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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초판]

원제 : In einer dunklen Nacht ging ich aus meinem stillen 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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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페터 한트케
강렬하고 시적인 언어로 펼쳐지는 환상의 편력

엘프리데 옐리네크에 이어 두번째로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작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파격적 형식과 내용으로 찬사와 비판을 넘나드는 문제적 작가 페터 한트케의 장편소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다시 선보인다.

고독하고 건조한 일상을 보내다 의문의 일격을 당한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이 집을 나서서 스텝 지역을 떠돌며 온갖 기이한 일을 겪은 끝에 마침내 말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를 그린 작품으로,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그로테스크한 여정이 감정을 배제한 언어에 실려 신중하고 집요하게 가지를 뻗어나간다. 이 로드무비는 또한 성배를 찾아 모험을 떠난 중세 기사처럼 수수께끼의 한 여자를 추적해 만나고 이별하는 사랑 이야기이자,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한 내면 성찰의 편력이 중심이 되는 발전소설이며,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타픽션이다. 주인공이 익명의 일인칭 화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는 중첩되고 굴절되며 새로운 소설의 경지로 나아간다.

독창적인 언어로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그 특수성을 탐구한 영향력 있는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2019년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출판사 서평

실어의 상태로 떠도는 환상의 편력
말을 되찾고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

잘츠부르크에 인접한 마을 ‘탁스함’에 사는 독수리 약국의 약사는 예민한 후각의 소유자, 버섯 전문가이자 중세 영웅 서사시의 애호가로, 아내와 한집에 살면서도 보이지 않는 금으로 서로의 영역을 구분하고 절대 침범하지 않는 기묘한 별거생활을 하고 있다. 이후 아내와 딸, 아들이 모두 모종의 이유로 집을 떠나고, 혼자 남아 집과 약국과 공항(근처의 레스토랑)을 축으로 하는 삼각지대 안에서 고독하고 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약사는 어느 날 숲속에서 불시의 일격을 당한다. 그 여파로 이마의 상처와 실어증을 얻은 채 단골 레스토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올림픽 영웅이었으나 몰락한 스키 선수 그리고 한때 유명세를 누렸지만 지금은 잊힌 시인을 우연히 보게 된 그는 쏟아지는 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맞으며 산책하듯 걷는 두 사람을 자기 차에 태운 뒤 서로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채 계획도 목적지도 없는 여행을 떠난다.
일행은 도중에 스키 선수가 아는 어느 과부의 집에 머무는데, 이날 깊은 밤 ‘승리자’라는 이 여인에게 약사는 느닷없이 가혹한 구타를 당한다. 탁스함에서의 일격으로 이미 상처를 입은 이마에 또다시 폭력의 흔적이 더해지지만 그런 약사의 모습에도 스키 영웅이나 시인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고 심지어 그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이 기묘한 세 사람은 오백 개의 터널을 지나 알프스를 넘어 일명 밤바람의 도시 ‘산타페’에 도착한다.

마침 성모승천일 축제가 한창인 그곳에서 약사는 집시 음악가가 된 아들과 재회하고, 이 만남으로 그를 집에서 내쫓았다는 죄책감에서 서서히 놓여난다. 시인은 축제의 여왕이 되어 거리를 행진중인 사생아 딸을 발견한다. 일행은 축제가 끝난 뒤에도 도시에 머물며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그곳 사람들과 함께 몸을 쓰며 일을 한다. 변두리 동네를 돌아다니며 ‘승리자’ 여인을 찾던 약사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서 스텝 지역으로 향한다. 떠돌이 행상, 수렵꾼들, 미치광이 노인을 쫓는 군인과 중년 남자를 마주치기도 하며 불가사의로 가득찬 낯선 그곳을 마치 꿈속처럼 떠돌던 그는 사라고사에서 드디어 ‘승리자’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스텝 지역에서 실어상태에 더없이 만족해 있는 그에게 무언無言이 이전의 모든 체험과 기억을 무가치하게 파괴해버릴 것이므로 새롭게 말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새로운 단어를 찾아내고, 문장을 새로 만들고, 다시 입을 열어 얼토당토않고 터무니없는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속삭이던 그림자의 정체가 그녀였음을 깨닫는다. ‘승리자’ 여인의 도움으로 말하는 힘을 되찾은 순간 그에게 사랑이 솟아나고, 함께 귀로에 오르지만 헤어져 그 혼자서 집으로 향한다.


