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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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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물고기 ‘청어’와 ‘피시데이’가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한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질문 하나.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일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하는 일 자체가 녹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질문 둘. ‘만일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초까지 청어가 발트해에서 북해로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갑자기 바꾸지 않았다면 이후 중세 유럽의 세력 판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변화로 200년 가까이 유럽 무역 시장의 패권을 장악해왔던 발트해 연안의 한자동맹 위상이 추락했다. 이후 북해 연안의 네덜란드가 청어 무역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17세기 유럽과 세계를 제패하는 헤게모니 국가가 되었다.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꾸어놓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의 ‘단식일’과 ‘피시 데이(Fish day)’ 정책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 사회는 1년의 절반을 단식일로 지정해 엄격히 지켰다. 성욕을 불러일으키고 죄를 범하게 하는 ‘뜨거운 고기’ 육류 섭취를 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단식일은 ‘고기를 먹지 않는 날’에서 (‘차가운 고기’) ‘생선을 적극적으로 먹는 날(피시 데이)’로 바뀌었고 유럽 전역에서 생선 수요가 급증했다. 거대한 수요는 거대한 시장을 창출하고 경제적 패권으로 이어진다. ‘피시 데이’의 맨 처음 최대 수혜자는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한자동맹’을 결성해 청어 무역을 독점했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최전성기 가맹 도시가 2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다음 수혜자는 네덜란드였는데, 이 나라는 ‘소금에 절인 청어’ 무역을 발판 삼아 유럽을 제패하고 당대 최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바이킹이 청어의 이동 경로에 발맞추어 유럽의 많은 국가를 침략하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15세기 말 황금 섬 지팡구를 찾아 항해하던 존 캐벗이 실수로 도달한 섬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해 신항로 개척시대를 촉발한 이야기,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 흥미롭고도 통찰력 넘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이야기』는 2018년 5월에 출간되어 65주 연속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였던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2019년 8월에 출간되어 교보문고 선정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를 차지했던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의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출판사 서평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물고기 청어와 ‘피시데이’가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조금 생뚱맞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일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하는 일 자체가 녹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렇게 말하고 나면 과장이 심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를 정독한 독자는 아마 99퍼센트 동의하게 되지 않을까).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는『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 논지 중 하나다. 열심히 책을 정독하면서 위의 질문에 관한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나온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식량이자 도구로 중세 기독교가 사용한 물고기 청어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벌써 흥미진진해지지 않나?
위의 논지 외에도 이 책에는 바이킹이 청어의 이동 경로에 발맞추어 유럽의 많은 국가를 침략하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15세기 말 황금 섬 지팡구를 찾아 항해하던 존 캐벗이 실수로 도달한 섬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해 신항로 개척시대를 촉발한 이야기,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 흥미롭고도 통찰력 넘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2018년 5월에 출간되어 65주 연속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였던『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2019년 8월에 출간되어 교보문고 선정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를 차지했던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의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 하여 엄격히 금지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성욕이 불같이 일어나게 하고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연장선에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 년 중 거의 절반이나 되는 기간을 ‘단식일’로 정해 엄격히 시행했다. 그러나 사람이 일 년의 절반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 단식일에도 적은 양이나마 뭔가를 반드시 먹어야 했는데,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생선’이었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라 하여 성욕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맥락에서 단식일에도 생선만은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한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식일에 단지 생선 먹는 일을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생선 먹는 날’로 변화해갔다. 그러더니 급기야 단식일이 ‘피시 데이’로 바뀌고 엄격히 시행되었다.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가 삼시세끼를 생선으로 해결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것도 일 년의 절반이나 되는 기간에 말이다. 이쯤 되면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생선 위주 음식문화가 당대 유럽사회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바꾸어놓았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중세 기독교가 만든 ‘피시 데이’ 관습은 거대한 생선 수요를 창출했고 거대한 시장 형성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업이 발달했으며 어업 장려 운동도 일어났다. 복합적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그 시스템을 장악한 상인연합세력 한자동맹(Hanseatic League)과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 네덜란드가 등장했다.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청어’와 ‘대구’가 있었다. 13~17세기에 이 물고기들은 유럽 국가들의 부의 원천이자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으며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다.
회유어인 청어는 오늘날에도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이동 경로를 바꿀 때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 경로가 바뀔 때마다 도시와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학자들에 따르면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바이킹이 고향을 버리고 브리튼섬을 침략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한다.
예기치 않은 청어의 이동 경로 변화는 13~17세기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어놓았다. 13세기 초반 무렵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베크(Lubeck) 근해에서 어부들이 거대한 청어 떼를 발견했다. 곧이어 인근 도시 어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청어잡이에 나섰고 청어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청어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짐에 따라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이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의 뤼베크와 함부르크(Hamburg) 간 동맹 결성이 시초였는데 이는 유명한 한자동맹의 원류가 되었다. 한자동맹은 설원의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더니 얼마 후 수십 개의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이 되었다. 바야흐로 한자동맹은 유럽의 경제적 패권을 장악했으며 그 패권은 2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한자동맹의 경제적 패권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결정적 원인은 청어 떼가 갑작스럽게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꾼 데 있었다. 이 작지만 큰 변화 하나로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바통을 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이어받았다. 이로써 그전까지 강대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존재감 1도 없던 나라 네덜란드가 족쇄를 벗어던지고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네덜란드가 청어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 어업 강국이 되고 더 나아가 17세기 헤게모니 국가로 발돋움하여 전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데에는 빌럼 벤켈소어라는 어부가 개발한 ‘소금에 절인 청어’가 큰 몫을 담당했다). 네덜란드는 이제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 해양을 지배하는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가 되었으며(이 책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헤게모니 국가’로 자리매김했는데 잉글랜드나 미국보다도 앞서 이룩한 쾌거였다”라고 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의 학자는 특정 중심국가의 생산 효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그 국가의 생산물이 다른 중심국가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상태에 있는 국가를 ‘헤게모니 국가’라고 규정한다],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몸길이 30센티미터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가 있었던 셈이다.

