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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이집트 : 안드레 애치먼 회고록

원제 : Out of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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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작가 안드레 애치먼

그해 여름 바닷가, 햇살을 머금은 모래언덕과 오래된 야자수, 북적거리는 도시, 그 시절을 함께 한 모든 사람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아름답고 애틋한 기억

“아름다운 기억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리뷰》

《아웃 오브 이집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며 독자들을 매혹시킨 안드레 애치먼의 회고록이다. 이집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우아하고 재치 넘치는 언어로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이 탄생한 시작점이 바로 이 회고록이라 할 수 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풍부한 색상을 담은 배경 묘사와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 언어를 통해 생생히 전해지는 냄새와 촉감, 소리까지 작가 특유의 글쓰기가 모두 담겨 있다. 허세로 가득 찬 빌리 할아버지, 성격이 전혀 다른 친할머니 공주와 외할머니 성녀, 바깥일로 바쁜 아버지 앙리와 청각 장애가 있는 어머니 지지, 바흐를 연주하는 플로라 숙모, 오디세우스를 낭송하는 시뇨르 달라바코와 매력적인 가정교사 록사네, 한가족처럼 지낸 가정부 라티파와 하인 히샴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 소년. 고개만 들면 펼쳐지는 찬란한 바다와 집 안 가득 퍼지는 커피 향, 햇살에 낱알이 반짝이는 모래언덕이 전하는 여름 아침의 냄새 그리고 활기찬 도시!

나는 수정처럼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숨결이 섞이지 않은 듯한 공기 냄새가 새롭고 신선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워지기 전의 여름 아침 냄새였다. 눈부신 햇살을 머금은 모래언덕마저도 깨끗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나서 고개를 내려 저 앞의 저택들조차 보이지 않는 두 눈을 주변에 가득한 모래 색깔로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얼굴만 들면 바다가 있었다.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1905년 이집트에 첫발을 들인 유대인 청년 아이작을 따라 온 집안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집트로 이주하는데, 이들 가족은 계속되는 중동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특유의 기질로 기회를 잡고 대를 이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한다. 이 회고록은 이집트에서 나고 자란 소년이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대가족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의 아파트와 학교, 바다가 있는 만다라의 별장을 오가며 인종과 언어, 사상과 종교를 넘어선 다양한 경험 속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결국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전 재산을 빼앗기고 이집트를 떠나기까지의 기억을 담고 있다.

“실제로 작가는 이집트에서 추방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이집트를 떠나지 않았고, 이집트 또한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비록 소년은 이집트를 떠났지만 기억은 영원히 그곳에 머물며 그 시절을 아름답고 애틋하게 추억하듯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조용히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조용한 파도 소리처럼 저마다의 특별한 기억이 서서히 밀려와 눈부신 햇살에 빛을 반짝일 것이다.

출판사 서평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작품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그 시작을 알고 싶어진다. 이럴 때는 작가의 세계관에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연혁을 살펴보거나 첫 작품을 찾아보곤 한다. 작품이 거듭되면서 문체에 변화를 주거나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의 개성이 일관되게 뚜렷하면 그의 삶이나 첫 번째 작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안드레 애치먼.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그의 작품을 준비할 때부터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엘리오와 올리버 두 사람의 사랑은 여느 작품에서 그리는 사랑과 달랐고, 그들을 둘러싼 여름의 햇살은 눈부셨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첫 작품인 《아웃 오브 이집트》 출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번역 원고를 받아 본 순간 그 특유의 감성과 문체가 첫 책을 출간할 때부터 이미 완성형에 가깝게 유려하며 가슴을 깊이 파고드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안드레 애치먼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회고록은 행복한 선물이며 더없이 큰 기쁨이다.”
-《시카고 트리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여름은 등장인물의 사랑이 설득력을 갖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가족, 친구와 더욱 돈독한 시간을 갖는가 하면 새로운 만남을 갈망하며 나른한 기분에 젖어들게 만드는 눈부신 햇살은 여름만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자 설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를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만다라의 바닷가 별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창문을 열면 보이는 반짝이는 바다는 이집트를 떠난 지금도 그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다.

