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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 리커버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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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정재민
  • 출판사 : 나무옆의자
  • 발행 : 2021년 04월 02일
  • 쪽수 : 27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15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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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엄마, 복수를 원해요?”
tvn <알쓸범잡> 법무심의관 정재민의 심리법정스릴러!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실제 범죄 이야기


“선배 어머니 손가락은 류마티스 환자의
손가락 모양이 아닌 것 같은데?”

우연한 한마디에 마음의 지옥문이 열렸다.
젊은 판사가 묻는다. 불의한 시대에 개인의 정의란 무엇인가!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리커버 개정판 출간

법대를 나와 판사로 재직하다 지금은 법무부 법무심의관으로 일하는 작가 정재민의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보헤미안 랩소디』가 리커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현직 판사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실제 범죄 사건과 그 재판을 소재로 쓴 심리법정스릴러로서, 이익만을 추구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불의한 사회 시스템에서 개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인상 깊게 질문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젊은 판사 하지환은 어머니가 사기 진료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의사를 고소하지만 그를 법정에 세우는 일은 험난하기만 하다. 하지환이 맞서야 할 상대는 한 사람의 의사가 아니라 그를 비호하는 병원, 종교재단, 제약회사, 그의 대학 동문들, 지역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바로 자신이 속해 있기도 한 사법 권력이다. 그들은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죄 지은 사람에게 잘못을 묻고 벌을 내리는 지극히 당연한 절차들을 가로막는다. 그는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고 무수한 거짓과 싸우며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번번이 법과 공적 절차가 손쓸 수 없는 불의의 영역을 생생하게 마주할 뿐이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기 진료의 피해자였다

서른 살의 판사 하지환은 어느 날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자신의 고향이자 판사로 처음 부임했던 곳인 신해시로 내려간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2년 전 그가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을 담당했던 손지은 경사. 2년 전 그는 9년 동안 독한 류마티스 약을 먹다 결국 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류마티스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병원으로 찾아가 어머니의 진료기록부를 요청하지만 어머니를 치료한 우동규는 진료기록을 내주기를 거부하다 그가 판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태도가 돌변한다.
병원에서 받은 서류를 들고 인근 도시의 의사를 찾아간 지환은 어머니가 류마티스가 아니었고, 우동규가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에게 류마티스 진단을 내려 계속 약을 먹게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류마티스 유병률은 보통 1퍼센트 미만인데 신해시에서는 인구의 10퍼센트가 류마티스 환자라는 것이다. 판사로서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우동규와 싸우다 그가 다칠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환은 우동규를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한다.
한편 공황장애를 겪는 지환은 후배 효린의 충고에 따라 정신분석을 받기 시작한다. 지환은 정신분석을 통해 내적 갈등의 원인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가지만 정신분석은 그가 놓인 상황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판사는 배트맨이 아니야

우동규는 하지환의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환자들에게 믿기 어려운 사기를 치고도 류마티스센터 과장으로서 버젓이 진료를 계속한다. 그런 그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정이다. 그러나 지환이 우동규를 찾아가 사기 진료 사실을 시인받은 다음 날, 신해지원장이 그를 불러 말한다. “하 판사, 판사는 사건이 법정에 왔을 때 재판하는 사람이지, 길거리에 나가서 악당을 물리치는 배트맨이 아니야. 섣불리 덤볐다가는 하 판사가 다쳐.”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사건 담당자에게 온갖 청탁 전화가 걸려오고, 신해지청 검사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진행 경과를 확인한다. 우동규는 관련 자료를 제대로 넘겨주지 않을뿐더러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환자들을 회유한다. 경찰은 우여곡절 끝에 수사를 마무리하고 우동규 사기 진료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사건을 배당받은 검사가 유죄를 확신하고 우동규를 기소하는 내용으로 공소장을 작성하지만 신해지청장은 공소장을 몇 달 동안 결재하지 않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새로 부임한 지청장은 우동규의 대학 동문으로 공소장을 결재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불기소 결정문을 써준다.
이렇게 진실을 은폐하고 사건을 무마하려는 우동규의 영향력은 전방위에서, 끊임없이 밀려든다. 하지환이 싸워야 할 상대는 한 명의 의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무지한 노인들을 속여서라도 수익을 올리는 것이 우선인 종합병원, 종교적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사기 진료는 방조하는 종교 재단, 힘들고 오래 걸리는 신약 개발 대신 의사들에게 리베이트 주는 것을 핵심 판매 전략으로 삼는 제약회사, 선배의 부탁을 무시하지 못하는 검사들, 결속이 강한 우동규의 대학 동문들, 진실 보도보다는 광고주에 대한 예우가 우선인 지역 언론, 정의보다는 표가 중요한 지방 정치인들 등이 하나로 연결되어 우동규를 돕는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벌을 받는 게 정의 아닌가요?

