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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마녀 : 박경리 장편소설[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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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전후 성 담론에 대한 대작가의 답변이 된 작품
마녀사냥, 마녀 프레임은 사회·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요원할 때, 즉 기존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발생할 때라든가 공동체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판단될 때 작동하기 시작한다. 위기를 돌파하려는 해결책의 일환으로서 피지배층을 단두대에 세워 징치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모종의 신성을 지닌 ‘마법’이란 범주가 피지배층인 ‘여성’ 범주와 결합하여 ‘금기’, ‘사회불안’에 대한 ‘처벌’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아프레 걸 현상과 자유부인 신드롬으로 인해 남성성이 위축될 대로 위축되었던 1950년대 중후반, 당시 잡지였던 "여원", "여성계", "주부생활" 등은 새로운 성 담론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인간상, 신여성상을 주조해냈다. 전쟁을 거치면서 여성들은 새롭게 경제 주체로 부상한 바 있으며,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오는 서구적 가치들을 온몸으로 향유하고자 했다. 이러한 틈새에서 성적 자유도 한층 고양되었다. [자유부인]이 경고한 ‘춤바람’과 ‘보호할 필요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박인수 사건의 재판 결말은 당대 사회가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얼마나 민감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지럽혀진 당대 가치관의 혼란상을 마녀사냥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1960년 4월부터 1961년 3월까지 "여원"에 연재되었던 이 소설은 전후 성 담론에 대한 박경리 나름의 답변이라 할 수 있다. 박경리의 [성녀와 마녀]는 그동안 성녀/마녀의 대립 및 마녀에 대한 징벌이라는 권선징악적 서사로 읽히거나, 결말 부분의 하란의 반란을 거론하면서 전후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전복적 읽기의 서사로 평가되어 왔다.
얼핏 보면 이 소설은 피터 브룩스가 언급한 바 멜로드라마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양극화된 인물 설정과 인물들 간의 감정적 대립, 사건 중심의 내러티브, 우연과 운명의 강조, 비극적 정서, 과장된 감정과 표현, 보수적 가치 체계 유지에 봉사 등이 그러하다. 성녀의 기표인 하란은 한마디로 현모양처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남성에게 복종적이고 희생적이며, 수동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하란과 형숙은 안과 밖을 대변하듯 현모양처와 성악가로 대비되어 있다. 하란은 집에서 가족을 돌보는 현모양처로, 형숙은 밖에서 독주회를 여는 성악가로 활동 중이다. 하란은 집에 있는 천사 이미지로, 형숙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 이미지로 치장되어 있다. 특히 형숙은 실제로 행동한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요부·마녀로 덧씌워진다. 마치 독자에게 편견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게까지 한다. 하란과 형숙은 마지막 장 이전까지 운명이라는 올가미에 씌워진 채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구도 속에서 전개된다.

