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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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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삶과 죽음, 타자와 세계에 대한 사랑을
이보다 쉽고 강한 설득력으로 설파한 사람은 없다.”

생명과 평화의 사상가, 위대한 교육가,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모순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성찰해온 한 인간의 지적 여정


레프 톨스토이. 우리는 그를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을 남긴, 19세기 말, 20세기 초가 낳은 위대한 작가로만 인식한다. 실제로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러시아를 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여전히 사랑받으며 걸작傑作이자 고전古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톺아보면, 그는 세상의 변혁을 꿈꾼 ‘혁명가’이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한 ‘사회사상가’이기도 했다. 또한 톨스토이는 귀족이자 대지주로서 자신이 가진 사회 경제적 기반과 자신이 실천하고자 하는 소박한 삶 사이에서 오는 모순적인 상황에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온 인물이기도 했다. 톨스토이가 남긴 다양한 주제의 산문들은 그의 이러한 고민과 성찰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는 인생과 철학은 물론 교육과 종교, 예술과 문화, 사회개혁 등 다양한 주제의 산문을 남겼는데,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그 철학과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자 몸부림친 ‘실천가’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원전의 뜻을 정확하게 살린 번역과
현대적 디자인으로 만나는 톨스토이
― 톨스토이 서거 110주년을 기념하다 ―


바다출판사의 [톨스토이 사상 선집]은 톨스토이 사후 러시아 모스크바 테라Teppa에서 펴낸 [톨스토이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 톨스토이는 소설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막대한 분량의 글을 남겼다. 테라의 [톨스토이 전집]은 이러한 글을 총망라해 100권으로 편찬한, 톨스토이 작품의 정본定本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기획 단계에서 함께 논의해 톨스토이 사상과 철학적 정수를 담고 있는 글을 선별했으며, 번역에서도 톨스토이가 쓴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바다출판사의 [톨스토이 사상 선집]은 현대적 디자인을 더해 교육과 반전 평화, 철학, 예술, 생명관 등 톨스토이 사상의 궤적을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앞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생명과 평화의 사상가, 위대한 교육가,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모순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성찰해온 한 인간의 지적 여정

“삶과 죽음, 타자와 세계에 대한 사랑을
이보다 쉽고 강한 설득력으로 설파한 사람은 없다.”

레프 톨스토이. 우리는 그를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을 남긴, 19세기 말, 20세기 초가 낳은 위대한 작가로만 인식한다. 실제로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러시아를 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여전히 사랑받으며 걸작傑作이자 고전古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톺아보면, 그는 세상의 변혁을 꿈꾼 ‘혁명가’이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한 ‘사회사상가’이기도 했다. 또한 톨스토이는 귀족이자 대지주로서 자신이 가진 사회 경제적 기반과 자신이 실천하고자 하는 소박한 삶 사이에서 오는 모순적인 상황에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온 인물이기도 했다. 톨스토이가 남긴 다양한 주제의 산문들은 그의 이러한 고민과 성찰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는 인생과 철학은 물론 교육과 종교, 예술과 문화, 사회개혁 등 다양한 주제의 산문을 남겼는데,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그 철학과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자 몸부림친 ‘실천가’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원전의 뜻을 정확하게 살린 번역과
현대적 디자인으로 만나는 톨스토이
- 톨스토이 서거 110주년을 기념하다 -

바다출판사의 〈톨스토이 사상 선집〉은 톨스토이 사후 러시아 모스크바 테라Teppa에서 펴낸 《톨스토이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 톨스토이는 소설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막대한 분량의 글을 남겼다. 테라의 《톨스토이 전집》은 이러한 글을 총망라해 100권으로 편찬한, 톨스토이 작품의 정본定本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기획 단계에서 함께 논의해 톨스토이 사상과 철학적 정수를 담고 있는 글을 선별했으며, 번역에서도 톨스토이가 쓴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바다출판사의 〈톨스토이 사상 선집〉은 현대적 디자인을 더해 교육과 반전 평화, 철학, 예술, 생명관 등 톨스토이 사상의 궤적을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앞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출판사 서평

