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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 대디 자본주의 : 친밀한 착취가 만들어낸 고립된 노동의 디스토피아

원제 : Sugar Daddy Capitalism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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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립된 노동자의 죽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첨단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노동자는 “금전 거래에 기반한, 그러나 불평등한 권력 관계의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사실상의 자영업자가 됐다. 고혈압, 신경증, 교통사고, 과로사 같은 노동의 실재가 지워지고 ‘e-나사못’ 같은 유령이 된 것이다. 긱 이코노미, 제로 아워 계약은 일자리를 갖는 것이 경제적 불안정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종종 경제적 불안정성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됐다.
후기 자본주의의 추악한 이면과 착취당할 대로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분석하는 데 오랫동안 천착해온 런던 대학의 피터 플레밍 교수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슈거 대디 자본주의]라 이름 붙였다. 규제와 감시 체계의 테두리 바깥, 기술 진보와 금전 거래의 접점에서 ‘자유로운 개인주의’라는 당의정을 다시 꺼내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책은 경제적 이성을 공공재로서 다시 획득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출판사 서평

임시 계약, 유연한 일자리, 개인 책임, 미소 띤 착취...
‘홀로 노동’ 강요하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노동자를 유령으로 만드는가?


제로 아워 계약, 긱 이코노미의 달콤한 유혹,
지저분한 속박과 숨 막히는 ‘유연 착취’ 속에서
제약 없는 자본주의의 추잡함을 파헤치다

하이테크적인 기술과 매끄럽게 디자인된 앱, 거기에 유행을 선도하는 듯한 수사가 곁들여진 플랫폼 경제에 대해 사람들은 미래주의적인 ‘멋진 신세계’가 열릴 것처럼 환호했다. 전통적인 고용 관계의 족쇄에서 풀려난 노동 형태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이 점쳐졌고, 일한 만큼 받는다는 화폐의 불편부당성이 새삼 강조됐다. 어느 기업은 상명하복식 관료제 시스템을 과감히 폐기하면서 자유분방한 근무 환경 덕분에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서도’ 일할 수 있는, 행복감을 주는 회사라고 스스로를 홍보했다. 물론, 이 모든 기대는 판타지였다.
후기 자본주의의 추악한 이면과 착취당할 대로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분석하는 데 오랫동안 천착해온 런던 대학의 피터 플레밍 교수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슈거 대디 자본주의”라고 명명한다. ‘슈거 대디’란 ‘슈거대디닷컴’이라는 데이트 주선 앱에서 따온 것으로, 부유한 중년 남성이 생활비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고전하는 젊은 여성(이들은 ‘슈거 베이비’라 불린다)을 만나기 위해 가입하는 온라인 사이트다. 그러나 이 책은 성적 괴롭힘에 대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이런 만남 사이트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경제 전체가 가고 있는 방향을 포착한다. 즉 익명적이고 탈인간적인 금전 거래 시스템이면서 매 순간 고립된 개인을 ‘지극히 친밀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방향 말이다.
[슈거 대디 자본주의]는 최근 수년간 소위 ‘긱 이코노미’라 불리는 불안정한 일자리, 온디맨드 형태의 시간제 일자리, 프리랜서 노동의 확산과 개인화로 인한 다층적인 문제들을 ‘탈공식화(deformalization)’라는 흐름 속에서 파악한다. 탈공식화란 공적 거버넌스와 규제를 통한 노동자 보호가 일터에서 사라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는 운전사를 한 명도 ‘고용’하고 있지 않다”는 우버의 주장은 탈공식화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첨단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노동자는 “금전 거래에 기반한, 그러나 불평등한 권력 관계의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사실상의 자영업자가 됐다. 고혈압, 신경증, 교통사고, 과로사 같은 노동의 실재가 지워지고 ‘e-나사못’ 같은 유령이 된 것이다.

