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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발명된 신화(큰글자도서)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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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박해받던 소수자는
어떻게 가해자가 되었나

고향에서의 추방, 낯선 땅으로의 이산, 2000년 만의 귀환…
‘유대인 신화’에 숨은 폭력과 차별에 관한 가장 통렬한 고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증오’, 유대인 문제를 통해 차별과 혐오, 타자화의 논리와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 이 책은 추방, 유배, 이산, 귀환 등으로 요약되는 ‘유대인 신화’는 기독교 세계가 유대인이란 ‘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했음을 밝힌다. 또한 기독교 세계의 소수자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박해를 피해 ‘유대 국가’를 세웠지만,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또 다른 차별과 폭력을 낳았음을 지적한다.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로 오랫동안 국제 분야를 취재하고, 특히 중동분쟁에 천착해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쓴 정의길 작가가 시간상으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공간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러시아, 팔레스타인을 넘나들며 유대인 문제를 치밀하게 분석해냈다. 유대인 문제의 중심에 놓인 소수자 차별과 혐오, 타자화의 문제를 살핌으로써 오늘날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우리’와 ‘저들’의 이분법을 돌아보고,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이 이 책이 현시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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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소개
리더스원의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출판사 서평

기독교 문명 세계가 만든 ‘유대인 신화’

유대인에게는 하나의 신화가 따라다닌다. 고대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세워 영광을 누렸지만, 로마에 의해 추방된 뒤 낯선 땅에 흩어져 살면서 많은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2000년 만에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유대 국가’를 건설한 민족이라는 신화다.
이 책은 유대인에 대한 이런 신화들을 낱낱이 해체한다. 성서에 기록된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궁벽한 산악 부족 국가에 불과했고, 로마가 생산자이자 납세자인 유대인들을 대거 추방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없으며, 유대인들이 흩어져 사는 것은 애초에 다양한 지역에 살던 토착 주민들이 유대교로 개종한 결과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신화는, 기독교 문명 세계가 유대인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만약 유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반유대주의자가 유대인을 고안해낼 것이다. 유대인은 반유대주의가 만든다”라는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기독교 문명 세계는 ‘우리’ 기독교도를 더욱 단단히 결속할 목적으로 유대인이라는 타자를 발명했다. 기독교 문명 세계는 유대인을 ‘예수를 거부한 죄로 저주받고, 천한 신분으로 떨어진 자들’로 규정했고, 그들에게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구원이라는 기독교 교리의 승리를 목격하는 증인의 역할을 부여했다.
유대인들도 자신들이 고향에서 ‘유배’됐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기독교 세계 내의 소수자로 겪는 고난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유배를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징계”(잠언 3:12)하는 것이자 자신들의 ‘선택된’ 지위에 대한 확인이라고 믿었다.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에 속하는 것이고, 이는 ‘선택된 백성’의 일원이 되는 데에 필수적이었다.”(94쪽)
차별이 가져온 유대인 해방, 해방이 불 지핀 반유대주의