공책에 머무는 4월의 햇살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법의 주문을 걸어 벽과 책, 책상, 내 손, 베껴 쓴 코란 구절에서 여름 한낮의 강렬한 햇볕과 따뜻한 바닷물, 친근한 바닷가 별장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내 방에 걸린 오래된 마티스의 복제화가 아침 햇살에 빛나며 손짓했다. 마티스의 니스 집 발코니 난간 사이에는 파란 공간, 언제나 그렇듯 바다가 있었다.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피아노 카덴차는 어느 고백보다 더 달콤하고 특별하다.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마음은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속편 《파인드 미》에서도 음악은 각 장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소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독일에서 이집트로 피난 온 플로라 숙모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내내 목격했다. 그때 알았을 것이다.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이 담긴, 살아 움직이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내가 그 시절에 밤마다 슈베르트를 연주한 건, 그 끔찍한 전쟁이 나에게는 망쳐 버린 인생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에 불과했기 때문이야. 난 지금 슈나벨이 연주한 것처럼 연주할 거야. 네 할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들은 내 연주니까.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오늘 밤 내 아들이 들었을 연주야. 여기 앉으렴.”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안드레 애치먼의 모든 작품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서로 얽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고대 문학에 대한 애정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와 아버지 펄먼의 대화에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유대감과 고고학에 대한 박식함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언어와 문화, 종교를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은 가정교사 시뇨르 달라바코와 이집트를 떠난 후에도 편지를 통해 깊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눈 경험에 기댄 부분이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설정이나 대화는 작품마다 역할을 바꾸어 가며 등장한다.

나는 이번 여름에, 앞으로 맞이할 모든 여름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뇨르 달라바코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기뻐하면서 이탈리아어 수업이 끝난 다음에 가르쳐 줄 텐데 배우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정원의 오래된 문을 열면서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안드레 애치먼은 최근 발표한 에세이 《호모 이레알리스》의 비현실적 서법(Irrealis mood)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이어 나가고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나 바람에 대한 주제로 자신의 경험과 프로이트를 오가며 논리를 펼치는데,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그 시작을 발견할 수 있다. 첫 작품을 쓸 때부터 20여 년 후에 출간될 새로운 에세이를 구상해 둔 것처럼.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건물 사진. 그 건물 앞에 선 내 사진. 건물 앞에 선 나를 찍는 아내 사진. 아내는 할머니들이 몇 층에 살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5층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5층을 올려다보았다. 엘사 할머니의 방 한 칸짜리 아파트는 불도 꺼지고 덧문도 내려져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당연히 불이 꺼졌겠지.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지 20년이나 되었으니까! 하지만 아파트를 그렇게 오랫동안 비워 둘 리 없는 터, 분명히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을 것이다. 빌리 할아버지가 아파트를 판 기억이 나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면, 엘사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병원으로 실려 가기 전에 떨어뜨린 포크와 카디건도 그대로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엘사 할머니가 자아 준 생명력으로 영원히 할머니 것일 수밖에 없는 평생 모은 가구와 그릇, 옷가지가 제자리에서 할머니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면?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이 외에도 작품이 거듭될수록 깊이를 더하며 겹겹이 쌓여 가는 특유의 세계관은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그 모든 실마리를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독자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마음껏 상상하게 만든다. ‘어쩌면 엘리오는 내성적이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가슴을 가진 소년 시절의 작가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물론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아웃 오브 이집트》은 읽는 재미와 감동까지 흡입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책을 읽는 동안 한 사람이 나고 자란, 지금은 사라진 영원하고 무한한 세상이 기억을 통해 재탄생되는 순간의 감동을 생생히 목격할 것이다.

추천사

《뉴욕 타임스》
“지금은 사라진 세계의 매혹적인 초상. 황홀하다.”

《워싱턴 타임스》
“이 책은 사랑했던 장소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애정 가득한 회고록이자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연대기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리뷰》
“아름다운 기억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글.”

《예루살렘 리포트》
“선명한 기억과 숭고한 언어로 탄생한 감동적인 작품.”