2.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바꾸다


베네치아 시민이었던 존 캐벗은 헨리 7세에게 특허를 얻어 브리스틀에서 서쪽을 향해 출항했다. 1496년 3월의 일이었다. 그가 다른 곳 아닌 브리스틀에서 출항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브리스틀에는 ‘하이브라질(Hy-brasil)’이라는 대륙이 있어 브리스틀 선원이 그곳에 도달했다는 전설이 세간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존 캐벗은 그러한 브리스틀의 역사를 알고 영리하게 이용한 것일 뿐 그의 목적지는 ‘하이브라질’이 아니었다. 그럼 어디였을까? 서쪽으로 도는 아시아 항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황금의 섬 ‘지팡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일본으로 가는 항로였다.
캐벗은 왜 ‘지팡구’에 가고 싶어 했을까? 당연히 황금을 비롯한 많은 보석과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제1차 항해는 실패로 끝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그는 제2차 항해에 나섰는데, 귀항 후 밀라노 공국 외교관 라이몬드 디 손치노(Raimondo di Soncino)에게 자신의 항해에 대해 들려주었다. 다음 인용문은 손치노가 존 캐벗과 그의 선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보고하기 위해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존 캐벗은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상륙한 지점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항해해서 가다 보면 ‘지팡구’라는 섬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존 캐벗에 따르면 그 섬은 적도 지역에 있고 금・은 보석이 넘쳐나며 다양한 향신료의 원산지라고 합니다.”

존 캐벗은 목적지 ‘지팡구’에 도달했을까?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배가 도착한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인근 어느 섬의 어느 항구였다. 항해 도중 일어난 실수로 항로가 바뀐 탓이었다. 그의 배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상륙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뉴펀들랜드섬의 보나비스타(Bonavista) 항일 거로 추정하는 학자가 많다. 아무튼 당연하게도 그는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 했던 금・은 보석과 향신료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그에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대구 떼’였다. 다음 인용문 역시 손치노가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그들은 그 바다에 물고기가 차고 넘친다고 말합니다. 물고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걸 잡기 위해 그물을 칠 필요도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에 가라앉도록 돌을 매달아 내린 바구니로도 양껏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요.…… 존 캐벗의 동료인 잉글랜드인들은 그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잉글랜드에 아이슬란드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대신 아이슬란드에서는 스톡피시라고 부르는 생선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습니다.”