주로 종교적 차원에서 이뤄지던 분리와 배제는 기독교 세계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됐다. ‘유대인=고리대금업자’라는 이미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에 종사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중세 기독교는 이자 수익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 내의 타자’인 유대인들이 이 역할을 맡았다. 둘째, 유대인 공동체가 소수자의 생존 전략으로 채택한 율법 교육 때문에 문해력을 갖추게 되면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금융, 교육 등의 분야에 진출했다.
‘유럽의 기독교 봉건 세계는 유대인을 배제하는 차별을 했으나, 이는 사실 유대인을 그 속박에서 해방시켰다’는 역사학자 맥스 디몬트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유대인은 게토에 유폐되어 군중 속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고, 기독교도가 혐오하는 직업만 가질 수 있는 등 봉건 체제에서 차별받고 배제되는 존재였으나, 역설적으로 그랬기에 기독교도 농민들이 겪던 봉건 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도약할 수 있었다.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일부 유대인은 유럽의 궁전에서 재정과 군수조달을 책임지는 ‘궁정 유대인’으로 성장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유럽 각국의 채권 발행과 인수 업무를 맡았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막대한 부를 쌓은 것은 물론이고, 유럽의 ‘6왕조’ 중 하나로 불릴 만큼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소수 유대인의 성공이 뿌리 깊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비천한 존재여야 할 자들이 현실에서는 부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기독교도들의 반감을 불렀다. 경제공황, 혁명, 전쟁 등이 세계 지배를 위한 유대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시온의정서》가 널리 유포됐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도 반유대주의에 불을 지폈다. 통일 전후로 민족주의가 고양된 독일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 유대인을 선택했다. 1차 대전에서 진 이유가 유대인이 ‘등에 칼을 꽂아서’라는 주장이 퍼졌고, ‘열등한 인종’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홀로코스트까지 벌어졌다. 러시아에서도 유대인 40명이 사망하고, 3000여 명이 다친 오데사 포그롬을 시작으로 민스크, 바르샤바, 엘리자베트그라드 등에서 유대인 박해 사태인 포그롬이 연달아 발생했다.

피해자였던 유대인, 가해자가 되다

반유대주의의 기승은 유대인들에게 ‘현지 동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테오도어 헤르츨 등의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해 ‘유대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시오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해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만들려던 영국은 유대인이 자신들의 중동 지배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해 시오니즘 운동과 손을 잡았다. 특히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 국가 건설을 지지했는데, 이는 서구 기독교 세계가 만든 유대인 문제를 중동으로 수출하는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유대 국가’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인종주의의 피해자였던 자신들이 인종주의를 내세워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차별하는 모순에 봉착했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계 주민들의 축출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인종주의 범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치안장관으로 임명되는 곳이 오늘날의 이스라엘이다. 유대 민족주의와 함께 사회주의적 이상을 내세웠던 건국의 주류들은 1970년대부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추진했지만, 이에 대한 내부 반발로 실각했다.
그 후로 진행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시도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국가’라고 선포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재집권으로 이스라엘의 우경화가 완성됐다. 벤그비르와 네타냐후가 손을 잡은 지금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추구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인종주의 광기 때문에 집단수용소에서 죽어간 이들의 피와 뼈로 세운 이스라엘은 인종주의 범죄 경력이 있는 인물이 치안장관이 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둘러싼 역사는 잔인한 역설이다.”(444쪽)
‘인종차별의 원형’으로 한국 사회의 차별을 읽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증오’이자 ‘인종차별의 원형’(철학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인 유대인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은 인류사에서 항상 존재해온 차별이 왜 탄생하고 어떤 논리로 작동하는지, 차별을 해소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 책이 시의적절한 것은 한국에도 다양한 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의 단어로 바꾸면 유대인 문제를 낳은 타자화의 논리, ‘우리’와 ‘저들’을 구분 짓고 차별하는 행태는 그대로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특히 외국인, 타 문화에 대한 차별은 반유대주의처럼 인종주의로 나타나기 쉽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당장 대구에서는 이슬람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2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주민들은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머리를 골목에 두거나 바비큐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없는가?”(18쪽)라는 저자의 질문이 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혐오’가 가장 뜨거운 화두인 시대에 발간된 《유대인, 발명된 신화》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우리’와 ‘저들’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유대인 문제를 통해 읽는 ‘우리’와 ‘저들’의 이분법

