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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우경식 : 쪽방촌의 성자, 요셉의원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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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의사’라는 직업에 하느님이 주신 소명은 무엇인가?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무료’ 요셉의원 설립자,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의 삶과 영성, 내면세계를 담아낸 걸작!

영등포의 화려한 쇼핑몰 거리 옆의 쪽방촌 입구, 그곳에는 가난한 환자들에게 모든 것이 무료인 병원 요셉의원이 있다. 이곳이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쪽방촌의 성자’로 불리는 선우경식 원장이다. 그는 미국 대형병원의 전문의, 한국의 의대 교수 자리를 모두 버리고 평생을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다. 의사 면허를 받은 이후부터 의사라는 직업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 소명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은 전기 문학으로 유명한 이충렬 작가가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각종 자료를 검토하고,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해 써낸 의사 선우경식의 공식전기이자 유일한 전기다. 평생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다 간 우리 시대의 성자, 선우경식의 삶과 영성, 내면세계를 이충렬 작가의 생생한 붓끝으로 만나보자!

출판사 서평

그 가장 어려운 곳에서 아픈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 우리의 성자,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성경을 지침 삼아 의사다운 삶을 실천한 선우경식을 만나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삶을 보듬어야 한다. 가난한 환자들을 “의사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하고 고귀한 꽃봉오리”라며 평생을 가난한 환자를 위한 무료진료로 보낸 선우경식 원장이 더욱 그리워지는 때다.
아쉽게도 선우경식 원장의 삶은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선우경식 원장이 평생을 일한 요셉의원이라는 곳 자체가 노숙자, 행려자처럼 가난하면서도 의료보험 제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무료진료 병원이었고, 본인도 스스로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분열되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선우경식 원장과 같은 이의 삶이 더 조명받아야 한다.
선우경식 원장의 삶은 그동안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나 기사 등을 통해서만 알려져 왔다. 《간송 전형필》 《아, 김수환 추기경》 《신부 이태석》 등을 쓴 한국 전기 문학의 대가 이충렬 저자는 의사다운 삶을 고민하며,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아간 우리 시대의 성자 선우경식의 삶에 큰 감동을 받아 《의사 선우경식》을 썼다. 이 책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교회 인가를 받은 요셉의원(요셉나눔재단법인)의 공식전기이자 유일한 전기다.

전기문학의 대가 이충렬 저자가 생생히 그려낸
‘쪽방촌의 성자’ 선우경식 원장의 삶

선우경식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후 병원에서 일하며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직접 접하게 된다. 이에 실망하고 가난한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가 없던 미국으로 건너가 전문의로 일하기도 했지만, 돈 잘 버는 미국 의사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귀국 후 성프란치스코의원과 신림동 사랑의 집에서의 의료 봉사를 통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게 된다. ‘가난한 환자들을 친구처럼 사랑하면서 그들의 이웃이 되는 의사’라는 길을 찾은 것이다. 이를 위해 가난한 지역 주민들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조합을 만들어 병원을 설립하기로 한다. 그러나 병원 설립에는 막대한 재원이 들었고, 선우경식은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도움을 청한다. 김 추기경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기관이 되도록 도왔고, 모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많은 어려움 끝에 설립된 요셉의원은 신림동을 거쳐 지금의 영등포로 이전하면서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무료병원이었기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운영할 수 있나? 세 달 이상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을 듣기도 했으나 선우경식은 이런 어려움을 굳은 의지와 신앙으로 극복하고 모범적인 무료병원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료병원이기에 노숙자나 행려자,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많았다. 선우경식도 인간이기에 치료가 잘 되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다시 술에 취해 병원으로 올 때면 회의가 들고 힘들고 괴로웠다. 그때마다 ‘의사에게 의술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한 덕목은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며 자신을 추슬렀다. 오히려 더 힘든 건 병원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IMF로 인해 환자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경영은 더 힘들어지자, 선우경식은 후원회를 조직하고 자선음악회를 여는 등의 방안을 통해 어려움을 돌파해 나간다.
“무엇보다 가난의 현실이 각성케 해준 선물이라면 환자 중의 환자, 의사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하고 고귀한 꽃봉오리 같은 환자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바로 이들이 저를 필요로 했고, 요셉의원의 이 자리에 저를 불러주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 무료진료를 해온 선우경식은 급성 뇌경색과 위암으로 고통받으면서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다 지난 2008년 63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이 책은 선우경식 원장의 삶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사’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생활이 팍팍해지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의사 선우경식의 삶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 이 책의 인세는 전액 요셉나눔재단법인 요셉의원에 기부됩니다.