위 인용문의 물고기는 당연히 ‘대구’다. 존 캐벗이 이끄는 선박이 원래 가고자 했던 항로를 벗어나 실수로 다다른 뉴펀들랜드섬 연안에서 발견한 거대한 ‘대구 떼’가 이후 신항로 개척시대의 물줄기를 돌렸고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3. 미국 독립혁명 당시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주에서
대구가 ‘자유’의 상징이 된 까닭


현재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는 ‘대구 상’이 걸려 있어 본회의가 진행될 때마다 빠짐없이 지켜본다고 한다. 이 대구 상은 1895년 의회당 이전 시 예전에 걸려 있던 것을 정중히 국기로 감싼 다음 함대에 실어 수많은 사람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새로 지은 의회당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대구상은 지역 일간지 ≪보스턴글로브(The Boston Globe)≫에 ‘성스러운 대구(Sacred Cod)’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고 세상에 알려졌다. 이것은 ‘3대 대구 상’으로 ‘1대 대구 상’은 174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2대 대구 상’은 1775~1776년 독립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에 의해 의회당이 파괴될 때 소실되었다.
‘2대 대구상’은 독립전쟁 당시 상인이자 부동산 개발업자이며 ‘보스턴 차 사건’에 연루된 인물로 알려진 존 로(John Rowe)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설치되었다.

“차와 소금물이 섞이면 어떻게 될까? 누가 그걸 알겠는가?”
(Who knows how tea will mingle with sea water?)

이것은 존 로가 남긴 말로, 오늘날에도 미국인들 사이에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명대사다.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 몇 백 년 동안이나 대구 상이 걸리고 ‘성스러운 대구’라는 존경과 찬사가 담긴 별칭까지 얻게 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첫째 잉글랜드를 떠나 북아메리카 서안에 도착한 초기 이민자들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번영을 이루기까지 대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대구는 신생국 아메리카가 잉글랜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자유정신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차

서문_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고 유럽사와 세계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고?

제1장_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꾼 작지만 위대한 물고기, 청어 이야기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여러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었다고?
2. 청어를 매개로 한자동맹 중심지로 떠오른 독일 도시 뤼베크
3. 빌럼 벤켈소어의 ‘소금에 절인 청어’가 세계사를 바꾸다
4. 청어전투에서 ‘소금에 절인 청어’로
열 배 많은 프랑스군을 격파한 잉글랜드군
5. 작은 어촌마을 암스테르담을
세계적 도시로 거듭나게 한 ‘소금에 절인 청어’
6. 청어와 대구는 왜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부정적인 물고기 역할’을 전담했나

제2장_ 청어,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운명을 바꾸다

7. 엘리자베스 1세는 왜 그토록 ‘해양주권론’에 집착했을까
8. 청어로 부를 쌓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동아시아로 진출하다
9. 네덜란드와 청어 어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잉글랜드
10. 찰스 1세의 야심 찬 어업 육성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
11. 세 차례의 잉글랜드‒네덜란드 전쟁으로 번진 ‘청어잡이’ 불화
12. 셰익스피어 시대의 잉글랜드인은 왜 청어를 천대했을까

제3장_ 신항로 개척시대를 열어준 주인공,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

13. 말린 대구 ‘스톡피시’가 없었다면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선
바이킹의 아메리카대륙 발견도 없었다
14. 신항로 개척시대를 가능케 한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
15. 네덜란드와의 ‘청어 경쟁’에서 밀린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 해역의 대구에 눈독 들인 이유
16.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바꾸다
17. 존 캐벗이 북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영지로 선언한 이후에도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에 집착한 이유
18. 필그림 파더스들은 왜 대구가 풍부한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도 한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을까
19. ‘뉴잉글랜드’를 탄생시킨 주인공 존 스미스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20. 셰익스피어에게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1609년 신대륙에서의 ‘시벤처호 해난사고’
21. 셰익스피어는 왜 잉글랜드 평민과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을
‘말린 대구’에 비유했을까
22. 노예무역을 발전시킨 싸구려 대구, ‘웨스트 인디즈’

제4장_ 식민지 미국이 잉글랜드에서 독립하고 강대국이 된 원동력, 대구

23. 미국 독립혁명 당시 매사추세츠주에서 대구가 ‘자유’의 상징이 된 까닭
24. 뉴잉글랜드에서 분탕질치는 잉글랜드 어민들
25. 잉글랜드의 서인도제도 사탕수수 재배가
‘소금에 절인 대구’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린 이유
26. 대구 어장을 지키기 위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주・
잉글랜드 정부라는 거대 권력에 맞선 뉴잉글랜드 어민들의 끈질긴 투쟁
27. 뉴잉글랜드 대구 어부의 정치의식이 민주주의를 앞당겼다고?

