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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초판]

원제 : Moby-Dick; or, The 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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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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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우영우가 읽은 소설
★ 국내 최초 ‘레이먼드 비숍’ 목판화 일러스트 수록 완역본

절대적 진리만을 강요하던 폭력의 시대에 맞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문학의 효시가 된 불후의 고전

『모비 딕』은 단순한 해양모험소설이 아니라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품은 다면적인 소설이다.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이 유명한 첫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성을 지닌다(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첫 문장 30’). 주인공 이슈메일뿐 아니라 에이해브, 요나, 욥, 프로메테우스, 페르세우스, 나르키소스 등 성경과 그리스신화 인물들이 주요 모티브와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또한, 에이해브 선장과 모비 딕의 극적인 대립, 선원 커뮤니티의 계층·인종 간 갈등, 등장인물의 개성적인 캐릭터와 심리가 복합적으로 뒤얽힌 채 장엄하게 서사가 흘러간다.
1851년에 출간된 『모비 딕』은 이미 반세기 앞서 20세기에 도래할 모더니즘을 예고했다. 세상 모든 진리를 안다는 듯 신의 위치에서 소설을 써 내려간 19세기 리얼리즘 소설가들과는 달리, 20세기 모더니즘 소설가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주관적 관점과 내면 심리를 극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하여 『모비 딕』은 획기적인 퓨전풍 스토리텔링, 독창적인 작품 구조, 다양한 인간 군상 추적, 이야기와 상징의 절묘한 결합, 인생의 신비를 둘러싼 깊은 종교적·철학적 탐구, 뛰어난 유머 감각과 풍자, 열린 결말 등등 기존에 없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형식으로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효시이자 상징주의 문학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추적하는 흰 고래 모비 딕은 무엇을 의미할까? 색깔이 ‘흰’ 고래는 하나로만 해석되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사실상 모든 것을 상징한다. 독자가 부여하는 빛에 따라 상징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자 해제에서는 종교, 신화, 사회, 심리, 철학적 측면에서 각각 신, 괴물, 노예제, 트라우마, 존재의 신비로 해석했다. 이 다섯 가지 해석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읽으면 작품의 의미가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다가올 것이다. 베테랑 고전 번역가 이종인 선생이 멜빌 특유의 장중하고 거침없으면서도 재치 있고 섬세한 문장을 탁월하고 가독성 높은 우리글로 옮겨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이제 해석의 주도권은 독자 각자에게 주어졌다. 여러분도 『모비 딕』을 통해 나만의 ‘흰 고래’를 찾아 머나먼 항해를 떠나보면 어떨까.

출판사 서평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고
거대한 도서관을 누비다

『모비 딕』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흰 고래 모비 딕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잃은 선장 에이해브가 이를 복수하기 위해 다시 고래를 찾아가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죽고 만다는 모험담이자 비극적인 복수극이다. 하지만 단조로운 스토리에 비해 소설의 분량은 이상하리만치 방대하다. 작가 허먼 멜빌은 고래처럼 거대한 소설에 도대체 무엇을 채워 넣은 것일까?
소설 첫 페이지를 열면, 느닷없이 히브리어부터 에로망고어까지 13개 언어로 고래의 어원을 소개한다. 그다음 페이지에는 『성경』에서부터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몽테뉴, 베이컨, 셰익스피어, 홉스, 버니언, 밀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래에 관한 발췌록 80개를 죽 나열했다. 길고 긴 발췌록의 향연이 끝나면, “나를 이슈메일로 불러다오”라는 문장으로 본격적인 모험담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내가 소설을 읽는 건지 고래학(學) 백과사전을 읽는 건지 헷갈린다. 고래의 종류와 생태, 해부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포경업의 역사와 기술, 장비, 고래 처리 및 가공 과정까지 방대하고도 디테일한 지식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멜빌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고 거대한 도서관을 누볐다”라고 실토했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은 도서관 문학 코너가 아닌 수산업 코너에 꽂혔다는 후문이 돌 정도였다.
소설 중간중간 희곡 형식도 눈에 띈다. 엄연히 1인칭 관찰자 시점 소설인데, 난데없이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이어지고, 행동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지문이 덧붙는다. 어느새 배의 갑판은 연극 무대로 변해 있고, 등장인물 말투도 연극배우의 발성을 닮았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가슴을 울리는 대사의 호소력에 이내 빠져들고 만다. 멜빌은 희곡 작가 셰익스피어에게서 강한 영감을 얻어 드라마 형식을 소설에 그대로 반영했다. 소설 전체도 셰익스피어의 극 구성과 동일한 5막짜리 드라마 형태(1~23장[1막, 고래 사냥 준비], 24~47장[2막, 포경업 소개], 48~76장[3막, 고래 추격], 77~105장[4막, 고래 포획], 106~135장[5막, 고래와의 대결과 시련])를 취했다.