추천사

김수환 추기경
선우 원장님은 생전요셉의원이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많은 소외된 이웃에게 소외의 어둠을 밝혀주는 등대로 자리하기를….
_ 2003년 7월 7일 방문 미사 중

정순택(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대주교)
선우 원장님은 생전에 ‘나는 원하는 대로 봉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풍요롭게 살았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그대로, 세상 사람들에겐 어리석게 보였을지 몰라도 가장 행복한 삶을 사신 분입니다.
《의사 선우경식》을 읽는 독자들도 그분의 삶을 통해 나눔과 봉사의 삶으로 이어지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목차

추천의 글_ 요셉의원과 함께했던 21년의 삶을 충실히 복원한 전기
서문_ 가난한 이들의 의사 선우경식

1부 갈등 속에서
1 의사란 무엇일까?
2 강원도 정선으로 떠나다
3 새로운 길을 만나다
4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5 십시일반으로 병원을 만들 수 있을까?
6 김수환 추기경의 조언
7 3년 동안 상근 원장으로 봉사할 수 있어요?
8 산 넘어 산
9 솜바지를 입고 근무하는 병원
10 신앙의 길을 향하여

2부 멀고 험난한 무료진료 병원
11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
12 밑 빠진 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란다
13 가난한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14 봉사자들과직원들의 소중함
15 들려오는 재개발 소식

3부 더 낮은 곳으로
16 마지막 고비
17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18 멱살을 잡히며 얻은 깨달음
19 함께 웃고, 함께 울고
20 IMF와 함께 찾아온 위기
21 아, 아버지!
22 노래의 날개 위에

4부 착한 이웃이 되기 위하여
23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예의
24 ‘자랑스러운 가톨릭의대인’
25 개원 15주년과 동반자들
26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는 의사가 되려고
27 쪽방촌 실상에 눈물을 삼킨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
28 환자가 더 어려운 환자를 간병하는 병원
29 가난한 환자는 의사에게 소중하고 고귀한 꽃봉오리

5부 생의 마지막까지
30 멈추지 않는 열정
31 쓰러지고, 일어나고, 또 쓰러지며
32 이겨낼 수 있다 기대하며
33 마지막 순간까지

후기_ 말없이 뿌린 작은 씨앗 하나가
선우경식 연보
참고 자료 및 인터뷰
화보

본문중에서

선우경식은 1969년 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후 끊임없이 의사란 직업에 대해 고민했다. 당시는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접수할 때 진료비나 수술비를 내야 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돈 없는 환자들이 발길을 돌려야 하는 현실을 보며,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떠올렸다. “사람을 살리는 데 의학을 이용하겠다”라고 했던 학생 때의 맹세를 지킬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고민을 거듭하며 제3의 길을 찾았다. (7쪽)

사랑의 집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이경식 전문의와 고용복 전문의, 몇몇 레지던트들이 번갈아 참여하며 진료가 체계를 잡아가자, 크고 작은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사랑의 집으로 찾아왔다. 60~70명의 진료 환자 중에는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 맹장 수술이 필요한 사람, 아기가 거꾸로 들어선 임산부, 결핵에 걸린 사람 등이 있었다. 그때마다 선우경식은 두 명의 외국인 신부님들에게 “이 환자가 폐렴 같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습니다”, “위암 같습니다”라고 말해주고는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며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누구인지 알려줬다.
그런 날이면 집에 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외국인 신부님에게 환자를 맡기고 왔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신부님들이 그 환자들을 업고 시립병원이나 성모병원에 가서 자선진료의 혜택을 받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의료시설이 없는 사랑의 집 좁은 방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투약이 전부였다. 간혹 신부님들이 자선병동을 찾지 못했다는 연락을 해 오면 선우경식은 모금에 함께 참여했고,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이나 동창 의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저렴한 가격으로 입원이나 수술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1984년, 그의 나이 39세 때였다. (45~46쪽)

얼마 후 선우경식은 어렵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당시 김 추기경은 매해 30만 명 이상의 시골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지만, 그 대부분은 돈이 없어 시흥이나 안양천 건너 목동의 뚝방촌, 양평동 판자촌에 살면서 늘 강제철거의 불안에 떠는 도시빈민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대교구는 도시빈민 사목이나 사회복지 사업을 할 경제적 여건이 못 되고 전문 인력도 부족해 외국 수도단체에 의존하는 상황이었기에, 선우경식이 조합을 만들어 병원을 설립하려 한다는 설명을 들은 추기경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셉 형제님, 교회가 서둘러서 그런 곳을 찾아가 복지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습니다. 1960년대의 경제발전에 따른 도시개발로 파생된 도시빈민들은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항상 질병의 위험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지요. 그런 지역에 각각 본당(성당)이 있지만 그들을 돕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고요. 그런데 그들에 대한 의료문제를 교회가 아닌 평신도들께서 좀 더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다만 그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경청하던 선우경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에는 너무나 많은 분이 진료와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사람 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의사 공부를 했기에, 저 역시 쉬운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렇게 병원 설립에 동참하게 되었고 추기경님의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뵌 겁니다.” (54~56쪽)

