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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큰글자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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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커피는 이 집이 아마 경성서는 제일 조흘걸요”

와인빛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식탁과
파리가 날리는 좁고 낮은 식탁 사이,

경성의 번화가를 수놓은 외식 풍경과
그 위로 드리운 식민의 그늘을 쫓다

출판사 서평

박완서 작가가 숙명여고보 합격 기념으로 오빠와 방문했던 추억의 레스토랑, 이상이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고달픈 오후 시간을 보냈던 카페는 어디였을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경성에도 맛집이 있었다. 인기 메뉴를 맛보기 위해 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독특한 인테리어와 시설로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렸던 맛집들이. 하지만 현대의 우리에게 ‘경성’과 ‘맛집’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낯설게 느껴진다. 남아 있는 자료가 드물뿐더러, 관련된 연구 또한 깊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성 맛집 산책》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껏 소홀히 다루어진 근대의 흔적인 ‘경성의 맛집’과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외식 풍경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복원해 낸 결과이다. 박현수 교수는 대한민국 유일 ‘음식문학연구가’로서 소설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식문화를 탐구했던 전작 《식민지의 식탁》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 근현대 소설에 등장한 음식점들에 주목한다. 각 음식점의 메뉴와 가격, 주요 고객층, 개성 있는 내·외관, 독특한 시스템뿐만 아니라 이들이 화려하게 탄생하고 스러지는 역사 또한 책 속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히 당시의 풍경을 재현한 지도 일러스트와 다수의 사진과 기사 자료, 소설 삽화와 인용을 활용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최초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 ‘조선호텔 식당’, 이상, 박태원의 단골 카페이자 예술가들의 소일터였던 ‘낙랑파라’, 지금도 건재하게 영업 중인 김두한의 단골 설렁탕집 ‘이문식당’ 등 책에서 다룬 10곳의 음식점이 등장하고 번성한 시기는 식민지 시대였다. 따라서 이는 식민지 조선과 서양의 신문물이 만나고 충돌했던 첨병으로서 경성을 조망하는 일이자, 당대의 식문화에 드리웠던 식민의 그늘에 주목하고 이를 밝혀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경성 맛집 산책》을 통해 독자들은 경성 곳곳을 탐험하며 조선인들이 새롭게 등장한 풍경과 낯선 음식 앞에서 느꼈던 설렘과 즐거움을, 그리고 그 뒤로 견뎌내야 했던 삶의 무게와 식민의 멍에 역시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술잔 모양의 네온사인이 번쩍거리고, 초콜릿향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소설을 따라 도착한 화려한 경성 거리의 한복판

이선희의 소설 〈여인명령〉의 주인공 숙채는 종로 네거리를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풍기는 초콜릿 향기를 맡는다. 이는 1937년 종로에 6층짜리 건물을 신축해 개장한 화신백화점에서 느껴지던 위압감과 세련됨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종로를 거닐던 조선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경성 맛집 산책》은 경성의 맛집과 당시의 식문화를 생생히 살펴보기 위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삼대》 등 한국 근현대 소설의 도움을 받는다. 소설은 그것이 쓰인 시기 대중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자료로, 당대의 문화를 미시적으로 그려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다. 낯선 음식을 처음 맛본 사람들의 반응, 손님들이 식당에서 나눈 대화, 식당을 찾았던 주된 고객층 등 소설 자료가 아니었다면 그려내기 힘들었을 흥미롭고 구체적인 문화사가 눈앞에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예를 들어, 염상섭의 대표작 《삼대》는 조선 최초의 서양요리점 ‘청목당’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세 여자의 긴장감 넘치는 술 대작은 그 자체로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오렌지로 만든 술 ‘퀴라소’를 비롯해 청목당에서 판매했던 다양한 메뉴들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호텔과 그 식당을 배경으로 하는 《불사조》는 조선호텔에서 한 달을 생활하기 위해 지금 돈으로 4,500만 원이 필요했음을 언급하는데, 이를 통해 이곳을 방문했던 주된 고객층이 아주 부유한 소수의 조선인, 그리고 한국에 주재했던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또 다른 소설〈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는 이상, 박태원의 단골 카페이자 예술가의 소일터로 알려졌던 다방 ‘낙랑파라’가 등장한다. 구보 씨의 묘사를 통해 낙랑파라에 흐르던 독특한 분위기와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그동안 단편적인 자료만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었던 경성의 역사가 마침내 이야기를 통해 실감 나게 우리 앞에 재현된다. 이는 오랜 시간 문학을 통해 한국의 식문화를 탐구해 온 저자만의 독보적인 성취이다.