“그동안 어디선가 나 자신에게 맹세한 적이 있었어요.
언젠가 내가 이곳으로 돌아올 때는 딴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본문 192쪽)

환상과 현실이,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며 시작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던 주인공의 여정은 그에게 자아 변화 또는 성숙, 즉 다른 사람 되기의 과정이며, 이는 자아 탐색 또는 정체성 추구, 현실보다 내면세계 탐구에 천착하는 한트케의 문학세계와 맞닿아 있다. 작품활동 초기 연극에서 기존 형식을 파괴하는 전위적 언어실험을 시도했던 한트케는 1970년대에 이르러 전통적 서사로 옮겨가 자아의 내면 성찰에 집중하는데, 현실을 떠나 낯선 도시와 스텝 지역을 편력하는 소설 속 약사의 여정에서도 외적 환경 못지않게 심층적 의식세계를 세세히 기술한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의식세계로 떠나는 여행을 다루기에 발전소설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주인공이 미래를 지향하는 일반적 의미의 발전을 경험하지 않으므로 기존 발전소설과는 차이가 있는, 한트케식 ‘발전 없는 발전소설’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의 변화 또한 전통적 스토리텔링과는 거리가 먼, 돌발적인 사건에 의해 파격적으로 이루어진다. 탁스함의 약사에게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는 도발적이고 느닷없는 폭력과 그로 인한 실어일 것이다. 그의 실어증은 “새로운 시선을 획득하기 위한 전제”가 되며, 말을 되찾는 과정은 스스로에게조차 기억되지 못하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름없다.

소설은 기이한 모험을 마친 약사가 어느 겨울날 그의 이야기 기록자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앞서 약사의 여정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끼어들던 익명의 일인칭 화자가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서술자로 다시 한번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그 존재를 통해 환상이 현실이 되고 과거가 현재가 되며 화자가 다시 독자가 되는, 이야기 속 시간과 이야기가 이야기되는 시간이 중첩되고 굴절되는 이 소설의 독특한 서술구조가 가능해지며, 나아가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메타픽션으로도 읽힐 수 있게 된다.

방랑과 기행奇行, 과거에 대한 풍자, 위트, 돈키호테적인 발상과 낭만적 소재, 이 모든 것을 한트케는 한 텍스트 안에 섞어놓고 있으며, 이를 독특한 서술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전혀 새로운 차원의 소설을 완성했다. 한편 이 소설은 그가 십수 년간 써온 끝없는 이야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웃 도시 잘츠부르크 사람들조차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잊힌 곳, 그물처럼 짜인 교통 노선 사이에 끼어 고립된 곳으로 설명되는 ‘탁스함’, 서술자의 친구로 등장하는 ‘안드레아스 로저’는 이전에 쓰인 소설 『고통의 중국인Der Chinese des Schmerzes』(1983)에 등장했다. 그 밖에도 이전 작품에 나타나는 황량한 장소, 태고의 산맥 풍경 등이 거듭 변형되어 나타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동시에 자기 작품에 대한 패러디다. 한트케는 끊임없이 새로운 변주를 시도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내면화된 주관주의와 고향으로의 귀환을 서술한다.

목차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 009

해설 | 일상적 존재 방식의 부정과 다른 사람 되기 203
페터 한트케 연보 221

본문중에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주변이 온통 깜깜해지던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는, 그리고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가 완전히 변화된 존재가 되기를 끈질기게 강요하는 이 새로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53쪽)

‘먼 곳에 있다’고 누가 그처럼 단정했을까? 언젠가 이미 말했듯이 그들 자신이다. 그들의 분위기와 상황, 여건 그리고 이야기와 소설이다. 어느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함께 길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어느 이야기를, 더구나 공동으로 체험하고 있다는 의식이, 집을 전혀 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멀리 와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91쪽)

“내 이야기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아요.” 탁스함의 약사가 대답했다. “가끔씩 슬프게 진행되고, 때론 거의 절망적이기도 하지만 죽는 사람은 있을 수 없어요.” (104쪽)

그러던 어느 날, 밤바람 속에서 그는 실어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계속 생각했다. 더는 말을 할 수 없다니, 잘된 일이야.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아도 돼. 이건 자유야! 아니 그 이상이지, 아주 이상적인 상태야! 정당을 하나 창설할까, 아니 차라리 신흥종교를 만들어? 말 못하는 자들의 정당, 말 못하는 자들의 종교? 아니지, 홀로 서야 해. 묵묵히, 자유롭게, 그리고 마침내 당연히 혼자서. (121쪽)

