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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재능은 왜 죄가 되었나 : 칼로에서 멘디에타까지, 라틴아메리카 여성 예술가 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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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유화열
  • 출판사 : 미술문화
  • 발행 : 2022년 02월 10일
  • 쪽수 : 352
  • ISBN : 979118595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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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치열하게 사랑하고 후회 없이 예술에 투신한
라틴아메리카 여성 예술가 8인,
그들이 피워낸 저항과 사랑의 초상

“대항해 시대, 스페인, 포르투갈 등 강력한 가톨릭 국가들의 약탈사가 땅 깊숙이 한으로
뿌리 내린 라틴아메리카는 원주민들로부터 전래된 토착문화와 기독교 서구문명이 뒤섞인,
그야말로 혼종의 문화지대로 유럽과 미국 중심의 미술사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독특한 미술세계를 형성한다.

한편, 라틴아메리카는 ‘마초이즘’, 즉 ‘남성 중심’의 세계관이 강력하다.
스페인어 ‘마초macho’는 ‘남성성을 과장되게 강조하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형용사이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의 여성 미술가들은 존재 자체가 이미 가부장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그녀들에게 부여된 미술이라는 재능은 곧 신의 선물이자, 천형이기도 했다.

재능이 죄인 8명의 여성 미술가들이 라틴아메리카라는 토양에 뿌리를 박고,
꽃으로 잎으로 표현해낸 자기 앞의 생을 유화열 작가의 시선으로 좇다보면,
발칙하고 기발한 그녀들과 어느새 공범이 되고 싶은 묘한 충동이 인다.
작가의 꼼꼼한 자료연구와 편안한 문장에 독자는 8번의 생을 경험한다.”

_『1페이지 미술 365』 저자 김영숙

출판사 서평

혁명과 저항의 땅, 라틴아메리카를 살고 그린
8인의 여성 예술가들
그들이 남긴 뜨거운 흔적을 되살리다

예술이 곧 삶, 삶이 곧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라틴아메리카 여성 예술가’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프리다 칼로 역시 육체의 고통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예술을 피워냈고, 그녀의 치열했던 삶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위로와 영감이 되어준다. 프리다는 사랑에 헌신했고 그림에 의지했고 혁명에 투신했다. 이러한 양상은 비단 프리다의 삶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다. 『여자의 재능은 왜 죄가 되었나』의 배경이 되는 멕시코, 쿠바, 브라질은 모두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며 지난한 근현대사를 지나왔다. 그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도 정치적 혁명의 파도를 비껴갈 수 없었다. 특히 사회적으로 여성을 향한 차별과 억압이 만연했기에 여성 예술가들은 이중 삼중의 관문을 거쳐야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칼로와 절친했던 멕시코 사진작가 티나 모도티는 사회적 약자들의 가난과 노동을 사실적이고도 아름답게 담아냈지만, 그러기까지 연인과 고향, 이름을 잃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보냈다. 오늘날 브라질 미술계의 거장이 된 아니타 말파티 역시 대중의 인정을 받기 전에는 ‘젊고 도전적인 유학파 여성’에 가해지는 일종의 질시와 편견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고 한동안 붓을 잡지 못했다.

