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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 세상을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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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김마리아·강주룡·정정화·박진홍·박자혜·김옥련·정칠성·
남자현·안경신·김알렉산드라·권기옥·김명시·박차정·이화림”

기록에서 사라지고, 기억에서 잊힌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삶을 복원하다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 화백과 김이경 작가가 3·1절과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남자현, 정칠성, 이화림, 박자혜, 김옥련 등 여성독립운동가 14명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복원해냈다. 노동운동가·간호사·비행조종사·임시정부의 주요인사·무장투쟁운동가 등으로 활약했으나 역사 속에서 단 하나의 그림이나 글로도 남지 못했던 여성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려준다. 이 책의 여성들은 남성의 ‘조력자’가 아닌 투쟁가로서 각 분야에서 남성들보다 더 담대하고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던 인물들이다. 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내기 위해 윤 화백과 김 작가는 수많은 논문과 단행본, 그리고 증언과 회고록 등의 1차 자료를 고증했다. 각 꼭지마다 화백 윤석남이 인물들을 재해석해 전신초상, 상반신 채색초상, 연필 드로잉 초상으로 생생하게 그려냈으며, 작가 김이경은 1인칭·3인칭 시점, 인터뷰, 다큐멘터리, 편지 형식 등 여러 문학적 기법을 활용해 인물별 이야기를 덧붙여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채로운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나라를 빼앗긴 절망에 무너지고,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을 꿈꾸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온몸이 짓이겨지는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청춘을 보내고, 감시의 눈을 피해 국경을 넘고, 펜을 쥐던 손으로 총을 들고,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소중한 아이를 잃고, 그렇게 싸우고도 자랑으로 기억되기는커녕 자취도 없이 잊힌 여성들.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의 삶을 후회하거나 한탄하지 않았던 사람들. 강인하고 올곧은 그들의 인생을 이 책에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 내 일임을 깨달았다.”_8쪽

“팔순을 넘긴 화백의 혼신,
여성 서사를 오롯이 전하고픈 작가의 간절함”

그림과 활자 너머 살아 숨 쉬는
100년 전 ‘언니들의 정신’


페미니스트 1세대 화가로서 의롭고 강인한 여성을 탐구하고 그려왔던 윤석남 화백. 그는 2010년 이후 한국화 초상 작업에 몰두하면서, 조선시대에 제대로 된 여성 초상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많은 남성 양반의 초상화와 달리 여성 초상화는 조선이 망할 무렵 작품 두 점이 있었지만 그것 또한 주인공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이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 탓이 컸겠지만 그럼에도 화백은 ‘여자들이 이렇게나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구나’ 하는 쓰라린 자각과 함께 다음 작업은 ‘여성독립운동가’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팔순이 넘는 나이의 화백은 그렇게 혼신을 다해 높이 2미터가 넘는 종이 위에 역작을 그려냈다. 이 책에는 윤 화백의 개인전에서 공개된 그 여성독립운동가 연작들이 그대로 수록되었다. 화백의 초상에 글을 입혀 서사를 불어넣은 것은 김이경 작가였다. 《한겨레21》에 〈여자의 문장〉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쓰고 있는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한국 근현대사 공부를 했지만 오랜 시간 역사 공부를 떠나 있었기에, 윤 화백의 프로젝트 제안이 한편으로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아요. 내가 그 시절에 살았다면 친일까지는 아니라도 나라의 상황을 외면하고 살았을 것 같거든. 그런데 이 여자들은 정말 대단하잖아. 정말 대단해! 그래서 더욱 이 이야기를 끝내야 해요”라고 말하는 윤 화백의 강렬한 한마디에 다시 자료들을 읽고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100년 전 여성들의 투쟁사가 자신을 무겁게 짓눌러 괴로울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언니들의 정신’에 의지해 꿋꿋이 버텼다. ‘여성독립운동가’라는 명명 속에 얼마나 다양한 고민과 경험, 인생 역정이 담겨 있는지 전하고 싶었으며, ‘독립운동사’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여성들의 삶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오롯이 느끼게 하고픈 마음으로 글을 썼다. 이 책은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담긴 결과물이다.

