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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멧 : 피오나 모즐리 장편소설

원제 : El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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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스물아홉 살에 데뷔작으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
“피오나 모즐리는 문학계의 대사건이다.” _NPR

2017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가 발표되었을 때, 조지 손더스, 폴 오스터, 앨리 스미스 같은 거장들 사이에 낯선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피오나 모즐리. 그리고 출간을 앞둔 그의 첫 장편소설 『엘멧』. 당시 스물아홉 살이었던 피오나 모즐리는 런던의 서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모즐리에게 맨부커상 후보 지명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놀란 것은 작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문학계 역시 “후보 리스트의 예상 가능한 골리앗들 사이에 등장한 다윗”(〈이브닝 스탠더드〉)이라는 평과 함께 이 젊은 재능의 깜짝 등장에 즉각 주목했다. 외딴 숲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어느 기이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엘멧』은 거침없는 필치와 독특한 문체, 서정성과 폭력성를 기묘하게 결합한 대범하고 독창적인 서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놀라운 데뷔작은 2018년 서머싯 몸 어워드와 폴라리 퍼스트 북 프라이즈를 수상했으며 선데이 타임스 젊은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여성소설상, 국제 딜런 토머스 상 후보에도 올랐다.

“한때는 카운티 전체가 삼림지대였고, 바람이 불 때면 오래된 숲의 유령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흙속에는 폭포처럼 쏟아져나온 뒤 부식되었다가 어느 순간 다시 한번 형태를 갖추고 덤불숲 위로 솟아나 우리의 삶 속으로 돌아올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_본문 14쪽

소설의 제목인 ‘엘멧’은 5세기와 7세기 사이에 잉글랜드에 실제로 존재했던 최후의 독립 켈트 왕국으로, 후에 요크셔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웨스트요크셔를 비롯한 여러 주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춥고 황야가 많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피오나 모즐리는 그 황량한 땅 위에 존재했다 스러진 것들에 대해, 사라진 삶과 삶의 방식들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고, 그것이 소설 『엘멧』의 씨앗이 되었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싹을 틔운 것은 런던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였다. 요크에 있는 부모님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창밖으로 요크셔의 익숙한 풍경을 보며, 모즐리는 소설의 첫 문장을 떠올렸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소설만큼은 꼭 완성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논문을 준비하느라 온전히 집필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통근길이나 이동중에 틈틈이 휴대폰으로 소설을 썼다. 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때로는 희망과 열정 속에서, 때로는 회의와 좌절 속에서 이야기는 한 줄 한 줄 견고하게 쌓여갔다. 그리고 2017년, 작가의 마음속 깊이 살아 숨쉬던 이야기는 마침내 “형태를 갖추고 덤불숲 위로 솟아나 우리의 삶 속”에 가지를 뻗고 잎을 펼치게 되었다.

출판사 서평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의 한구석,
연약한 희망으로 위태롭게 쌓아올린
어느 가족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유토피아

열네 살 소년 대니얼은 정처 없이 철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사라진 누나 캐시를 찾는 것. 소년은 어쩌다 누나를 잃고 홀로 길 위를 떠돌게 되었는가, 소설은 그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대니얼의 일인칭시점에서 펼쳐진다.