“매당은 잔을 성큼 들어 쭉 마시엇다. 조선의 여걸도 브란듸, 휘스키는 알지마는 이런 기린 모가지 가튼 병의 술은 처음 보는 거라 호기심으로 마시기는 하엿스나 (…) 이것을 시초로 매당과 경애는 정종으로 달라부터서 주거니 받거니 두 술장수가 내기를 하는지 판을 차리고 먹엇다.” (44쪽, 《삼대》의 인용)

“한 달에 900원이니 100원이 업는 1,000원이다. 제 아무리 조선서 몃째 안 가는 이른바 백만장자의 외아들인 계훈이라도 언제까지 이 비싼 호텔에서 양코배기들과 어깨를 겨루어 가며 생활을 계속할는지 의문이다.” (350쪽, 《불사조》의 인용)

소다수에 아이스크림을 풍덩, 메신저를 통해 전한 연애편지…
이상야릇한 음식들과 독특한 시스템을 엿보다

백화점 1층 자동판매기 앞에서 아이가 아빠에게 무언가 사달라고 조르고, 에스컬레이터는 쉴 새 없이 손님을 태워 나른다. 요즘 백화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앞의 묘사는 식민지 시대 ‘화신백화점’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시스템과 음식 중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들이 있다. 지금과 같이 백화점 식당 입구에 음식 샘플을 진열해 두고 메뉴를 고른 뒤 금액을 지불하고 입장하는 방식은 경성의 백화점뿐만 아니라, ‘가네보 프루츠팔러’ 등의 유명 카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 서양요리점 ‘청목당’에서는 짐을 맡기는 클럭룸과 대기실을 운영했으며, 중화요리점 ‘아서원’에서는 나무 식함으로 짜장면을 배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성의 맛집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한국 외식 문화의 뿌리와 그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색다른 풍경도 있다. 김말봉의 소설 《찔레꽃》은 ‘미쓰코시백화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이들은 아이스크림과 소다수를 함께 시켜 이 둘을 섞어 먹는데, 탄산음료에 아이스크림을 빠뜨려 먹는 ‘아이스크림 플로트’가 지금은 생소하지만 당시에는 보편적인 디저트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식민지 시대의 SNS 역할을 했던 ‘메신저’의 존재도 독특하다. 메신저는 일정한 돈을 받고 편지나 물품을 전달하던 직업으로, 유명한 맛집에는 늘 이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화상보》의 주인공 경아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네보 프루츠팔러’로 나와 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도 이들을 통해서였다. 이처럼 책 속에는 경성의 맛집을 중심으로 한, 익숙해 재미있거나 낯설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경애는 ‘소다-수’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휘휘 저어서 먹는다. 조 씨도 ‘소다-수’에다 아이스크림을 텀벙 너차 ‘소다-물’은 부그르르 흘러나와 테블크로스를 적셧다. (…) 정순이 한 모금 빠라드린 ‘소다-물’은 목으로 바로 넘어가지 안코 코구멍으로 조금 올라왓다. 그 때문에 정순의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핑그르르 돌면서 재채기가 나오려 한다.” (81쪽, 《찔레꽃》의 인용)

““장 선생께서는 저의 마음을 몰라주십니다. 뵈옵고 자세한 말씀 드리려 하오니 미안하오나 이리로 좀 나와 주시옵소서. 가네보에서, 경아 올림.” 가게에서 종이와 봉투를 얻어 간단한 편지를 써 가지고 메신저를 불러 시영에게로 보냈다.” (165쪽, 《화상보》의 인용)

