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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 외무성 관리 ‘동방학’에서 문부성·제국대학 ‘대동아학’까지[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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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일본의 쇼와 시대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1929)에서부터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1939)와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1941)까지 ‘동방학’과 ‘대동아공영권’ 이데올로기 개발에 앞장선 기관의 실체를 파헤친 연구서이다. 각각의 기관이 세워진 과정을 통해 일본제국의 주도하에 학자들이 대외 침략을 위한 논리 개발에 열중한 사실을 살폈다. 특히 각 기관의 인력이 「교육칙어」(1899)를 교육받은 세대로부터 시작해 ‘쇼와 유신’ 세대까지 이어졌음을 각 기관의 주요 인물 사례를 통해 새롭게 드러냈으며, 잘못된 역사연구가 제국 일본의 여섯 차례나 되는 대외 침략전쟁에 끼친 영향을 실체적으로 밝혔다. 저자는 오늘의 일본 역사학계가 제국시대 역사학의 잘못을 직시하여 성찰적인 역사연구를 통해 지금이라도 일본의 역사교육이 패권주의 인식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판사 서평

일본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에서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와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까지
‘대동아공영권’ 논리 개발에 앞장선 기관의 실체를 밝힌다!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여덟째 권으로, 일본의 ‘동양’ 재패 이데올로기 생산의 주요 조직 중에서도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과 도쿄, 교토 양 제국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와 인문과학연구소의 역할에 주목한 연구서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첫 번째 권인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에서 메이지 시기 ‘동양사’가 개발된 정황을 살피고 그것이 쇼와 시대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를 통해 천황제 초국가주의 곧 황도 파시즘으로 가는 과정을 고찰하였는데,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은 그 후편이라 하겠다.
대외 팽창 의지가 강한 쇼와는 제국의 번영을 위해 선대의 역사를 찬양하는 역사교육을 받은 새로운 유형의 천황이었다. 쇼와 시대의 청년 장교나 병사들 역시 전 세계를 천황의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역사 교과서의 가르침을 굳게 믿고 천황에 충성하는 군인이었다. ‘침묵의 천황’으로 알려진 메이지와 달리 쇼와는 직접 출격을 명하는 칙유를 반포함으로써 스스로 전쟁 총사령관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쇼와 시대에 동방문화학원은 외무성 관리 아래 1929년 출범했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의화단 사건(1900)의 배상금과 「21개조 요구」(1915)의 권익 기금을 토대로 만들어진 동방문화학원은 ‘순수한 학술적 연구’를 주장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만주국의 건국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였으며, 기관 잡지 『동방학보』를 간행하여 메이지 시대 시작한 ‘동양학’에 ‘동방학’이란 이름을 추가하였다. 동방문화학원 도쿄연구소와 교토연구소의 주요 인력은 모두 도쿄제국대학과 교토제국대학의 교수들이었으며, 이들은 일본제국이 중국 본토까지 지배하는 당위성을 개발하는 데 열중했다.
1930년대 말 동방문화학원의 지도자들이 노년에 접어들고 기금 또한 대외 침략정책의 중추 기구인 흥아원과 대동아성으로 넘어가면서 재정난에 빠지자, 당시 군부 황도파의 중심인물로 문부성 대신이 된 아라키 사다오는 도쿄, 교토 두 제국대학에 새로운 ‘동아학’ 개발에 나설 것을 종용했고, 그 결과 1939년 교토제대에 인문과학연구소가, 1941년 도쿄제대에 동양문화연구소가 각각 세워졌다. 두 연구소는 쇼와 천황이 자주 사용한 ‘동아’와 ‘대동아’ 단어에 맞추어 ‘동아학’과 ‘대동아학’을 개발하였다.
이 책은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에서부터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와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까지 각각의 기관이 세워진 과정을 통해 일본제국의 주도하에 학자들이 대외 침략을 위한 논리 개발에 열중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 기구들의 인력이 「교육칙어」 반포와 ‘쇼와 유신’의 발흥이란 시대 여건에서 가지는 특성을 고찰하면서 제국 일본이 전쟁을 일삼는 나라가 된 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 관계를 파헤쳤다. 저자는 일본의 역사학계가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잘못된 역사교육을 바로잡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21세기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공존체제 확립에 이바지하기를 촉구한다.

