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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큰글자도서) : 강화길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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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데이트 폭력에서부터 뉴페미니즘의 의미 소환까지
논쟁을 몰고 올 작품” _심사평 중에서
*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강화길 첫 장편소설,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다른 사람》 개정판 출간!

데이트 폭력, 여성 혐오 범죄, 성폭력, 강간 등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폭력의 형태를 날카롭고 집요하게 추적해온 강화길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다른 사람》이 개정판으로 다시 찾아온다. 2017년 출간 이후 “우리 이야기, 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라는, 독자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아온 《다른 사람》은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도 그 의미가 건재한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작이다. 단순 폭력을 넘어,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한 오늘날 사회 시스템 속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소설 《다른 사람》은 언제나 그들 손에 들린 ‘최신형’ 무기가 된다.

1996년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장강명의 《표백》,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 등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중 《다른 사람》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와 함께 최근 급부상하는 영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는 점”과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과 사건에 대한 집중력 있는 묘사를 유지하면서, 주제를 향해 흔들림 없이 과감하게 직구를 던진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263 대 1이라는 경쟁을 뚫고 제22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됐다.

출판사 서평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상처받지 않고 겁먹지 않는 사람
당신은 ‘다른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은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는 남녀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폭력(정신적인 부분 포함)을 ‘나는 그 사람들과 다르다’며 외면하는 공감의 단절을 의미한다. 《82년생 김지영》 이후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완전히 새로운 페미니즘 소설이며, 어쩌면 이삼십 대 세대의 첫 페미니즘 소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 대부분은 그 수위가 다를 뿐 성에 관한 다양한 폭력의 경험을 가졌다. 주제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냐는 물음에 작가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문학을 위한 설정이 아닌, 우리가 외면해온 주변의 흔한 상황일 뿐이라고. 소설은 ‘유리’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기억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부조리와 공포, 불안이자 여성끼리 주고받아야만 했던 외면과 상처이다. 늘 그렇듯이 여성으로서의 생존 서사에서 누구는 이겨내고, 누구는 좌절하며, 누구는 죽고 만다. 소설의 끝에서 작가가 호명하는 ‘너’라는 단어는 우리가 잊었다고 믿고, 잊기 위해 애썼지만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어떤 기억이자 진실 앞에 우리를 서게 한다.

이렇듯 무거운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의외로 담담하게 진행되는데 이는 작가의 문체와 관련이 있다. 심사를 맡았던 정여울 작가는 이를 두고 “나는 강화길의 직접적이고 원시적인 문체가 좋다. 이리저리 세련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전 이게 정말 싫어요’라고 외칠 줄 아는 담력과 뚝심이 좋다”고 평하기도 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역시 “진정으로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글에서 힘을 빼야 한다”며, “소설 《다른 사람》은 바로 그 점을 증명한다”고 평했다.

“페미니즘의 최신형 무기”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다

주인공 진아는 같은 회사 상사이기도 한 남자친구로부터 몇 차례 폭행을 당한다. 견디다 못해 고소했고, 재판 끝에 가해자는 겨우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는다. 이후에도 협박이 계속되자 진아는 그 이야기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공론화했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진아 편을 들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직장 동료인 김미영이 진아가 남자친구를 이용한 거라며 사내게시판에서 오간 말들을 올리자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돼 어느새 진아는 “맞아도 싼 년”이 되어버렸다. 진아는 이후 몇 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 매일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다. 왜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는지, 자신이 왜 한심한 여자인지 알기 위해서.
어느 날, 진아는 평소처럼 댓글들을 살펴보다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이라는 글을 발견한다. 글을 쓴 아이디는 @qw1234.
이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짓말쟁이’, ‘진공청소기’ 이 단어들은 진아를 알지 못하면 떠올릴 수 없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 말은 잊고 지냈던 12년 전으로 진아를 소환한다. 죽은 친구 유리에 대한 기억과 함께.