이들은 고꾸라지고 일어나기를 거듭한 끝에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저마다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쳤지만 공통점도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강렬하고 화사한 원색으로 고국의 문화를 예술에 담았다는 것이다. 여럿의 작품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서 감상할 때 그 강렬함이 배가된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인간의 본성에 집중하고 이를 자유롭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사랑, 후회, 절망, 외로움, 공포, 그리움… 예술가들은 그림이나 조각, 퍼포먼스를 통해 당시의 감정을 토해냈다. 마지막으로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열적인 태도가 작품에도 묻어난다는 것이다. 토속신앙과 신화, 각종 제의, 그리고 정치적 격동의 잔해가 라틴아메리카 예술가들에 의해 중요한 문화사적 기록으로 승화되었다. 멕시코 전통 의상인 ‘테우아나’와 출산을 관장하는 여신 ‘트라졸테오틀’(프리다 칼로), 브라질 전설로 내려오는 마녀 ‘쿠카’(타르실라 두 아마랄), 19세기 쿠바 콜로니얼 건축에 남은 ‘바로크풍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아멜리아 펠라에스), 동물의 피로 신을 숭배하는 쿠바 ‘산테리아 의식’(아나 멘디에타) 등이 그 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중남미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까지 접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라틴아메리카’의 ‘여성’ 예술가를 되돌아보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들의 작품 하나하나를 눈으로 훑으며 누군가의 그림에 담긴 울분과 회한을, 또 누군가의 사진에 담긴 반항과 도발을 단편적으로 느껴보는 것도 분명 즐거운 감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재능은 왜 죄가 되었나』의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들의 작품과 삶을 한데 엮는다. 한 작품이 탄생하고 무르익기까지 그녀들을 스쳐갔던 현실적인 고민, 가족·친구·연인 사이의 사랑과 이별, 정치와 예술 사이에서 갈피를 잃었을 때의 혼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경험을 예술로 승화하는 용기…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서 다시 그들의 작품을 들여다보자. 이전에는 희미했던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 캔버스 너머에서 형형히 빛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라틴아메리카 여성 예술가 8인을 각각 ‘투쟁’ ‘치유’ ‘혼종’이라는 키워드로 묶었으며, 각 서문에 저마다의 삶과 예술이 왜 특정 키워드와 연결되는지를 소개한다.

# “내 그림은 부당함에 맞선 나홀로 혁명이다.”

1부에서는 ‘투쟁’으로 묶인 예술가 2인을 만난다. 이들은 삶의 역경을 예술로 극복했으며 또 어떨 때는 삶은 수단 삼아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멕시코 화가 마리아 이스키에르도는 당대 관습에 따라 어머니이자 아내로 살았지만 미술을 향한 갈망을 좇아 과감히 이혼하고 화가가 되었다. 멕시코 현대미술사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가진 여성 미술가였던 그녀는 당시 멕시코 최고의 스타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그 외 벽화가들의 견제를 한 몸에 받았고, 급기야는 이미 작업을 시작한 벽화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매사에 당당했던 마리아는 여성의 나체를 에로티시즘의 결정체로 묘사하기에 바빴던 남성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달리 저항의 수단으로서 여성의 몸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멕시코 사진작가 티나 모도티는 “로맨틱하고 혁명적인” 작가였다. 1920년대, 예술과 혁명 사이에서 아무도 걸어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개척했으며 자기 삶의 주체자로 살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작품보다는 남성들과의 연인 관계로만 곧잘 언급되었고, 언론 역시 그녀를 가십거리로 소비하기에 바빴다. 멕시코 혁명에 헌신했던 티나는 결국 정치적 표적이 되어 독일과 러시아 등지를 떠돌며 여전히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 “여성의 몸은 익명의 오브제가 아니다.”

2부는 ‘치유’의 예술가 3인이 수록됐다. 이들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예술로써 치유했다.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고통에서 시작됐다. 남자 옷을 즐겨 입는 털털한 소녀였던 프리다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뒤 평생 37번의 수술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사고 직후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떠날까 봐 자신을 비너스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을 그려 그에게 선물했는데, 이 그림이 프리다의 첫 자화상이었다.
쿠바에서 태어난 아나 멘디에타는 자연과 대모신, 제의, 정체성을 탐구한 퍼포먼스 예술가였다. 쿠바 혁명기에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와 생이별한 채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어려서부터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그 결과로 그녀는 ‘대지 위에 누운 여성의 몸’이라는 형상을 발견했다. 대지와 합치되는 제의를 통해 분열된 자아가 고향땅으로 돌아가고, 정체성이 회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나의 예술은 ‘자서전적인 여성주의’, ‘대지미술과 여성주의의 혼합’이라는 갈래로 구분된다.
브라질의 ‘미술치유’ 예술가 리지아 클라크는 세 차례에 걸친 자신의 출산 경험에 천착하여 그때의 ‘충만함’과 ‘분출’을 예술로 승화했다. “셋째 아이를 출산한 뒤에 나는 위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예술을 시작했다.”(본문) 또한 반골 성향이 강해 30년 넘도록 어느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그녀는 기존 미술관 제도에 반기를 들어 창작의 주체를 예술가에서 관객으로 이동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 “새로운 것은 겁나지 않는다. 아주 신나는 일이니까.”