“내가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이란 오로지 조선 여성을 위해서이지만 글로써 발표한 것이나 말로써 부르짖은 것이나 모두 조선의 여성에게 각성하라는, 현실을 잘 파악하는 여성이 되라는 것뿐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가장 현실을 잘 알고 현실을 똑바로 보는 사람이 되라는 것뿐이었지요.”_정칠성의 말

“어린 마음이었지만 항일투쟁에는 무조건이었습니다. 감옥이 아니라 죽음도 두렵지 않았지요.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는 게 참으로 원통했습니다. 그때 하늘을 날며 왜놈들을 쉽게 쳐부술 수 있는 비행사가 되려고 마음을 다졌지요.”_권기옥의 말

“여자들은 잃을 게 없으니 무서울 것도 없지요”

당당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며
세상에 지지 않은 여성 혁명가들


조선의 여성 혁명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며 각 분야에서 전문가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여성의 지위가 열악하고 배움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 속에서 맨몸으로 맞서 싸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쿄에서 2·8독립선언문을 국내로 들여왔던 인물이자 여성독립운동 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해 조국 광복의 대업을 위해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던 김마리아, 을밀대 지붕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을 했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 임시정부의 자금 조달이라는 주요 업무를 맡아 국내에서 상하이를 수시로 오갔던 임정 요원 정정화, 여성의 몸으로 지하조직활동을 하며 때론 남장을 하고 조선의용군 활동을 했던 박진홍, 궁녀였으나 일제에 의해 궁에서 내쫓긴 뒤 간호사가 되어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 시위를 벌이고 나석주의 폭탄 테러 거사에 길을 안내하기도 했던 박자혜, 제주의 해녀로서 맨몸으로 독립투쟁에 앞섰던 김옥련, 조선 최고의 기생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해 활약했던 ‘사상기생’ 정칠성. 이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나라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 자리에 서서 시대와 맞서 싸운 투사들이었다.
2부에서는 무장투쟁으로 남성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과격하게 뛰어든 여성 영웅들을 조명한다. 서로군정서와 의열단 등에서 활동하며 여러 번 혈서를 쓰기도 했던 항일무장투쟁 운동가 남자현, 애국부인회·광복군 결사대로 활동하며 임신한 몸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작전을 계획했던 안경신, 조선인 최초로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가입하고 이동휘 등과 조선인적위대를 창설해 일본군·백위군 연합과 맞서 싸웠던 김 알렉산드라, 임시정부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비행조종사가 되어 일왕의 머리에 폭탄을 떨어뜨리고자 했던 최초의 여성 비행조종사 권기옥, 홍남표·조봉암 등과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뒤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여성부대 지휘관으로 최전선에서 전장을 누볐던 장군 김명시, 〈개구리 소래〉 〈철야〉 등 독립운동에 관한 시와 소설을 발표하면서도 조선공산당재건동맹과 의열단,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으로 활동하며 전장에서 싸웠던 박차정, 춘실·동해·화림 세 이름으로 살며 한인애국단 단원으로 김구와 이봉창을 도와 도시락 폭탄 거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조선의용대 소속으로 타이항산에서 적군과 교전하기도 하며 때론 의무병으로 부상자 치료에도 최선을 다했던 투사 이화림. 이들은 무장투쟁운동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여성 혁명가들이었다.

“10년의 감옥 생활을 빼면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라니까요. 그래서 이따금씩 꿈을 그리다가 현실 앞에 깜짝 놀라곤 해요. 가정은 민주주의적이긴 합니다. 서로 다 혁명운동에 이해가 있지요. 그러나 집사람도 봉건의식이 조금은 남아 있어요. 내가 무얼 쓰면 여자가 저런 걸 쓴다고 퍽 신기하게 여겨요.”_박진홍의 말

“2300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해 내 한 몸뚱이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 중 가장 큰 지식은, 대중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란 겁니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 위에 올라왔습니다. 나는 자본가의 착취에 신음하는 근로대중을 대표해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_강주룡의 말

“나도 이 나라의 당당한 백성이다
나라를 찾는 데 여성, 남성의 차이는 없다”

한국 여성주의 운동에서 주목해야 할
최초의 페미니스트들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안윤옥’이 남자현을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이들이 남자현을 조금 ‘특별한’ 여성으로 생각할 뿐 독립운동가라 하면 으레 남성 영웅들만 떠올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라가 망할 때 슬퍼하고 분노한 것은 단지 남성들만이 아니었다. 조선의 여성들 또한 ‘나도 사람이다. 나도 이 나라의 당당한 백성이다. 나라를 찾는 데 여성, 남성의 차이는 없다’ 하는 깨달음에서 조국의 독립을 꿈꾸었으며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을 당당히 찾는 것’, 이것이 바로 총을 들고 일제에 대항한 여성들의 목표였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태어난 배경도, 자라온 환경도, 직업도 제각각이지만 조국 해방과 여성 해방이라는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 자기 삶을 남김없이 희생했다. 여성의 몸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모진 고문에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이들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자기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비록 역사는 여성 혁명가들을 지워버렸지만 이들의 담대한 숨결은 세상 곳곳에 작은 불씨로 남아 여성 운동의 세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물결 위에 있는 지금, 이 100년 전의 여성들을 통해 여성 해방의 역사가 어떤 맥락에서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 여성주의 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해답을 찾아내려는 시도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여기 그려진 14인의 초상을 보며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지나간 과거가 아님을, 지금 여기의 뜨거움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선 여성은 오랫동안 전통적 속박에 의한 가정의 노예일 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주의 약탈시장의 상품으로 임금노동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봉건제도의 속박, 식민지적 박해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또 일본제국주의가 타도된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혁명이 정치·경제·사회 등 각 방면에서 진정한 자유·평등의 혁명이 아니라면 우리는 철저한 해방을 얻지 못한다.”_박차정의 말