‘동방학’에서 ‘대동아학’까지
일본제국의 침략정책을 정당화한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이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에서는 중국과의 문화사업에 외무성이 나선 사연을 세밀하게 들려준다.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의 배상금이 지급되는 1923년경 일본 정부는 미국이 배상금을 운용한 방식을 차용해 학술, 교육, 문화 분야에서 중국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을 내세웠는데, 이렇게 구상된 ‘대지(對支)문화사업’은 중국이 ‘지나’라는 비칭에 반발함으로써 ‘동방문화사업’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 타협이 이루어진 시점에 다나카 기이치 내각이 산둥 출병을 단행하는 바람에 양국의 공조 방식은 깨어지고 결국 1929년 일본 단독으로 ‘동방문화학원’이 창설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메이지 시대에 등장한 ‘동양학’에 ‘동방학’이란 이름이 추가되었다.
제2부에서는 1932년 만주국 건국 이후 ‘대만(對滿)문화사업’의 기획 과정과 ‘일만(日滿)문화협회’가 결성된 과정, 화북 분리를 위한 조사 활동에 만철과 협력한 내용 등을 들려준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외무성의 ‘대지문화사업’의 관리체계의 변화 과정을 통해 동방문화학원의 ‘동방학’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알려준다.
제3부에서는 1930년대 후반 대동아전쟁으로 인해 동방문화학원의 재원이 흥아원과 대동아성으로 옮겨가고 주요 지도자들 또한 노년에 접어들면서 동방문화학원이 서서히 기울어가는 과정과, 문부성이 지원한 도쿄제국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와 교토제국대학의 인문과학연구소가 각각 1941년과 1939년에 창설된 경위를 밝힌다. 저자는 이들 연구소의 새로운 출발은 단순한 선수 교체 현상일 뿐이라고 말하며, 대동아전쟁 시기에 세워진 제국대학 연구소들이 ‘대동아학’과 ‘대동아공영권’의 주요 이데올로기 개발에 열중한 과정을 들려준다.
제4부에서는 각 기관의 인력에 대한 분석을 주요하게 다루었다. 동방문화학원의 주요 재원은 「교육칙어」를 교육받은 세대로, 저자는 침략주의 ‘동방학’의 표본 인물인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세키노 다다시의 사례를 들려준다. 더불어 제국의 관학에 등 돌린 또 다른 학자 도리이 류조 사례를 통해 「교육칙어」 세대의 다양한 학문 세계를 일별할 수 있게 하였다. 동방문화학원의 도쿄연구소와 교토연구소의 주요 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이 책의 부록으로 자세히 소개하였다. 또 저자는 양 제국대학 연구소의 주요 인력의 교육 시기를 추산해 이들이 ‘쇼와유신’ 세대임을 밝혀냈다. ‘쇼와유신’ 세대란 1920년대 말, 1930년대 초 쇼와 천황의 직접 정치를 주장한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가 일어나던 시기 중등 교육과 대학교육을 받은 세대로, 대개 1900년대 출생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저자는 이들이 교육받은 역사 교과서 등을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어떠한 교육을 받았는가와 ‘동아학’과의 상관관계를 새롭게 밝혀내고 있다.

목차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를 출간하면서
책머리에

프롤로그 현대 일본 역사학의 새로운 출발을 바라며

제1부 외무성 관리 ‘동방학’의 등장

1장 중국과의 문화사업, 외무성이 나선 사연
1. 1920년대 국제연맹 출범과 일본제국의 국제협조 외교
2. 1920년대 ‘국제협조 외교’의 부침
3. 국제연맹 ‘5대국’ 체제의 행운과 「21개조 요구」 강행
4. 대륙 침략 구상, ‘대지문화사업’ 추진
1) 재원 ①: 의화단 사건 배상금
2) 재원 ②: 「21개조 요구」 이권
3) 대지·대만 문화사업의 침략주의

2장 ‘대지문화사업’의 중일 협동 노선 좌절
1. 중일 협동의 사업 구상
2. ‘동방문화사업’으로 명칭 확정
3. 다나카 기이치 내각의 침략주의

3장 1927~1928년 중일 무력 충돌: 북벌 개시와 산둥 출병
1. 남만주철도 경영을 둘러싼 중일 간의 갈등
2. 장제스 국민군의 북벌 개시
3. 일본 정부의 산둥 출병 결정과 지난 사건
1) 제1차 산둥 출병과 동방회의
2) 제2, 3차 산둥 출병과 지난 사건
4. 일본 관동군의 야망과 장쭤린 폭살 사건
1) 관동군의 활동 범위 확대 도모: 만철부속지 바깥으로 나가기
2) 장쭤린 폭살 사건과 그 영향

4장 1929년 일본 ‘단독’ 사업 결정과 동방문화학원 창설
1. 동방문화학원 도쿄연구소 창설 경위
2. 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 창설 경위