진아가 트위터에 글을 올린 당사자를 찾아 고향 안진으로 내려가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진아는 안진에 있는 대학교에서 1, 2학년을 보냈다. 12년 전 그곳에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들인 수진, 유리, 동희, 현규가 있다. 진아와 어린 시절을 함께해 서로의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수진, 모든 남자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가진 유리, 안진 유지의 아들로 모든 걸 갖춘 현규,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권력 앞에 조아릴 줄 아는 동희. 소설은 이들 네 명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며 씨줄 날줄로 엮여나간다. 각 장마다 달라지는 화자를 쫓아가며 퍼즐 맞추듯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가게 된다.
진아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유리를 애써 모른 척하고 도와달라는 마지막 요청까지 외면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안진을 떠난다. 그로부터 며칠 후 유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안진에 내려가 글을 올린 당사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진아는 뜻밖에 유리와 수진, 그리고 자신에 얽힌 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 주위의 모두가 유리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진아는 버리고 싶었던 과거를 되새기는 동안 현재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 상처받지 않고 겁먹지 않는 사람,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홀로 몸부림치는 것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도와달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손 내밀 때 마침내 이야기가 끝날 수 있음을 진아는 뒤늦게 깨닫는다.
평론가 정홍수는 이 소설이 불안하고 불온하여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이야기를 끝내야 할 사람은 ‘너’라는 불편한 호명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개시와 호명의 힘이 강렬한데, 분노 못지않게 지적인 통제가 섬세하게 작동한 결과라는 이유와 함께.

추천사

강영숙(소설가)
21세기에, 국가도 개인도 다들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며 근사한 포즈를 취하는 시기에 이 소설은 까발리고 추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유리, 진아, 수진 또 한국이라는 콘텍스트 안의 수많은 ‘괄호’ 속의 여성들이 외친다. “강간당하느니 차라리 강간하는 인간이 되고 말겠다”고. “그를 강간하고 싶었다”고. 텍스트를 뚫고 올라오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내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 여성들에게 평화주의자들은 뭐라고 말할 것인가. 논쟁을 몰고 올 작품이다.

김별아(소설가)
울지 않기 위해 웃던 때가 있다. 짓밟히지 않으려 발광했던 때가 있다. 존재를 빌미 삼아 당하는 일임에도 현실을 부정하며 버둥질했다. 그때 나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낙인의 이름, ‘미친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내 생각과 의지와 저지른 일보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지난 시간을 모두 분노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싸워야 할 때 제대로 싸우지 못한 기억은 종내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든다. 부디 삶의 후배들은, 생물학적 동일성을 넘어선 상처와 경험의 공유자들은 나와 다르기를 바란다. 당선작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는 그로부터 비롯된다.

서영인(문학평론가)
데이트 폭력, 온라인 댓글 테러, 학교 내 성폭력까지, 사적 체험 깊숙한 곳을 헤집는 사회적 폭력의 여러 형태들을 작가는 집요하게, 끝까지 추적해간다. 그 집요한 시선이 가닿는 지점이 ‘자기 이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소설은 성폭력 가해/피해의 내적 구조를 파헤치는 동시에 그러한 구조 내에서 상처 입고 위축되고 왜곡된 피해자의 심리를 객관화하면서 ‘자기 이해’의 길에 다다른다. ‘자기혐오’와 ‘피해의식’과 ‘자기방어’를 오가며 자기를 이해하려는 안간힘은 안타깝고도 감동적이다. 관계 속에서 구축되고 지속되는 폭력의 내상을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확인하면서 우리는 개별적 삶의 자존이 결코 단독적으로 완수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진아’를 비롯한 여성 인물들의 ‘자기 이해’가 ‘타자 이해’로 이어지는 광경,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사회적 폭력에 마주 서는 광경을 읽으면서 우리 문학의 ‘여성적 주체성’이 한층 더 명징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윤성희(소설가)
여기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해야 했던 여자들이 있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상처받지 않고, 겁먹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꿈은 얼마나 슬픈 꿈인가? 세상은 폭력에 무심하게 노출되어 있고 시스템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꿈인 것이다. 소설 속 여자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다른 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다. 이것은 가정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노력은 필요 없게 된다. 결국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여울(작가)
이 소설은 멀리서 조준하는 원격조정용 무기가 아니다. 아주 가까이서 우리의 무뎌져버린 마음을 향해 날카로운 직구를 던지는, 원시사회의 돌도끼 같은 소설이다. 드론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 같은 소설, 화살보다는 단도를 닮은 소설이다. 극도로 심각해지는 ‘여혐’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날이 자기 변신을 꾀하는 페미니즘의 최신형 무기, 이것이 《다른 사람》이다. 나는 강화길의 직접적이고 원시적인 문체가 좋다. 이리저리 세련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전 이게 정말 싫어요’라고 외칠 줄 아는 담력과 뚝심이 좋다.