지금 다시, 톨스토이를 읽어야 하는 이유
― 평생 자기 안의 모순과 맞서온 ‘거장’의 내면을 마주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한 가지로 한정할 수 없는, 그야말로 ‘거인’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불멸의 고전을 남긴 작가이자, 비참한 생활을 하는 농민들을 위해 헌신한 교육가이자 직접 농민 학교를 세운 실천가였다.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다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예수의 가르침에 공감했던 톨스토이는 권력과 결탁한 기독교를 비판하고 반전과 평화, 생명주의를 설파한 종교철학자였다. 또한 간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비폭력운동에 영향을 끼친 사회사상가이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젊은 시절에는 도박과 술,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보내기도 했고,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고자 했지만, 귀족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편안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가족들로 인해 몇 차례 가출을 시도했던 외로운 영혼이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평생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고통스러워하고 고뇌하는 등 자신의 모순을 안고 살았던 인물이었다. 이처럼 톨스토이의 글에는 모순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한 흔적이 남아 있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담담히 고백하고 참회하는 톨스토이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위대한 스승’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도리어 톨스토이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의 글은 우리에게 더 깊은 울림과 설득력을 준다. 바다출판사에서 새롭게 펴내는 [톨스토이 사상 선집]은 그동안 ‘거장’이라는 명성에 가려져 알 수 없었던 톨스토이의 인간적인 면모와 사상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
톨스토이의 교회 비판은 지금도 유효한가?

120여 년 전에 발표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왜 굳이 지금 읽어야 하는가? 톨스토이의 글이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교회에 행한 날카로운 비판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가르침과 성찰의 기회를 준다.
톨스토이는 평생 무신론자로 살다 오십이 넘어 기독교를 믿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년에 걸쳐 옛 히브리어로 된 성경과 유대교 율법, 각 언어로 번역된 성경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반전과 평화, 비폭력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심지어 왜곡하는 교회와 국가, 지배층을 비판한다. 국민을 전쟁터의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릇되게 가르치고, 귀족과 대지주, 지배층을 위해 가난한 사람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당시 교회의 가르침을 톨스토이는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분제도가 없어지고 전 국민의 교육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아진 지금, 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그리스도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지 플로이드 사건처럼 피부색이 다르다고, 또는 저개발 국가 사람이라고, 또는 동성애자라고 혐오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20세기 내내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테러와 전쟁처럼, 종교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목숨을 함부로 뺏기도 한다. 소박하고 검소하며,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삶이 곧 예수의 삶이라고 톨스토이가 말했던 것과 달리,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사회는 작은 이윤을 위해 다른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하거나, 심지어 벼랑까지 내몰리게 한다.
톨스토이가 교회를 비판했던 120여 년 전과 오늘날의 현실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톨스토이가 종교와 사회, 예수의 참된 가르침 사이의 모순에서 고민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도 톨스토이가 지나간 길을 되짚어가면서 새로운 답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우리의 삶과 종교,

지금 다시, 톨스토이를 읽어야 하는 이유
- 평생 자기 안의 모순과 맞서온 ‘거장’의 내면을 마주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한 가지로 한정할 수 없는, 그야말로 ‘거인’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불멸의 고전을 남긴 작가이자, 비참한 생활을 하는 농민들을 위해 헌신한 교육가이자 직접 농민 학교를 세운 실천가였다.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다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예수의 가르침에 공감했던 톨스토이는 권력과 결탁한 기독교를 비판하고 반전과 평화, 생명주의를 설파한 종교철학자였다. 또한 간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비폭력운동에 영향을 끼친 사회사상가이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젊은 시절에는 도박과 술,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보내기도 했고,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고자 했지만, 귀족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편안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가족들로 인해 몇 차례 가출을 시도했던 외로운 영혼이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평생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고통스러워하고 고뇌하는 등 자신의 모순을 안고 살았던 인물이었다. 이처럼 톨스토이의 글에는 모순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한 흔적이 남아 있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담담히 고백하고 참회하는 톨스토이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위대한 스승’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도리어 톨스토이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의 글은 우리에게 더 깊은 울림과 설득력을 준다. 바다출판사에서 새롭게 펴내는 〈톨스토이 사상 선집〉은 그동안 ‘거장’이라는 명성에 가려져 알 수 없었던 톨스토이의 인간적인 면모와 사상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
톨스토이의 교회 비판은 지금도 유효한가?
120여 년 전에 발표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왜 굳이 지금 읽어야 하는가? 톨스토이의 글이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교회에 행한 날카로운 비판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가르침과 성찰의 기회를 준다.
톨스토이는 평생 무신론자로 살다 오십이 넘어 기독교를 믿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년에 걸쳐 옛 히브리어로 된 성경과 유대교 율법, 각 언어로 번역된 성경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반전과 평화, 비폭력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심지어 왜곡하는 교회와 국가, 지배층을 비판한다. 국민을 전쟁터의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릇되게 가르치고, 귀족과 대지주, 지배층을 위해 가난한 사람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당시 교회의 가르침을 톨스토이는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분제도가 없어지고 전 국민의 교육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아진 지금, 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그리스도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지 플로이드 사건처럼 피부색이 다르다고, 또는 저개발 국가 사람이라고, 또는 동성애자라고 혐오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20세기 내내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테러와 전쟁처럼, 종교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목숨을 함부로 뺏기도 한다. 소박하고 검소하며,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삶이 곧 예수의 삶이라고 톨스토이가 말했던 것과 달리,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사회는 작은 이윤을 위해 다른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하거나, 심지어 벼랑까지 내몰리게 한다.
톨스토이가 교회를 비판했던 120여 년 전과 오늘날의 현실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톨스토이가 종교와 사회, 예수의 참된 가르침 사이의 모순에서 고민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도 톨스토이더 나아가 사회가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빌려준다.