제2부 만주국 건국 후의 ‘동방학’ 변화

5장 1932년 만주국 건국과 대만·북지 문화사업
1. 만주국 건국과 ‘대만문화사업’
1) 1931~1932년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국
2) 군부 폭주 정국 속의 ‘대만문화사업’ 기획
3) ‘대만문화사업’ 방안 수립
4) 1933년 현재 문화사업 실행 상황
5) ‘일만문화협회’ 결성
6) 만주국 황제의 일본 내방과 ‘일만문화’ 특별 학술행사
2. 화북분리정책과 ‘북지 신사업’
1) 화북 분리를 위한 조사활동: 만철경제조사회의 협력
2) 화북분리정책 모색과 ‘북지 신사업’ 수립

6장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외무성 ‘대지문화사업’ 관리체제 변화
1. 중일전쟁 개시와 국가 통제체제 강화
1) 중국의 내분, 국공합작의 추이와 시안 사건
2) 루거우차오 사건과 중일전쟁 발발
3) ‘국체명징운동’과 국가주의 통제체제의 질주
2. 중일전쟁 이후 ‘대지문화사업’의 변화
1) ‘제2의 만주국’을 노린 화북분리정책, 대화 문화공작
2) 1938년 동방문화학원 도쿄·교토 연구소의 분리

제3부 ‘대동아전쟁’과 ‘동아학’ ·‘대동아학’

7장 ‘대동아전쟁’과 흥아원·대동아성
1. 중일전쟁, 대동아전쟁과 군국주의 체제 강화
2. 흥아원의 ‘동방문화사업’ 관장, 점령지 통치 실용주의
3. 대동아성 발족과 ‘동방문화사업’의 실종

8장 도 교·교토 제국대학의 문부성 지원 ‘동아·’‘대동아’ 연구
1. 중일전쟁 시기 양국 화평파 동향과 ‘동아 신질서’
2. 교토제국대학의 인문과학연구소 창설 경위와 연구 목표
1) 1939년 인문과학연구소 창설 경위
2) 인문과학연구소의 연구 목표 ‘동아 신질서’
3) 교토 동방문화연구소의 말로
3. 도쿄제국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 창설과 연구 과제
1) 1941년 동양문화연구소 창설 경위
2) 동양문화연구소의 확대 ‘동양’ 연구

제4부 연구 인력의 연구 성향 분석: 「교육칙어」에서 ‘쇼와유신’까지

9장 동방문화학원과 「교육칙어」 세대
1. 1880년대 국가주의 역사교육 체제와 「교육칙어」
2. 동방문화학원과 제국대학 출신 제1세대
3. 도쿄연구소 평의원 인력의 주요 행적
4. 교토연구소 평의원 인력의 주요 행적

10장 동방문화학원과 「교육칙어」 세대의 학문 세계
1. 침략주의 ‘동방학’의 표본 인물 사례
1) 한국사 유린의 선봉 시라토리 구라키치
(1) 가쿠슈인의 침략주의 역사교육 체제
(2)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한국사 ‘유린’
2) 세키노 다다시의 조선반도 유적 조사 의혹
2. 제국 관학에 등 돌린 도리이 류조
1) 일본의 뿌리를 찾아 타이완에서 쿠릴열도까지
2) 다이쇼 데모크라시 속 지자체 지원 유적 조사 발굴
3) 주변 나라와 공존하는 일본인, 일본 문화의 추구
4) 제국 ‘관학’의 중심 도쿄제국대학 사임
5) 다시 해외로 향한 학구열, 요대 문화 연구 몰두

11장 ‘쇼와유신’ 세대와 어용 ‘동아학’
1. ‘쇼와유신’과 황도주의
1)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와 ‘쇼와유신’ 외침
2) 쇼와 천황의 ‘직접 정치’와 정당정치 충돌
3)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의 황도주의 제창
2. 쇼와 시대의 전쟁과 어용 ‘동아학’
1) 교토·도쿄 양 제국대학의 ‘동아학’
2) 쇼와 천황 조칙의 ‘동아’
3) ‘쇼와유신’ 세대의 침략주의 황도 역사교육
(1) 인문과학·동양문화 연구소 인력의 세대 조건
(2) ‘쇼와유신’ 세대의 중등 역사교육
(3) 군사학교의 세계 제패 역사교육

에필로그 천황제 파시즘의 행로와 함께한 도쿄·교토 제국대학의 동방학

부록 동방문화학원 도쿄·교토 연구소 주요 인력 정보 모음
부록 1-1. 동방문화학원 도쿄연구소 평의원 이력 및 업적
부록 1-2. 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 평의원 이력 및 업적
부록 2-1. 동방문화학원 도쿄연구소 평의원 인력 분석
부록 2-2. 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 평의원 인력 분석