화려하고 향기로운 식탁 이면에 감춰진 식민지의 그늘,
삶의 무게가 아로새겨진 식탁을 주목하다

책에서 다룬 화려한 맛집들과 군침 도는 음식들. 실제로 이것을 경험할 수 있는 조선인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이 책은 와인빛으로 장식된, 산해진미가 차려진 식탁 뒤 감춰진 고달픈 식민지의 삶과 그 멍에에 주목한다. 모던걸, 모던보이의 핫플레이스였던 과일 디저트 카페 ‘가네보 프루츠팔러’는 내부를 칸막이 좌석 ‘로맨스박스’로 꾸며 연인들의 발걸음을 끌었고, 외부는 젊은이들이 동경하던 남국의 해변처럼 꾸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 달콤한 향기의 이면은 구차하고 어두웠다. 가네보 프루츠팔러는 ‘가네보 방적회사’에서 개장한 카페로, 유수의 기업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의 선두였다. 가네보에서 운영한 방적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인 여직공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렸고, 전시체제에 들어서면서 공장이 군수 공장으로 탈바꿈해 군수 물품을 만들었다. 또 다른 예로 ‘조선호텔 식당’은 화려한 내부와 고급스러운 코스 요리로 유명했지만, 한 끼 저녁값이 곤궁한 서민들의 한 달 식비에 육박했다. 예술가들의 살롱으로 여겨졌던 ‘낙랑파라’ 또한 그 이름의 유래에 ‘대동아공영’이라는 전쟁의 명분과 일본의 정복욕이 녹아들어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당대의 식문화와 음식점의 흥미로운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 드리운 식민의 그늘과 상흔 역시 성실히 살핀다.
식민지 조선인들의 현실적인 식탁은 6장에서 살펴본 설렁탕집 ‘이문식당’과 7장에서 다룬 냉면집 ‘동양루’에 가깝다. 설렁탕과 냉면은 저렴한 가격으로 평범한 서민들이 즐겨 찾던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문식당’은 쓰레기통 같은 내부와 좁고 낮아 불편한 식탁으로도 유명했다. 심지어 이곳에서 팔았던 설렁탕에는 지독한 쇠똥내가 났지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더럽고 불편한 식탁에 아로새겨져 있던 당대 조선인들의 삶의 무게를 엿볼 수 있다. 값싼 소뼈를 재료로 하고 불결한 식탁, 낡은 식기를 사용해 저렴했던 가격, 그리고 흔히 맛볼 수 없는 고기의 맛은 설렁탕만의 매력이었다. 굶주림이 일상이었던 조선인들에게 쇠똥내가 나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문식당’은 10곳의 맛집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인데, 고상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곳만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본정 1정목에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단장한 가네보 서비스스테이션은 위에서 살펴본 구차하고 어두운 모습과는 거리가 먼 공간으로 보인다. 그곳에는 혼부라를 나온 모던보이, 모던걸들을 유혹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옷과 소품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전시된 상품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식민지 조선의 여직공들(…)의 땀과 눈물이 어려 있었다.” (188쪽)

“철저하게 지저분한 시멘트 바닥, 행주질이라고는 천신도 못 해본 상 바닥, 질질 넘치는 타구 등등 족히 대규모의 쓰레기통으로서 손색이 없다. 수천 마리의 영양 조흔 파리가 주인을 대신하여 손을 영접하고, 주위로 방문을 열어저친 방방에서는 삼 년 묵은 때국이 시꺼머케 결은 채, 누더기가 네 활기를 뻐치고 코들을 곤다.” (271~272쪽, 《금의 정열》의 인용)

책이 제시하는 산책 코스를 따라 ‘본정’, ‘종로’, ‘장곡천정’, ‘황금정’이라는 당시 경성의 번화가 곳곳을 살피다 보면, 맛집 10곳의 풍경과 이곳을 방문했던 손님들의 얼굴이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깨끗하고 화려했던 식탁과 더럽고 구차했던 식탁 사이, 그 언저리를 산책하며 그 둘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경성의 맛집을 가장 현실적으로 탐구하고 복원하는 방법일 것이다.

