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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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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상으로부터 밀려나고 단절되었다는 생각으로 외로울 때
식물은 저의 연두를, 저의 연두색 손가락을 건네주었다.”
까칠하지만 여린 시인과 예민하지만 너그러운 식물들의 동거동락(同居同樂)!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등의 시집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이승희 시인이 첫 산문집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를 펴냈다. 이승희 시인은 살고 있던 집에서 식물들이 잘 살아남지 못하자, 식물이 살 수 없는 집에서는 살기 싫어 마당이 있는 구옥으로 이사를 했다. 함께 살던 식물들을 데리고 왔고, 이사 와서는 새로운 식구들을 맞아들여 다양한 식물들과 함께 동거동락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식물을 보살핀다고 생각하지 않고 식물이 자신을 길들인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하는 짝이나 동무’라는 의미에서의 상호 반려 생활 중이다.
마당이 있는 집 안팎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식물들에게 시인은 시를 읽어주고, 라디오를 들려주고, 비가 오면 비를 맞혀주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식물들은 시인에게 호들갑스럽지 않은 위로를 전하고, 슬픔의 모양을 빚어주고, 일상의 평온을 선사한다. 시인은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연두색 얼굴을 한 친구를 하나 사귄다”는 마음으로 식물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는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식물과의 동거 생활을 시인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낸 산문집이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애쓰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시인과 식물들의 동거생활은 그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진정한 반려의 삶이다. 그런 생활에서 직접 길어 올린 추억과 치유의 언어들은 그 자체로 읽는 이의 마음에 슬며시 스며든다. 까칠하지만 여려서 세상과 불화하거나 마음이 상한 날에는 어김없이, 한없이 예민하지만 그만큼 너그러운 식물이 자신의 연두로 시인을 위로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주고받음이 글의 곳곳에서 오롯이 배어나서, 책을 읽다 보면 당장 식물 친구 하나 곁에 두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으로 식물들을 다 내놓고 비 맞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때가 “근래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고백하는 문장들을 읽으면, 비와 식물과 라디오와 시인이 피우는 담배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1부 ‘같이 살아요, 우리’에서는 시인과 식물들의 동거사(史) 혹은 반려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하나하나의 식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시인과 만나고, 관계를 맺고, 추억을 함께해온 순간들이 감성 어린 언어로 그려진다. 라디오, 식물의 연두,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꽃, 동화 같은 밤의 식물들, 비 오는 날의 마당 같은 심상들이 섬세한 언어로 쓰인 문장 사이사이로 흐르며 서정적인 감성을 양껏 불러일으킨다. 2부 ‘내가 편애하는 식물’에서는 불두화와 수국에서부터 대나무까지 시인과 특별한 인연이 닿아 ‘편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식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꽃과 나무, 식물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한 방법을 배울 수 있다. 3부 ‘시 속의 식물 이야기’는 자주 식물을 소재로 시를 써온 시인이 자신의 반려 식물들과 살다 떠올린 착상으로 쓰인 시를 직접 들려준다. 식물이 불러일으키는 감흥과 그것이 시로 화하는 아름다운 창조의 순간이 한데 어우러진 산문들을 만날 수 있다.
책에서는 극락조화, 다알리아, 달개비, 앵두나무, 아이비, 여인초, 보스톤고사리, 몬스테라, 물옥잠, 채송화, 작약, 백합, 형광스킨답서스 등 32종의 식물들이 소개되는데, 각각의 식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올봄, 새로운 식물 친구 하나를 반려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는 고독한 시인과 반려식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곱디고운 ‘결’,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깨끗하고 온화한 고요와 사랑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문들이 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목차

프롤로그

1부 같이 살아요, 우리
데려온다는 말
식물은 위대한 건축가
식물과 라디오 사이를 뛰어다니면 알게 되는 것들
어느 봄날, 나는 앵두와 결혼했다
나는 외로우면 꽃집에 간다
식물은 내 삶의 무늬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꽃밭’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숨을 곳이 여름밖에 없다면 믿을 수 있겠어?
언제나 따뜻한 쪽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본 적이 있다
난 아직도 슬플 땐 잠을 잔다
꽃보다 연두지, 그렇고말고
아버지는 백합을 사랑하셨고, 어머니는 작약 같으셨다
여름에 겨울을 생각하는 일이란
나의 식물들은 어쩌다가 나를 만나서
아이비, 우리들의 짜식이
꽃 트럭을 타고 어디든 가고 싶어서
춤을 추기로 해요. 미끄러지자고 손을 잡고 울어요. 내일이 없어 즐거운 방향들
사이를 사는 일
사람들은 왜 담장 아래에 꽃을 심을까
파꽃 필 때 나는 환상이다
그건 다 여름이라 그래요
시 읽어주는 밤
비 오는 날 빗방울이 유서처럼 읽힌다면
너무 애쓰지 마, 지치면 약도 없어
내가 기다린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
사물과 식물
밤의 식물들이 쓰는 동화
밤의 공항
꽃을 피우는 괴로움에 대하여

2부 내가 편애하는 식물
두 사람의 옆얼굴, 불두화와 수국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꿀 때 흑법사를 보았다
나는 네가 자꾸 좋은 걸 어쩌지 못해, 채송화
내게 없는 ‘명랑’을 이해하기 위하여, 형광덴드롱과 형광스킨답서스
강아지 같은 살가움, 보스톤고사리
사는 게 그런 건 아니지, 동백나무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를 사랑해, 극락조화와 여인초
나의 비밀스런 친구, 올리브나무
영원한 친구처럼, 벤자민고무나무와 아이비
큰누나를 닮은 꽃, 다알리아
그래, 마디의 힘으로 사는 거다, 대나무