‘멜빌 부흥’이 일어나
시대를 역주행하다

성향상 모험가보다는 철학자나 명상가에 가까운 멜빌은 자신의 소설에 인생이나 운명에 관한 철학적 성찰과, 종교나 인종 문제에 관한 사회적 비판을 담고 싶었다. 앞서 해양소설 『타이피』(1846)와 『오무』(1847)로 인기를 얻으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철학적 이상과 알레고리가 가득한 『마르디』는 전작들과 달리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대중이 읽고 싶은 소설을 쓰느냐, 작가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느냐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멘토이자 동료인 너새니얼 호손은 후자를 선택하라고 격려해주었다. 자신감을 얻은 멜빌은 『모비 딕』을 출간했지만, 판매량이 고작 2천 부에 그치며 보기 좋게 실패했다. 기존 문법과는 다른 낯설고 파격적인 형식과, 모험소설인지 철학소설인지 알 수 없는 요상한 내용에 평단과 대중 모두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멜빌은 끝내 자신의 소설이 불후의 고전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호손과 같은 천재만이 멜빌의 천재성을 알아봤을 뿐 멜빌은 동시대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불행한 작가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멜빌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는 다시 무덤에서 소환된다. 1919년 컬럼비아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레이먼드 위버가 멜빌을 극찬하는 평론을 발표하자 다시금 『모비 딕』이 주목받으면서 이른바 ‘역주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1923년 영국 작가 D. H. 로렌스도 『미국 고전문학 연구』에서 “멜빌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세계가 두려워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게다가 1924년 유작 중편소설 『선원, 빌리 버드』도 발표되면서 이른바 ‘멜빌 부흥’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멜빌은 왜 1920년대에 와서야 주목받게 된 것일까? 해제를 쓴 번역가 이종인에 따르면, 1920년대에 들어와 후배 작가들이 멜빌의 모더니즘 스타일에 주목하며 그를 재평가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문학 기류가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태동하고 있었다. 모더니즘이 도래하기 이전의 소설들은 철저히 리얼리즘을 내세웠다. 19세기 리얼리즘 소설가들은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안다는 듯 신의 위치에서 소설을 써 내려갔다. 반면,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작가들은 소설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설정에 회의감을 느꼈고, 오로지 자신이 직접 보고 겪고 상상한 것만 알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세상보다는 자아의 심리적 리얼리티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주관적 관점과 내면 심리를 극화하는 데 자연스럽게 초점을 맞췄다. 이것이 모더니즘 운동의 핵심이다.
1851년에 출간된 『모비 딕』은 이미 반세기 앞서 여러 면에서 모더니즘을 예고하는 작품이었다. 획기적인 퓨전풍 스토리텔링, 독창적인 작품 구조, 다양한 인간 군상 추적, 이야기와 상징의 절묘한 결합, 인생의 신비를 둘러싼 깊은 종교적·철학적 탐구, 뛰어난 유머 감각과 풍자, 열린 결말 등등 기존에 보지 못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형식으로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효시이자 상징주의 문학의 대표작이 되었다.