1장 이스라엘의 기원
: 고대 이스라엘 주민은 가나안 주민과는 다른 족속이고, 가나안을 정복했나?
2장 성서의 기원
: 고대 이스라엘 주민들은 유대교를 믿었고, 성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쓰였나?
3장 유대인 추방의 신화
: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돼서, 지중해 전역으로 이산됐나?
4장 유대인 공동체의 형성과 확산
: 유대인 공동체는 어떻게 퍼져나갔나?
5장 유대인 정체성의 탄생
: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자’를 강요받았나, 선택했나?
6장 게토의 유대인, 궁정의 유대인
: 유대인은 왜 멸시와 질시의 대상으로 양분됐나?
7장 유대인 음모론의 확산
: 로스차일드 가문은 어떻게 음모론의 원조가 됐나?
8장 유대인 음모론과 근대의 반유대주의
: 유대인 음모론의 최고봉 《시온의정서》는 어떻게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졌나?
9장 포그롬과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부상
: 동유럽 유대인들은 어떻게 유대인의 주류가 됐나?
10장 미국의 유대인
: 미국은 어떻게 유대인의 새로운 조국이 됐나?
11장 시오니즘
: 서구 기독교 문명 세계는 어떻게 시오니즘을 만들었나?
12장 팔레스타인 땅과 그 주민
: 팔레스타인 주민은 누구이고, 그 땅은 비어있었나?
13장 이스라엘의 건국과 아랍의 방기
: 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은 좌절됐나?
14장 중동분쟁과 이스라엘의 우경화
: 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협상이 거듭될수록 악화되나?

에필로그 이스라엘과 유대인, 그리고 미국
주석

본문중에서

이스라엘 건국은 서양 기독교 문명 세계가 낳은 유대인 문제의 파생품이다. 서양 기독교 문명이 성립된 뒤 계속된 차별과 배제의 상징인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전후 이스라엘 건국으로 귀결됐다. 이스라엘 건국은 박해받은 유대인이라는 ‘민족’ 혹은 ‘집단’의 자구책이겠으나,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이라는 ‘민족’ 혹은 ‘집단’에 대한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낳았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이스라엘 건국 정당성을 찾으려다가, 자신들을 박해한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닮아갔다.
차별과 배제, 박해를 당한 유대인이 자신들의 고난과는 아무 상관이 없던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찾았다는 게 현대 세계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 문제의 본질이자 모순이다. 이를 유대인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유대인 문제는 서양 기독교 문명이 만들었고, 현대 이스라엘 문제 역시 영국·미국 등 기독교 문명에 입각한 패권국가가 만든 국제질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_5쪽

유대인 문제는 기독교 세계가 자신들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타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우리’라는 개념은 ‘저들’이 있어야 성립한다. 뚜렷한 영토적 경계도 없이 여러 언어가 뒤섞여 존재하는 유럽의 주민들에게 자신들과 구별되는 가장 가까운 타자는 그들과 뒤섞여 살고 있던 유대인이었다. 차별과 배제는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수단이다. … 기독교도는 유대인을 창조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을 창조했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없는가?_17~18쪽

추방, 유배, 유랑, 이산, 박해, 귀환….
유대인과 그 역사 담론을 관통하는 상징어들이다. 유대인은 로마 정복자들에 의해 팔레스타인 땅에서 추방돼, 낯선 땅으로 유배되어, 전 세계를 유랑해, 뿔뿔이 이산돼, 현지에서 박해를 받다가, 결국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해 이스라엘을 건국했다는 것이 유대인과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 내러티브이다.
과연 유대인은 고향 팔레스타인 땅에서 완전히 뿌리 뽑히고 후손들이 2천 년간 낯선 땅들로 이산했음에도 그 혈맥이 면면히 이어지다가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한 것일까? 이는 유대인 문제와 역사 담론의 핵심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객관화하는 작업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회피되어왔다. 이를 그저 당연시했을 뿐이다._84쪽

유대인=고리대금업이라는 등식과 이미지는 어쨌든 근대로 갈수록 유대인의 정체성과 박해로 이어지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이는 과연 기독교 세계가 유대인에게 강제한 것이고, 유대인은 단순히 기독교 세계의 강제로 ‘기생충’이 되어서 박해를 받은 피해자일 뿐인가?
유대인 문제에서 중요한 이 사안은 기원 이후 유럽과 중근동의 역사 속에서 생존하려는 유대교 공동체의 대응이라는 관점에서도 살펴야 한다. 유대인이 중세 시대 때 봉건체제의 주산업인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금융업이나 상업 등 중계적인 직역에 종사하게 된 것은 기독교 세계의 배제와 차별의 결과도 있지만, 유럽과 중근동의 역사 속에서 유대교 공동체가 진화한 결과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_141쪽