“그 ‘승리자’! 중세 서사시를 읽어서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호칭이나 이름은 때때로 정반대를 의미하지요. ‘승리자’는 그러니까 처음부터 ‘실패자’였던 거예요. 서사시의 비밀은 당연히, 언젠가는 모험이 무사히 끝나 ‘패배자’가 마침내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짜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그렇게 불린 것도,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거나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승리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실패자에게 정해진 운명이에요!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어쩌면 모험만이 팽팽한 긴장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몰라요.” (135쪽)

“당신은 그 실어상태를 떨쳐버려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의 무언無言이 오늘이라도 당장 당신을 죽일 거예요. 당신의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에요. 비록 처음 얼마간은 당신의 의식을 확대시켜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혼자 있을수록 당신의 실어상태는 위험해지고, 급기야 생명까지 위협할 거예요. 실어상태가 계속되면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그토록 의미 있어 보이는 현재가 실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모든 체험까지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며 파괴될 거예요. 그렇게나 상징적인-어린 시절까지도. 그러면 당신의 기억은 무가치해지고 또 파괴되어버리죠. (……) 그러니 당신은 새롭게 말하려는 시도를 해야 해요. 새로운 단어를 찾아내고, 문장을 새로 만들고, 큰 소리로, 아니 소리라도 내보세요. 당신의 말이 비록 얼토당토않고 터무니없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시 입을 연다는 사실이에요.” (169~170쪽)

나는 그에게 자신이 그 이야기로 인해 달라졌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동안 어디선가 나 자신에게 맹세한 적이 있었어요. 언젠가 내가 이곳으로 돌아올 때는 딴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유일하게 달라져 보이는 것은 커진 발이었지요. 그래서 신발을 새로 살 수밖에 없었고요.” (192쪽)

“중요한 건, 내가 방금 이야기한 것을 당신이 커다란 종이 위에 적어둔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헛일이에요. 나는 백지 위의 검은 글씨를 원합니다. 나는 내 이야기가 글자로 쓰인 것을 갖고 싶어요. 입으로 이야기할 때는 내게로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글자로 쓰인 것은 다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결국에는 나 자신도 내 이야기에서 뭔가를 얻고 싶답니다. 말과 글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 차이는 아주 중요하지요. 나는 내 이야기가 문자로 기록된 걸 보고 싶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가 쓰인 것을 볼 거예요. 그 이야기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과 나를 제외하면 대체 누가 그 이야기를 읽어야 할까요?” 내가 물었다.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른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오직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만을 위해 쓰이는 이야기가 오늘날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가 대답했다. “어쩌면 그런 게 바로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가 아닐까요? 언젠가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193쪽)

“그래요, 나는 내 이야기 도중에 몇 가지를 그르쳤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더라도 뭔가 늦지 않고 제때 하고 싶답니다! 여기서 어느 곳에 서 있든, 어느 곳을 걷고 있든 나는 다음 모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요-다음번에는 본질적으로 달라지기 위해서죠.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동경이라기보다는 탐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스승 파라셀수스가 버섯들에 관한 단상에서, ‘귀중한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자는, 바로 그 순간 벌써 또다른 귀중한 것으로 눈길을 돌린다’고 말했던 대로지요. 다만 나는 그 특별한, 까맣게 작열하는 출발점을 더이상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당시, 내 이야기가 시작되던 때, 그땐 발견했었어요. 그 출발점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내줄 수 있을 텐데!” (195~196쪽)

이어진 노래는 오랫동안 준비되고 차분히 다듬어진 곡 같았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탈진상태가 되어 서로의 품에 몸을 던져 안겼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서로에게서 맛보았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나른함 속에 나란히 누웠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탄 속에 깨어났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조바심으로 창마다 내다보았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내심으로 계속 달렸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 사랑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에게서 자유로웠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에게 대담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에게 감사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로를 인정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땀을 흘렸다,
소리를 질렀다,
울었다,
피를 흘렸다,
침묵을 지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헤어졌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갔다,
말할 수 없음에 대하여
말할 수 없이 분노하며.” (197~198쪽)

저자소개

페터 한트케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421206

1942년 오스트리아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그라츠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중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 '포룸 슈타트파르크'와의 인연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5년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발표한 첫 소설 '말벌들'이 주어캄프 출판사에 채택된 것을 계기로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66년 미국 프린스턴에서 열린 '47년 그룹'의 모임에서 독일 문학을 과격하게 비판한 한트케는 같은 해에 연극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첫 희곡 '관객 모독'을 발표하면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73년에는 독일어권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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