나만의 ‘모비 딕’을 찾아
모험에 나설 용기를 주다

『모비 딕』은 단순한 해양모험소설이 아니라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품은 다면적인 소설이다.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이 유명한 첫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성을 지닌다(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첫 문장 30’). “실종된 아들을 찾으러 다니다가 또 다른 고아인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 마지막 문장에서 ‘고아’도 중요한 수사적 암시다. 주인공 이슈메일뿐 아니라 에이해브, 요나, 욥, 프로메테우스, 페르세우스, 나르키소스 등 성경과 그리스신화 인물들이 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와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추적하는 흰 고래 모비 딕이 상징하는 바가 가장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흰 고래는 무엇을 의미할까? 색깔이 ‘흰’ 고래는 한 가지로만 해석되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사실상 모든 것을 상징한다. 독자가 부여하는 빛에 따라 상징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자 해제에서는 종교, 신화, 사회, 심리, 철학적 측면에서 각각 신, 괴물, 노예제, 트라우마, 존재의 신비로 해석했다. 이 다섯 가지 해석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재독, 삼독하면 그만큼 작품의 의미가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다가올 것이다.
베테랑 고전 번역가 이종인 선생이 멜빌 특유의 장중하고 거침없으면서도 재치 있고 섬세한 문장을 탁월하고 가독성 높은 우리글로 옮겨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거대한 고래를 찾아 떠나는 길고 험난한 항해를 묘사하기에 1930년대 스타일의 흑백 목판화만큼 적합한 것도 없다고 여겨 국내 최초로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 29점을 수록했다. 책 앞부분에는 ‘『모비 딕』의 이해를 돕는 당시의 판화들’을 실어 독자들에게 생소한 19세기 포경 현장을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제 흰 고래 모비 딕을 해석할 수 있는 주도권은 독자 각자에게 주어졌다. 절대적 진리만을 강요하던 폭력의 시대에 맞서 용기 있게 모험에 나섰던 허먼 멜빌처럼, 여러분도 소설 『모비 딕』을 통해 나만의 ‘흰 고래’를 찾아 머나먼 항해를 떠나보면 어떨까.

추천사

D. H. 로렌스
“멜빌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세계가 두려워하는 작가다!”

레위스 넘포드
“멜빌은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다. 멜빌의 『모비 딕』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단테의 『신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학 작품이다!”

E. L. 닥터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틀렸다! 미국의 근대 문학은 『허클베리 핀』이 아니라 유럽문명을 삼킨 『모비 딕』에서 시작되었다!“

목차

어원
발췌록
1장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들
2장 여행 가방
3장 물보라 여관
4장 이불
5장 아침 식사
6장 거리
7장 예배당
8장 설교단
9장 설교
10장 절친한 친구
11장 잠옷
12장 살아온 날들
13장 외바퀴 손수레
14장 낸터킷
15장 차우더
16장 배
17장 라마단
18장 그의 표시
19장 예언자
20장 출항 준비
21장 배에 타다
22장 메리 크리스마스
23장 바람이 불어가는 쪽 해안
24장 변호
25장 덧붙이는 말
26장 기사와 종자 1
27장 기사와 종자 2
28장 에이해브
29장 에이해브 등장, 뒤이어 스터브 등장
30장 파이프
31장 매브 여왕
32장 고래학
33장 작살잡이장
34장 선실 식탁
35장 돛대 꼭대기
36장 뒷갑판
37장 해질녘
38장 황혼
39장 첫 번째 야간 당직
40장 한밤중, 앞갑판
41장 모비 딕
42장 고래의 흰색
43장 잘 들어봐!
44장 해도
45장 진술서
46장 추측
47장 거적 짜기
48장 최초의 보트 출격
49장 하이에나
50장 에이해브의 보트와 선원들, 페달라
51장 유령의 물줄기
52장 앨버트로스호
53장 포경선들의 만남, 갬
54장 타운호호 이야기
55장 말도 안 되는 고래 그림들
56장 오류가 적은 고래 그림과 사실적인 고
래잡이 그림
57장 그림, 이빨, 나무, 철판, 돌, 산악, 별
자리 등에 나타난 고래에 관해
58장 요각류
59장 오징어
60장 포경 밧줄
61장 스터브가 고래를 죽이다
62장 작살 던지기
63장 작살받이
64장 스터브의 저녁 식사
65장 고래고기 요리
66장 상어 대학살
67장 고래 해체 작업
68장 담요
69장 장례식
70장 스핑크스
71장 제로보암호 이야기
72장 원숭이 밧줄
73장 스터브와 플래스크, 참고래를 죽이고
그자에 관해 대화하다
74장 향유고래의 머리 - 비교 검토
75장 참고래의 머리 - 비교 검토
76장 공성퇴
77장 커다란 하이델베르크 술통
78장 기름통과 들통
79장 대평원
80장 고래의 뇌
81장 피쿼드호, 융프라우호를 만나다
82장 포경업의 명예와 영광
83장 역사적으로 고찰해본 요나
84장 창 던지기
85장 분수
86장 꼬리
87장 무적함대
88장 학교와 교장
89장 잡힌 고래와 놓친 고래
90장 머리냐 꼬리냐
91장 피쿼드호, 로즈버드호를 만나다
92장 용연향
93장 버림받은 자
94장 손으로 쥐어짜기
95장 사제복
96장 기름 짜는 솥
97장 등잔
98장 채우기와 치우기
99장 스페인 금화
100장 다리와 팔 - 낸터킷의 피쿼드호, 런
던의 새뮤얼엔더비호를 만나다
101장 술병
102장 아르사시드군도의 나무 그늘
103장 고래의 뼈대 측량
104장 화석 고래
105장 고래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는가? 고
래는 멸종할 것인가?
106장 에이해브의 다리
107장 목수
108장 에이해브와 목수
109장 선장실의 에이해브와 스타벅
110장 관에 누운 퀴케그
111장 태평양
112장 대장장이
113장 용광로
114장 황금빛 바다
115장 피쿼드호, 배철러호를 만나다
116장 죽어가는 고래
117장 고래 불침번
118장 사분의
119장 양초
120장 첫 번째 야간 당직이 끝날 무렵의 갑