톨스토이 사상 선집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원전 국내 첫 번역
“인류의 교사, 톨스토이가 가르치는 삶의 대혁명”


1884년 발표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톨스토이의 종교 저술 작업의 사상적 근간이 되는 산문이다. 또한 톨스토이 후기 문학작품들을 해석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한 “정신적 대변환기 이후에 재정립한 기독교적 세계관·인간관”이 작품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50대에 들어선 톨스토이는 기독교 신앙,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믿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였지만, 그는 성서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을 섭렵하며 그 가르침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내포하는, 원래의 뜻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편의와 특정한 목적에 따라 첨삭한 가르침이 아닌,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논증하며, 스스로 변화된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톨스토이는 머리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떻게 내가 가장 단순명료하고, 의심할 바 없이 이해 가능하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향해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했는지, 어떻게 그것이 내 영혼을 변화시켰고 내게 평안과 행복을 주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6년 넘게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천착한 톨스토이는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통해 오히려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교회권력과 사회제도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회의 가르침에서 서로 모순되는 몇몇 구절들만을 끄집어내, 평소 교회에서 이렇게 모순되는 구절들을 마음대로 직조해 교회권력과 국가권력, 사회 조직의 방패막으로 삼는 현실을 통탄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교회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신성하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인간의 연약함과 완전하지 못함 때문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모두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축복만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실천에 도움이 된다”는, 즉 초월적인 어떤 현상이 있어야만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세상은 한술 더 떴다. 세속의 교사들과 기타 사회 조직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비실제적이고 공상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면서, 가르침에 반하는 수많은 연설과 사업들을 쏟아낼 뿐이었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 자신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의 가르침이 실행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조금씩 점점 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나를 잠식해갔고, 그것에 익숙해졌으며, 나의 음욕에 맞는 수준으로 일치해갔다. 그리고 급기야 이전에 내가 한 번도 세상 가르침의 모순을 깨달은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신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악한 자에 대한 무저항의 가르침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재정부, 법원, 정부, 군대라는 기관에서 활동적으로 일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생활을 영위하며, 또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악에 대적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 그리스도의 법칙에 따라 삶을 구축하는 것이, 만일 우리의 원수에게 필요하다면 재판, 형벌, 전쟁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꾸밈없는 삶이었을 것임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악에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는 “악에게 선을 행하라”고 설파했다. 이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지 말라”는 의미다. 하지만 역사 이래 재판관들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고 말씀하면서,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도 아니고 “무한히 용서하라”고 가르친다. 궁극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이다. 하지만 세상의 재판관들을 포함한 우리는 용서하지 않고 “공공의 적이라고 불리게 된 자들에게 선이 아닌 악을 행할 것을 명령”한다. 국가는 더 나아가 전쟁을 통해 적극적으로 악을 실행한다.
이에 대해 톨스토이는 깊이 탄식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악에 대한 무저항, 이것이 공상인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을 행치 말지어다. 그러면 악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은 허황된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서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이라고 톨스토이는 내내 역설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명쾌하고 값지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값지고 명쾌하다. 그런데도 교회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복음서의 가르침을 곡해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호도한다. 의도적으로 원문을 왜곡할 뿐 아니라 마음대로 첨삭하여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고 문법적으로도 바르고 또 논리적인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리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 가르침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천하지 않는 교회 지도자, 아니 우리가 문제일 뿐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평화의 계명은 단순명료한 것으로, 불화의 모든 경우를 예견하고 그것을 예방하는 것이며, 이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계시하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는 정확히 메시아다. 그는 약속을 이행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스스로 기도해 왔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갈망하는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내내 강조하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라”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질 것이다. 나 혼자만 따른다고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반문하는 사람에게 톨스토이는 비록 혼자서 고군분투할지라도 그것은 “모든 이들과 또 나 자신을 위해서 가장 최선을 다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끝내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사람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금지’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수동적 금지가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 행동에 방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술 취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등의 율법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더 적극적인 마음과 행동, 즉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톨스토이는 “실은 세상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위험하고 괴로운 것”이라고 명토 박는다.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톨스토이는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말미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믿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로 여기에 나의 신앙이 있다.” 톨스토이는 아울러 “이 가르침이 쉽고 기쁘게 실천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며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나는 믿는다. 이 가르침이 온 인류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나를 필연적 사망에서 구원할 것을, 그리고 여기서 최고의 복을 줄 것을. 그래서 나는 이를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비록 적어도 두려움 따위는 없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현재 그러한 사람들이 많든 적든 간에, 어떠한 것에도 정복당하지 않을 바로 이 교회로 모든 사람이 합류할 것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 그것이 가져다줄 구원, 이 모든 것을 톨스토이는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인생 후반기 톨스토이의 가치관, 세계관을 구성한 종교적 깨달음의 원천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종교적 깨달음이 혁명가이자 사회사상가로서의 톨스토
가 지나간 길을 되짚어가면서 새로운 답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우리의 삶과 종교, 더 나아가 사회가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빌려준다.