‘인간 충격 흡수제’가 된 자가 계약 노동자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탈공식화’의 기원을 찾기 위해 저자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특히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이 개진한 주장들을 되짚는다. “이들 모두가 공유한 꿈이 하나 있었으니, 모든 이가 철저하게 사적이고 개인적인 토대에서 상호 작용하는 이상적인 사회였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돈과 이기심만이 유일하게 허용된 ‘보편 원칙’이며, 정부는 최후의 보루로서만 등장한다. 즉 그들의 꿈은 자본주의에 대한, 온전히 자본주의에만 바쳐진 사랑이었다.” 문제는 이 논리가 진공 상태에서만 작동한다는 사실이었다.
금전 거래에 의한 냉철한 합리성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낙관적 예측과 달리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권력 관계와 결합했다. 한 배달 업체 노동자는 자기 구역에 콜이 왔을 때 나가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출산 후에도 사흘만 쉬고 다시 일을 나갔다. 그렇게 매일 새벽 5시 30분부터 끝나는 시간 없이 9년 동안 일했다. 런던의 또 다른 배달 노동자는 ‘자가 고용’ 형식의 제로 아워 계약(정해진 노동 시간이 명시되지 않은 계약)을 맺고 일했는데, 당뇨 진단을 받고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대체 인력을 찾지 않으면 회사가 매일 150파운드(약 22만원)의 벌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19년을 근속하고 2018년에 사망했다. 지속 불가능한 패러다임을 유지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 충격 흡수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위험한 이유는 개인의 고립 위에 경제적 불안을 덮어씌우기 때문이다. (…) 현실에서 하이에크의 철학은 이제 개인 단위로 존재하게 된 경제 행위자(노동자, 학생, 세입자)를 혹독한 금전적 판단 앞에 세워놓고 그다음에 무방비로 노출시킨다. 이렇게 ‘보호 없는 개인주의’를 사회적, 정치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이 신자유주의 거버넌스의 핵심이다.”
이런 탈공식화의 흐름을 넘어서기 위해서 저자는 새로운 관료제에 대해 심도 있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가 지향하는 관료제는 “공공재를 잘 모아서 진보와 존엄의 이름으로 분배할 수 있는 관료제”, 즉 “민중을 위한 관료제”다. 또한 현재와 같은 ‘억압적 관료제’가 아닌 ‘역량 강화적 관료제’는 민주적 관여와 사회적 개선을 위해 사람들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고안된 조직으로 공공 의료 시스템, 노동자 권리 증진, 성 평등, 차별 금지와 같은 절차적, 분배적 정의를 상당 수준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관료제를 게으른 전체주의적 괴물로 여겨 기각하려 하기보다 급진적 관료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급진적 관료제에 기반한 조직들은 공공의 임무를 수행하며 개인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고 사적인 거래가 시민적 감시하에 놓일 수 있게 한다.”