121장 한밤중 - 앞갑판의 뱃전
122장 한밤중의 돛대 꼭대기 - 천둥과 번

123장 머스킷총
124장 나침반 바늘
125장 측정기와 측정줄
126장 구명부표
127장 갑판
128장 피쿼드호, 레이철호를 만나다
129장 선실
130장 모자
131장 피쿼드호, 딜라이트호를 만나다
132장 교향곡
133장 추격 - 첫째 날
134장 추격 - 둘째 날
135장 추격 - 셋째 날
에필로그

해제 | 이종인
허먼 멜빌 연보

본문중에서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몇 년 전(정확히 언제인지는 묻지 말라) 지갑에는 돈이 다 떨어져가고 육지에는 딱히 흥미로운 일도 없어, 나는 배를 타고 나가서 세상의 바다를 둘러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우울함을 떨쳐내고 몸 안에 정체된 피를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입언저리가 점점 험악해지는 것을 느낄 때, 영혼이 가랑비 내리는 축축한 11월처럼 변할 때, 나도 모르게 장의사 앞에 멈춰 선다거나 장례 행렬을 마주칠 때마다 뒤쫓아 갈 때, 특히 우울함에 사로잡혀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이 쓴 모자를 일부러 툭툭 쳐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엄청난 도덕심을 발휘해야 할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최대한 빨리 바다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이 내게는 권총과 총알을 대신한다. 고대 로마의 카토는 철학적인 문장을 읊으며 칼 위에 몸을 던졌다지만 나는 조용히 배에 오른다. 놀랄 일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바다를 아는 자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바다에 대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될 테니까. --- 「1장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들」 중에서

나는 엄격한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엿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런 내가 어떻게 야만적인 우상숭배자와 함께 나무 조각에게 기도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예배란 무엇인가? 이슈메일, 너는 지금 하늘과 이 세상, 이교도는 물론 모든 이들을 포함한 세상의 주인이신 너그러운 하나님이 이 하찮고 검은 나무 조각에게 질투를 느낀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배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예배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웃이 내게 해주기를 바라는 일을 내가 이웃에게 해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제 퀴케그는 내 이웃이다. 퀴케그가 내게 해주기를 바라는 일이 무엇인가? 나와 함께 장로교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의 예배에 동참해야 한다. 우상숭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대팻밥에 불을 지폈고, 그 무해한 작은 우상이 넘어지지 않도록 도왔고, 퀴케그와 함께 우상에게 구운 건빵을 바쳤고, 우상 앞에 두세 번 절을 한 뒤 우상의 코에 입을 맞췄다. 우리는 의식을 마친 다음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갔다. 양심에든 세상에든 전혀 거리낄 게 없었다. 우리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 「10장 절친한 친구」 중에서

