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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당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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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경욱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1년 06월 23일
  • 쪽수 : 41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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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칠순 노인이 된 전직 요원에게 부고처럼 날아든 암호문
그분이 나를 부르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조금의 낭비도 없는 날렵한 문장으로 하드보일드와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원숙한 스타일리스트 김경욱의 여덟번째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가 출간되었다. 장편으로는 5년 만의 신작인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칠순 노인이 된 전직 첩보요원.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도 과거의 영화를 잊지 못하는 그에게 생애 마지막 임무가 주어지고, 그는 왕년의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거스르는 기이한 여정에 나선다. 그러나 지나간 시대의 맹목과 현재의 누추함이 뒤엉킨 이들의 발걸음은 자꾸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작가는 이 시대착오적인 반영웅들의 이야기에 대한 익숙한 기대를 능란하게 비틀며 세계의 심연에 대한 끝없는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첩보 인생의 마지막 임무,
이 무서운 끝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김도식, 별칭 김감독, 코드 네임 라이카. 지금은 관절염과 녹내장에 온갖 약을 달고 살면서 손주에게 무시당하고 때로 요양병원에 있는 아내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노인이지만, 과거 중앙정보부(이후 안기부) 해외 담당 첩보원으로 여러 굵직한 공작에서 활약하고 비밀리에 김일성을 직접 대면하기도 했던 전직 첩보요원이라는 자존심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어느 날 펼쳐든 신문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부고 기사를 발견한 그는 그것이 김실장이 자신에게 보낸 암호문임을 직감한다.
김실장, 별칭 ‘목사’는 어린 시절 라이카의 숨은 재능을 알아보고 요원으로 길러낸 스승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인물. 라이카뿐 아니라 여러 소년들이 그에게 발탁되어 각자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며 목사 휘하의 비선 조직으로 세상을 막후에서 쥐락펴락했었다. 그러나 목사는 90년대 말 정권 교체와 함께 횡령죄로 감옥에 갇히고, 라이카와 동료들 역시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터였다. 출옥과 함께 미래를 기약하며 자취를 감춘 지 이십 년, 지금 그가 옛 수하인 라이카를 호출한 것이다.
라이카는 암호문에 감추어진 메시지를 실마리 삼아 왕년의 동료 김배우, 코드 네임 피셔맨을 찾아 나선다. 침술로 자백을 이끌어내던 자백 기술자, 지금은 무자격 침술사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피셔맨은 그를 왕년의 공작 대본가인 김작가, 코드 네임 재단사에게로 이끌고, 이십 년 만에 뭉친 셋은 함께 목사의 흔적을 좇아 그 단서들이 지목하는 장소들을 차례로 더듬어간다. 미술관과 낙원상가 극장, 외진 사찰에서의 기묘한 대결을 거쳐 이윽고는 바다 건너 미국으로 향하는 이들. 그곳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미국 대통령 암살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작을 꾸미는 목사의 모습이다. 그곳에서 이제 이들의 임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터치다운.”
평양과 워싱턴, 아니 전 세계를 패닉에 빠뜨릴 대본의 클라이맥스가 실현되었다는 통보. 독수리는 주 타깃에 붙인 코드 네임이기도 했다. 가장 높이 날던 그 독수리를 떨어뜨렸다.
역사책에 오늘은 어떻게 기록될까. 사백십오 년 만에 실현된 가이 포크스 데이? 21세기 미국에서 다시 울린 사라예보의 총성? 중서부에서 재현된 댈러스의 악몽?(8쪽)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다만 조종할 뿐


한 편의 긴장감 넘치는 첩보물처럼 매끄럽게 내달리는 서사의 표면은 그러나 한편으로 곳곳에서 고개를 드는 의구심으로 인해 점차 불거지는 균열을 감추지 않는다. 라이카는 자신이 읽어내는 단서들을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동료들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 못한다. 목사가 자신을 왜 부르고 있는지, 어쩌면 목사가 자신을 부른 것이 맞는지조차. 라이카와 동료들이 실낱같은 단서를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얼핏 반전을 예비한 치밀한 각본으로 읽히면서도 한편으로 어딘가 어설프고 위태로운 주사위 놀음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지 모른다.
셋 모두 일주문을 들어설 때보다 몇십 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영락없이 저승사자만 기다리는 산송장 꼴이었다. 특별한 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평범한 상늙은이. 우리에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기는 한 걸까. 능력이 봉쇄되었다기보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217~218쪽)

