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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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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정훈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발행 : 2021년 05월 10일
  • 쪽수 : 30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040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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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만족하지 않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더 많은 여성과 남성의 우정을 향한
남성 페미니스트 박정훈의 연대의 목소리


첫 책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에서 남성 문화를 비판하고 반성의 목소리를 냈던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가 이번 책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여성혐오·성폭력·착취의 근원이 남성들의 ‘기만’에 있다는 것을 논지한다. 이 책이 여타의 페미니즘 도서와 다른 점은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 존재하던 다양한 스펙트럼이 외부로 표출된 현상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럴 듯해 보이는 남성조차 가해자가 되는 것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꿨다’는 충만한 자부심으로 ‘그들만의 세계’에 존재해왔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여성혐오, 끝없는 여성 성착취 등의 구조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 거창하고 거만한 가부장적 세계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남성성의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이자 수도권에 살며 기자로 활동하는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면서도 여성과 소수자에게 공감하되 동일시하거나 시혜의 관점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살아보지 못한 삶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n번방사건 이후 드러난 또다른 수많은 n번방과 피해자들, 진보인사들의 성폭력 사건, ‘이대남(20대 남자)’의 정서, 백래시의 근거로 쓰이는 메갈리아 이슈, 여성들의 죽음 등 페미니즘에 관한 근간의 사건들을 톺아보며 착취와 억압의 고리에 있는 여성인권의 현실을 좀 더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저자가 현장을 직접 취재하며 모았던 자료들과 당사자들과의 인터뷰, 다양한 기사·연구 논문 및 통계 자료 등에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저자의 관점을 더해 섬세하고 치밀한 페미니즘 교양서를 선사한다.

“가부장제는 여성과 남성의 ‘성차’를 강조하고,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규정하면서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남성들의 페미니즘 실천이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올바른 행동 양식처럼 여겨지기만 한다면, 역설적으로 성별 이분법을 강화시키고 가부장제가 온존하도록 기여하는 셈이 된다. 남성들이 궁극적으로 ‘정상 남성’을 규정하고 있는 공고한 틀을 깨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므로 결코 ‘이만하면 괜찮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족하지 않기를, 그리고 주저하지 말기를 남성들에게 당부하고 싶다.”_8쪽

“누구도 나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성찰하지 않는 오만함,
나 정도면 괜찮다고 자부하는 착각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동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박원순 전 시장 사건은 성별을 막론하고 진보 언론을 비롯해 SNS 상에서 수많은 설전이 오가게 했으며, 그야말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가장 혼란했던 시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학창시절 더 나은 시민사회를 꿈꾸며 책장 속 스승들로 생각했던 진보 명망가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무엇보다 박원순과 김종철 이 두 사람은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목도한 사람들이었으며, 오랜 시간 페미니스트들과 함께하고 위력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었다. 그랬기에 그 누구도 두 사람의 가해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이 두 사건으로 ‘가해자다움’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으며, ‘나조차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남성이 여성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구조가 존재하는 이상, 그 누구도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절대 장담할 수 없다. 저자는 남성들이 가부장제 속에서 스스로 ‘성폭력 가해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길러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남성 권력’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하지 않고서는 남성이 페미니즘을 배우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No Means No’를 듣는다고 해도,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틈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남성이 여성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 구조가 존재하는 이상, 그 누구도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절대 장담할 수 없다. 남성들은 자신의 ‘결백’과 ‘남다름’을 주장하기 전에, ‘김종철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이자 고발자인 장혜영 국회의원이 던진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남성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금껏 만들고 지켜왔던 이들은 누구인가?_7쪽

“여성에 대한 폭력은 교묘하고 은근하게 이루어진다”