목차

1부 본정

1장 조선 최초의 서양요리점, 청목당
1. 경성의 핫플레이스
2. 신비로운 청목당의 명물들
전긔불 술잔과 나사못 모양의 칭칭대 / 따로 마련된 휴게실과 클럭룸
3. 이상야릇한 음식을 맛보다
오렌지 술 퀴라소로 대작을 벌이다 / 고급스러운 혹은 사치스러운 메뉴들
4. 마침내 조선에 상륙한 ‘양식’
더 읽을거리: 청목당이 새롭게 개장했습니다

2장 화목한 가족의 나들이 명소, 미쓰코시백화점 식당
1. 본정 백화점의 왕좌
2. 세련된 신문물을 마주하다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또 하나의 명물 엘리베이터 / 멜론과 아이스크림 플로트
3. 글쎄, 나는 ‘런치’를 먹지
백화점 식당의 대표 메뉴 / 미쓰코시백화점의 단골 손님들
4. 백화점에 드리운 식민지의 그늘
근대식 백화점이 탄생하다 / 일본인을 위한 출장소였던
더 읽을거리: 미쓰코시백화점의 흔적을 더듬다

3장 경성 제일의 일본요리옥, 화월
1. 사랑을 속살거리기 좋은 밤에는
2. 아취 있는 연회와 유흥의 공간
옥상, 이랏샤이마세! / 후원과 연결된 고즈넉한 팔조방
3. 덴푸라로 가장 연조 깊은 집
입에 짝짝 붙는 정종과 계절메뉴 / 담백하고 간드러진 요리상
4. 밀실 정치 혹은 향락의 온상
더 읽을거리: 경성의 이름난 일본요리옥

4장 본정에서 남국의 파도소리를, 가네보 프루츠팔러
1. ‘혼부라’의 필수 코스
2.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유혹하다
커피는 이 집이 아마 경성서는 제일 조흘 걸요 / 식민지 시대의 SNS, 메신저
3. 향기롭고 이국적인 과일 디저트 카페
모래 위의 비치파라솔 / 잊을 수 없는 과일 디저트의 맛
4. 달콤함 속 감춰진 가네보의 이면
더 읽을거리: 가네보 서비스스테이션과 메신저


2부 종로

5장 경성 유일의 정갈한 조선음식점, 화신백화점 식당
1. 조선인이 경영한 최초의 백화점
2. 화신백화점의 비범한 위용
종로를 덮는 초콜릿 빛깔의 그림자 / 세련됨과 차가움이 뒤섞인 낯선 공간
3. 고상한 조선요리의 맛
식권을 샀다면서 또 뭘 골라요? / 온종일 줄을 서서 먹은 ‘조선런치’
4. 조선인을 위한? 혹은 조선인 손님을 끌기 위한?
화신상회에서 화신백화점으로 / 남촌의 백화점들과 다르지 않은 시스템
더 읽을거리: 화신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의 경품 경쟁

6장 김두한의 단골 설렁탕집, 이문식당
1. 지금도 정상 영업 중!
2. 식민지 조선인들의 소울 푸드
누린내조차 매력적이었던 / 저렴한 가격에 소고기를 맛보다
3. 불결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좁은 식탁에 낮은 의자 / 파리가 날리는 쓰레기통 같은 내부
4. 설렁탕의 기원, 신성하거나 천하거나
더 읽을거리: 설렁탕의 두 얼굴
7장 평양냉면에 필적하는 경성냉면, 동양루
1. 논쟁 많은 음식, 냉면
2. 경성 곳곳에 휘날리던 갈개발
조선인들의 또 다른 소울 푸드 / 종로 3정목의 랜드마크, 동양루
3. 식민지의 삶, 그 무게가 아로새겨진
저육과 배쪽, 노란 겨자를 듬뿍 얹은 / 식판을 메고 경성을 누비던 자전거들
4. 김칫국물에서 장국으로, 국수에서 냉면으로
더 읽을거리: 군침 도는 냉면의 변천사