애초에 냉전과 공안의 시대를 호시절로 추억하는 이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에게 오늘날 어떤 모험담이 가능할 것인가. 아이오와의 옥수수밭 한가운데 자신만의 장막을 짓고 망상에 가까운 공작을 획책하는 목사 혹은 김실장이라는 이 기이한 인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그에게 선택되고 길러져 평생을 충성해온 라이카와 피셔맨, 재단사는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의문이 모습을 드러낼 때, 소설은 과거의 망령에 들려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이들의 텅 빈 내면을 그린 한 편의 풍자극으로 읽히기도 한다.

지옥이라는 미궁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길은
언제나 미궁의 심장부로 나 있는 법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멋있기보다 위험한 일”(‘작가의 말’)이라고 말하는 작가 김경욱은 이야기를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끝나지 않는 질문을 이어가며 우리를 또다른 장소로 이끈다. 그리고 그곳에서 라이카가 “왜 나였죠? 나를 왜 뽑으셨나요?”(392쪽)라고 다시 물을 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을 더듬어가는 방황의 서사는 이제, 답할 수 없는 어두운 질문의 심연으로 한 발 한 발 걸어들어가는 나약한 인간의 이야기로 모습을 바꾼다.
하지만 사실은 어느 쪽이어도, 혹은 어느 쪽도 아니어도 좋을지 모른다. 작가가 능숙하게 흩뿌려놓은 숱한 단서와 암시와 상징은 마치 라이카와 동료들에게 주어진 임무처럼 어느 쪽으로도 열릴 수 있는 복수의 세계를 마련해두고 있고, 우리는 라이카처럼 그중 어느 한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선택할 수도, 혹은 가능한 세계 모두를 오래 헤맬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건, 그 끝에서 우리는 소설 속 북극성처럼 환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밤하늘의 별빛이 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 막막한 어둠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어둠이야말로 김경욱이라는 노련한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이 흥미진진한 암호문을 해독할 단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은 어디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무엇을 하려고? 무얼 위해?
인간의 의지를 자연의 의지와 구분 짓는 육하원칙이라는 경계선마저 희미해지자,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 숨쉬는 어둠이 헤드라이트 불빛마저 삼켜버렸다. 가라앉듯 낮게 뜬 별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흩뿌린 듯 점점이 반짝이는 겨울 별들. 저 중에 북극성은 어디쯤 있을까.(380쪽)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멋있기보다 위험한 일이다. 문자 그대로 understand는 이해하려는 대상보다 아래에 서보는 일, 이해라는 손톱만큼의 빛을 위해 자신의 대부분을 어둠에 내주어야 하는 작업이기에. 무작정 아래 서다보면 이해는커녕 어둠의 그림자에 묻혀버리기 십상이니. 초승달을 얻으려 얼굴의 대부분이 컴컴해지는 지구별처럼.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워 시시각각 모양이 바뀌는 저 달처럼. 발 딛고 있어 대기권 밖으로 나가기 전엔 결코 볼 수 없는 지구별처럼.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민낯이 드러나는 쪽은 가면 아래 숨은 얼굴만이 아니다. 가면이 벗겨진 자리에는 거울이 남기 마련이기에.
_‘작가의 말’에서

목차

프롤로그
부고
Wisdom Teeth
피셔맨
재단사
귀부인의 초상
낙원 속 극장
황금 십자 목걸이
기린아, 기린아
속지 말자 소련 놈, 믿지 말자 미국 놈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 계신 분
북극성
소년들이여 순결하여라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에필로그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한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떤 눈빛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뜻이다. 별빛은 광원이 소멸된 뒤로도 한참을 날아가지만 눈동자는 우주에서 가장 여린 항성이어서 뒤늦게 남아 반짝이는 눈빛은 없다. 눈동자가 죽으면 눈빛도 죽는다. 둘 사이엔 찰나의 시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눈빛은 매 순간 처음이면서 마지막. 밤하늘의 별처럼 이름 붙을 겨를도 없이 사그라진다.(15쪽)