제5장_ 청어와 대구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를 어떻게 지배했나

28. 중세 기독교는 왜 극단적으로 식욕을 금기시하고 억압했을까
29. 초기 기독교가 ‘뜨거운 고기’ 육류를 금하고
‘차가운 고기’ 생선 섭취를 권장한 까닭
30. 단식일의 변화: 육식을 금하는 날에서 적극적으로 생선을 먹는 날로
31. ‘청어’와 ‘대구’가 중세 유럽의 기독교 세계
경제 시스템을 좌우할 수 있었던 이유
32. 신분과 생활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던 단식일의 다양한 생선들
33. 피시 데이 쇠퇴가 잉글랜드 어업 쇠퇴로,
어업 쇠퇴가 국방력(해군력) 쇠퇴로

제6장_ 물고기는 어떻게 기독교에 스며들고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까

34. 기독교에서 물고기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할까
35. 고대 페니키아의 신관들이 금기로 여겨졌던 물고기를 먹은 진짜 이유
36. 베드로를 독실한 신자로 변화시킨 기적의 물고기
37. 기독교는 어떻게 ‘아가페’와 ‘에로스’가 혼재한
물고기라는 상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까

맺음말_ ‘피시 앤드 칩스’가 이 책에 등장하지 못한 이유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회유어(回遊魚)인 청어는 오늘날에도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이동 경로를 바꿀 때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 경로가 바뀔 때마다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학자들은 바이킹이 고향을 버리고 브리튼섬을 침략하게 된 결정적 요인으로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를 꼽는다.
예기치 않은 청어의 이동 경로 변화는 13~17세기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어놓았다. 13세기 초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베크(Lubeck) 근해에서 어부들이 거대한 청어 떼를 발견했다. 곧이어 인근 도시 어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청어잡이에 나섰고 청어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청어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짐에 따라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의 뤼베크와 함부르크 간 동맹 결성이 시초였는데 이는 유명한 한자동맹의 원류가 되었다. 한자동맹은 설원의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더니 얼마 후 수십 개의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으로 발전했다. 바야흐로 한자동맹은 유럽의 경제적 패권을 장악했으며 그 패권은 2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한자동맹의 경제적 패권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결정적 원인은 청어 떼가 갑작스럽게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꾼 데에 있었다. 이 작지만 큰 변화 하나로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했다. 그리고 그 바통을 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이어받았다. 이로써 그전까지 강대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존재감 없던 나라 네덜란드가 족쇄를 벗어던지고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 네덜란드는 이제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 해양을 지배하는 헤게모니 국가로 거듭났다.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몸길이 30센티미터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가 있었던 셈이다.
(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고 유럽사와 세계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고?' 중에서/ p.10~11)

그 후 바이킹은 진로를 남서쪽으로 돌려 이스트 앵글리아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훗날 네덜란드가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할 때 밟았던 경로와 거의 일치한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크니 제도보다 더 북서쪽에 있는 셰틀랜드(Shetland Islands) 제도는 수많은 어선의 어업기지 역할을 했는데 이곳도 바이킹이 지배했다.
바이킹의 해외 이주에 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는데 어느 주장이나 역사적 사실보다는 추측에 근거한다. S. M. 토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청어 떼가 노르웨이 근해를 회유 경로로 삼아 이동할 때는 바이킹의 잉글랜드 습격이 소강상태에 있었다. 10세기 무렵의 상황이었다. 바이킹이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은 도시나 지역은 거의 예외 없이 청어잡이가 활발한 곳이었다. 토인은 다양한 자료를 꼼꼼히 조사한 끝에 바이킹이 유럽 여러 나라를 침략할 때 택한 항로가 훗날 북해에서 청어잡이 하던 네덜란드의 어장 및 해로와 절묘하게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는 이후 실제로 몇 번이나 여러 국가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쳤다. 청어가 바이킹의 이동 원인의 전부는 아니더라도(S. M. 토인도 바이킹이 오로지 청어 때문에 이동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어떤 형태로든 부분적으로는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아도 이상하지 않다.
(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여러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었다고?' 중에서/ pp.29~30)