《뉴 리퍼블릭》
“이 우아한 회고록은 과거의 향수로 가득 차 있다. 그 시절 모든 냄새와 소리까지도.”

〈퍼블리셔스 위클리〉
“잊힌 장소와 시간, 사람에 대한 경이로운 기념물.”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이제는 영원히 사라진 세상과 그곳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아이러니하고 다정한 모습을 훌륭히 재창조해 냈다.”

《시카고 트리뷴》
“안드레 애치먼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회고록은 행복한 선물이며 더없이 큰 기쁨이다.”

《뉴스데이》
“한 가족과 그들이 사는 세계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 작가 특유의 언어와 자세한 기억이 아니었다면 1960년대 알렉산드리아는 모래로 뒤덮여 사라졌을 것이다.”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젠서》
“놀랍도록 자세한 기억은 이 회고록을 더욱 풍부하고 감동적으로 만든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실제로 작가는 이집트에서 추방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이집트를 떠나지 않았고, 이집트 또한 그를 떠나지 않았다.”

《뉴요커》
“묘한 매력이 있는 소박한 기억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다민족 도시의 아름다운 매력을 책 속에 스며 넣었다.”

제임스 메릴(《The Changing Light at Sandover》 작가)
“장밋빛 이야기와 선명한 기억으로 가득한 페이지를 넘기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이 회고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에바 호프먼(《Lost in Translation: A Life in a New Language》 작가)
“별난 가족, 흥미로운 환경, 복잡하게 얽힌 문화에 대한 특별한 회고록이다. 지금은 사라진 세상에 대한 풍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

목차

1장 군인, 세일즈맨, 사기꾼, 스파이|9

2장 멤피스거리|61

3장 100세 파티|127

4장 불 꺼!|201

5장 연꽃 먹는 사람들|285

6장 마지막 유월절|391

본문중에서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고? 지금 장난해요, 빌리?” 플로라는 조롱하듯 말을 던지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또 담뱃불을 붙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는 역시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 에스더의 아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비웃었다.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 빌리는 놀라울 정도로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중략) 이제 빌리가 늘 하는 그 말이 나올 차례였다. 그 말은 손가락을 푸는 피아니스트나 목을 가다듬는 배우처럼 오랜 기다림 끝에 무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자신감으로 반짝이는 눈빛과 아치를 이루는 등,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의 떨림으로 시작하여 점점 높아지다 완벽한 높이에 이르렀다. “우린 전에도 기다린 적이 있고 이번에도 기다릴 거야.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오천 살 먹은 유대인이니까. 그래, 안 그래?”
---43~44p

“적어도 난 손자가 친할머니를 똑같이 사랑했으면 좋겠어.” 외할머니는 단호하고 지조 있게 사랑평등주의를 주장하듯이 말했다.
“왜 똑같이 사랑해 달라는 거죠? 원한다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나요?” 플로라가 물었다. “누가 누구를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일은 드물어요. 제대로 사랑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죠.”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여름날 오후 나와 함께 베네치아의 캄포모로시니를 걸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넌 이해 못 해, 플로라.” 성녀가 굽히지 않고 말했다. “손자가 그 여자를 사랑하길 바라는 건 그래야 그 여자가 날 질투하지 않아서야. 난 걱정돼. 내가 가 버리면 그 여자가 손자한테 어떤 할머니가 될 것 같니?”
“간다니요?”
“떠난다면 말이야, 플로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직 예순도 안 됐는데!”
“프랑스로 간다는 말이었어, 플로라. 죽는다는 게 아니라! 영국, 아니 콘스탄티노플로 갈 수도 있지. 그건 모르는 일이야.” 성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은 그런 뜻도 아니고, 아예 먼 훗날의 이야기도 아님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더 남았겠어?” 앞으로 살날을 말하는 거였다.
---70~71p