신자유주의의 ‘탈공식화’를 넘어서기 위한 아이디어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는 삶의 모든 영역에 화폐가 파고든 세계에 컴퓨터화라는 요인까지 가세하면서 탈인간화된 노동이 더 이상 노동자의 권리나 요구를 내세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자본은 사람을 채용한다기보다 시간의 덩어리를 구매한다. 자본이 구매하는 노동 시간의 덩어리는 그것을 담지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에게서 분리된다. 이제 가치 증식의 매개는 탈인간화된 시간이며, 이 탈인간화된 시간은 어떤 권리나 요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규제와 감시 체계의 테두리 바깥, 기술 진보와 금전 거래의 접점에서 ‘자유로운 개인주의’라는 당의정을 다시 꺼내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열쇠는 무엇일까? 이미 몇몇 노동자들이 우버에 맞서 소송을 냈고, 일부는 승소하며 플랫폼 자본주의에 균열을 냈다. 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의 ‘자가 고용’ 조종사들도 대안 노조를 결성해서 사측과 협상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이미 자유주의화돼버린 사법 체계의 한계 또한 명확해 보인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위기의 기저에 있는 탈공식화 경향을 꺾는 것과 관련해 대안으로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를 몇 가지 내놓는다. 보편기본소득을 통해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 자가 고용과 제로 아워 계약의 불법화, 공공 영역의 탈민간화 및 탈개인화, 노동 제도의 탈중심화 등이 그것이다. 특히 ‘노동 제도의 탈중심화’와 관련해서는 “노동자 위원회가 기업 전략과 운영상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가 경영하는 협동조합이나 파트너십이 이와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한다.
긱 이코노미의 도래, 제로 아워 계약은 일자리를 갖는 것이 경제적 불안정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종종 경제적 불안정성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됐다. 저자는 되묻는다. 플랫폼 경제가 그토록 매력적으로 노동을 조직하는 방식이라면 지금쯤 모든 곳에서 이런 방식이 도입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즉 우리는 이런 일자리가 왜 그렇게 많은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적은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렇게 적은 이유는, “어떤 사회적 실체도 이런 타격을 사회 전체적으로 입는다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명확하다. “경제적 이성을 공공재로서 다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들이 무엇일지를 결정할 사회적, 정치적 배경에 대해 논쟁하고 그것에 영향을 미칠 자유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는 집합적인 연대가 있어야만, 그리고 억압적인 사회적 상황에 처했을 때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목차

서문. 추잡한 자본주의의 비용

1장. 유령 노동자의 막다른 길
2장. 당신의 가격은 얼마?
3장. 위키 봉건주의
4장.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직장
5장. 그런 친교는 필요 없다

결론. 덜 인간적인 경제를 향하여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공공 영역이 후퇴하고 스스로를 규제할 역량이 있다고 상정된 민간 영역이 팽창해 그 자리를 메우면서 시카고학파가 설파한 대로 ‘금전을 매개로 한 결합cash nexus’이 경제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거래는 매우 비공식적인 속성 또한 갖게 됐다. 여기에서는 양(‘얼마인가?’)의 문제와 질(‘당신은 누구인가?’)의 문제 모두가 경제생활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된 이유는, 법적인 노동자 보호와 노동 기준이라는 공식적인 토대가 이 새로운 경제에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당신이 부자라면 이것은 아주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부자가 아니라면 문제에 봉착할 것이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다. 고립된 개인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권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협상력이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온갖 종류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곧 이 상황을 악용하는 상사들이 생기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하비 와인스틴 사례에서처럼 추잡한 방식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착취(우버화된 노동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유연 착취flexploitation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의 면에서도 그렇다. 바람직한 종류의 비공식성(친한 동료들이 서로를 돕는 경우라든가, 무의미한 규칙들을 에둘러 가면서 일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경우 등)은 밀려나고 전도된 인격화inverse personalism가 들어섰다. 이제 경제적 합리성의 냉철한 논리는 추잡한 상사라든가 ‘갑질’하는 고객과 같은, 육신을 가진 존재를 통해 작용한다.
(/ pp.15~16)