네덜란드는 무역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을 압도할 만큼 거대한 부를 일구었다. 네덜란드 성공 신화는 한자동맹을 대신해 ‘소금에 절인 청어’를 본격적으로 공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빌럼 벤켈소어의 ‘소금에 절인 청어’는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사의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는 카를 5세가 그의 무덤을 참배했다는 이야기도 무작정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창작되고 살이 보태지며 만들어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며 웃어넘길 수만은 없지 않을까.
네덜란드는 빌럼 벤켈소어가 활약한 시기에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학자들은 이를 14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 그즈음 이 나라는 빌럼 벤켈소어 같은 위대한 장인과 기술자, 숙련공들의 노력에 힘입어 소금에 절인 청어를 가공하는 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그로써 이전에는 며칠만 지나도 썩어 문드러지고 악취를 풍긴 청어를 무려 1년 넘게 신선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빌럼 벤켈소어의 일화와 전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도 따지고 보면 이후 네덜란드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이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 '3. 빌럼 벤켈소어의 ‘소금에 절인 청어’가 세계사를 바꾸다' 중에서/ pp.46~47)

존 캐벗은 ‘지팡구’, 즉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가 메카에 주재할 때 카라반(Caravane) 상인들에게 들은 정보를 종합・분석해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당시 아시아 끝자락에 있는 일본은 서양인에게 자주 망상을 불러일으키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사실 존 캐벗이 북아메리카의 정확히 어느 지점에 상륙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잉글랜드 정부와 캐나다 정부의 공식 견해에 따르면 뉴펀들랜드섬의 보나비스타(Bonavista)항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추정일 뿐 확실한 증거는 없다. 어쨌든 캐벗은 그곳에서 ‘지팡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 했던 보석이나 향신료도 찾지 못했다. 대신 그는 그곳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했다. 손치노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 그 바다에 물고기가 차고 넘친다고 말합니다. 물고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걸 잡기 위해 그물을 칠 필요도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에 가라앉도록 돌을 매달아 내린 바구니로도 양껏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요.…… 존 캐벗의 동료인 잉글랜드인들은 그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잉글랜드에 아이슬란드는 이제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대신 아이슬란드에서는 ‘스톡피시’라고 부르는 생선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습니다.

이듬해 존 캐벗은 세 번째 항해에 나섰으나 상세한 항해 내용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일설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캐벗은 그 항해 에서 조난되었다고 한다. 또한 1500년 잉글랜드로 귀항했다는 다른 설도 있다. 아무튼 존 캐벗은 세 번째 항해 이후 역사의 어둠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일찍이 16세기 초반 뉴펀들랜드 연안에는 프랑스, 포르투갈 어선이 들어와 대구잡이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잉글랜드 어부들은 마치 아이슬란드에 꿀이라도 발라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참고로 존 캐벗의 아들 존 서배스천(John Sebastian)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북미 대륙 북쪽을 가로질러 아시아에 이르는 ‘북서 항로’를 찾아 항해에 나섰다가 돌아왔다. 이는 1508~1509년의 일이다. 그 항해에서 서배스천은 허드슨강(Hudson River)을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 '16.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바꾸다' 중에서/ pp.156~158)

『신약성서』에 나오는 물고기는 ‘가난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베푼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물고기가 지닌이 성스러움은 먼저 청어를 통해 드러났고 대구로 이어져 발현되었다.
만약 어업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과연 서양 세계가 오늘날의 수준으로 인구를 늘릴 수 있었을까? 단언하건대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육류는 식민지가 급속히 확대되며 그와 비례하여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증가했다. 한편 청어와 대구는 가난한 사람도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권으로 『신약성서』에서 보여준 물고기의 의미를 끊임없이 세상에 드러내 보여준 셈이었다. ‘필그림 파더스’의 사례는 물고기의 상징성이 조금 특이한 형태로 표출된 사건에 불과하다.
오늘날 그 물고기에는 새로운 성스러움이 부여되었다. 바로 기독교에서 파생한 민주주의라는 정치사상에서 중핵적인 가치를 담당하는 ‘자유’의 개념이다.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이 ‘자유’야말로 어부들의 행복과 뉴잉글랜드 번영의 주춧돌이 되었다. 뉴잉글랜드 어부들 사이에 구전되어 온 전승은 물고기가 지닌 이 두 가지 성스러움과 부합한 결과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서 지금도 의사 진행 과정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성스러운 대구 조형물은 서양 세계에서 물고기가 맡은 종교적, 경제적, 군사적 역할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리고 그 도착점 중 하나로 민주주의를 상징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가와 대자본을 거느린 상인집단의 규제와 압박을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어부들에게 민주주의야말로 반드시 구현해야 할 정치 체제가 아니었을까.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매사추세츠주의 성스러운 대구는 역사라는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쳐 다닐 것이다.
( '27. 뉴잉글랜드 대구 어부의 정치의식이 민주주의를 앞당겼다고?' 중에서/ pp.234~235)

