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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누군가의 죽음이 사건처럼 벌어지고, 그것이 먼 사람이었다가 가까운 사람으로 되돌아오는 그 모든 과정이, 원근법이 모두 사라진 풍경처럼 내겐 낯설고 몹시 두려웠다.

타인의 고통을 알아보는 힘을 지성이라 말했던 수잔 손탁은 모두 네 가지 종류의 암을 앓았다. 그녀의 대표작 『타인의 고통』은 1998년 자궁암 선고를 받았을 때 구상한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맨해튼 어퍼 이스트 빌리지에 사는 유대인 가족의 까다로운 여섯 살짜리 아이의 보모 노릇이었다. 모두 18명의 보모를 빠른 시간 안에 퇴짜 놓던 여섯 살짜리 아이가 무슨 기준으로 나를 선택했는지 상상하는 건 쉽지 않았다.

원망도, 의심도, 슬픔도, 희망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그저 알고 싶은 얼굴이었다. 스스로 찾으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한 답을 구하듯, 그녀는 찾지 못한 답을 남편이 사랑한다고 믿는 내게서 구하고 있었다.

서울의 대학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보기에 따라선 금의환향이었다. 그러나 아직 말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어떤 성공은 실패에 가깝다는 말. 나는 이제 실패를 조금 더 예민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청춘을 지나왔다는 점. 그러니까

몸은 행복하게 보냈던 한 시절을 고집스럽게 기억한다. 행복이 그만큼 드문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년이 지나갔다. 그래도 내 몸은 아직 그 자리를 명백히 기억해냈다.

비극을 전달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건조해서 성공한 기업인의 자서전 중 ‘역경’ 파트의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해두고 싶어서 허락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인이 나를 바라봤다. 마치 내 안의 모든 것을 꿰뚫겠다는 듯, 몇 번에 걸쳐 나를 보고 또다시 보고 있었다. 창문 밖에 눈 알갱이가 맺혀 있었다. 텅 빈 수영장 안으로 흰 눈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다르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알고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상황을 점점 더 끔찍하고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니, 대부분 그렇다.

정인이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구겨진 이불을 힘겹게 밀어내고 비스듬히 앉아,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은 뭔가 말하고 있지만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