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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일렁이는 시절’은 한 마을의 흥망성쇠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인물의 변화과정을 포착한다. 전반적으론 성장소설이지만 달리 보면 마을의 내력과 그에 얽힌 여러 군상을 스케치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조용했던 마을에 미군 부대가 들어서며 모든 게 변한다. 세월이 흘러 부대의 이전 소식이 터지고… 마을엔 가공할 광기(狂氣)가 몰아친다. 대체 왜?

미군 부대 주변에서 태어나 현대사의 굴곡을 겪으며 성장한 한 남자, 그의 발자취를 찬찬히 따라가며 인간의 욕망과 파멸, 타협과 공존에 관한 질문을 던져본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비겁하게 타협하는 것이
꼭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수도권의 노른자위임에도 미군 주둔으로 인해 수십 년간 개발계획에서 소외되었던 곳, 미군 부대 이전계획이 흘러나오면서 투기지역으로 일대 전환점을 맞은 곳, 그 욕망의 땅을 배경으로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요동치는 세상, 그것 이상으로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 이에 대해 작가는 불필요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릴 뿐이다.

현란한 인생살이, 변하는 사람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것을.

1장/ 기억의 끝자락
2장/ 아버지
3장/ 격동의 울림
4장/ 꿈결 같은 세상
5장/ 울타리 공부방
6장/ 치열한 시간들
7장/ 은밀한 제의
8장/ 혼탁한 마을
9장/ 마음, 사로잡히다
10장/ 타버린 상징
11장/ 잔인한 현실
12장/ 맞춰지는 조각들

그녀들의 속살은 아름다웠다. 팬티 색깔도 다채로웠다. 그러나 동네 아낙들은 양공주들을 경멸했다. 더러운 갈보, 라고 수군거렸다. _ 61쪽

“시위 현장에 오기 전엔 뭘 하고 있었어?”
태석이 질문을 이었다. 우현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수업 땡땡이치고 인사동에 놀러 왔다가 노점상 아저씨와 싸웠다는 사실을, 오징어 다리가 10개 인지 8개 인지가 싸움의 이유였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_ 99쪽

“솔직히 말하죠. 선배가 꿈이니 가치니 하며 몽상 타령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그게…뭔데?”
“그건 선배네 집이 부자여서 그래요. 먹고살 만하니까 그렇다고요. 꿈 타령해도 사는 데엔 아무 지장 없잖아, 안 그래요? 선배의 말은 배부른 사람의 감상적 사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_ 142쪽

어차피 미군 부대는 이전할 것이고, 재개발 바람은 몰아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선 팽나무골 재개발과 관련한 추측성 기사를 자주 보도했다.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설 것이라는 둥, 고급 아파트단지가 조성될 것이라는 둥. _ 219쪽

“저 영감이 내 재산을 다 날렸다고요! 저 나쁜 인간!”
여인이 울부짖었다. 그 뒤에 앉아 있던 50대 남자도 벌떡 일어섰다.
“나는 저놈한테 속아서 딱지를 샀어. 지금은 휴짓조각이나 마찬가지라고. 이런 썩을!” _ 3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