3부 장곡천정과 황금정

8장 와인빛으로 장식된 동화의 세계, 조선호텔 식당
1. 조선에서 가장 호화로운 식당
2. 제 아무리 백만장자의 외아들이라도
방값만 하루에 12원이라니 / ‘선룸’에서 양코배기들과 식사를
3. 정통 프랑스식 코스 요리를 선보이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산진해미로 가득한 식탁 / 조선호텔 식당의 자랑, ‘정식’
4. 조선호텔의 빛과 어둠
정통 서양요리와 화양절충의 음식 / 철도호텔과 장곡천정이라는 지명
더 읽을거리: 로즈가든 대개장

9장 고달픈 예술가들의 소일터, 낙랑파라
1. 일반 다방과는 ‘무언가’ 다른
2. 사무적 소속 없는 이들의 아지트
기다렸다는 것처럼 나를 맞아줄지도 / 이상이 남긴 낙서와 커피의 향기
3. 볼가의 노래를 들으며 뜨거운 우유를
이상이 그린 낙랑파라의 메뉴들 / 커피값, 담배값 그리고 모임들
4. ‘낙랑파라’라는 이름의 그늘
더 읽을거리: 예술가들이 모이는 이국적인 끽다점

10장 고급 승용차가 즐비했던 중화요리점, 아서원
1. 조선공산당의 창립총회가 열린 곳
2. 역사적 격변 속에서도 번창하다
독립된 방에서 오리알과 황주를 / 아서원의 주방에서 일하는 영예
3. 라조기, 양장피, 잡채, 그리고 맥주!
마라탕, 양꼬치, 훠궈는 없지만 / 나무 식함을 든 배달부
4. 대표 메뉴는 우동과 덴푸라
더 읽을거리: 동파육과 팔보채를 만들어보자

본문중에서

미쓰코시백화점 식당에서는 각종 요리를 비롯해 과일, 음료도 판매했다. 서양요리나 일본요리뿐만 아니라 커피 맛으로도 경성에서 1, 2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식당을 방문한 손님들은 유니폼을 갖춰 입은 10대 여자종업원의 서빙을 받으며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의 축음기에서는 재즈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와 공간에 우아한 분위기를 더했다. 조금은 혼잡하게 느껴지는 지금 백화점 식당가를 떠올려 보면 당시의 백화점 식당이 훨씬 고급스러운 분위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파는 음식 가운데는 서양음식, 일본음식, 심지어 중국음식까지 있었지만 조선음식은 없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백화점에 자리 잡은 식당이었지만, 이곳에서도 식민지라는 멍에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_70p

식민지 시대 모던보이, 모던걸에게는 ‘혼부라本ぶら’라는 유행이 있었다. 혼부라는 ‘긴부라銀ぶら’에서 유래한 용어인데, 당시 도쿄의 젊은이들이 특별한 일 없이도 ‘긴자銀座’ 거리를 어슬렁어슬렁ぶらぶら 돌아다니는 것을 긴부라라고 했다. 이를 따라 경성에서도 본정의 일본식 명칭인 ‘혼마치本町’와 ‘부라ぶら’를 합쳐 특별한 일 없이 본정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을 혼부라라고 불렀던 것이다. 가네보 프루츠팔러 역시 혼부라의 코스 중 하나였다. _154p

본정 1정목에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단장한 가네보 서비스스테이션은 위에서 살펴본 구차
하고 어두운 모습과는 거리가 먼 공간으로 보인다. 그곳에는 혼부라를 나온 모던보이, 모던걸들을 유혹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옷과 소품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전시된 상품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식민지 조선의 여직공들이 힘겹게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상품이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루에 30~35전을 받으면서 12시간을 일해야만 했던 직공들의 땀과 눈물이 어려 있었다. _189p