사람들이 피시 데이를 지키지 않자 어촌 항구가 한산해지고 쇠락해갔다. 이런 변화는 매우 급속히 이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촌 마을이 눈에 띄게 황폐해졌다. 이는 주요 생선 소비자였던 수도원을 헨리 8세가 폐쇄한 지 1~2년도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변화였다. 그 연장선에서 1541년 해외와 해상에서 사들인 생선을 판매 목적으로 잉글랜드에 반입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어업이 쇠퇴하자 잉글랜드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더는 생선을 수입하지 않게 되었다. 윌리엄 세실 경은 런던에서 수산물 상인을 대상으로 어업 상황을 면밀히 조사했다.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국왕으로 즉위한 에드워드 6세(Edward Ⅵ, 재위 1547~1553) 시대의 일이었다. 당시 상인들의 보고에 따르면 헨리 8세 재위 20년째였던 1529년 무렵 440척의 어선이 조업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조사가 이루어진 1552년과 1553년에는 133척까지 곤두박질쳤다.
당시 어업 쇠퇴는 곧바로 해군력 쇠퇴로 이어졌다. 섬나라인 잉글랜드에게 해군력 쇠퇴는 곧 국방력 쇠퇴를 의미한다. 당시 어업 현장은 ‘해군 훈련소’나 다름없었다. 전쟁이 나면 어민은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즉시 해군으로 편성되어 복무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전함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당시만 해도 수시로 어선을 징발해 군함으로 사용했다. 사실 전시에 어선을 군함으로 활용하는 제도는 비교적 최근까지 지속하였다. 구체적인 예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잉글랜드 정부는 대구잡이 트롤선을 소해정(Minesweeper, 기뢰를 찾아 제거하는 선박—옮긴이)으로 징발해 전장에 투입했다.
전쟁이 어업에 나쁜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었다. 전쟁 중에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대구 개체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나라가 전쟁에 몰두하느라 대구잡이가 전면적으로 중단되다시피 한 덕분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듯 어업도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활황기를 맞이하곤 했다.
앞서 언급한 1541년 법령은 자국 어민 보호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이 법은 다시 한번 개정되었다. 그리고 에드워드 6세와 메리 여왕 시대에 이르러 또다시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이르러서도 같은 취지에서 몇 번이나 법령이 만들어졌고 시행되었다. 이 시기 잉글랜드 어업 쇠퇴 현상을 두고 역사가들은 종교개혁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체로 찬성한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이웃나라 네덜란드의 어업 발전을 꼽는다. 네덜란드는 잉글랜드와 중간에 바다를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사이다.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밖에 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종교개혁이 네덜란드 사회에 미친 영향은 잉글랜드의 그것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아무튼 결국 종교개혁의 불씨가 들불처럼 번져 나가 구교, 즉 가톨릭의 맹주였던 스페인에서 독립하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 '33. 피시 데이 쇠퇴가 잉글랜드 어업 쇠퇴로, 어업 쇠퇴가 국방력(해군력) 쇠퇴로' 중에서/ pp.26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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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 도시유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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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대학원 문학 연구과 영문학 전공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지바공업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전공은 셰익스피어와 미국 사회다. 저서에 『미국 최신 히트 상품&트렌드』『영어로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등이 있고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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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직장생활에서 접한 일본어에 빠져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출판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옮긴 책에『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세계사를 결정짓는 7가지 힘』『세계사의 중심축이 이동한다』『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8가지 심리실험 – 자기계발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1가지 심리실험 – 인간관계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소수는 어떻게 사람을 매혹하는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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