성녀 Vs 마녀, 정신 Vs 육체의 이분법 해체와
‘구원’으로서의 사랑

하지만 후반에서 허세준의 진정한 사랑을 알고 난 후 그에 대한 애정을 키워 가는 하란과, 형숙이 몸을 날려 수영 대신 총상을 입는 부분은 가히 반전이다. 이러한 결말은 작가가 성녀/마녀라는 이분법을 구사하려 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유부녀 하란이 외간 남자를 가슴에 담아두기 시작하고, 마녀·탕녀·요부라는 형숙이 진정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반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정신적인 성처녀였던 하란은 육체적 사랑을 갈망하게 되고, 육체적 요부였던 형숙은 정신적 사랑의 승리자로 그려진다. 성녀/마녀의 이분법과 함께 정신/육체의 이분법이 해체되는 순간이다. 실제로 형숙은 수영에게 ‘전부를 드리고 싶은 욕망을 짓누르고 살아 왔다’고 고백한다. 육체적으로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해왔지만 정신적으로는 수영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형숙이 수영의 청혼을 거절했던 것도 ‘집착보다 더 큰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그 결과 다소 문란하기는 했지만, 외형상 행동의 자유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란 역시 허세준이 다 잊고 파리로 떠나겠다고 하자 공항으로 배웅한다면서 나가 세준의 파리행을 저지하고, 그와 깊은 포옹을 함으로써 수영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되찾게 된다. 당대의 의식으로는 ‘불륜’이 분명함에도 하란은 ‘죄의식도 자존심도 없다’고 과감하게 외친다. 서술자 역시 이러한 하란의 모습을 ‘대담한 자기 표시’라고 함으로써 긍정적 시선을 보낸다. 이로써 마녀/성녀의 이분법, 정신/육체의 이분법을 깨뜨리기 위한 결말임이 확인된다.
박경리는 여성의 몸에 결박되어 있는 부정적 기의들을 해체하고자 한다. 정신/육체=남/녀=우/열=선/악의 이분법을 해체하고자 한다. 정신 중심도 육체 중심도 아니고 정신과 육체를 대등하게 바라보면서, 선과 악에 부단히 흔들리는 ‘약한 인간’을 사랑한다. 약한 인간이 기에 이들은 다층적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질서-희생-인내의 연결고리로 묶인 하란을 욕망으로 꿈틀대게 만들면서 호출하고, 마녀-요부-육욕의 방탕자로 호명해 왔던 형숙을 사랑의 순교자로 호출한다.
"여원" 연재 첫 호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이와 같은 창작의도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깊은 내면에는 욕망에 대한 유혹이 있고 인간적인 약점이 숨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악한 사람에게도 그의 깊은 영혼 속에 진실이 잠들어 있고 참된 것으로 승화하려는 순간이 있다. 이것은 신(神)이 될 수 없고 악마(惡魔)도 될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청초하고 순결한 문하란(文霞蘭)의 마음에 던져진 어두운 그림자를, 마성(魔性)을 지닌 요정과 같은 오형숙(吳馨淑)의 부란(腐爛)한 애욕 속에서 사랑의 순교자가 되는 최후를 그려보고자 한다. 나는 구태여 여성을 그리려 고집하지 않는다. 나의 의욕은 인간을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작가의 말 《여원》, 1960. 4' 중에서/ p.65)

앞에서 보듯 [성녀와 마녀]는 단순히 성녀/마녀라는 이분법을 통해 마녀를 응징·처벌하고 성녀에 대한 찬가를 권고하는 권선징악적 서사가 아니다. 마녀 속에 깃든 사랑이라는 진실을 그리면서, 성녀로 하여금 어두움 속에 살 수밖에 없게 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드라마로 대중성을 인정받은 원작,
낭만적 사랑에 관한 의미 있는 문학적 자취

[표류도]에 이어 [성녀와 마녀]가 확보한 대중성(1969년 남정임, 신영균, 이순재 등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 2003년, 9월-2004년 4월 MBC 드라마로 재생산된 바 있음)은 1960년대 이후 대중적 장편소설의 흐름을 선도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1965년경에 이르면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통해 흥미를 유발하는 장편소설들이 대거 출현하는데, 이 소설들에서 환기하는 낭만적 사랑은 긍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성녀와 마녀]처럼 유부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유형은 여성의 성을 매개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그치고 멜로물로 전락해가는 경향을 보인다. [성녀와 마녀]에서 보인 여성의 성적 자유와 권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 작품에서 지켜야 할 것은 ‘여성의 성적 자유’, ‘권리’가 아니라 ‘가정’으로 환기된다는 점에서 [성녀와 마녀]는 낭만적 사랑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전과 이후의 경계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주요 등장인물

안 박사: 저명한 외과 전문의. 안외과 병원장. 안수영과 안수미의 아버지.
신 여사: 오랜 세월 안 박사의 가족과 함께해 온 가정부.
안수영: 유망한 작곡가이자 교수. 안 박사의 아들. 형숙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음.
오형숙: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은 성악과 학생, 소프라노. 안수영의 제자이자 연인. 우연히 안 박사에게서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음.
문하란: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납치되고 어머니도 돌아가심. 아버지 친구인 안 박사의 보살핌 덕에 학업을 마치고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함. 안수영을 마음속으로 짝사랑함.
안수미: 안 박사의 막내딸. 구김살 없이 밝은 대학생.
허세준: 국전에 입선한 화가. 수미의 연인이지만 문하란을 만난 날 한눈에 반함.
박현태: 성악가. 안수영의 친구이자 동료. 한때 하란을 연모했음.