기독교도에게 유대인은 타자였으나, 내부의 타자였다. 유대인이 기독교 세계에 살고 있기도 했고, 기독교 서사의 역사적 증거물인 구약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성서에서 말하는 대로 여전히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 ‘특별한 백성’으로 남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선택된 백성이기는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저주받고 비천한 상태에 처하고, 예수의 재림과 함께 그들도 해방되는 역할로 신의 섭리를 드러내는 선택된 백성이었다._142쪽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그들에 대한 기독교 세계 주민들의 양가감정으로 촉발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보다 비천한 존재여야 하는데, 세속 세계에서는 자신들이 아쉬워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멸시와 열패감이라는 양가감정이었다. 이는 유대인이 기독교 봉건 세계에서 농노 등 주민들을 상대로 세금을 징수하거나, 재산을 관리하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연결하는 중간숙주 계급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주 등 지배계급에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일구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동시에, 비천한 지위에 있어야 하는 혐오스러워야 할 존재였다. 이는 필요하면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는 명분이 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도 유대인은 영주를 대신해 세금을 징수하는 대리인이거나, 돈을 빌려주는 대금업자였다. 유대인은 고혈을 빨아가는 착취자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_157쪽

유덴가세 게토를 둘러싼 담장에 그려진 벽화는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감옥의 죄수만도 못한 존재임을 말해준다. 벽화에는 암퇘지를 둘러싼 유대인 세 명이 그려져 있다. 한 명은 돼지의 젖을 빨고, 유대교 성직자인 랍비 복장을 한 또 다른 한 명은 돼지의 꼬리를 들어주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돼지 오줌을 받아먹고 있다. … 주변 지역의 성직자와 직업조합인 길드의 요청에 따라서, 게토의 유대인에게는 오직 기독교도 주민들이 경멸하는 직업만 허용됐다. 서부와 중부 유럽의 유대인 중 4분의 3은 노점상과 행상, 거리의 대금업에 종사했다. 일부 유대인은 작은 가게를 차리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거지, 칼잡이, 뚜쟁이, 심지어 도둑 등의 상당수가 유대인이었다. 이는 유대인은 비천하고 비열하다는 기독교도의 편견을 강화했고, 다시 유대인을 박해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_164~166쪽

이런 지독한 차별과 천시도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은 도시의 기독교도 주민보다는 권리가 적었지만, 당시 유럽의 농촌 대중보다는 의무도 적었고 혜택을 누렸다. … 유대인들이 해가 뜨면 게토에서 나와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다 해가 지면 게토에 다시 갇혔다면, 농촌 주민들은 해가 뜨면 가축 우리 같은 집에서 나와 농토에서 묶여 일하다 해가 지면 그 가축 우리로 돌아와 갇혀 지냈을 뿐이다. … 유럽의 농민이 왕이나 영주에게 징집되어 생업을 박탈당하고 목숨을 잃는 동안 유대인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세상의 변화를 깨닫고 그에 맞춰 변신을 할 수 있었다. ‘유럽의 기독교 봉건 세계는 유대인을 배제하는 차별을 했으나, 이는 사실 유대인을 그 속박에서 해방시켰다’는 유대 역사학자 맥스 디몬트의 지적은 유대인의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이다._167~168쪽

유럽에서 교역과 제조업이 발흥하면서 전통적인 직업조합인 길드의 영역을 넘어서자, 유럽 각국 절대 왕정의 중상주의는 국제적인 거래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필요했다. 특히 수많은 전쟁을 치른 유럽 각국의 절대주의 왕정에는 군수품 조달이 중요한 과제였다. 군수품 조달자는 거의 예외 없이 유대인이었다. 유럽 각국뿐 아니라 신대륙과 중동에 흩어진 유대인 사업가들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그 재정을 조달하는 광범위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유대인 상인들은 17세기 전반부에 유럽 중앙에서 벌어진 30년전쟁 와중에 교전 당사자들의 자산을 인수하거나 팔면서 부를 축적해 그 기반을 닦았다._175쪽