3부는 ‘혼종’으로 묶인 3인의 예술가가 수록됐다. 이들은 오래된 전통과 혁신적인 기법을 뒤섞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의 과정에서 전혀 다른 예술세계를 창조해냈다.
쿠바의 조형미술 화가 아멜리아 펠라에스는 쿠바 전통(열대풍 바로크, 모자이크 등)과 유럽의 모더니즘(입체파, 추상화)을 절묘하게 연결했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이 독특한 양식을 확립하기 위해 지독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결혼 안 한 여성을 유별나게 생각했던 당시 사회에서 평생 미혼으로 살았던 아멜리아는 자신을 향한 편견과 무례한 추측에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그림만 그리며 살아갔다.
브라질 화가 아니타 말파티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학하며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분출하는 표현주의 양식을 섭렵했다. 그리고 브라질 문화를 강렬한 표현주의 양식에 녹여 해외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유학 후 고국으로 돌아와 연 전시회에서 한 비평가의 인격모독적인 혹평을 받았다. 특히 한 여성이 눈을 치켜뜨고 있는 모습을 그린 〈바보〉가 주 타깃이었다. “보수적인 브라질 비평가들에게는 그런 눈빛이 불편함을 넘어 불쾌했다. 상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과 불만을 드러낸 얼굴은 당시 사회가 추구했던 ‘상냥한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본문) 스스로 방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아니타는 고국 브라질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위해 전통회화로 돌아서야 했다.
브라질 화가 타르실라 두 아마랄은 ‘브라질인으로서의 자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그러면서도 파리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활발히 교류하며 모더니즘 양식을 흡수했다. 특히 브라질의 문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 ‘식인주의’가 바로 타르실라의 유명한 그림 〈아바포루〉에서 탄생했다. 식인주의란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자기 마음대로 얼마든지 변형시켜 재창조하는 것”을 말하는데, 브라질 고유의 문화와 파리 아방가르드를 자유자재로 섞어 독특한 예술양식을 창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그린
8인의 이름을 부를 순간

익명의 오브제에서 저항의 아이콘이 된 라틴아메리카 여성 예술가에 대해 안다는 것은,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곧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발굴하고 창조했던 그때 그들의 진심에 함께 공감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예술에서 오늘날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한다면,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에서 길을 개척하고 있는 이들에게 위안과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목차

1부. 투쟁
①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 부당함에 맞선 예술
나로서 깨어나기 | 멕시코인으로서 자각하기 | 여성으로서 우뚝 서기 |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여성의 삶 | 멕시코의 본질

② 티나 모도티 - 예술로 혁명을 꿈꾸다
이주와 변화 | 찍히는 사람에서 찍는 사람으로 | 사회적 리얼리즘 | 예술과 혁명의 교집합

2부. 치유
③ 프리다 칼로 - 고통을 직시하는 눈
자화상의 시작 | 나는 꿈을 그린 적 없다 | 숨겨진 멘토 | 고통과 분노의 초상, 엑스 보토스 | 새로운 지형도

④ 아나 멘디에타 - 대지에 깃든 피투성이 여성의 몸
유년의 두 갈래 | 뿌리 찾기 | 오해 받은 예술 | 흙 위에 새긴 기도

⑤ 리지아 클라크 - 임신과 출산, 예술이 되다
여성이라서, 여성으로서 | 어긋남의 미학 | 살아 움직이는 예술 | 미술이 지닌 치유의 힘

3부. 혼종
⑥ 아멜리아 펠라에스 - 히비스커스 꽃으로 되살아난 입체주의
쿠바다운 것 | 모더니즘 | 국경을 허문 열대의 꽃 | 베일에 싸인 삶

⑦ 아니타 말파티 - 존재마저 부정당한 브라질의 모더니스트
색의 발견 | 베를린과 뉴욕의 표현주의 | 스캔들의 중심에 서다 | 전통으로의 회귀

⑧ 타르실라 두 아마랄 - 길게 늘어진 가슴, 뒤틀린 팔다리
이중의 정체성 | 브라질에 이식한 입체주의 | 파우 브라질 | 식인주의 미술의 창시자 | 노동자의 얼굴들