이게 정녕 원숙한 영혼에 걸맞은 육신이란 말인가. 곡물이나 과일조차 속이 영글수록 금실로 짠 외피를 두르는 법이거늘. 황금 사과처럼 눈부시지 못할망정 하루가 달리 비루먹은 개 같아지다니. 인간이 짠 천 쪼가리로 가리기 아까운 청춘의 피륙은 저 머리꼭지에 피조차 안 마른 애송이들에겐 과분하지 않은가.(24쪽)

남과 북 모두에서 간첩이라면 나는 이중간첩인 셈이었다. 매 순간 사선이라는 외줄을 타온 나는 삶과 죽음의 이중간첩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죽음에도 깨끗이 녹아들지 못하는.(45~46쪽)

젊은것들의 공손한 당당함에는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바다 쪽으로 밀어내는 장강의 냉혹함이, 꿀벌이 내려앉은 꽃만 정확히 땅에 떨구는 나무의 잔인함이 서려 있다. 몸이 늙는다고 자존심마저 주름이 지는 건 아니다. 몸이 쭈글쭈글해질수록 자존심은 팽팽해진다.(52쪽)

태초에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 나는 항상 궁금했다. 어둠은 누가 만든 걸까.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태양, 달, 지구. 빛이 별이라면 어둠의 정체는 무엇인가.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면 어둠은 어땠을까.(62쪽)

스무 해 만에 대면하는 피셔맨이야말로 지난 세기의 빛바랜 환영처럼 늙어 보였다. 나도 피셔맨의 눈에 저렇게 비칠까? 죽음이 찾아온들 알아채지 못할 만큼 시들어버린 주름 덩이로?(72쪽)

“성공한 공작에도 우리 이름을 위한 자리는 없지.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나서는 안 되는 존재, 아무도 아닌 자들이니까.”(150쪽)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건 나만의 일이 아니었나보다. 우리는 서로서로 믿지 못하는 셋이었다. 그분에게 가까워질수록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되었다. 원수는 몰라도 배신자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법.(228쪽)

여기가 정녕 내가 아는 세상의 끝이란 말인가. 해 저무는 그곳, 천궁을 가로지른 서녘 별들이 몸 씻는 곳 너머란 말인가. 삶을 마지막 찌끼까지 들이켜기 위해 죽도록 물살을 가른 항해의 종착점이란 말인가.(283~284쪽)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가로지르며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빨갱이들이 차지한 세상에 복수하기보다 내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303쪽)

“케네디는 댈러스에 갈 수도 있었고 가지 않을 수도 있었네. 댈러스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두 케네디가 공존했지. 하지만 우리가 아는 건 댈러스에 간 케네디뿐이야. 와이? 댈러스에 가지 않은 케네디는 사라지고 댈러스에 간 케네디만 남은 이유는 뭘까?”(322쪽)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분을 따라 소년원에서 나온 첫 선택 이후로는. 그분 표현대로라면 나는 언제나 그분과 함께하는 세계에 있을 운명. 내가 뒤로한 것은 소년원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하지 못하는 세계였으니.(323쪽)

어쩌면 그도 지금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니었을까. 하느님을 감히 쏠 수 없는 세계와 하느님도 기꺼이 쏠 수 있는 세계, 둘이 갈라지는 지점에 위태롭게 선 존재. 아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존재.(324쪽)

가장 안전한 선택이 우리를 가장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린다. 죽느냐 사느냐. 가장 위험한 선택은 운명의 항해를 어느 기슭으로 이끌 것인가.(360쪽)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1~
출생지 광주광역시
출간도서 28종
판매수 100,535권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아웃사이더]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소설집으로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와 장편소설 [천년의 왕국]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 제40회 동인문학상, 제53회 현대문학상, 제3회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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