아버지는 그날 늦게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마침내 그녀를 만났다고 적었다. 꿈에 그리던 여인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도 않았고 생김새를 묘사하지도 않았다. 미신을 믿는 터라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피했다.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그녀라고만 했다. 그녀를 종이에 담거나 성격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너무도 복잡한 과제였으므로 그냥 이렇게만 적었다. 그녀를 생각하고 싶다.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라든가 그녀에게 마음이 향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적지 않았다. 그저 회색 스커트와 적갈색 카디건, 어머니 옆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모습, 어머니 카드에 눈을 고정하고 있을 때 카드 테이블 끄트머리에 닿은 무릎 피부를 묘사할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보는 그에게 미소 지었다. 나른함과 가벼운 사과가 담긴 상냥하고 너그러운 미소였다.
---92p
바포레토는 산자카리아를 지난 후 급강하하듯 널찍하게 돌아 석호를 거쳐 리도로 향했다.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 배가 시끄럽게 통통거리며 나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안개 자욱한 시로코 날씨가 수그러들었다. 나는 비스듬히 누워 머리를 뒤로 젖혔다. 외할아버지의 농담을 흉내 내 이제 베네치아는 다 본 거네, 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려 끝없는 밤으로 가라앉는 베네치아를 바라보며 플로라 숙모를 떠올렸다. 내가 아는 모든 도시와 해변과 여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름을 사랑한 이들, 한때 사랑했고 이제는 사랑하지도 추모하지도 않지만 지금 이 순간 같은 집, 같은 거리, 같은 도시, 같은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전부 떠올렸다. 내일은 가장 먼저 해변에 갈 것이다.
---125p

보통 사람보다 시끄러운 어머니의 고음은 멀리까지 들렸다. 나는 매일 아침 스쿨버스를 탈 때 어머니가 창문에서 잘 다녀오라고 외치면 못 들은 척 딴 데를 보았다. 어머니가 해변에서 돌아오는 나를 보고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내 별명을 소리쳐 부르면 갓 사귄 친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은 그 사람이 우리 어머니라는 것도,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하기 방식 때문에 그것이 내 별명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고개를 들어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는 내가 저 멀리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였다. 어머니는 내 미소가 왜 그렇게 모호한지 정확히 알았다. 너무 더워서 식탁에 앉아 과일만 먹는 여름날 오후면 어머니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의 말을 소리 냈다. 단어가 아니라 어머니가 아직 말도 배우지 못한 머나먼 어린 시절로 다가가는 소리였다. 함께 수영할 때 물속에서 외친 완전하지 않은 단어들, 파도 소리에 덮여 사납고 거친 느낌이 덜해진 어머니의 목소리는 갈매기 소리처럼 상냥했다.
---132~133p

옥상은 매우 고요했다. 저 아래에서 윙윙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손 닿는 것마다 델 듯이 뜨거웠다. 텅 빈 옥상을 돌아다니며 다른 건물들의 옥상을 바라보노라면 무한한 지평선을 따라 늘어진 거대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파란색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제나 나를 손짓해 부르는 바다였다.
---143~144p

“오늘 파도가 정말 좋구나.” 할머니가 기대에 찬 얼굴로 내 허벅지를 두드렸다. 바다는 바로 눈앞에서 봐야만 거친지 고요한지 알 수 있었다.
---153p

내가 아버지는 어디 있는지 물었다.
“같이 왔지.” 할머니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역장실에 구부정하게 서서 아랍어 뉴스 속보를 듣고 있었다.
“안 좋아, 안 좋아.” 아버지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이집트 전역에서 등화관제를 실시했대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공격을 개시했어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전차 옆에 선 아버지는 처음 보았다. 아버지는 항상 자가용으로 움직였다. 버스나 전차는 물론 택시조차 타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전차역에 있으니 대중교통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수수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214~215p