톨스토이 사상 선집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원전 국내 첫 번역
“인류의 교사, 톨스토이가 가르치는 삶의 대혁명”

1884년 발표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톨스토이의 종교 저술 작업의 사상적 근간이 되는 산문이다. 또한 톨스토이 후기 문학작품들을 해석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한 “정신적 대변환기 이후에 재정립한 기독교적 세계관ㆍ인간관”이 작품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50대에 들어선 톨스토이는 기독교 신앙,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믿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였지만, 그는 성서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을 섭렵하며 그 가르침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내포하는, 원래의 뜻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편의와 특정한 목적에 따라 첨삭한 가르침이 아닌,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논증하며, 스스로 변화된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톨스토이는 머리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떻게 내가 가장 단순명료하고, 의심할 바 없이 이해 가능하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향해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했는지, 어떻게 그것이 내 영혼을 변화시켰고 내게 평안과 행복을 주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6년 넘게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천착한 톨스토이는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를 통해 오히려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교회권력과 사회제도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회의 가르침에서 서로 모순되는 몇몇 구절들만을 끄집어내, 평소 교회에서 이렇게 모순되는 구절들을 마음대로 직조해 교회권력과 국가권력, 사회 조직의 방패막으로 삼는 현실을 통탄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교회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신성하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인간의 연약함과 완전하지 못함 때문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모두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축복만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실천에 도움이 된다”는, 즉 초월적인 어떤 현상이 있어야만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세상은 한술 더 떴다. 세속의 교사들과 기타 사회 조직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비실제적이고 공상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면서, 가르침에 반하는 수많은 연설과 사업들을 쏟아낼 뿐이었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 자신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의 가르침이 실행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조금씩 점점 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나를 잠식해갔고, 그것에 익숙해졌으며, 나의 음욕에 맞는 수준으로 일치해갔다. 그리고 급기야 이전에 내가 한 번도 세상 가르침의 모순을 깨달은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신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악한 자에 대한 무저항의 가르침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재정부, 법원, 정부, 군대라는 기관에서 활동적으로 일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생활을 영위하며, 또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악에 대적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 그리스도의 법칙에 따라 삶을 구축하는 것이, 만일 우리의 원수에게 필요하다면 재판, 형벌, 전쟁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꾸밈없는 삶이었을 것임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악에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는 “악에게 선을 행하라”고 설파했다. 이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지 말라”는 의미다. 하지만 역사이의 면모를 새롭게 다졌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이래 재판관들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고 말씀하면서,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도 아니고 “무한히 용서하라”고 가르친다. 궁극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이다. 하지만 세상의 재판관들을 포함한 우리는 용서하지 않고 “공공의 적이라고 불리게 된 자들에게 선이 아닌 악을 행할 것을 명령”한다. 국가는 더 나아가 전쟁을 통해 적극적으로 악을 실행한다.