잉글랜드 요크셔 지방의 작은 숲속에서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세 사람, 대니얼과 그의 누나 캐시와 아버지 존. 이들은 남매의 아버지가 직접 지은 숲속의 나무 집에서 살고 있다. 식량은 주로 집 근처의 잡목림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마련하고, 가끔 마을에 내려가 필요한 걸 구해오는 정도가 ‘사회’와의 거의 유일한 접점이다. 거대한 몸집과 초인적인 힘 때문에 ‘거인’이라 불리는 아버지는 때로 며칠씩 집을 비우고 마을로 내려가, 마치 투견처럼 맨주먹으로 내기 싸움을 해서 돈을 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캐시와 대니얼에게는 누구보다 듬직하고 따뜻한 ‘아빠’이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수호자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숲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남매가 더 어렸을 때는 마을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살았고, 학교에도 다녔다. 하지만 가끔씩 집에 불쑥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던 어머니는 어느 날 영영 돌아오지 않고, 얼마 뒤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난다. 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이 드세고 ‘여자아이답지 않은’ 캐시를 잔인하게 괴롭힌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숲속의 작은 땅에 직접 집을 짓고 아이들을 데려가 살기로 한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작은 세상에서 자라난 대니얼과 캐시는 보편적인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 부드럽고 섬세한 성격의 대니얼과 아버지를 닮아 거칠고 냉정한 캐시는 바깥세상의 눈으로 보면 성역할이 뒤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남매에게 그것은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니얼이 머리를 기르고 배가 드러나는 짧은 티셔츠를 입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세상의 규범 밖에 존재하는 그 단란하고 자족적인 공동체에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온다. 프라이스라는 악명 높은 지주로, 일대의 엄청난 토지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대니얼 가족이 집을 지은 숲도 서류상으로는 그의 땅이다. 과거에 아버지 존을 해결사로 고용했던 프라이스는 존이 다시 자신을 위해 일해주지 않으면 그들을 강제로 내쫓겠다고 협박한다. 존은 프라이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마을로 내려가, 지주와 농장주에게 시달리고 있던 세입자와 노동자들을 설득해 저항 세력을 결집한다. 이들은 단체로 집세 납부를 거부하고 파업을 하며 프라이스와 다른 지주들에게 저항한다. 그렇게 마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물리적인 위협과 폭력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과정에서 남매는 숲속 세상에서 벗어나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캐시는 자신이 결코 아버지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강한 정신과 마음을 가졌다 해도 결국 ‘여성의 몸’을 갖고 있기에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분노에 휩싸인다. 그리고 위협의 칼날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캐시는 깨닫는다. 그녀가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거대한 분노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결국에는 그 핏빛 불길이 자신을 태우고 하나의 세계를 완전히 집어삼켜 잿더미로 만든다 할지라도.

동화적인 풍경 위에 덧칠한 핏빛 리얼리즘,
서서히 타오르다 한순간에 폭발하는 경이로운 서사의 힘,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문학적 영토다.

『엘멧』을 한마디로 요약하거나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숲속에 손수 집을 짓고 사냥과 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회적 규범 바깥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가족처럼 이 소설 역시 하나의 범주로 분류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엘멧』은 거칠지만 단단한 유대감으로 결속된 어느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혼란과 갈등 속에서 세상의 무정함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십대 아이들의 성장소설이자,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불합리한 소유권 개념과 사회 경제적 약자가 처한 현실을 꼬집는 사회소설이자 폭력과 긴장감으로 충만한 고딕소설이며, 결국에는 문명과 자연, 선과 악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일종의 우화이다. 무엇보다 육체적, 자연적 힘의 극단을 형상화한 듯한 주인공 아버지와 자본주의적 권력의 극단을 상징하는 지주의 대립을 통해 드러나는 신화적이고 우화적인 특질은, 이 이야기를 시간의 테두리 너머에 위치시키며 작품에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부여한다. 소설이 시대성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자동차나 텔레비전 같은 물건을 통해 배경이 현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가 백 년 전, 심지어 중세시대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서사는 무리 없이 성립한다.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란다. 이 서류에 적힌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다만 살아 숨쉬는 땅을, 변화하고 요동치고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드는 땅을 사람이 종이 한 장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그리고 그 사람이 그 땅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혹은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그 모든 것이 종이 한 장에 달렸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는 거다.”
_본문 194쪽

『엘멧』의 탈규범적이고 확장적인 성격은 작품의 주제적 측면에도 적용된다. 작가는 다양한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을 통해 정상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관습에 의해 정당화되는 규범과 규약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이 자연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여성성과 남성성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문명이란 어떻게 자유인 동시에 속박이 될 수 있는가. 또한 작가는 오래전 사라진 왕국의 터 위에 건설된 ‘자본의 왕국’을 내내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과거를 미화하거나 과거의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또다른 형태의 폭력과 억압이 존재했음을 잊지 않고 지적한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진정으로 성취하려는 것은 시대적 한계 너머에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배제된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그 세계는 모순과 불합리로 가득하지만, 그곳에 첫 작품을 내놓는 젊은 작가의 시선은 냉정하기보다는 뜨겁고 절박하다. 특히 비정한 세상을 향한 분노의 외침처럼, 한편으로는 슬픔에 찬 울음처럼 느껴지는 소설의 결말부는 꺼지지 않는 거대한 불꽃이 되어 읽는 이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활활 타오른다.