슈거 대디 자본주의에 대한 어떤 비판적인 분석도 [전형적인 긱 이코노미 업체인] 리프트Lyft나 태스크래빗에 대한 분석으로만 한정될 수 없다. 리프트나 태스크래빗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수많은 영역에서 일자리를 재조직하고 있는 동일한 이데올로기가 단지 조금 더 두드러진 곳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우버는 운전사를 한 명도 ‘고용’하고 있지 않다”는 우버의 주장이 어이없고 별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이 주장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노동력을 바라보는 더 일반적인 관점을 나타낸다. 자유지상주의 사상의 역사에는 산업 활동에 대한 담론에서 ‘노동’을 공식적으로 제거하려 했던 오랜 전통이 있다. 노동 대신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든가 ‘가격 수용자price takers’라든가, 여하튼 ‘[노동자로서] 공동의 이해관계와 고려 사항을 가지고 있는 피고용인들’이라는 개념만 아니라면 어떤 단어라도 밀어 넣으려 하면서 말이다.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환경은 유령 노동이 들어서기에 매우 좋은 토대를 제공한다. 먼저 노동이 개인화되고 그다음에 삶의 직조로 속속들이 파고들어 온다. 그 결과, ‘나’와 ‘경제’ 사이의 공식적인 구분, 가령 노동 시간과 사적인 시간 사이의 구분은 도무지 파악하기 어려운 사회의 배경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들어간다. 개인의 책임과 자립이 신처럼 숭배된다. 따라서 여기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의 일자리와 고용이 갖는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계량경제학의 공리나 리프트의 재무제표 같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노동이 제거되는 한편으로, 동시에 노동은 매우 내밀하고 구체적이며 삶에 밀착된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노동은 더 이상 외적인 활동이 아니다. 동일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적 범주가 아닌 것이다. 이제 나의 노동은 개별화된 존재로서 내가 누구이냐와 누구를 아느냐의 문제가 됐고, 따라서 사실상 ‘끝나는 시점이 없는’ 사적인 영역에서의 활동이 됐다.
(/ pp.23~24)

어느 여성이 붐비는 식당에서 ‘제로 아워’ 계약(정해진 노동 시간이 명시되지 않은 계약)으로 일한다고 해보자.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그 여성이 상사에게 성적으로 아양을 떨어야 한다고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여성은 아양을 떤다. ‘방세 대신 섹스’ 계약으로 방을 얻는 데 딸려오는 암묵적인 의무 사항도 마찬가지다. 많은 크레이그리스트 구인 구직 광고가 지원자에게 행간을 읽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와 함께 쓸 수 있는 방이 있습니다. 침대는 한 개이고 내 거예요. (...) 산수를 해보시면 답이 나오겠지요?”
다른 말로, (적어도 경제적으로 착취가 발생하기 쉬운 맥락에서) ‘계약화’는 단순히 법적인 객관성을 훨씬 넘어서는 것들을 의미한다. 문서는 주관적인 삶도 규율한다. 우리는 행간을 읽고 그때그때 ‘잘’ 판단해서 처신하도록 요구받는다. 우버가 공식적인 계약 자체를 하지 않는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버가 운전사들과 계약을 하면 운전사들이 우버 직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법적 규제의 적용을 받는다. 그래서 우버는 개별 운전사들에게서 합의 사항에 대해 동의를 얻는 방식을 취한다. 합의 사항은 언제라도 변경할 수 있지만 그 변경이 운전사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합의는 유령 계약처럼 작동하는데, 이는 더 강력한 통제를 발휘한다. 노동자들이 두 세계의 안 좋은 점을 모아놓은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상 ‘계약’이라는 데서 오는 강제성과 구속력(우버와 개별 계약자가 합의한 내용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다. 가령 합의 내용에 있는 ‘중재 조항’은 노동자들의 집단 소송을 법적으로 차단한다), 그리고 ‘합의’라는 느슨한 형태가 함의하는 불안정하고 비공식적인 재량의 여지(여기에서 고용주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노동자에게 비용이 된다)가 결합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악한 형태의 비공식성이 고도로 탈인간화된, 마치 ‘비즈니스적’인 것처럼 보이는 질서와 나란히 전개되며, 전자가 후자를 강화하고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 pp. 54~55)