“내 가진 돈은 모두 249원 80전이다. 그중 200원은 조선이 독립하는 날 축하금으로 바치거라. 만일 네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자손에게 똑같이 유언하여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해라. 남은 돈의 절반은 손자를 대학까지 공부시키는 데 쓰고 나머지 반은 친정의 종손을 찾아 공부시키도록 해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_남자현의 말

목차

프롤로그

1부 세상에 외치다
너는 영웅이다-김마리아
을밀대에서 외치다-강주룡
담대한 여인-정정화
천재, 혁명을 꿈꾸다-박진홍
과격한 간호사-박자혜
성난 파도로 일어서다-김옥련
다큐멘터리 ‘잊힌 혁명가를 찾아서’-정칠성

2부 전선에 서다
혈서-남자현
제국을 향해 폭탄을 던지다-안경신
시베리아의 붉은 전설-김알렉산드라
조국을 위해 날다-권기옥
장군을 위하여-김명시
펜 대신 총을 들고-박차정
춘실, 동해, 화림 세 이름을 살다-이화림

참고문헌
미주

본문중에서

내 한목숨 끊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평원공장의 횡포를 알릴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싶어, 바로 광목 한 필을 사 가지고 평양 사람이 다 아는 을밀대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목 매 죽을 생각으로 옆에 있는 벚나무 가지에 광목을 걸었는데, 가만 생각하니 내가 그대로 죽으면 젊은 과부년이 뭔 짓을 하다가 세상 부끄러워 죽었다고 오해를 받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고무공장 다니는 여자라 면 흰 눈으로 보는 세상인데. 그래서 기왕 죽을 바에야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서 공장의 횡포를 고발하고 시원하게 죽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 p.47)

정화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상하이에는 외국 유학을 하고, 단체를 조직하고, 심지어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정화는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했지만 자신에겐 그들과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길에 최선을 다했다. 독립자금을 위해 몰래 국경을 넘는 일이나 부엌에서 임정 어른들의 밥을 짓는 일이나 그에게는 똑같은 의미였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내가 할 수 있으니 한다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pp.67~68)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제 한 몸을 불살랐으나 결국 얻지 못하고 찾지 못한 채 중원에 묻힌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대신해 조국에 가서 보고해야만 한다. 싸웠노라고, 조국을 위해 싸웠노라고. 나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 p.73)

3월 6일 오후 6시, 박자혜는 함께 근무하는 조선인 간호사들을 옥상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동참하자고 제안했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여자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주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자혜는 사람을 살리는 우리가 나라 살리는 일을 왜 못하겠느냐고 역설했다. 간호사 네 명이 그와 뜻을 같이했다. 이 모임을 계기로 자혜는 동지들을 규합해 ‘간우회’라 는 간호사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열변가로 유명한 의사 김형익과 긴밀히 연락하며, 다른 병원 의료인들과의 항일 동맹파업을 꾀했다.
(/ pp.106~107)

머리를 잡아채고 코에 물을 붓는데 처음엔 바닷속에서 물건 캐오는 시간 정도만 참으면 되겠지 생각했거든. 아니야, 순진한 생각이더라고. 그래도 견뎠어. 주모자를 불라고 하는데 우린 아무 말도 안 했어. 자칫하면 선생님들이 고초를 겪을 테니까. 우리한테 선생님들은 부모보다 더한 분이야. 부모는 어디 사상이나 공부에 대해서 얘기해주나? 다들 여자는 공부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분들이 우리를 공부시키고 눈을 뜨게 해줬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참았지. 나중에는 일제 경찰들도 우리 해녀들의 강인한 기질과 단결심에 탄복을 하더라고.
(/ pp.130~131)

정칠성! 정말 멋진 친구지요. 당당하고 단단하고 그러면서도 속은 한없이 부드럽고. 우리가 함께하기 시작한 건 1924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회운동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결성하면서예요. 여성동우회는 처음으로 여성해방을 전면에 내건 단체라 초기에는 회원 확대에 애를 먹었소. … 칠성 씨는 자기가 활동하던 대구의 청년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운동으로 확대해갔어요. 지식인보다 일반 부인들을 조직하는 데 더 힘을 썼고,인천노총에서 주세죽이랑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데도 앞장섰지.
(/ p.146)