이에 대해 톨스토이는 깊이 탄식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악에 대한 무저항, 이것이 공상인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을 행치 말지어다. 그러면 악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은 허황된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서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이라고 톨스토이는 내내 역설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명쾌하고 값지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값지고 명쾌하다. 그런데도 교회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복음서의 가르침을 곡해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호도한다. 의도적으로 원문을 왜곡할 뿐 아니라 마음대로 첨삭하여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고 문법적으로도 바르고 또 논리적인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리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 가르침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천하지 않는 교회 지도자, 아니 우리가 문제일 뿐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평화의 계명은 단순명료한 것으로, 불화의 모든 경우를 예견하고 그것을 예방하는 것이며, 이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계시하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는 정확히 메시아다. 그는 약속을 이행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스스로 기도해 왔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갈망하는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내내 강조하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라”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질 것이다. 나 혼자만 따른다고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반문하는 사람에게 톨스토이는 비록 혼자서 고군분투할지라도 그것은 “모든 이들과 또 나 자신을 위해서 가장 최선을 다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끝내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사람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금지’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수동적 금지가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 행동에 방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술 취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등의 율법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더 적극적인 마음과 행동, 즉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톨스토이는 “실은 세상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위험하고 괴로운 것”이라고 명토 박는다.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톨스토이는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말미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믿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로 여기에 나의 신앙이 있다.” 톨스토이는 아울러 “이 가르침이 쉽고 기쁘게 실천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며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나는 믿는다. 이 가르침이 온 인류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나를 필연적 사망에서 구원할 것을, 그리고 여기서 최고의 복을 줄 것을. 그래서 나는 이를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비록 적어도 두려움 따위는 없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현재 그러한 사람들이 많든 적든 간에, 어떠한 것에도 정복당하지 않을 바로 이 교회로 모든 사람이 합류할 것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 그것이 가져다줄 구원, 이 모든 것을 톨스토이는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인생 후반기 톨스토이의 가치관, 세계관을 구성한 종교적 깨달음의 원천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종교적 깨달음이 혁명가이자 사회사상가로서의 톨스토이의 면모를 새롭게 다졌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목차

머리말 _ 모든 사람들에게 향해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1. 악을 악으로 갚지 마라
2. 반드시 실천을 요구하는 계명
3. 비판하지 마라, 정죄하지 마라
4. 신이 인간이 되어 아담의 죄를 되샀다
5. 하나님의 영원한 법을 찾아내는 일
6.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값지고 명쾌하다
7.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훌륭하며 세상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8.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은 만인의 구원과 삶에 바쳐질 것이다
9. 모든 사람들이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라
10.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건 힘들다!
11.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다
12. 나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다

부록 1
부록 2
옮긴이 해설 _ 인류의 교사, 톨스토이가 가르치는 삶生의 대혁명
레프 톨스토이 연보

머리말 _ 모든 사람들에게 향해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1. 악을 악으로 갚지 마라
2. 반드시 실천을 요구하는 계명
3. 비판하지 마라, 정죄하지 마라
4. 신이 인간이 되어 아담의 죄를 되샀다
5. 하나님의 영원한 법을 찾아내는 일
6.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값지고 명쾌하다
7.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훌륭하며 세상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8.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은 만인의 구원과 삶에 바쳐질 것이다
9. 모든 사람들이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라
10.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건 힘들다!
11.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다
12. 나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다