열등한 종 가운데에서, 독일 우생학자들이 게르만족 혈통에 대한 명확하고 유일한 위협으로 지목한 것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 게르만족 사이에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우생학자 카를 스트라츠Carl Stratz는 “유럽 유대인들은 주변의 다른 민족들보다 장애인 비율이 가장 높다”며 유대인들이 안짱다리, 평발, 곱사등, 새가슴,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경쇠약 등 다양한 유전적 질병에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독일 우생학은 유대인의 이런 생리적 특성을 그들의 사회적 행태와 연관시켰다. …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대인은 이제 종교적 신념이 문제가 아니라 인종적 유전에 문제가 있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타락한 인종인 유대인은 타락한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근대의 반유대주의는 이렇게 완성됐다. 19세기 중반 이후 자본주의 전개가 부르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위기는 반유대주의와 결합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로 귀결되어갔다._224~225쪽

밸푸어 선언에서 “팔레스타인의 기존 비유대인 공동체들의 시민적, 종교적 권리를 (…) 손상시킬 수 있는 일이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표현은 향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질 갈등과 대립을 예고했다.
이는 서구 기독교 세계가 만들어낸 유대인 문제를 중동으로 수출하는 것이었다. … 밸푸어 선언은 지금은 익숙해진 ‘ 2천 년 동안 계속된 아랍 민족 대 유대 민족의 대립’이라는 표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랍 대 유대 민족의 대립’이라는 개념은 기껏해야 20세기 이후 성립된 것이다. 중동에서 팔레스타인 분쟁은 이렇게 서구의 기독교 세계가 유대인 문제를 이슬람권에 수출함으로써 기원했다. 서구의 유대인 문제에서 피해자이자 약자는 유대인이었는데, 중동으로 수출된 유대인 문제에서 가해자이자 강자는 유대인이었다._312~314쪽

팔레스타인 현지 주민과 유대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유대인 입식의 필연적 결과물이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이방에서 온 유대인이 그 땅에서 새로운 집단으로 출현하자 그에 맞서는 정체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국민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으로 가속화되자, 이로 인해 소외되고 배제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역시 타자화된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유대인의 도래는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자신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던 아랍 주민’에서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인식하게 하고,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민족’으로서 여기게 했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본격적으로 그 땅에서 내몰아 난민으로 만든 이스라엘 건국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대항적 민족화를 더욱 재촉하게 됨은 물론이다._334~335쪽

건국 이후의 이스라엘은 생존이 급선무였다. 주변의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은 1973년까지 아랍국가들과 벌인 4차례의 중동전쟁이었다. 이스라엘은 4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공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1973년 이스라엘-아랍의 마지막 중동전쟁이 끝나고 협상이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의 내부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도 주변 아랍 국가 및 팔레스타인과 협상에 나서야 했다. 이는 양보를 의미했다. 양보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내부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였다. 이스라엘이 생존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양보를 할 때가 오자, 건국 때의 이상과 이념보다는 국내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국내외 정책을 좌우하게 됐다. 협상에 따른 양보를 반대하는 보수우파 정당인 리쿠드당이 4차 중동전쟁 전후로 창당돼, 나중에 이스라엘 정치를 주도하게 된다._402~403쪽

저자소개

정의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 국제부, 정치부, 사회부 등을 거쳐 오피니언넷 부문 및 국제 부문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한겨레〉에 ‘지정학의 풍경’ ‘정의길 칼럼’ 등을 쓰고 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은행 장학생으로 1999~2001년 미국 럿거스대학교와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저서 《지정학의 포로들》 《이슬람 전사의 탄생》 《뜨거운 지구촌》, 논문 〈아시아 외환위기 때의 자본 통제 논쟁〉 등을 썼고, 역서로는 《부시가문의 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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