본문의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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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동방문화학원은 1920년대 의화단 사건의 배상금과 「21개조 요구」의 권익금을 근거로 출범하여 외무성 소관이 되었다. 당초에 일본 외무성은 ‘대지(對支)문화사업’으로 이름을 붙였으나 중국 측이 ‘지나(支那)’란 비칭에 반발하여 ‘동방문화사업’으로 바꾸었다. 이 타협이 이루어진 시점에 산둥 출병이 단행되는 바람에 중국 측이 불참을 선언하여 양국 공조 방식은 깨어지고 이름만 동방문화학원으로 남았다. 동방문화학원이란 이름은 침략주의 본색을 감추는 데도 편한 점이 있었다. 어떻든 이러한 침략주의 관부 연구기관을 빼놓고 일본제국의 역사학 또는 동양학을 말할 수는 없다. - 23쪽, 「프롤로그」 중에서

일본의 대외 팽창정책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요시다 쇼인의 ‘주변국 선점론’에 뿌리를 두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근거로 「21개조 요구」를 창출하여 산둥반도, 남만주, 동부 내몽골 진출의 기회를 노렸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쳐 남만주 일대에 교두보를 구축한 일본제국은 10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을 맞아 연합국의 목표와는 무관하게 대일본제국의 숙원을 달성하는 길을 걸었다. - 65쪽, 「1장 중국과의 문화사업, 외무성이 나선 사연」 중에서

일본 외무성은 도쿄와 교토의 연구소에 새로운 연구 방침을 제시하면서 두 연구소와 관계가 깊은 도쿄, 교토 두 제국대학에 종래의 연구를 이관할 수 있을지 타진하였다. 이에 대해 두 연구소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중략) 외무성은 이런 서로 다른 반응에 1원 2연구소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두 연구소의 분리·독립을 결정하여 1938년 그때까지의 동방문화학원은 해체되어 도쿄연구소는 ‘(신)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는 ‘동방문화연구소’로 개편되었다. - 152쪽, 「6장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외무성 ‘대지문화사업’ 관리체제 변화」 중에서

도조 히데키 내각은 1941년 10월 출범 후 12월에 증강된 해군력을 믿고 인도차이나 주둔 병력으로 말레이시아반도를 기습 공격하는 동시에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여 미국을 상대로 한 큰 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이 전쟁을 ‘태평양전쟁’이라고 지칭하는 반면, 일본제국은 ‘대동아전쟁’이란 이름을 고수하였다.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양’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그 ‘동양’이 이제 동남아시아로 ‘남진’하는 동시에 태평양으로 나아가면서 ‘대동아’로 바뀌었다. (중략) 도조 히데키 내각은 출범 직후인 11월부터 전선의 확대에 부응하는 비상 정부 운영기구로 흥아원보다 더 큰 규모의 대동아성을 발족했다. - 159~160, 163쪽, 「7장 ‘대동아전쟁’과 흥아원·대동아성」 중에서

「교육칙어」는 메이지 천황의 뜻에 따라 유교의 삼강 곧 충효 사상을 교육에 실현하는 것으로 서두를 시작하여 황조황종(皇祖皇宗)이 열어준 신성한 천황의 나라를 지키는 신민의 도리를 교육을 통해 실현하는 것을 요체로 삼았다. (중략) 문부대신 요시카와는 등본의 머리에 서(敍)를 붙여 나라를 우육(牛肉)에, 천황의 「교육칙어」를 소금에 비유하였다. 즉, 「교육칙어」는 정신적으로 나라가 썩지 않도록 하는 소금이라고 하였다. - 198~199쪽, 「9장 동방문화학원과 「교육칙어」 세대」 중에서

1926년 하마다 고사쿠는 도쿄제대의 하라다 요시토, 시마무라 고자부로 등과 함께 외무성의 지원을 받아 동아고고학회를 조직하였다. 또 중국 학자들과 제휴하여 동방고고학협회를 설립하여 만몽 일대의 조사에 임하였다. 조선총독부 지원으로 진행되던 경주 금관총을 비롯한 한반도 내의 발굴조사에도 참여하였다. (중략) 제국 일본의 대륙 진출정책과 관련된 발굴 성과에 대한 평가는 비판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일본제국의 고고학은 제국의 새로운 세력권으로 상정한 지역에 대한 현지 조사의 필요성에서 출발하였다. 이 점을 도외시한 평가는 근원을 외면하는 것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232쪽, 「9장 동방문화학원과 「교육칙어」 세대」 중에서

제국 일본의 ‘잘못된’ 역사교육은 무려 반세기 이상 동아시아에 여섯 차례나 큰 전쟁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참극의 역사가 잘못된 역사교육에서 비롯한다면 일본 역사학계는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마땅하다. 피해국의 역사학도 그 실체 파악에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지난 세기의 참혹한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바른 규명 없이 21세기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공존체제를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한중일 3국 역사학계의 반성과 협력관계가 절실한 상황이다. - 348쪽,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소개

이태진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431014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의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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