세계 각지에서 노동을 우버화된 무정형의 기능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 기존의 직업에도 플랫폼 경제에서 넘어온 기대치가 덧씌워진다. 늘 대기 상태여야 하고 회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늘 신경 써야 하며 아이의 학교에 방문하는 것은 건너뛰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9시 출근, 5시 퇴근이라는 기존의 익숙한 노동 형태를 교란한다. 소득을 얻기 위한 행위가 일상생활에 속속들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개념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해주는 법적 범주나 사회학적 범주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학자 아룬 순다라라잔은 ‘크라우드 기반 자본주의’와 ‘P2P 거래’의 부상이 고용의 종말을 촉진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온디맨드 경제는 한때는 삶의 나머지 영역과 견고하게 분리돼 있었던 ‘노동 영역’의 경계를 효과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한때는 노동을 교육이나 가정생활 등과 구분할 수 있었는데 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출퇴근 명부에 찍히든 아니든 간에 나 자체가 나의 일이다. 소득을 얻는 행위가 삶에서 끊임없이 수행해야 하는, 삶의 방식 자체가 된 것이다. 자발적이고 이타적으로 들리는 ‘공유 경제’의 용어로 얼마나 포장을 하든 간에, 이것은 규율적이며(일하는 시간을 놓치면 벌을 받는다) 가차 없다(멈추지 않는다).
(/ pp.70~71)

위키 봉건주의는 서로 모순되는 사회적 논리들을 함께 담고 있다. 첫째, 여기에서 정말로 중요성을 갖는 상호 작용은 금전적인 것뿐이다. 개인은 금전적인 거래 관계를 자유롭게 맺을 수 있다고 여겨지며, 그러한 거래는 개인의 역량을 강화한다고 상정된다. 사회적 위계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젊은이는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은퇴한 배관공이 현금이 부족하면 독립 계약자로서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 기타 등등. 둘째, 개인 간의 시장 거래에서 도출되리라 여겨졌던 계층 이동성과 삶의 기회가 그와는 정반대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개개인의 자유도가 매우 축소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학자금 대출은 끝없는 예속이 된다. 독립 계약자 신분으로 고용된 노동자는 자신이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지만 다른 곳에서 일을 할 수도 없는 사실상의 직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두 논리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중심에 자리한 핵심적인 모순을 드러내며, 이 모순은 개인의 자유라는 레토릭과 현재의 경제가 기능하는 방식에 대한 지배적 견해인 ‘클릭 민주주의’ 개념을 끊임없이 뒤흔든다. 여기에 전前관료제 시대의 비공식성에 대한 예찬(도널드 트럼프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사람이 “협상”을 한다)을 더하면, 우리는 (미래주의적인 색채를 띠긴 했지만) 경제의 ‘암흑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한때는 (가령 노동과 자본 사이에) 공식적이고 잠재적으로 투명했던 권력 관계가 이제는 비공식적인 합의에 의한 관계라는 특성 또한 갖게 됐다. 표면상으로는 교양 있고 ‘더 인간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제약 없는 권위는 예고 없이 매우 불합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칼리굴라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pp.120~121)

나는 좋은 관료제에 관심이 있다. 공공재를 잘 모아서 진보와 존엄의 이름으로 분배할 수 있는 관료제 말이다. ‘민중을 위한 관료제’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각 개인은 서로 너무 다르고 가치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 공동의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공재나 공공선을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이기심과 가격 메커니즘에 따라 저마다 알아서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그렌펠 타워 참사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이나 식중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일에 대해 그렇게나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는가? 하이에크는 틀렸다. 우리 대부분이 인식하고 동의할 수 있을 만큼의 ‘공동의 선’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한 공동선은 그것이 파괴됐을 때 더 잘 인식된다. 사회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좋은 관료제는 그런 사회적 선을 추구하고, 그것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며, 그것을 사람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촉진하고자 한다.
(/ pp.134~135)

시장 개인주의는 ‘자유로운 선택’과 별로 관련이 없다. 진짜 자유는 이탈의 자유와 결정하지 않을 자유(우리에게 제시된 의사결정의 매트릭스에서 자발적으로 나갈 수 있는 권력)를 포함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되는 자유는 가짜 선택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고용주에게 파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이것도 여전히 그의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선택이 실제로 일어나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과 캘리포니아의 경영자들 모두가 개인주의적인 자유를 계속해서 집착적으로 찬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개념은 분명히 역설적이다. 물론 나는 KFC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고 학대하듯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참아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창밖을 보면 빗속에서 구걸하는 노숙자가 보이고 내 선택의 여지가 얼마나 좁은지 깨닫게 된다. 나는 자유롭지 않을 자유밖에 없다. 그리고 선택의 역량도 그만큼이나 자유롭지 못하다. 이토록 얇은 공식성의 베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상사의] 막대한 비공식적 재량이 내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게 만든다. 히틀러 같은 상사가 나에 대해(나의 성격, 태도, 선호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나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고통스럽도록 실감하게 된다. 그것만이 나와 창밖에 보이는 빗속의 거지 사이를 가르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KFC에서 치킨을 계속 튀기기로 한다.
(/ pp.169~170)

