아이가 내면에 있음을 주장하는 논자들 역시 아이에 대한 고정관념 형성에 한 몫 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말한다. 내면의 아이를 포용하라는 치료법은 아이에게는 괜찮지만 성인에게는 독이 되기도 한다고.(120 페이지) 저자는 그런 엉터리 법칙에 맞서 이런 처방을 제시한다. “당신의 내면에 있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다면, 마음껏 그렇게 하라. 그러나 당신이 지금 받은 상처 혹은 여러 가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그것이 언제 생겨났는지에 관계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 모습의 일부이며 그에 걸맞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이미 저질러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의 미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흠집도 나지 않은 상태다.”(125 페이지)

이 글의 키워드는 당연히 상처 혹은 욕망이 언제 생겨났는지에 관계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 모습의 일부이며 그에 걸맞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불교의 업(業)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은 자신과 무관한, 어떻게 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 의해 저질러졌으나 과거가 되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내면의 상처 받은 아이 관련 부분에서 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다. 업(業) 다른 말로 트라우마 치유는 새롭게 열리는 시간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의 콤플렉스는 부모 탓이다(엉터리 법칙 12)는 이슈적이다. 이 법칙은 프로이트와 클라인의 이론이 소개된 챕터의 주요 부분을 이룬다. 역시 오이디푸스 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문제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에 따르면 애착에는 안정과 불안정이라는 두 가지 주요 형태가 있다.(179 페이지) 애착(愛着)의 착(着)이 붙을 착인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이는 고정된 즉 끈질긴 것과 관계 있다. 어린 아이 시절의 애착 관계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연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애착이란 어느 면 강박적 성향을 의미하는데 그러나 저자는 “우리 주변에는 매번 상대가 바뀔 때마다 매번 좋지 않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와 동시에 아주 끔찍한 연애 상대들과 헤어지고 나서 자신에게 꼭 맞는 사람을 찾은 뒤 기적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182 페이지)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란 주장이 지나치게 긍정적이라면 어린 아이 시절의 애착 관계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연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인간의 애착 행동은 진화적으로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주로 위협적인 환경에서 활성화된다는 한 교수의 말을 인용하는 저자를 통해 알 수 있듯 하나의 요인으로 전부를 설명하려는 것은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언젠가 한 정신과 의사가 낙관도 비관도 아닌 여실지관(如實之觀; 물론 이 말은 공식 용어가 아니다. 불교의 여실지견에 착안해 만들어냈기에 의미를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을 주문한 것이 생각난다. 엉터리 법칙 13으로 소개된 마음을 치유하면 몸도 건강해진다는 내 주된 관심사이다. 나 역시 저자가 말했듯 마음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몸의 영역 또는 몸 자체에 의해 빚어진 결과를 마음의 작용으로 해석하거나 몸 또는 물리적 원인을 찾지 못할 때 마음 탓으로 돌리곤 한다. 이미 몸이 아픈 사람에게 마음을 바르게 하라고 말하거나 마음을 바로 쓰지 못한 탓이라 말하는 것을 옥상옥(屋上屋)이라 말한 사람이 있다.

엉터리 법칙 18 가지를 통해 알게 된 바른 사실은 많다. 그 가운데 ’아무도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진정한 자아(自我)‘라는 말이 특별히 와 닿는다. 저자는 “내 안의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단지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240 페이지) 이 부분이 특별히 와 닿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의 진리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불교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힌두교화한 불교에 발을 딛는 것이라면 진정한 자아를 찾는 심리학자들은 정신분석학이 이야기 하는 분열과 모순, 이질적인 것들로 채워진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전근대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은 특정한 경우 일부 사람들을 치료해줄 수도 있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의 전문가는 당신 한 사람 뿐이라는 저자의 결론을 음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