얼마 후 준비위원회가 열렸다. 원장이 정해졌으니 병원 이름도 만들기 위해서였다. 선우경식이 먼저 의견을 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평생을 살았던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1858~1916) 성인의 영성을 제 신앙의 좌표로 삼고 있습니다. 또 그분이 설립한 ‘예수의 작은 형제회’ 재속회원으로 살면서 한 달에 한 번씩 그분의 영성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석 중이고요. 그러니 병원 이름 또한 그분의 이름을 따 ‘푸코의원’이라 하면 좋겠다 싶은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준비위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푸코 성인의 정신을 따르겠다는 마음은 훌륭하나, 그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는 이유에서였다. 그때 ‘교회빈민의료협의회’ 총무로 활동하는 백월현 위원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병원으로 이해하기 쉽게,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성가정의 수호자이며 임종하는 이와 노동자들의 수호자이신 요셉 성인의 이름을 붙여 ‘요셉의원’으로 하면 어떨까요?”
“그 이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초대 원장으로 추대되신 선우경식 선생님의 세례명도 요셉이시고요.”
선우경식이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그러면 이 병원이 제 병원인 것처럼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다른 이름을 찾아보지요.”
“아니, 선생님 세례명이 요셉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지나친 걱정이십니다. 하하.” (63~64쪽)

그러던 어느 날 도매상 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경리직원이 놀라서 선우경식에게 달려왔다.
“원장님, 전화 좀 받아보세요. 김수환 대표를 바꾸라며 마구 호통을치네요.”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제가 원장이니 저에게 말씀하시죠.”
“원장은 필요 없고 김수환 대표 바꿔요. 아니, 약을 1000만 원어치 넘게 가져갔는데 여태 한 푼도 갚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요셉의원은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사회복지법인이지만,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의 부설병원이었다. 그 복지회의 대표가 김수환 추기경이었기에 요셉의원의 법적 대표 역시 김 추기경이었다.
“대표님은 지금 안 계시고, 이 병원의 실질적 책임자는 접니다. 한 달만 기다려주시면 다만 얼마라도 갚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알겠어요. 하지만 만약 한 달이 돼도 안 갚으면 김수환 대표를 고소하겠습니다. 그리고 돈 갚을 때까지는 약도 절대 못 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선우경식은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경리 직원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81~82쪽)

비금계곡 야유회를 마치고 돌아온 며칠 후, 선우경식은 병원이 세 들어 있는 관악종합시장 건물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 이 지역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이 건물을 허물고 신축할 계획이라, 아무래도 병원을 이전하셔야 할 것 같네요. 지금 2층에 임차해 있는 동사무소도 이사나가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개원 3주년이 되면서 후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니 병원은 큰 어려움 없이 유지될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차에 받은 전화였기에 그는 맥이 풀렸다. 그러나 넋을 놓을 만큼 한가할 새가 없었다. 수습할 사람도 대책을 마련할 사람도, 결국은선우경식 자신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당혹스럽습니다. 그럼 재개발이 언제쯤 시작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먼저 이곳 신림사거리를 개발한 뒤 인근에 있는 불량주택 밀집지역인 도림천변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한다는군요. 그러니 1~2년 안에는 재개발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건물을 신축해야 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입주자분들이 빨리 나가주면 해서 서둘러 말씀드리는 겁니다.”
“예. 그럼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장소를 알아보겠습니다.”
선우경식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서울 시내 건물들의 전세가 올라, 지금의 보증금으로 과연 어디에 가서 둥지를 틀 수 있을지 암담했다. (135~136쪽)