모든 형태의 비공식성이 이렇게 사악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이런 환경에서 경제적 무력감을 교정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주장은 단순히 다음과 같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경제 전체를 장악하는 패러다임으로 부상함에 따라 금전 거래의 공식주의가 탈규제, 공공 영역의 수축, 민간 개인주의의 헤게모니 확대로 인해 종종 부정적이고 퇴행적인 비공식주의와 결합한다는 것이다. 성적인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 과도한 권력 과시 등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에서 변칙이 아니라 같은 동전의 더러운 이면이다. 나는 이것이 경제의 사적 영역화economic privatization가 지닌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강력한 공공 영역이 존재해서 미니 압제자들과 괴롭힘을 일삼는 상사들을 조직 생활의 어두운 골목에서 몰아냈지만, 이제 자유시장주의자들은 그것을 전적으로 개인이 알아서 극복하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 상사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는 것이다.
(/ pp.180~181)

유형을 막론하고 모든 탈공식화 움직임은 매우 잘못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다. 바로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고전파 경제학이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식으로 자유시장 개인주의와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신성화한 결과 악몽 같은 현실이 초래됐다. 많은 이들이 절박해지고 고용주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가 되었으며 종종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 서론에서 봤듯이, 하이에크의 경제적 자유주의와 하비 와인스틴이 젊은 여성들을 추행하는 더러운 세계는 서로 연결돼 있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면허를 주는 것이 규제 완화가 현실에서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극보수주의 법학자 리처드 엡스타인은 고용 관계를 족쇄에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 그대로라면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의미로 고용 관계를 족쇄에서 푼다는 것은, 고용 영역을 국가와 법의 보호에서 벗어나게 해 임금이 당사자의 사적인 협상과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되게 내맡긴다는 뜻이다. 임의 계약(상사가 그렇게 결정하면 노동자가 언제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될 수 있는 고용 방식)에 대한 그의 옹호는 이런 논리의 귀결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가리켜준다. 그것은 규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19세기 서부개척시대에서와 같은 유형의 자본주의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로 고용 관계를 족쇄에서 푼다는 말은 이와 정반대를 의미한다. 공적인 권력을 통해 고용 관계가 지저분한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맘대로 노동자의 엉덩이를 만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상사에게 모든 게 달려 있는 예속 관계의 덫에 빠져 있고 그 안에서 그는 혼자다. 이 책에 등장한 수많은 사례가 암시하듯이 이런 속박이 자본주의적 자유지상주의가 궁극적으로 향해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이와 같은 종류의 경제학을 역사의 쓰레받기에 버리고 덜 추잡한 이론과 모델을 발달시켜야 한다.
(/ pp.241~242)

저자소개

피터 플레밍(Peter Fleming)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2종
판매수 103권

런던 대학(University of London), 시드니 공과대학(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의 교수이자 저술가. 후기 자본주의의 추악한 이면을 파헤치는 글을 주로 쓴다.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스》, BBC에 기고하고 있으며, 쓴 책으로 《슈거 대디 자본주의(Sugar Daddy Capitalism)》,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Worst Is Yet to Come)》,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The Death of Homo Economicus)》, 《노동의 신화(The Mythology of Work)》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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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시카고 대학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글로벌 거버넌스, 물질세계와 사회 등을 주제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물건 이야기』,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건강 격차』, 『계몽주의 2.0』, 『친절한 파시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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