‘포경업에 진정한 품위가 없다고?’ 우리 직업의 품위는 하늘이 증명한다. 남쪽 하늘에는 고래자리라는 성좌가 있다! 그 이상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하는가? 러시아 황제 앞에서는 모자를 깊이 눌러 쓰더라도 퀴케그 앞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한다! 더 말할 것도 없다. 평생 동안 고래 350마리를 잡은 사람을 알고 있는데, 나는 그가 350개의 성벽 도시를 함락시켰다고 자랑하는 고대의 위대한 장군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 안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뛰어난 점이 있다면, 작지만 무척 조용한 그 세상에서 내가 진정한 명성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 부당하지는 않겠지만 내게 정말 그런 명성을 얻을 자격이 주어진다면, 앞으로 내가 대체로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나은 어떤 일을 한다면, 또 내가 죽을 때 유언 집행인들, 더 정확히 말해 채권자들이 내 책상에서 귀중한 원고를 발견한다면, 나는 모든 명예와 영광을 포경업에 돌린다고 여기서 미리 밝혀두겠다. 포경선은 나의 예일대학이자 하버드대학이기 때문이다. --- 「24장 변호」 중에서

그때 나는 오전 당직을 서려고 갑판에 올라갔는데, 시선을 고물 난간으로 옮기자마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며 온몸이 떨려 왔다. 예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물 갑판에 에이해브 선장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가 병을 앓고 있다든지 혹은 회복되고 있다든지 하는 징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화형대의 불길에 휩싸여 사지가 상했지만 완전히 못 쓰기 전에, 또는 오랜 세월 다져진 그 건장함을 다 잃기 전에 화형대 줄을 끊고 나온 사람 같았다. 큰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그의 몸은 마치 단단한 청동으로 만든 것 같았다. 첼리니가 주조한 페르세우스 청동상처럼 그 몸은 형태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았다. 잿빛 머리털에서 나와 황갈색으로 그을린 얼굴과 목덜미 한쪽으로 쭉 이어져 옷 속으로 사라지는 가느다란 막대기 같은 희끄무레한 납빛 흉터가 보였다. … 에이해브의 음울한 모습과 기다란 납빛 흉터를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나는 한동안 압도적인 음울함이 적잖게 그가 몸의 일부를 의지하고 서 있는 야만적이고 하얀 다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이 상앗빛 다리가 항해 중에 향유고래의 턱뼈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 「28장 에이해브」 중에서

몸의 다른 부분도 같은 흰색으로 줄무늬와 얼룩, 대리석 무늬로 덮여 있어 수의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마침내 그 고래는 ‘흰 고래(백경)’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한낮에 검푸른 바다를 미끄러지듯 헤엄치며 금빛으로 반짝이는 크림색 거품을 은하수처럼 남기는 모비 딕의 생생한 모습을 보노라면, ‘흰 고래’라는 이름이 놈에게 맞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고래가 자연스레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남다른 덩치나 눈에 띄는 색깔, 기형적인 아래턱이 아니라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지능적인 적개심 때문이다. 구체적인 증언에 따르면 놈은 사람을 공격할 때 그런 성격을 여러 번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놈의 기만적인 후퇴에 고래잡이들은 경악했다. 모비 딕은 의기양양한 추격자들 앞에서 멈칫거리고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며 헤엄치는 듯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보트를 들이받아 산산조각 내는 바람에, 겁먹은 보트들이 허겁지겁 본선으로 돌아가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 「41장 모비 딕」 중에서

“저어라, 저어라, 사랑하는 부하들아. 노를 저어라, 내 자식들아. 노를 저어라, 내 어린 것들아.” 스터브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부하 선원들을 달래려는 듯이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봐, 왜 등뼈가 부러지도록 노를 젓지 않나?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저 보트에 있는 자들? 쳇! 우리를 도와주러 다섯 명이 더 왔을 뿐이야.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신경 쓰지 마. 도우러 온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저어라, 계속 저어. 지옥의 유황불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악마도 알고 보면 좋은 친구지. 그래, 좋아. 이제 좀 제대로 젓고 있군. 그런 게 1,000파운드짜리 노 젓기지. 판돈을 싹 쓸어버릴 기세군. 영웅들아, 향유고래 기름으로 채울 금잔을 위해 만세를 하자! 만세 삼창을 하자! 다들 기운이 넘치는구나. 진정해, 진정. 서두르지 마라. 서두르지 마. 왜 노를 힘껏 젓지 못하나, 이 악당들아! 뭐든 물어뜯어, 개놈들아! 그래, 그래, 그렇게. 살살, 부드럽게. 그래, 그거야 그거. 악마가 물어갈 놈들, 넝마나 줍는 부랑자들아, 모두 자고 있군. 잠꾸러기들아, 그만 코 골고 노를 저어. 노를 저으라고, 얼른. 노를 저어, 못하겠나? 노를 저어, 안 할 텐가? 왜 뼈 빠지게 젓지 않는 거야? 뭐든 부서질 때까지 저어라. 눈알이 빠지도록 저으란 말이야. 자!” 그는 허리띠에서 날카로운 단도를 뽑아들며 말했다. “자, 다들 단도를 빼서 입이 물고 노를 저어라. 그렇지, 그렇지. 이제야 제대로 하는 것 같군. 칼같이 잘하네. 전진하라 전진, 은수저들아! 전진하라, 밧줄 꿰는 바늘들아!” --- 「48장 최초의 보트 출격」 중에서