부록 1
부록 2
옮긴이 해설 _ 인류의 교사, 톨스토이가 가르치는 삶生의 대혁명
레프 톨스토이 연보

본문중에서

정말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이런 모순들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이를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알았던 몇몇 교리들에 관한 교회의 확고한 법칙들이 전제해야 하는 복음서 대신에, 그 복음서가 있어야 할 자리를 가장 확고하지 않은 것들이 차지하고 있는 점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가르침의 실천에 있어서, 바로 그 자리는 가장 확고하고 명확한 부분이었을 터이다. 교의와 기독교인의 의무의 근거 사이에 가장 명확하고 정확한 모델이 있어야 했을 터이다. 하지만 가르침의 실천에 관해서 가장 불분명하고 흐릿하고, 어떤 신비적인 표현만이 말해질 뿐이었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강해하면서 그리스도가 바랐던 것이었을까? 나에게 이 의심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을 찾게 해주는 길은 다시 복음서를 읽는 것이었다.
(/ pp. 15~16)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비평하기 전에 그 가르침이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의 가르침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결정하기 전에, 최소한 그는 본인이 말했던 것을 실천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실천해본 적이 없다. 교회도 자유사상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왜 이를 실천하지 않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언제나, 그들을 거부하면서도 그런 인간적인 모든 오해들, 허망한 우상, 즉 우리가 교회, 정부, 문화, 과학, 예술, 문명이라고 부르고 그 오해라는 담장으로 둘러치는 것들을 포용했었고 지금도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분명 그리스도는 이런 것들에 반대하고 그 어떤 ‘담장’도 두르지 말 것을 요청한다.
(/ pp. 60~61)

나는 우리들의 삶이 좋은 것이고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계명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계명을 이 계명이 쓰여진 그대로 이해했을 때, 그 말씀의 진리와 그 간결함, 명료함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리스도는 말한다. “너희는 악으로 악을 없애려고 한다. 이는 영리하지 못한 것이다. 악이 없으려면, 악을 행치 않으면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우리가 익숙하게 악을 행하는 경우들을 하나하나 열거해서, 그런 경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 p. 123)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훌륭하지만 그 실행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모순적인 말은, 신앙을 가진 자들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믿지 않는 자, 다시 말해 죄업과 속죄의 가르침을 믿지 않거나 혹은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실천 불가능한 교의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밖에도 학자·철학자를 위시하여 일반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 즉 자기를 모든 미신에서 해방된 존재라고 자부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거나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 또한 이런 학자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실행을 부정하기 위한 별개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그 근거를 더 깊이 통찰하게 되자, 나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들의 생활 역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들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동일하게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자기를 무신론자라고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신도 예수도 아담도 믿고 있지 않지만, 그것을 기초로 모든 것이 수립되어 있는, 축복받은 생활에 관한 인간의 권리에 대해 본질적으로 신학자들과 같은 혹은 그보다 더 굳은, 그릇된 미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 pp. 151~152)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더 불쾌한 일이 발생하게 되건, 혹은 내가 보다 더 빨리 죽게 되건, 나는 무서울 것이 없다. 아마 이것이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고독한 생활이 그 얼마나 무의미하고 유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 혹은 자기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뿐일 것이다. 개인적이고 고독한 행복만을 노리는 내 삶은 최고로 어리석은 것이며, 나는 이 최고로 어리석은 삶 이후에 틀림없이 어리석게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나는 두렵지 않다. 나 또한 모든 이들처럼, 이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처럼,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삶과 죽음은 나를 위해서도,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나의 삶과 죽음은 만인의 구원과 삶에 바쳐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가 가르친 그것이다.
(/ p. 200)

우리 시대 세계인의 생활양식은 교회의 교의와는 완전히 독립된 채, 제 갈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 목사들의 잔소리들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벌써 저 멀리 뒤에 교회의 가르침은 도태된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교회에서 그 무엇 하나 들을 것이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삶의 조직에 대해 설명하고는 있지만, 그 삶의 조직은 이미 너무 커져버렸거나 아니면 견딜 힘이 없어서 붕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 p.278)

나는 깨달았다. 어디에 나의 행복이 있으며, 그것을 믿기 때문에, 즉 그것에 나의 신앙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서 나의 행복을 의심할 여지없이 빼앗아가는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확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의 삶이 오직 하나의 가능한 이성적이고 즐거운, 그리고 죽음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의의를 얻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 p. 316)