추천사

구병모(소설가)
숲의 노래에서 화염의 외침으로. 소설을 읽고 나서의 충격을 한 줄로 거칠게 요약해본다. 무소유를 실천하고 자연을 벗삼아 최소한으로 살아가는 친환경 가족의 전원시 같은 느낌으로 뻗어나가던 묘사의 줄기는, 1장이 끝나기 전부터 불길한 예감과 결합하여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언제라도 폭발할 준비가 된 긴장감이 유리관 안에서 끓어오르며 점화를 기다리고, 지금인가? 아니, 바로 다음! 하면서 심장과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타인의 규정에 맞지 않고 사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제 본연의 모습, 하나의 주어가 치밀한 목적어와 구체적인 부사어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이 살아가는 일의 지난함과 엄혹함을 화염의 언어로 보여준다. 피와 분노로 장전한 탄창이 꿈틀거리다가 독자의 심장을 과녁 삼은 발포의 순간에 맞이하는 기이하고도 잔혹한 해방감을, 당신도 알게 되기 바란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으스스하고 아름다운 수많은 장면들, 그 서정성과 폭력성의 농밀한 결합이 코맥 매카시를 떠오르게 한다.

선데이 타임스
모즐리는 재능 있는 작가다. 『엘멧』은 목가시, 정치적인 폭로 소설, 단란한 가족 서사극, 공포물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읽다보면 전통적인 동화가 어느새 갱스터 영화로 바뀐다. 『헨젤과 그레텔』이 영화 〈대부〉와 만난 것 같은 느낌.

스타일리스트
모즐리는 맨부커상의 깜짝 스타다. 그리고 스타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 거친 풍경과 폭력, 고조된 감정으로 가득한 『엘멧』은 완전히 색다른 목소리로 쓰인 『폭풍의 언덕』처럼 읽힌다. 이 데뷔작은 대단한 무언가의 시작이다.

북리스트
초자연적일 만큼 뛰어난 피오나 모즐리의 데뷔작은 한 가족에 대한 지극히 매혹적이면서도 불길한 이야기다. 그들은 삶의 본질로 돌아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풍부함과 난관을 포용하려 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선과 악의 끝없는 뒤틀림 속에 붙잡혀 있다. 정결하고 탁월하며 가슴을 헤집는 문장으로 써내려간 이 긴장감 넘치고 비극적인 가족사는 사회 비판을 불씨로 삼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으로 불길을 키우며 활활 타오른다.

커커스 리뷰
동화와 성장소설과 비극적인 복수극을 문학적으로 결합시킨 작품. 모즐리의 데뷔작은 현대 영국을 배경으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그린, 변화무쌍하고 서정적인 동시에 어두운 우화다. 여러 장르를 대담하게 엮어, 빠르게 돌아가는 팽이처럼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강렬한 문학적 스타일이야말로 모즐리가 성공을 거둔 비결이다.

뉴 스테이츠먼
잔혹하고 암울하며 신비하고 아름답다. 모즐리의 소설은 강탈과 착취에 대한 시의적이고 현대적인 진실과 우화를 결합한다. 읽고 나면 입안에 비릿한 피의 금속성 맛이 남는다. 몇 세기 전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오늘 쓰인 것처럼 신선하다.

메일 온 선데이
목가적이면서도 으스스한 이 소설의 분위기는 언뜻 그림 형제의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모즐리는 비전형적인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면서 동시에 공포스러운 것일 수 있는지 마음껏 펼쳐내 보여준다. 작가의 손끝에서 나올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뉴욕 저널 오브 북스
풍부하면서도 완벽한 절제미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밀도 높은 언어적 팔레트, 겹겹이 쌓이는 이미지와 시각적 묘사다. 그와 같은 요소들이 독자를 거의 꿈같은 세계로 인도한다.

이코노미스트
모즐리의 글에는 명료함과 통찰이 있으며, 자연에 대한 묘사와 인간관계에 대한 묘사 모두 독특하고 심오하다. 강렬하고 잊을 수 없는, 조용한 폭발력을 가진 책. 스물아홉 살의 모즐리에게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는 확고한 예감이 든다.