목차

1 피가 나쁘다
2 귀로(歸路)
3 공작(工作)
4 목격
5 역전
6 결혼행진곡
7 사랑은 멀고
8 귀국 독주회
9 멀고도 가까워라
10 눈을 밟으며
11 해빙기는 왔건만
12 어느 사나이
13 흔들리는 마음
14 이합(離合)이 인생인가

본문중에서

“그건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그 여자하고 만일 결혼을 하면 넌 파멸이다.”
“파멸이라뇨! 어, 어째서 그렇단 말씀입니까?”
수영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며 흥분한다.
“안 된다. 나는 결코 용서 안 할 테다.”
“그 이유를, 그 이유를 말씀하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어째서 형숙을 모욕하십니까? 아버지가 결혼하시는 게 아닙니다. 제가 결혼하는 겁니다. 저의 처는 제가 선택할 자유와 권리가 있는 거예요!”
수영은 안 박사한테 덤벼들 듯이 통나무 위에서 벌떡 일어선다.
“너의 자유와 권리가 가장 옳게 행사되기를 바라는 아버지로서 너를 충고하고 인도할 의무가 있다!”
“그럼 형숙을 택한 저의 자유와 권리가 어째서 그릇 행사된 것인지 그것부터 말씀하세요!”
“응! 말하마. 형숙은 피가 나쁘다.”
수영은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달빛이 넓은 이마 위에 쏟아진다. 백지장처럼 핏기를 잃은 입술이 떨고 있었다.
(/ pp.24~25)

형숙은 담배 연기를 훅 뿜으며 스스로 의심한다.
“비열하긴 싫어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비열하긴 싫어요. 나는 내 어머니를 잊은 적은 없어요. 그런 여자의 딸로서 사랑해달라는 거예요. 요조숙녀로서 사랑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비굴하긴 싫어요. 나는 언제나 당신이 달아날 수 있게 문을 열어두는 거예요.”
형숙은 다시 수영의 얼굴 위에 담배 연기를 내어뿜었다.
“그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나요? 천만에, 천만의 말씀이에요. 잃지 않으리라는 집착보다 더 무서운 힘이 필요한 거예요. 나는 그 힘이 무너지지 않게 외형상 내 행동의 자유를 취하는 거예요. 역설이죠. 궤변이죠. 그러나 마음은 언어를 초월한답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모르겠어요. 괜히 오늘 밤은 얘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옛날에 저는 선생님을 사랑하면서도 왜 그런지 선생님을 희롱해보고 싶었어요. 그땐 정신적인 요부였고, 육체는 그야말로 성처녀였나 봐요. 자신이 만만한, 흐흠…….”
(/ p.223)

“아주머니?”
하란이 잔잔한 목소리로 불렀다. 신 여사는 하란을 내려다보며 말을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의 마음은 변할까요?”
“그럼 변하지 않구. 저러다가 돌아올 거요. 어릴 때부터 성격이 강하구 치우쳐서 애를 먹었는데, 그러나 본성은 착한 사람이에요. 남 못할 짓 할 위인이 아니에요. 참고 견디어보세요.”
하란은 그 말을 귓가에 흘리듯 듣고 있다가,
“저의 마음도 변할까요?”
그러기를 바라는 듯 신 여사를 가만히 쳐다본다. 너무나 잔잔하고 맑은 눈이었다.
“그건 또 왜, 왜 묻는 거요?”
신 여사의 눈에 불안이 확 끼친다.
“그분은 돌아오지 않아요. 그건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 자신이 좀 변해야 하지 않겠어요?”
신 여사는 아무 대꾸도 못 한다.
(/ pp.209~21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26.10.28~2008.05.05
출생지 경남 통영
출간도서 60종
판매수 99,730권

1926년 10월 28일(음력)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으로 등단하였다.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을 비롯하여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5)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26년 만인 1994년에 완성하였다. 2003년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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