폭력의 틈이 존재하는 이상
남성은 언제든 젠더폭력의 행위자가 될 수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으로 누려왔던 것들을 얼마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여겨왔는지 꼬집는다. 남성에 유리한 조건으로 설계된 노동시장, 여성에 대한 일상화된 외모 품평, 채용·임금 차별, 성희롱, 스토킹, 불법촬영 등 무엇이 성차별이고 성폭력인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교묘하고 은근하게 이루어진다. 저자는 앞서 이야기한 여러 성차별적 현실을 통해 남성들이 지금껏 당연하게 누려왔던 특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을 때 ‘백래시(기득권을 가진 남성이 자신의 권력이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느꼈을 때 반발하는 현상)’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끝나지 않은 n번방사건과 리얼돌 문제, 성매매 문제, 강간문화 등 남성들의 그릇된 욕망을 당연시하는 한국 사회를 파헤친다. 소라넷 등 불법사이트와 웹하드를 통해 불법촬영 영상을 돌려 보던 남성들, ‘남성의 성욕은 풀어야만 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일그러진 욕망, 단톡방 내에서 여성을 성희롱하며 서로의 범죄사실을 옹호하고 받아주는 분위기 등은 한국 남성들이 만들어온 ‘강간 문화’의 한 유형이다. 저자는 본질적으로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는 남성문화가 변화하지 않으면, 성폭력 문제는 또다른 형태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3부에서는 안희정·박원순·김종철 등 진보 정치인들의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진보진영 내에서의 페미니즘 이슈들을 살펴본다. 저자는 이 사회에서 무난하게 교육받고, 기성의 관습을 따르며 평범하게 살아가면 당연히 가부장제의 원리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남성들은 여성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을 휘두를 ‘틈’이 있으며, 그것이 감히 폭력임을 상상하지 못할 뿐이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보편’의 자리에서 물러나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과, 남성이 언제든 젠더폭력의 행위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4부에서는 설리·구하라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 변희수 하사·김기홍 퀴어 활동가의 죽음 등 여러 사회적 타살에 주목하며 묵인과 방조로 외면해왔던 남성, 그리고 여성 모두가 암묵적인 가해자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밖에 주린이·노키즈존 등 차별을 당연하게 만드는 언어를 비롯해, 결혼·신체 등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사회 등 사회 주변부의 폭력구조를 다각도에서 살핀다. 저자는 한 명의 무결점 남성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결점이 많더라도 함께 이마를 맞대고, 남성연대를 무력화하는 주체가 되기 위한 전망을 고민하겠다는 다짐을 남긴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그것은 권력이다”

살아보지 못한 삶을 존중하는 자만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인권의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혹자가 말하는 대로 정말 남성들이 역차별당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최근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을 비롯해 ‘메갈 사냥’ 논란, 각종 스토킹·폭력 등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여전히 여성들은 최소한의 안전과 평범한 일상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남성들은 ‘자기 몫’이 아닌 것에는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면서도 여성이 자신의 파이를 빼앗아가는 듯 보이는 것에만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저자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그것은 권력’이라고 말한다. 일상적인 여성혐오, 성폭력, 여성 타깃 범죄, 보이지 않는 차별에 무관심한 남성 중 ‘선량한’ 남성은 없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관심조차 없거나 ‘나는 아니야’라고 선을 긋거나 모르는 척 외면한다면 그것이 바로 권력이며 가해일 것이다.
저자는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평등을 유지하려는 남성들 또한 결과적으로 ‘조금 더 나은 가부장적 세계’를 만드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젠더폭력은 페미니즘의 수용 없이는 절대 사라질 수 없으며, 남성이 자신을 둘러싼 구조를 조망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성이 가부장적 세계를 깨부숴야만 진정으로 여성과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살아보지 못한 삶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 책을 통해 역설한다.

남성들은 남성이 만들고 기득권도 유지하고 있는 시스템인 가부장제 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국가도 ‘남성 지배 체계’가 아닌 곳은 없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무난하게 교육받고, 기성의 관습을 따르고, 평범하게 살아가면 당연히 가부장제의 원리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평등한 관계에서의 낭만적 사랑’은 불가능한 과제가 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남편 정대현이 겉으로 보기에 멋지고 선량한 인간인 것과 별개로 김지영이 고통을 겪는 것은 이와 같은 현실을 상징하는 장면이다._284쪽

추천사

나는 더 많은 여자들의 안전과 자유를 염원한다. 동시에 더 많은 남자들과의 우정을 기대한다. 이 두 가지가 상충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고 있다. 그것은 남자가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세계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만이, 타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할지 배우는 사람만이 새로워진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 사랑하게 될 남자들, 좋은 동료이자 스승이자 친구인 남자들과 마주 앉아 이 책을 읽고 싶다. 우리 사이가 더 나을 수 있다는 걸 최대한 많은 수의 남자와 함께 경험하려 한다. 살아보지 않은 삶을 존중하는 일에 관해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할 것이다. 박정훈 기자의 글은 내가 참고하는 존중의 매뉴얼 중 하나다.
_ 이슬아, 작가·헤엄출판사 대표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포기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포기하지 않고 남성들에게 말을 건다. 얼핏 날카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함께 나아가자고 손 내민다. 어떻게 여성과 소수자를 동료 시민으로 대할 수 있는지, 성별 이분법이 견고한 이 세계에서 당신과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저자는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이자 수도권에 살며 기자로 활동하는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면서도 그 위치를 핑계로 여성과 소수자를 외면하거나 동일시하지 않고 연대한다. 적절한 거리 조절, 촘촘한 통계, 시의적절하고 성실한 집필의 흔적 앞에서 나는 한 번 더 저자를 신뢰하게 되었다. 더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 책과 함께라면, 당신도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말을 가로막는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 거다. “지금 제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들을 차례입니다.”
_ 홍승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저자