한 시간 가까이 어둠 속에서 다 같이 앉아 있었다. 가끔 건물 안뜰에서 “Taffi al-nur(불 꺼)!” 하고 외치는 성난 목소리나 증조할머니가 방금 누가 한 말을 다시 묻거나 라티파가 라디오 소리에 방해되지 않도록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와 잔을 치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럴 때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우리가 이집트에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새해는 다른 나라에서 맞이할 것이며 이렇게 한집에 다 같이 모이는 것도 마지막이라고.
그 뒤로 이어진 나날 동안 사촌이나 할머니들과 밖에 나갈 때마다 하루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거리를 걷거나 어디에 들르거나 익숙한 놀이를 하거나 예고 없는 방문으로 성녀를 기쁘게 해 주는 것 따위의 일 때문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고리타분한 사람들과 모여 있어야 하는 그 답답한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어서였다.
---246p

일주일 후 몇몇 가족이 이집트에서 추방되었다.
3개월 후에는 네 명이 스스로 떠났다.
곧바로 여섯이 더 떠났다. 다들 프랑스에 정착했다.
1년 6개월 후에는 성녀와 남편도 프랑스로 떠났다.
이제 이집트에는 엘사 할머니, 플로라 숙모, 공주, 네심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우리 세 가족 해서 여덟 명밖에 남지 않았다.
---274p

만다라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가로 달려가 바다 상태를 확인했다. 침대에 누워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만 듣고 그날의 날씨를 알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물살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소리치는 날은 파도가 거칠다는 뜻이었다. 한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파도 소리도, 아이들 소리도, 노점상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공기 중의 무언가가 모든 소리를 덮어 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그런 날은 플로라 숙모의 표현대로 바다가 엷은 기름막처럼 매끄러워 잔물결조차 없었다.
집 안에 커피 가루 향기가 퍼졌다. 록사네는 아침 일찍부터 주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작은 주전자에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수영복 차림이었다. 조이는 아직 잔다고 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인들도 오기 전이었다. 우리는 베란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성글게 짠 커튼을 들어 올리면 기적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주차된 차들의 후드만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그 너머로 모래언덕과 오래된 야자수, 일요일의 고요함에 잠긴 저택들, 반짝거리는 옅은 파란색 바다가 펼쳐졌다.
---375p

10월 초가 되면 1년 내내 이곳에 사는 베두인족 이집트인 몇 명만 남을 뿐 거리에 인적이 끊겼다. 여름 별장 주인들이 데려와 기르다가 여름이 끝나면 내버리는 강아지들이 들개가 되어 먹이를 찾아 헤매다 밤이면 우리 별장 앞에서 짖기도 했다. 그즈음이면 해변은 완전히 텅 비었다. 코카콜라 오두막도 문을 닫았다. 밤에 영화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면 불을 켜 놓은 집은 우리 별장뿐이었다. 압두가 라디오에서 아랍어 노래를 들으며 우리를 기다리는 주방에서 희미한 전구 불빛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압두가 밤에 시내로 돌아가는 날이면 우리를 기다리는 불빛도 없고 만다라는 유령도시로 변했다. 아버지가 자동차 라디오와 엔진을 끄면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소리와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자갈길 걷는 소리, 집 뒤편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의 불부터 켜고 숨 막히는 복도를 달려가 방마다 불을 밝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베란다, 주방, 거실 불과 내 방의 라디오까지 켜고 집 안에 활기를 되살려 아직 집 안에 있는 여름 손님들이 자기 방에서 나올 거라는 착각을 하게 만

저자소개

안드레 애치먼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510102

저자 안드레 애치먼(Andre Aciman)은 1951년 1월 2일 이집트 출생. 뉴욕대학에서 작문을 공부하고 프린스턴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다.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가르치며 가족과 함께 맨해튼에 살고 있다. 1995년 회고록 《Out of Egypt》로 화이팅 어워드 논픽션 부문(Whiting Award for Nonfiction)을 수상했고, 1997년 구겐하임 펠로십(Guggenheim Fellowship)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2007년 《Call Me by Your Name》으로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Lambda Literary Award Winner for Gay Fiction)을 수상했다. 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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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스무 살 때 남동생의 부탁으로 두툼한 신디사이저 사용설명서를 번역해준 것을 계기로 번역의 매력과 재미에 빠졌다. 대학 졸업 후 출판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 전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현재 미국에 거주하면서 책을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당신에게』, 『5년 후 나에게』,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책』,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의 사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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