목차

엘멧 _011
감사의 말 _ 297
옮긴이의 말 _299

본문중에서

진정한 집은 결국 기다림이다. 집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집이 자리를 잡게 하고, 집과 우리 자신을 계절에, 달[月]과 해[年]의 흐름에 맞추기 위한 기다림. 본문 18쪽

“내가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어요, 아빠. 무슨 짓을 해도 걔들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걔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적어도 걔들이 내게 상처를 준 것처럼은요. 원하는 만큼 실컷 패주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애들은 진짜 저한테 못되게 굴었어요, 아빠. 아파서가 아니에요, 아빠. 아픈 건 괜찮아요. 하지만 걔들 때문에 내 마음이 느낀 감정이 문제였어요. 무슨 짓을 해도 난 절대 걔들을 이길 수 없어요.” 본문 46쪽

아빠가 하는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맞설 수 있도록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세상의 어둠에 맞설 수 있도록 우리를 강하게 키우고 싶어했다. 더 많이 알수록 더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세상 속의 그 어떤 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이야기일 뿐이었다. 본문 84쪽

아빠는 폭력을 체험했고 지금도 체험하고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근육과 맨손이 아닌 다른 것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세상에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지 아빠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를 이곳에서 키웠다. 아빠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과 두려워하는 모든 것에 우리를 묶어두었음을 이제 나는 안다. 본문 86쪽

언젠가 아빠가 우리에게, 전투는 오직 한 번에 두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러 군대와 정부와 이념이 있지만 어느 특정한 순간에는 오직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 곧 죽일 사람과 곧 죽을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나와 한편이거나 적인 다른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은 그 순간 아득히 멀어진다고. 단지 맨몸에 옷 한 벌 걸치고 진흙탕에 서 있는 나와 상대 한 사람뿐이라고. 그리고 아빠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고. 본문 86쪽

캐시는 가끔 자기가 부서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때때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순간에도 그녀의 몸 일부는 치솟는 불길 속으로 달려드는 것 같다고. 본문 145쪽

“옛날이라고 해서 다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서로를 격려한답시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뭉쳤던 남자들이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서는 자기 아내를 때렸으니까요.” 유어트가 잠시 흠칫했다. 비비언이 말을 이었다. “꿈이 존재하는 것처럼 기억 또한 존재하죠, 유어트. 꿈의 기억이라는 것도 있고요.” 본문 165∼166쪽

내가 한 번도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주어야 한다. 심지어 나는 스스로를 남자아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물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남자라고 대답은 했을 것이다. 남자라는 성별을 완강히 부정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뿐이었다.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누나와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그들이 내 세계의 전부였다. 나는 캐시를 여자애 혹은 여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단지 캐시로 생각했다. 아빠가 남자인 건 알지만 아빠를 남자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누나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그는 그저 아빠일 뿐이었다. 본문 170쪽

“아빠가 항상 내 곁에 있을 순 없어.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건 내 삶이고 나의 몸이고, 세상에 나가서 항상 그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두렵거든, 대니. 난 두려워.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아. 두려워하고 싶지 않아.” 본문 259쪽

진실에는 힘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에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에는. 본문 262∼263쪽

“난 괜찮을 거야. 내 마음속에서는. 그들이 가장 끔찍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내 마음의 눈 안에서는, 필요한 시간만큼 다른 곳에 가 있을게, 그럼 난 괜찮을 거야. 경험이라는 건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테니까.” 본문 265쪽

저자소개

피오나 모즐리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88

저자 피오나 모즐리(Fiona Mozley)는 스물아홉 살에 데뷔작 『엘멧』으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은 신예 작가다. 1988년 영국 런던 해크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요크에서 보냈고, 춥고 황야가 많은 이 지역이 첫 작품 『엘멧』의 배경이 되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역사를 공부했으며, 졸업 후 일 년 동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후 잠시 런던에 있는 출판 에이전시에서 일하다 요크로 돌아와, 요크대학교에서 중세 역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준비하며 소설을 썼다. ‘엘멧’은 5세기와 7세기 사이에 잉글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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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립학교 아이들》, 《열세 번째 이야기》, 《658, 우연히》, 《비행공포》,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빛 혹은 그림자》, 《어디 갔어, 버나뎃》, 《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죽음과 죽어감》, 《우린 괜찮아》, 《걸프렌드》, 《탄제린》 외 9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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