영등포 요셉의원의 환자들은 신림동의 환자들과 조금 달랐다. 가난한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던 신림동과 달리 이곳은 병원 주변의 닭장처럼 만들어진 판잣집들에 주로 알코올의존증 환자, 마약중독자, 결핵과 간염환자, 교도소나 갱생원 출감자, 주민등록이 말소된 행려자 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곧 요셉의원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치과, 신경정신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비뇨기과, 한방과 등 열 개과의 진료는 저녁 7시부터였지만, 오후 3시쯤이면 동네 주민들이 병원 대기실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서 자기 집 안방처럼 누비고 다녔다. 그중 노숙자들은 며칠씩 씻지 않은 데다 옷도 갈아입지 못해 악취가 나는 경우가 많아, 치료를 제대로 받게 하려면 먼저 목욕부터 시켜야 했다. 그러나 바깥 생활에 익숙한 이들은 씻기 귀찮으니 진찰이나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개중에는 술에 잔뜩 취해 오는 이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1층에서 제지할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진료가 불가능하니 술이 깨고 난 다음에 오세요.”
“난 술 조금밖에 안 먹었어요. 왜 치료를 안 해주는 거예요.”
그들은 앞뒤 없이 떼를 쓰거나 고성을 질러댔다. 차분히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술 냄새가 많이 나요. 나중에 오세요.”
이때부터 그들은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직원들이 감당하지 못할 때는 선우경식이 내려와 술 취한 환자들을 직접 상대했고, 너무 막무가내인 경우를 당해 서로 밀고 밀치는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알코올의존증 환자는 술에 취하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선우경식은 멱살을 잡혀도 참아가며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160~161쪽)

더위가 한창인 6월 27일 오후 4시, 이재용 상무가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요셉의원을 방문했다. 선우경식은 그를 원장실로 안내해 차를 마시며 요셉의원의 발자취와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 후 1층부터 4층까지 안내했고, 이재용 상무는 직원과 봉사자, 환자 들에게 격려를 전했다. 병원을 둘러본 후 선우경식은 이재용 상무에게 물었다.
“이 상무님, 혹시 쪽방촌이라는 데 가보셨습니까?”
“제가 사회경험이 많지 않고 회사에 주로 있다 보니 쪽방촌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실 것 같아 여쭤본 겁니다. 그러면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 골목에 있는 쪽방촌을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그분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시면 저희 병원의 존재 이유와, 방금 보신 주방과 빨래 시설 등의 부대시설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예, 원장님. 쪽방촌이라는 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살펴보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226쪽)

입원비는 일산백병원의 기금에서 해결되지만, 간병인이 필요했다. 가족이라고는 시골에 있는 형 한 사람뿐이었고, 요셉의원에서도 몇 달 동안 간병할 수 있는 봉사자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딱한 사정에 운이 따랐던가. 그때 강○ 씨가 나섰다. 이재강 씨와 강남 시립병원에서 같은 방에 입원해 있다 퇴원할 때 요셉의원 직원의 권유로 성모자헌의 집에서 머물고 있던 이였다. 강○ 씨는 자신이 일산백병원에 가서 간병하겠다 했고, 성모자헌의 집과 목동의 집에서 생활하던 다른 사람들 또한 이 소식을 듣고 교대로 간병에 동참했다. 한때 행려자이고 노숙자였던 그들은 요셉의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 씨의 곁을 지켰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이 씨는 성모자헌의 집으로 옮겨왔다. 이곳에서도 그들은 교대로 간병하며 그의 대소변을 받아냈고, 등에 욕창이라도 생길까 매일 밤낮으로 마사지를 해주었다. 이런 지극한 간병 덕분에 이재강 씨는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다. 선우경식은 환자가 더 어려운 환자를 보듬어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리 힘들어도 목동의 집과 성모자헌의 집을 더욱 잘 운영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236~237쪽)

이제 선우경식은 60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였다. 일을 멈추고 제대로 요양을 못 한 탓이었을까.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중순, 그는 지난 5월 급성 뇌경색이 왔을 때 수술해준 고영초 교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기운이 자꾸 없어져서 피검사를 해봤더니 혈색소가 낮은 수치인 데다 대변까지 검다”라는 말을 전했다. 고영초 교수는 그가 스텐트 삽입술 후 아스피린 등의 항응고제 두 종류를 복용하던 중이라 위장 출혈이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내시경을 권했다. 다음 날 선우경식은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자인 김보경 소화기전문의에게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예상 밖으로 상당히 진행된 위암이 발견되었다. 그는 수술을 위해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위암 절제를 위한 아전 위절제술과 부위 림프샘 절제술을 받았으나 이미 다수의 림프샘에서 전이가 발견되었다. 하는 수 없이 위를 3분의 2나 잘라내는 큰 수술 후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좀 힘들지만 견딜 만하다며 꿋꿋이 고통을 이겨나갔고, 항암치료 가운데에도 컨디션이 좋아지면 요셉의원을 찾아 의료진과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272~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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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54

1954년 서울 출생, 1976년 대학 재학 중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4년 '실천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길'로 등단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격월간지 '뿌리' 편집장을 지냈다. '샘이 깊은 물', '한겨레', '국민일보', '경향신문' 등에 단편소설, 르포, 칼럼을 써왔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하면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간송 전형필',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 등이 있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 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메우기 위해 그림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넘었고, 자연스레 해외에서 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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