그렇다면 불의한 시대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말 배트맨이 필요한 것일까?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검찰조차도 우동규가 환자들을 속였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검찰은 그의 행위가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 병원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일 뿐 재산상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기죄가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를 앞세워 그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눈앞에 뻔히 보이는 진실을 두고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법 집행자들의 행태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은 권력층의 일원인 판사에게조차 사법 체계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통해 정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현직 판사였던 작가가 실제로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질문은 더욱 절실해진다.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에게 류마티스라고 허위 진단을 내리고도 아무런 죗값을 치르지 않은 채 진료를 계속하는 의사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수많은 환자들에게 사기 진료를 해서 병원에 막대한 이익을 올려주고 제약회사로부터 오랫동안 리베이트를 받아온 의사를 사법 체계 안에서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이 시대의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내면 깊은 곳의 ‘나’를 찾다

한편으로 이 소설은 개인의 내면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상처의 치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환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고, 서울법대에 들어가 사법고시에 합격, 판사가 된 인물이다.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이력을 가졌지만 그는 판검사가 되어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신의 상처는 보듬을 새 없이 불쌍한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며 광대의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묻어둔 채 어머니의 바람대로 살아온 그는 어머니의 물건이 가득한 창고방에 들어갈 때면 공황장애를 일으키고, 이를 목격한 후배의 권유에 따라 정신분석을 받기 시작한다. 그는 정신분석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볼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상처로 인한 사고의 왜곡을 많은 부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주인공의 의식 변화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친 정신분석이 불의의 집단에 의해 회유와 기만의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독자의 뒤통수를 친다.

Mama, Just Killed a Man~
복수는 결코 정의에 도달할 수 없는가?

우동규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환은 사건 후 2년이 지나 친구 황동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해시로 내려간다. 조문을 하고, 죽은 친구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으로서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서다. 중학생 시절,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를 알고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로 단박에 친해진 지환과 동혁은 그 뒤로 형제처럼 붙어 다니며 우정을 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긴 그들은 2년 전 지환이 신해지원에 근무하면서 재회한다. 지환은 동혁의 난데없는 청탁이나 당혹스러운 제안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동혁은 여전히 그들이 친구임을 강조하며 스스럼없이 행동한다.
지환은 우동규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고 무력감을 느낄 때 동혁의 아버지 부음을 듣는다. 동혁의 아버지 역시 류마티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는데, 지환은 동혁에게 아버지의 손가락 모양이 류마티스 환자의 손가락 모양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해준다. 그때부터 동혁의 전쟁이 시작된다. 지환이 그랬던 것처럼 동혁 역시 우동규의 범죄를 공론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한다. 그렇게 동분서주하던 동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는 어째서 죽음을 선택했을까.
동혁은 죽기 직전에도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다. 많은 추억과 향수가 어려 있는 곡. 어린 시절 두 사람을 이어주었으나 이제는 잔혹하고 비정한 현실을 일깨우는 그 노래는 개인의 정의 실현에 대한 물음과 오버랩되어 독자의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킨다.