본문중에서

다행히 그즈음 프리다 칼로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두터운 매니아층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프리다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프리다 덕분에 멕시코 미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설명하기 수월했다. 프리다를 징검다리 삼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멕시코 미술’이라는, 우리에게 다소 먼 곳에 다가갈 수 있었다. (…) 그때만 해도 프리다의 뜨거운 인기가 차츰 다른 작가로도 옮겨붙으면서 멕시코 미술이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것은 나의 기대이자 착각일 뿐이었다. 프리다를 향한 관심은 그 부분만 종이로 오려낸 듯 그녀에게 국한됐다. 그러면서 프리다의 스캔들, 사적인 삶이 지나칠 만큼 낱낱이 파헤쳐져서 자극적으로 소비되었고,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예술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보따리는 여전히 풀리지 못한 채 여전히 먼 곳으로 남아버린 부작용이 있었다. ‘프리다 말고도’ 너무 훌륭한 여성 예술가가 많은데, 왜 좀처럼 알려고 하지 않는 걸까? 그렇게 한동안 ‘프리다 말고도’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_8쪽

마리아가 그린 여자는 어딘지 심상치 않다. 특히 1930년대에 그린 여자는 비를 쫄딱 맞아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한 마리 새처럼 비참하기 짝이 없다. 그림 속 여성들은 벌거벗겨진 채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거나, 밧줄로 기둥에 묶여 있거나, 감옥에서 나가려고 버둥거린다. 이 처절한 몸짓들에서 여성이 처한 불합리한 환경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대다수의 화가들은 언제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따뜻한 어머니,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여교사의 이미지로만 여성을 그렸다. 하지만 마리아는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없어 보이는 폐허에 여성을 내던지듯 배치했다. _36쪽

아나는 한동안 강간 사건에 사로잡혔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모든 장소가 사건 현장처럼 느껴졌고, 그때마다 피투성이로 얼룩진 여성의 몸이 그녀 앞에 현시되었다. 캠퍼스 숲속에서 선보인 또 다른 〈강간 현장〉 퍼포먼스에서는 강압적인 힘에 짓눌린 여성의 나체가 나뭇잎과 잔가지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아나는 피해 여성이 겪었을 무지막지한 참혹함을 자신의 몸으로 옮기고자 했다. 이 같은 직접적인 동일시는 여성의 몸이 익명의 오브제로 해석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모두들 쉬쉬하며 덮어버리려던 강간 범죄의 심각성이 피해자 한 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외쳤다. 강간을 익명의 사건으로 여기고 침묵을 강요하는 잘못된 관습을 깨뜨리는 것이 퍼포먼스의 의도였다. _182쪽

권위에 저항할 때 누군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덤비지 말라고 하고, 누군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며 계속 해보라고 말한다. 리지아식 저항은 ‘미술관 속 어떤 작품도 관객이 품는 의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라고 기존 관습에 제동을 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예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각에 의해 체험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이제껏 전례가 없었던 심리ㆍ신체적 방식으로 관객을 작품에 끌어들여 감각을 경험케 했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물론 이 모든 도전은 그녀의 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녀의 삶과 예술은 결국 세상이 지금껏 당연하다고 주입시킨 고정관념에 맞서는 반항이었다. _238쪽

1917년에 아니타는 그녀의 아픈 오른손처럼 완벽하게 고립된 상태였다. 시대 역시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이때는 브라질 미술에서 민족성을 강조한 보수적인 시각이 만연했던 때로, 아니타의 표현주의 회화는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것이었다. 아직은 세기말 낭만주의 양식에 취해 있던 브라질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모더니즘 회화는 찬물을 끼얹는 행위처럼 무례했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심각해진 또 다른 요인은 아니타가 28살의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에 있다. 1917년 브라질에서 젊은 여성이 단독으로 개인전을 개최한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사회 풍토에서는 용납하기 힘들었던 데다, 서구에서 들여온 ‘해괴망측한’ 회화를 대면하자 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편협한 주장을 내세우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_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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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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