“상어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먹성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본성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하지만 그 사악한 본성을 다스리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여러분은 상어입니다. 하지만 내면의 상어를 다스릴 줄 안다면 여러분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천사란 자기 내면의 상어를 잘 다스리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형제들이여. 저 고래를 뜯어먹을 때 좀 점잖게 행동하기 바랍니다. 이웃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고래 지방을 빼앗지 마십시오. 저 고래에 대해 어떤 상어든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여러분은 저 고래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습니다. 저 고래는 다른 이의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다른 상어들보다 아가리가 훨씬 큰 놈도 있겠지요. 아가리는 큰데 배는 작은 놈도 있고요. 그러니 아가리가 큰 것은 마구 삼켜대라는 뜻이 아니라, 저 난리 북새통을 뚫고 들어가 자기 배를 채울 수 없는 새끼 상어들에게 그 아가리로 물어뜯은 것을 나누어주라는 뜻입니다.” --- 「64장 스터브의 저녁 식사」 중에서

하지만 그는 보트에서 너무 가까운 곳만 보고 있었다. 모비 딕은 몸에 매단 시신과 함께 도망칠 생각인 양, 아니면 지난번에 만났던 지점이 바람 불어가는 쪽으로 여행하는 중에 잠시 들른 정거장인 양, 이제 다시 꾸준히 앞을 향해 헤엄쳐 가고 있었다. 고래는 이제 본선 옆을 스치다시피 지나쳐 갔다. 본선은 좀 전까지 정반대 방향에서 고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가 잠시 멈춰 서 있는 상태였다. 고래는 전속력으로 헤엄치며 이제는 자기 갈 길로 똑바로 가는 데 전념하는 것 같았다. “오, 에이해브!” 스타벅이 소리쳤다. “오늘이 사흘째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모비 딕은 당신을 쫓고 있지 않습니다. 미친 듯이 고래를 쫓고 있는 것은 당신입니다!” --- 「135장 추격-셋째 날」 중에서

“태양을 등지고 돌아서련다. 오 타슈테고, 너의 망치 소리를 듣게 해다오. 오오, 항복을 모르는 내 배의 세 첨탑이여. 너 금 가지 않은 용골이여. 신만이 괴롭힐 수 있는 선체여. 너 굳건한 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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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8190801

1819년, 미국 뉴욕에서 부유한 무역상 집안의 8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내지만 13세 때 아버지가 거의 파산상태에 이른 후 죽자 농장 일꾼, 가게 점원, 학교 교사 등을 전전하며 가족의 생계를 돕는다. 20세에 상선의 선원이 되어 영국의 리버풀까지 항해했고, 22세에 다시 포경선의 선원으로 남태평양에 나갔으며, 1844년에 군함의 수병이 되어 귀국하였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으로, 포경선에서 탈주하여 남태평양의 마르키즈제도의 식인종 마을에 살았던 기구한 경험을 그린 '타이피'(1846), 남태평양의 평안한 방랑생활을 엮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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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54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 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를 번역했고 최근에는 E.M.포스터, 존 파울즈, 폴 오스터, 제임스 존스 등 현대 영미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 이래 지금까지 140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500권을 목표로 열심히 번역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번역을 잘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20만 매에 달하는 번역 원고를 주무르는 동안 글에 대한 안목이 희미하게 생겨났고 번역 글쓰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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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비숍 [그림]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목판화가로 활동했다. 1933년 앨버트 앤 찰스 보니(Albert and Charles Boni)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모비 딕』에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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