정말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이런 모순들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이를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알았던 몇몇 교리들에 관한 교회의 확고한 법칙들이 전제해야 하는 복음서 대신에, 그 복음서가 있어야 할 자리를 가장 확고하지 않은 것들이 차지하고 있는 점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가르침의 실천에 있어서, 바로 그 자리는 가장 확고하고 명확한 부분이었을 터이다. 교의와 기독교인의 의무의 근거 사이에 가장 명확하고 정확한 모델이 있어야 했을 터이다. 하지만 가르침의 실천에 관해서 가장 불분명하고 흐릿하고, 어떤 신비적인 표현만이 말해질 뿐이었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강해하면서 그리스도가 바랐던 것이었을까? 나에게 이 의심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을 찾게 해주는 길은 다시 복음서를 읽는 것이었다. _ 15~16쪽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비평하기 전에 그 가르침이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의 가르침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결정하기 전에, 최소한 그는 본인이 말했던 것을 실천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실천해본 적이 없다. 교회도 자유사상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왜 이를 실천하지 않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언제나, 그들을 거부하면서도 그런 인간적인 모든 오해들, 허망한 우상, 즉 우리가 교회, 정부, 문화, 과학, 예술, 문명이라고 부르고 그 오해라는 담장으로 둘러치는 것들을 포용했었고 지금도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분명 그리스도는 이런 것들에 반대하고 그 어떤 ‘담장’도 두르지 말 것을 요청한다. _ 60~61쪽

나는 우리들의 삶이 좋은 것이고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계명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계명을 이 계명이 쓰여진 그대로 이해했을 때, 그 말씀의 진리와 그 간결함, 명료함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리스도는 말한다. “너희는 악으로 악을 없애려고 한다. 이는 영리하지 못한 것이다. 악이 없으려면, 악을 행치 않으면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우리가 익숙하게 악을 행하는 경우들을 하나하나 열거해서, 그런 경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_ 123쪽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훌륭하지만 그 실행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모순적인 말은, 신앙을 가진 자들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믿지 않는 자, 다시 말해 죄업과 속죄의 가르침을 믿지 않거나 혹은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실천 불가능한 교의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밖에도 학자·철학자를 위시하여 일반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 즉 자기를 모든 미신에서 해방된 존재라고 자부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거나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 또한 이런 학자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실행을 부정하기 위한 별개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그 근거를 더 깊이 통찰하게 되자, 나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들의 생활 역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들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동일하게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자기를 무신론자라고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신도 예수도 아담도 믿고 있지 않지만, 그것을 기초로 모든 것이 수립되어 있는, 축복받은 생활에 관한 인간의 권리에 대해 본질적으로 신학자들과 같은 혹은 그보다 더 굳은, 그릇된 미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_ 151~152쪽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더 불쾌한 일이 발생하게 되건, 혹은 내가 보다 더 빨리 죽게 되건, 나는 무서울 것이 없다. 아마 이것이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고독한 생활이 그 얼마나 무의미하고 유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
는 자, 혹은 자기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뿐일 것이다. 개인적이고 고독한 행복만을 노리는 내 삶은 최고로 어리석은 것이며, 나는 이 최고로 어리석은 삶 이후에 틀림없이 어리석게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나는 두렵지 않다. 나 또한 모든 이들처럼, 이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처럼,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삶과 죽음은 나를 위해서도,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나의 삶과 죽음은 만인의 구원과 삶에 바쳐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가 가르친 그것이다. _ 200쪽

우리 시대 세계인의 생활양식은 교회의 교의와는 완전히 독립된 채, 제 갈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 목사들의 잔소리들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벌써 저 멀리 뒤에 교회의 가르침은 도태된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교회에서 그 무엇 하나 들을 것이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삶의 조직에 대해 설명하고는 있지만, 그 삶의 조직은 이미 너무 커져버렸거나 아니면 견딜 힘이 없어서 붕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_278쪽

나는 깨달았다. 어디에 나의 행복이 있으며, 그것을 믿기 때문에, 즉 그것에 나의 신앙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서 나의 행복을 의심할 여지없이 빼앗아가는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확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의 삶이 오직 하나의 가능한 이성적이고 즐거운, 그리고 죽음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의의를 얻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_ 316쪽

저자소개

생년월일 18280909

저자 톨스토이(Lev Nikolaevic Tolstoy)는 러시아의 소설가, 사상가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이자 문명비평가, 사상가로도 위대했다. 1852년 처녀작 '유년시대'를 익명으로 발표하여 네크라소프로부터 격찬을 받았고, '소년시대', '세바스토폴 이갸기' 등의 작품으로 청년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결혼 후 문학에 전념하여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고, 이어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했다. 이 무렵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무상음으로 종교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사상을 ‘톨스토이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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