3부 시 속의 식물 이야기
해국, 먼 곳부터 따뜻해지는 마음
백합, 콱 죽고 싶어지는 행복한 마음이야
고사리, 나 없이도 천국인 세상에서 나는
고무나무, 근거는 없지만 믿음이 가는 그런 친구
올리브나무, 멀리서 오는 엽서를 받는 기분
몬스테라, 귀여운 나의 녹색 괴물 ―너를 사랑해
형광덴드롱(필로덴드론 레몬라임), 일요일 그리고 또 일요일이 계속될 것 같은
코로키아, 슬픔의 모양이 있다면 이와 같을지도

본문중에서

식물은 숨어 있기 좋은 방이었다.
● 첫 문장

그런 날 작은 화분에 담긴 더 작은 식물 하나를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몇몇은 죽었고, 몇몇은 아직 내 곁에 남았다. 내 기억 속의 식물들은 대부분 그렇게 내 생의 기록과 같다. 하나의 식물 속에는 그 식물을 데려올 때의 마음과 데려오려고 마음먹게 한 어떤 사연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키우는 모든 식물들은 대부분 어느 날의 내 마음들이다. _6쪽

여기에 더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일요일 한낮에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식물들과 함께 라디오를 들을 때다. 거실 문을 열면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데, 그곳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물론 비까지 와준다면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시간이 된다. 식물이 담배 냄새는 좀 싫어라 하겠지만 뭐 이건 어쩔 수 없다. 같이 살면 싫어도 좀 참아줄 것도 생기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도 식물한테 그렇게 참아주는 것도 있으니까. _26쪽

몇 년 전 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전까지 살고 있던 집에서는 식물이 살아남지 못했다. 햇살도 없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집이었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으나, 햇살과 바람 없이 그나마 살 수 있는 식물들조차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식물이 살 수 없는 집에서 살기 싫었다. 그냥 좀 슬프기도 하고, 그럼 난 누구랑 살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무조건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고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가 만난 집이 지금의 집이다. _32쪽

생각해보면 식물과의 교감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소함이 모여 생활을 이루는 것처럼, 조금씩 쓸쓸한 마음이 모여 어딘가에 닿는 간절함이 되는 것처럼, 식물과 나는 아무 말이 없어도 혹은 함께 죽자고 말하지 않았어도 날마다 보내는 사소함이 꽃을 피우고 마음 따뜻해지는 결이 된다. ‘결’이라는 말은 얼룩이나 흔적이 담아낼 수 없는 고요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온도 같아서 좋다. _45쪽

식물의 연두색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그게 어떻게 보면 오래 부딪힌 흔적이 만들어내는 마음 같고, 언제나 따뜻한 쪽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한 번쯤은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걸어가보고 싶다. 또 다른 폐허가 있을지라도 원망하지 않을 마음이 있으니 괜찮다. _61쪽

파는 자라면서 빈속을 빈 것으로 꽉꽉 채워가고 빈속의 힘으로 비로소 파꽃을 밀어낸다. 파꽃이 피는 것은 그렇게 빈 것이 밀어내는 힘 덕분이다. 내가 사랑한 만큼의 절반도 세상이 날 사랑하지 않아서 쓸쓸할 때 나는 파꽃 앞에 서 있다. _106쪽

밤의 식물들은 또 다른 근사함이 있다. 신비롭다. 소설적이거나 시적이기보다는 확실히 동화적이다. 특히, 겨울이 다가올 무렵이면 월동이 가능한 몇 나무들을 제외하곤 모든 화분들을 집 안으로 들여오게 되는데, 요맘때 집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좁은 공간 탓에 두세 줄로 늘어선 식물들을 보며 샛길을 걷듯 요리조리 내 몸을 돌려서 가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밤이 되면 비로소 환상이 시작된다. _133쪽

‘명랑’이라는 단어는 사실 나와 아주 먼 말이다. 너무 멀어서 지금도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이들 삼 형제를 통해 만나는 이런 명랑은 나의 우울을 달래주는 더없이 가까운 친구이다. 특히, 스킨 종류와 달리 잎사귀가 길어지는 덴드롱은 어떤 무늬도 없이 오직 연한 연두로만 길어지는데 한번 만나면 절대 헤어지지 못할 반려식물이다. _158쪽

밤새 글쓰기 작업을 하고 아침이 밝아올 무렵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바라보는 식물들, ‘너희들도 밤새 이렇게 깨어 있었구나’ 싶어서 그 연대감에 울컥한다.
‘거지 같은 세상 망해버려라’ 하고 저주를 퍼붓던 시절에도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봤을 테고, 며칠이고 잠만 자는 나의 게으름도 묵묵히 지켜봤을 테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거기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니, 어쩌면 이 식물들이 고스란히 나를 증거하는 알리바이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나이테 같은 무늬가 생겼을까 싶은 것이다. _177쪽

몬스테라를 보면 가끔 슬픈 짐승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기린처럼.
이제 지구에 살지 않는 공룡 같은.
난 왜 그런 아이들이 이렇게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몬스테라는 끝없이 자라고, 기린도 날마다 자라고, 나는 날마다 더 높은 지붕을 올리면서 살아가는….
슬프고 행복한 꿈. 그런 거. _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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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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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시와 함께 동시를 쓰고 있으며, 동화를 통해 아이들과의 교감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집으로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장편동화로 [살구는 왜 노랗게 익는 걸까]와 [어린이를 위한 약속]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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