목차

프롤로그-거만한 세계가 무너질 때, 우리는

1부 남성은 왜 억울함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나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고백해서 혼내주자’라는 말의 의미
‘철없는 남자’ ‘잡혀 사는 남자’는 왜 문제일까
남자들에게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들은 ‘불편하지 않은’ 여성을 원한다
남자들은 무례한 질문을 멈출 줄 모른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남자라는 특권
유관순은 언제까지 ‘누나’로 불려야 하나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여성의 폭력 피해는 어떻게 글감이 되는가

2부 언제까지 가해자를 위한 나라일 것인가
당신들이 만든 ‘지옥’입니다
여자들을 ‘리얼돌’ 취급했던 한국 남자들
아직도 남성의 ‘성욕 해소’가 걱정되신다면
‘의무’는 없다
n번방 성착취가 젠더갈등 때문이라는 주장에 관해
남성들에게는 흥을 깰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아니야”, 20대 남자의 정서
성매매 거부하는 20대 남성의 가능성

3부 누구도 나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나조차도 믿지 않겠다
‘위력’을 보았다
박원순은 왜 자신이 만든 세상을 부정했나
피해자에게 얼굴 공개를 요구하는 속뜻
선량한 친구들
‘좋아요’가 칼이 될 때
MBC가 남성만을 위한 방송이었습니까
대통령님, 여성의 날에도 남성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종말

4부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그것은 권력이다
우리는 왜 설리의 편이 되지 못했나
20대 여성은 왜 죽는가
류호정, 장혜영 의원이 짊어진 짐
개를 때리는 사람
결혼에도 자격이 필요한가요
고 변희수 하사의 용기에 응답하지 않은 한국 사회
세상과 불화하는 몸
차별을 당연하게 만드는 단어들
강자의 글쓰기, 남성화된 글쓰기
남성이 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결점 남페미’가 아니라
미주

본문중에서

여성들과 다르게 남성들은 ‘평등해도 괜찮은’ 조건인지를 살핀다. 먼저 맞벌이인지 따지고, 그다음에는 예쁜지 따진다. 그리고 나서야 ‘네가 밥을 하라’는 결론을 내린다. 만약에 경력 단절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의 사례라면, 남편이 밥을 직접 해 먹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했을 것이다. … 아내를 하나의 ‘소유물’로 여기고 여성에게 돌봄 노동을 의무화하는 오래된 가부장제의 잔재는 이렇게 뻔뻔하게 버티고 있다._20~21쪽

‘고백해서 혼내주자’라는 말이 있다. 많은 남성에게 이 말은 농담이겠지만, 여성들에게는 실재하는 공포다. 고백이나 만남 요구에 단순한 불쾌감이나 부담만 느끼고 끝난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실제로는 구애를 표방한 남성의 자기중심적 행동이 여성에게는 삶을 흔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나 구애자가 일하는 곳의 손님이거나 직장 상사일 경우, 혹은 끈질기게 따라다닐 경우에 더욱 그렇다. 어찌 공포가 아닐 수 있겠는가._26쪽

남성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 불만을 품는다. 허용돼왔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언행에 제동이 걸렸으니까. 그런데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지금까지 남성들이 별문제 없이 살아왔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다. 한국의 주류 남성문화는 여성을 성애화된 존재로만 여기며, 자신과 같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여성과 평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성차별·성폭력 문제에서 가해자 또는 방관자였던 남성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살아왔다. 이런 남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이상하지 않은가?_28~29쪽

만약 스스로 ‘잡혀 산다’고 말하는 수천수만의 남자들이 실제로 잡혀 산다면 대체 어떻게 동네방네에 ‘나 잡혀 삽니다’라고 떠들 수 있단 말인가. 말 하나하나가 전부 아내나 여자친구에 대한 푸념이나 비난에 가까울 텐데 말이다. 그래서 ‘잡혀 산다’는 말에서는 역설적으로 시혜적 태도, 즉 “우리가 져줘야, 잡혀 살아줘야 관계나 집안이 평안하니까∼”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젠더 권력의 우위를 가진 남성의 여유를 상징하는 말은 아닌지 의심해야한다._31쪽

일터에서 구애를 펼치고, 집 앞까지 찾아가고, 대뜸 일과 시간 외에 만나자거나 보고 싶다는 연락을 취하고, 이런 행동들을 ‘로맨스’로 포장하는 남자들이 있다. 거절하거나 연락을 차단해서 끝날 정도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끈질기게 접점을 만들어서 다가오는 남자들을 말릴 방법이 없다. 정도가 약한 스토킹은 처벌도 어려워서, 불쾌함을 그저 견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인적 네트워크 안에 있거나 내가 속한 조직의 윗사람일 경우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매번 완곡한 거절만을 반복해야 하며, 일상은 고통스러워진다._39~40쪽