추천사

무엇보다 정신분석학을 이야기에 끌어들였다는 점이 이 소설의 인상을 강렬하게 한다. 정신분석학 같은 전문 영역을 소설에 끌어들일 때 대개 그것은 독자를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용도로 쓰인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불의의 집단에 의해 회유와 기만의 용도로 쓰이며 독자의 뒤통수를 친다. 이 판사 작가에게 이제는 죄와 벌, 역사와 사회에 대한 베른하르트 슐링크적인 전문성을 기대해도 좋겠다. _구효서(소설가)

『보헤미안 랩소디』는 악몽에 관한 소설로 읽힌다. 개인의 꿈이 결핍과 분노를 먹이로 자라나며 악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개인들의 악몽이 모여 세상을 뒤덮는 부패의 그물이 되고, 개인은 다시 그 그물에 포획되어 벗어날 길 없는 악몽을 꾼다. 현실이 너무 잔혹해서 악몽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듯한, 정의라는 말이 너무 높아서 꿈조차 꿀 수 없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_김형경(소설가)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고 무수한 거짓과 싸우며 진실을 밝히려는 주인공을 응원하며 읽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익’에는 아주 민감하고 ‘진실’에는 너무나 둔감한 세태, 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힘은 한없이 커지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개인은 볼품없이 왜소해진 시대상을 판사인 주인공이 겪는 곤경을 통해 더없이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관찰을 통해 그 근원을 깊게 보여주고 있다. _방현석(소설가, 중앙대 교수)

법과 공적 절차가 손쓸 수 없는 불의의 영역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 한 젊은 판사가 있었다. 그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자기를 괴롭히던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낸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주인공이 복수의 길을 향해 갔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복수는 결코 정의에 도달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혹은, 복수 그 자체의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자 함인가. _서영채(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목차

리커버 개정판을 내며

친구의 부음
곧게 뻗은 손가락
명의의 두 얼굴
보헤미안 랩소디
고흐의 자화상
살아 있는 비석
퀸의 카우치
전쟁의 시작
죽음의 이유
사기죄의 성립 요건
무의식 속의 장례식
뮤즈와 데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십시오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만약 그 사건이 지금 일어난다면 나는 그때처럼 쉽게 그들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설사 지더라도 그때처럼 깊이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그때처럼 소설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그때 내가 그들에게 졌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졌기 때문에 세계문학상을 받고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는 것이 반드시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실패와 좌절은 얼마든지 가치 있는 무엇인가로 뒤집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때 체험한 인생의 묘미이자 문학의 묘미였다. (7쪽, 리커버 개정판을 내며)

일기장을 보니 엄마는 당시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의사가 엄마에게 류마티스라고 진단 결과를 고지했을 뿐만 아니라 류마티스가 암보다 무섭다고 말했고, 관절이 뒤틀어진 사진을 보여주었으며, 자신이 류마티스의 최고 권위자인 H대학병원 김모 과장의 수제자라고까지 말했다. 그 후에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구 년 동안이나 그 병원을 다니면서 류마티스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엄마가 류마티스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진료 기록을 떼어보고 담당 의사를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43쪽)

백사자의 설명에 따르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1975년 발표될 당시 여러 모로 획기적인 곡이었다. 최초로 오페라를 록에 접목시켰고,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으며, 한 곡이 삼 분 안팎이던 시절에 나온 최초의 육 분짜리 곡이었다. 발표되자마자 영국 차트에서 구 주 동안 일 위를 했다.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에서도 일 위, 미국에서는 이 위,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서조차 십구 위를 했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오페라 부분을 네 명의 퀸 멤버들이 백 번도 넘게 녹음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른 것처럼 연출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금지곡이었는데 그 무렵 금지가 풀렸다는 점도 그 곡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68쪽)

“하 판사, 판사는 사건이 법정에 왔을 때 재판하는 사람이지, 길거리에 나가서 악당을 물리치는 배트맨이 아니야. 그리고 리베이트, 과잉 진료 같은 문제는 국가 전체적으로 환경이 바뀌어야 손을 볼 수 있는 거지 일개 판사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게다가 성모병원이잖아. 우리나라에서 제일 센 곳이 어딘지 아나? 재벌보다 더 센 데가 어딘지 알아? 종교 단체야. 섣불리 덤볐다가는 하 판사가 다쳐. 다 하 판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95~96쪽)