1930년대 후반 화신백화점 식당의 모습은 앞서 말했듯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도 나온다. 박완서가 숙명여고보에 합격하자 오빠가 밥을 사주겠다며 그녀를 화신백화점에 데리고 간다. 그런데 당시 화신백화점 식당의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층에서부터 온종일 줄을 섰다고 한다. 작가는 화신백화점 식당을 오랜 기다림과 함께 깨끗한 식탁보, 접시에 담긴 수프, 주먹만 한 빵 두 개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_227p

“운전수는 차를 정거시키고, “표 내십시오” 하고 몸을 돌렷다. 순호는 슬쩍 뛰어내리며, “냉면!” 하엿다. “여보세요!” 운전수는 점잔케 불럿다. 그러고는 표 내라는데 냉면은 웬 냉면이냐는 듯이 순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앗다.” 순호는 냉면 먹을 생각에 전차에서 서둘러 내리려다 ‘패스’를 ‘냉면’이라고 잘못 말한다. 순호는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냉면 먹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향한다. 순호가 원래 말하려 했던 ‘패스’는 기자증 정도 되는 것인데, 전차는 무임승차가 가능했고 열차를 탈 때는 상등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순호는 요금을 패스로 대신한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냉면’을 외쳐버린 것이다. _304p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이 받았던 평균적인 급여를 살펴보면 그 가격을 더 잘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급여가 얼마나 되면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을 사 먹는 데 부담이 없었을까? 조선호텔 식당의 저녁을 기준으로 하면 기자나 은행원의 급여로는 20번을 먹을 수 있었고, 교사의 경우 15번 정도 먹으면 급여가 몽땅 사라졌다. 화장품 외판원이나 가게 점원이 한 달 내내 번 급여는 정식 3~4번을 먹을 수 있는 돈에 불과했다. 급여가 아니라 식비로 한정하면 그 가격을 더욱 분명히 실감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 가격은 서민들의 한 달 식비보다 더 큰 금액이 된다. _367p

낙랑파라는 예술가들의 모임 공간으로서 특히 유명했다. 낙랑파라에 들어서면 예술가 한두 명 정도는 마주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을 즐겨 찾았던 예술인으로는 ‘목일회木日會’에 속한 화가 구본웅, 길진섭, 김용준, 또 ‘구인회九人會’ 구성원인 문인 이태준, 박태원, 이상 등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한 사람은 거의 매일 낙랑파라에 출석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예술가들의 ‘모임 공간’이라기보다 ‘소일 공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낙랑파라는 마땅히 갈 곳 없는 예술가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_379p

김소운이 구본웅의 소개로 이상을 처음 만난 곳도 낙랑파라였다. 김소운은 이상과 관련된 일화로 찻값에 대한 얘기를 한다. 당시까지 차를 마시면 한 사람이 모두의 찻값을 내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이상은 그 시절에도 희희낙락 담소하다가 자신이 마신 찻값 10전만 내고 일어섰다는 것이다. 김소운은 이것을 이상이 당시의 관행이나 폐습을 탈피한 선각자였기 때문으로 본다. 하지만 실제로 관행이나 폐습을 탈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기보다는, 늘 궁핍에 시달렸던 이상이 그나마 예의를 갖추려고 한 행위가 아닐까 싶다. _392p

지금도 중국음식점에 가면 기본 반찬으로 단무지가 제공된다. 단무지가 나오는 것이 너무 당연해져 “그게 왜?”라는 생각조차 못 할지도 모르겠다. 단무지의 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아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기는 어렵지만, 중국음식점에서 일본음식인 단무지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역시 계속 살펴봤던 중국음식점이 식민지 시대 조선에 자리 잡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_457p

저자소개

박현수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부산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근대소설의 양가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등을 거쳐 현재 학부대학 대우교수로 일하고 있다. 근대문학의 미디어적 기반에 주목해 그것이 만든 글쓰기 방식을 해명하는 연구를 해왔다. 한편으로 근대 이전의 상징적인 사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 「작가의 탄생과 근대문학의 재생산 제도」(공저), 「한국 근대문학 재생산제도 자료집」(공편), 「저수하의 시간, 염상섭을 읽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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