남성을 우대하거나 성적에 관계없이 성비를 맞추려는 기업들의 관행은 여전하다. 2018년 3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주최한 ‘20대 여성취업’ 좌담회에 나는 인터뷰어로 참가한 적이 있다. 좌담회에 온 구직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정황상 차별’이 현존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여성 지원자가 더 많고 그들의 성적이 더 좋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언론계마저 방송사는 5:5, 뉴스통신사나 경제지는 남성 우대 경향이 여전하다. 실력이 똑같아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탈락한다. 항의하기조차 어려운 교묘하고 은밀한 차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_58~59쪽

실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관계에서도 여성의 주체성을 무시해왔으니, 리얼돌과의 섹스를 사람과의 섹스와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리얼돌을 단순한 인형으로 볼 수 없다. 여전히 남성들이 리얼돌 같은 여성상을 원하는 상황에서, 또 리얼돌이 완전히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 종속된 여성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포르노도 남성 중심의 성적 판타지지만 그것을 통해서 남성들이 왜곡된 성관념을 배우고 현실에 그것을 적용하려 하듯, 리얼돌이 용인되는 사회에선 오로지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모습이 정당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_98쪽

떠들썩한 조문 행렬, 공식 직함으로 온 조화들, 안 전 지사에 대한 안쓰러움을 표하는 인터뷰 등 성폭력 가해자의 건재함을 입증해준 그들의 행동을 보고 피해자인 김지은 씨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유죄 판결 뒤에도 변함없는 (가해자의) 위세와 권력의 카르텔 앞에서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새삼 다시 느꼈다”라고 말했다. 안 전 지사는 권력을 잃었지만, 그를 보러 오는 권력자들은 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이다. 상황이 이런데 대체 피해자가 어떻게 스스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단 말인가._143~144쪽

무려 한 나라 수도의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이 성폭력 가해 의혹을 받은 이를 공식적으로 애도한다는 것은 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 박 전 시장을 ‘잃어서 아쉽다’는 정서가 더욱 공고해지고, 그가 죽음으로써 모든 걸 책임졌다고 여기게 만든다. 이는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데 참고할만한 하나의 ‘레퍼런스’가 된다. 조 교육감은 온 마음을 다해 박 전 시장을 추모하고 싶었을 테고, 그러면서도 피해자를 공격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선량한 척’할 뿐이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건 직무 유기다.

‘좋아요’ 수는 페이스북 등의 SNS에선 ‘힘’으로 작용한다. 이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보여
주는 지표이다. ‘좋아요’가 많으면 많을수록 글쓴이는 자신에게 동조하는 이들이 많다는 확신을 갖고, 그의 동조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한다. 결과적으로 2차 가해에 대한 ‘좋아요’는 (페이스북의 ‘화나요’나 ‘웃겨요’ 등이 아니라면) 2차 가해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꼴이 된다는 이야기다. 관성처럼, 혹은 내가 평소 좋아하는 필자라고 해서 대충 읽어보고 ‘좋아요’를 누르면 안 되는 이유다._178쪽

왜 어떤 가족은 정상이고, 어떤 가족은 비정상인가. ‘가족의 탄생’이 이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고정관념이 유지되는 이상, 이성애자 남성에게 자원이 집중되고 그들이 가장을 맡는 체제와 관습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혼이 가부장제의 재생산 제도로만 기능하지 않고,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 관계를 맺는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선 결혼의 자격을 따지면 안 된다. 여성과 남성, 이성끼리만 결혼할 수 있는 현실 역시 성역할을 고착화시키는 성별 이분법에 기대고 있다. 동성커플의 결합을 허용하면서 결혼은 기존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_234~235쪽

남성에게 페미니즘적 말하기란 ‘보편’의 자리에서 물러나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명확하게 밝힌 다음에 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의 위치를 만든 토대를 설명하고, 그 토대가 왜 부정의하고 잘못됐는지 설명하며 ‘전지적 관점’을 내려놓는 것이 시작이다. 나아가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고, 이를 위해 내가 갖고 있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도 필요하다._295~296쪽
차례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2015년부터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 운 좋게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맞춰 일을 시작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고 쓰면서, 스스로 ‘깨어 있는 남성’이라고 착각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됐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특권과 부당 이익을 성찰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18년 제20회 양성평등 미디어상에서 게임 업계 내 여성혐오를 다룬 〈게임회사 여성직원〉 기획으로 보도 부문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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