이듬해 봄, 내 생애 마지막 거사를 계획하였다. 3월 1일 신경에서 만주국 건국기념행사가 열릴 때, 관동군사령관이자 전권대사인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기로 한 것이다. 1월 20일 하얼빈에서 나와 동지들은 몇몇 중국인과 만나 무기조달 방법을 의논하였다. 그리하여 2월 27일 오후에 중국동지들이 과일상자에 권총 한 자루와 탄환, 폭탄 두 개를 준비해 신호를 보내면 내가 거지로 변장하여 옮기기로 하였다. 2월 22일 모든 준비를 끝낸 뒤, 나는 홀로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무토와 함께 죽는 일만 남았으니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남긴 것이다.
(/ pp.172~173)

‘여자 폭탄범’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9월 29일 항소심이 열렸을 때는 경신을 보려는 사람들로 방청석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 속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어머니도 있었다. 어머니는 젖먹이를 안고 법정으로 들어서는 초췌한 딸의 모습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방청석의 어머니를 본 순간, 경신의 마음도 출렁였다. 하지만 경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재판정은 또 다른 투쟁의 장이었다.
… 방청석의 시선이 전부 경신에게로 향했다. 경신은 당당하게 답했다. “내가 하지 아니한 일을 하였다니까 불만이 아니겠는가?”
(/ p.194)

“나는 전 세계 인류의 자유와 나를 처형하는 너희의 자유를 위해 나 자신을 바친다. 나는 대한국 여자다. 내 죽음으로 인해 전 세계의 사회당은 더욱 힘써 싸울 것이며, 내가 가장 경애하는 2000만 동포도 머지않아 자유와 독립의 영광을 얻을 것이다. 내 영혼은 이를 믿고 바라노라.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인민이여! 고을마다 공산주의의 씨앗이 자라게 하소서. 기적의 꽃이 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꽃이 모든 장애와 바람과 폭풍우를 이겨내고 조선에 자유와 독립을 이루게 하소서. 나는 온 세상 노동자들의 자유를 위해 이렇게 죽어갑니다.”
(/ pp.216~217)

세간에서는 나를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고 한다. 찬사라고 하는 말이지만 나는 별로 좋지 않다. 내가 비행기를 조종한 것은 ‘최초’라는 타이틀이나 ‘여성 비행사’라는 이름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라 조국의 해방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비록 일제의 머리 위에 폭탄을 투하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어도, 하늘을 날며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소망은 이루었으니 내 삶에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 pp.238~239)

그날부터 나는 장군 휘하에서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여성부대 지휘관을 맡아 최전선에서 선전전을 펼쳤습니다. 적의 진지 바로 앞에까지 가서 일본말로 조선인 학병과 일본인 사병들을 상대로 선무공작을 하는,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었지요. 또한 1942년 결성된 조선독립동맹의 베이징·톈진 책임자로 허정숙과 여성동맹을 꾸리기도 하고 조선의용군을 모집하는 임무도 맡았습니다. … 다들 얼마나 열심인지, 사방 담벼락에 우리 병사들이 우리말로 쓴 항일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먼 중국 땅에서 우리말 구호를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지요.
(/ p.252)

그해 2월, 나는 동지들과 광시성(광서성) 곤륜관 전투에 참가했다. 일제의 병력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대규모였고 화력도 엄청났다. 그러나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총격전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총상을 입은 것이다. 동지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상처는 깊었다. 나는 회복하는 대로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 길 꿈꿨으나 다시는 전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 p.273)

거사 당일, 이봉창은 마차를 타고 경시청 앞을 지나는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불행히 다른 마차에 맞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고, 중국 각지의 주요 신문들도 의거 소식을 앞다투어 전했다. 한인애국단은 기세를 몰아 새로운 작전을 세웠다. 윤봉길과 나는 일본인 부부로 위장해 현장을 미리 답사했다. 거사 당일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가 도시락과 물병으로 위장한 폭탄을 들고 입장하는 것을 공원 입구에서 몰래 지켜보았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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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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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대학 강사를 잠시 하다 학계를 떠난 뒤엔 도서관에서 혼자 ‘죽음, 시간, 여성’ 등을 주제로 공부했다. 영시를 읽고 싶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문과에 편입해 공부했고, 우연히 인연이 닿은 글두레 독서회에서 26년째 강사를 하고 있다. 뒤늦게 출판사에 취직해 인문서부터 아동물까지 다양한 책을 만들었으며, 책을 주제로 한 소설집 《살아 있는 도서관》을 내면서 작가로 전향했다. 쓴 책으로는 《마녀의 독서처방》 《마녀의 연쇄 독서》 《책 먹는 법》 《시의 문장들》 《시 읽는 법》을 비롯해 어린이 그림책 《인사동 가는 길》 《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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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주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여성의 삶, 여성의 현실에 파고드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으며 허난설헌, 이매창 등 여성 문인을 소재로 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네덜란드, 일본 등 해외에도 컬렉션이 마련되어 있으며 시드니 비엔날레를 비롯한 해외 전시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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