엄마는 나를 판검사 만드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살던 분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기억을 할 수 있는 가장 오래전부터도, 엄마는 내게 우울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넋두리를 했다. 세상 사람들이 엄마를 업신여긴다고, 엄마가 죽어도 아무도 눈 깜짝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끝은 언제나 “네가 판검사가 되어 엄마의 한을 풀어다오”였다. 줄곧 침울하던 엄마의 표정이 그 말을 할 때만큼은 희망으로 밝아졌다. 마치 추위에 떨며 죽어가던 성냥팔이 소녀가 몸을 데우려고 성냥불을 켠 것 같았다. 엄마는 내게 “너의 총명한 눈빛이 나를 살고 싶게 한다”라고도 했다. 그 말을 할 때 엄마의 기분은 이례적으로 가벼워 보였으나 내 마음은 벽돌을 삼킨 것처럼 무거워졌다. (107쪽)

나는 신해성모병원장 앞으로 편지와 함께 녹취록을 보냈다. 편지에서 나에 대한 진정과 고소는 허위이니 정당한 법적 책임을 묻겠으며, 나는 법률 전문가라서 소송을 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지만 다른 수많은 피해자들은 비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니 가톨릭 병원답게 스스로 진상을 파악해서 피해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배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얼마 후 신해성모병원 행정처장이 나에 대한 고소와 진정을 취하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다만 우동규의 사기 진료 여부는 소속 의사인 우동규가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니 병원 측에서도 증거 없이는 어떻게 하기 어렵다며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조치하겠다고 했다. (139쪽)

“안 그래도 내한테 니 갈아달라고 찾아온 놈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정색을 했다.
“누가?”
“그건 나도 모른다. 오더는 고객한테 다이렉트로 받는 게 아니라서. 나는 못 한다 했지만 내가 아니라도 딴 놈 시킬 수도 있으니까 니가 걱정돼서 함 보자 했다.”
그 누군가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우동규일 것 같았다. 불안보다도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올랐다. 판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내 손으로 그놈을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수를 써야 하는 것인가? 정말로 동혁이에게 그놈을 해치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과연 무탈하게 우동규만 삭제시킬 수 있는 것인가. 그런 비밀이 과연 보장될 것인가. 이제는 정의인지 복수인지, 세상과의 조화인지 자기만족인지를 따지는 것이 한가하게 남의 이야기 할 때나 할 법한 생각으로 느껴졌다. (154~155쪽)

신해지청 검사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건의 진행 경과를 물어보았다.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사건도 아닌데 경찰이 송치하기 전부터 검찰이 특정 사건의 진행 경과를 알아보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검사가 자주 전화하는 것으로 봐서 지청장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신해지청장은 서울 출신이라 신해시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에도 연고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 사건에 관여하려고 한다면 선배 검사의 부탁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해지청장이 고참 부장검사급이기 때문에 지청장보다 선배라면 검사장급의 고위 간부일 터였다. (173쪽)

뜻밖의 무혐의 결정을 받고 보니 황망함, 분함, 좌절감, 무력감 등 온갖 나쁜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따귀라도 맞은 듯한 모멸감도 들었다. 내가 믿었던 이 나라가 초등학생 불량식품 수준의 조악한 논리로 나를 우롱하려 들었다고 느껴졌다. 다른 피해자들도 검찰의 그 황당한 결정에 사기 진료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이전에도 재판을 하면서 기록을 보다 보면 왜 이 사람은 기소를 하지 않았는지 석연치 않은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내가 직접 그 사건으로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생생하게 깨달았다. 검찰의 힘은 죄지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기소권보다 죄 있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불기소권에 있다는 것을. (183쪽)

류마티스 전문의에 따르면 류마티스는 면역 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한 병으로, 아무리 많이 잡아도 유병률이 일 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해시에만 류마티스 환자가 다른 지역의 열 배 이상이나 많은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신해시가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도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피고 우동규가 류마티스가 아닌 환자들에게 류마티스라고 속여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된 직후부터 수많은 환자들이 우동규로부터 류마티스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류마티스 전문의들은 류마티스는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도 두 가지 가설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첫째는 신해시가 신으로부터 축복받은 도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피고 우동규가 처음부터 류마티스가 아니었던 환자들에게 거짓말로 다 나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겠습니까?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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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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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소설 이사부]로 매일신문 주최 제1회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4년 [보헤미안 랩소디]로 제10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판사로 일하고 있으며,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2014년 재출간)를 인연으로 외교부 독도법률자문관으로 근무하였고,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2013)를 펴냈다.
법관이 왜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점에서 법관과 소설가는 닮았다. 양쪽 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텍스트와 기술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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