정홍수(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행간에 가시가 일어서 있다. 불안하고 불온하다. 놓아버리면 쉽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읽는 이도 금방 알게 된다. 이야기를 끝내야 할 사람은 ‘너’다. 맞다. 이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그때 시작된다. ‘너’라는 불편한 호명과 함께. 그 개시와 호명의 힘이 강렬한데, 분노 못지않게 지적인 통제가 섬세하게 작동한 결과이리라.

주원규(소설가)
데이트 폭력에서부터 뉴페미니즘의 의미 소환까지. 가히 점입가경이다. 소설이 당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과 폭력에 대해 말해야 할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다른 사람》은 향후 가장 격렬하고 논쟁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창훈(소설가)
읽는 시간은 짧았고 등장인물들의 아픔, 그 상처가 외치는 발언이 내 마음속에 머문 시간은 길었다. ?이해한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함께.

황현산(문학평론가)
진정으로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글에서 힘을 빼야 한다. 그 심각한 이야기가 삶의 새로운 전망을 내다볼 때는 더욱 그렇다. 힘을 뺀다는 것은 긴 싸움을 각오한다는 것이며, 시간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이다. 소설 《다른 사람》은 바로 그 점을 증명한다.

목차

1부
진아
어른이 되어야지
진아
진공청소기
진아
검토

2부
동희
진아
수진
진아
수진
진아
강현
진아
수진
매리앤, 매리앤들

3부
그리고 이영에게
유리

작가의 말
추천의 글

본문중에서

지난여름, 그날처럼. 남자친구가 내 목을 졸랐다. 그렇다. 멍청한 이야기다. _12쪽

상담 의사는 내게 권했다.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할 것,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것, 집을 깨끗하게 치울 것, 운동을 할 것, 사람들과 대화를 할 것. 나는 그 의사에게 상담을 세 번 받고 그만뒀다. 의사가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설문 조사라며 어떤 종이를 나눠줬는데, 하나하나 체크할 때마다 고역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었다. 당신은 자주 외롭다고 느낍니까, 당신은 스스로가 별 볼 일 없다고 느낍니까, 당신은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심리 테스트도 그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마지막 줄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당신은 피해의식이 있습니까? _14~15쪽

나중에 내 이야기가 알려지고 나서, 누군가에게 실제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그럴 줄 몰랐다고, 그런 일을 당할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을 것처럼 보이는 여자란 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는, 내가 만났던 사람은, 만나는 여자를 때리며 죽여버리겠다고 속삭이던 이진섭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_17쪽

그가 나를 구겨진 옷더미처럼 대할 때마다 그 감정을 기억했다. 그는 나를 분명 사랑했다. 그는 단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또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전처럼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는 조금 피곤한 건지도 모른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탓에 조금 우울해진 걸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외롭게 한 건 아닐까. 그러면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걸 헤아리지 못했으니, 먼저 알아채지 못했으니, 잘못한 것이다. 노력하자. 내가 그에게 잘한다면, 그가 나를 보고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한다면 우리는 처음처럼 행복해질 것이다. 나를 세 번째로 때린 날, 그는 내게 말했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야. 네가 내 안의 다정함을 끌어내지 못하는 거야. 내가 다정해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없겠어?” _22쪽

대체 어떻게 하면 남들처럼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에게 쉬운 일들, 적당한 회사에 취직을 하고 주말에는 영화나 책을 보고, 그러다 좋은 상대를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나들이를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모두 어떻게 그 일들을 다 해내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다들 뻔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나에게 뻔한 것은 오직 자기 연민뿐인데. _38쪽

결혼의 장벽을 넘으며 수진은 그녀의 출신을 실감했다. 그리고 인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수진을 빈틈없이 사랑했지만, 그래서 수진 역시 할머니를 사랑했지만. 할머니는 무거운 짐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옆에 있는 한 수진은 영원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그렇게 열망하고 노력했던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 수진은 단 한 번도 할머니를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수진은 사실 늘 원망했다. 사람들이 그녀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밖에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를 원망했다. 어쩌면 바로 그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 바로 그것 때문이다. 사실 수진은 누가 어떻게 해도 상관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술 먹고 한 번쯤 건드려도 상관없다고. 왜냐하면 어차피 쟤는 춘자 딸이니까. 바로 세상의 빚을 모두 짊어지고 있는 애니까! 수진은 몰래 할머니를 원망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자유롭게 살라고 했을 때 수진은 울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울었다. 진짜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서. 할머니, 나는 진작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시 강간당하느니 차라리 강간하는 인간이 되고 말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_226쪽

저자소개

강화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86

198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 등을 썼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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