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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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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고경태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발행 : 2019년 11월 15일
  • 쪽수 : 4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04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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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기자, 편집자, 편집장으로 콘텐츠의 꿈을 집요하게 실현해온
고경태의 30년 그 시간의 기록


한 사회의 운명은 '절대적으로' 편집자의 안목에 달려 있다. '고경태 기자'는 내가 아는 한 우리 시대 최고의 편집자, 공공재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정희진 / 여성학자, [정희진처럼 읽기] 저자

펄떡이는 아이디어를 꼼꼼한 디테일의 그물로 잡아채어 도저히 반박 불가하고 허를 찌르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영웅담들이다.
- 김하나 / 카피라이터, [힘 빼기의 기술] 저자

'글'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고 읽어보았을, 한 권의 책이 있다. 2009년에 출간한 고경태의 첫 책 [유혹하는 에디터]다. [한겨레21]에서의 경험을 주축으로, 주간 단위 천 번이나 '마감의 강'을 필사적으로 건넌 한 편집자의 기록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편집자의 전통적 역할인 헤드라인 및 지면 관리와 함께 글쓰기 능력, 기획력까지 아우르며 창조적인 편집자, '아류'가 되기를 거부하는 편집자들을 위한 '필독서'로 손꼽혀왔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고경태(현 22세기미디어 대표)는 지난 10년 중 4년 4개월이란 시간을 [한겨레] 토요판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이때 혁신적인 지면 개편으로 언론계에 '토요판' 바람을 일으켰다. 이전에 [씨네21] 편집장직에 부임해 일하기도 했고, [한겨레] esc 초대 편집장을 맡아 독자들에게 신선한 삶과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더 이전엔 [한겨레21] 기자로 일하다가 11년 만에 편집장을 맡아 대대적 지면 개편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편집장 일을 한 셈이다. 기자로 일한 것까지 합하면 30여 년의 시간을 신문과 잡지를 만들면서 보냈다.

10년 넘게 편집장, 즉 콘텐츠 리더로 매체의 논조와 성격과 위상에 영향을 끼쳐온 고경태가 언론과 편집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유혹하는 에디터] 이후 10년 만이다. [한겨레21], [한겨레] esc, [씨네21], [한겨레] 토요판에서 콘텐츠의 꿈을 집요하게 실현해오며 겪었던 일들로 정확히 말하자면 '기획'과 '편집장'에 관한 책이다. 주로 전작의 출간 이후를 담았지만, 그 이전도 일부 들어가 있다. 매체의 기자로서, 편집자로서, 편집장으로서 살아온 30년 그 시간의 기록이다.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일했는지,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편집장직에 방점을 찍어 풀어놓았다. [굿바이, 편집장]은 편집기자로 오래 생활하며 기획에 힘을 쏟았던 그 궤적을 반영한 것이며, 자신만의 저널리즘을 펼쳐 보인 유일무이한 책이다.

"내가 신봉한 것은 재미와 새로움이었다. 편집장으로서 나는 늘 재미를 강조했고, 무엇인가 처음 해보려고 했다. 뜻밖의 이야기를 사랑했다. '예측불허'는 가장 아끼는 사자성어다. 그 가치는 분야를 초월한다고 본다. 매체의 결정권을 쥔 수많은 이들이 종이를 넘어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재미있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힘으로 세상을 움직여 나갔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저널리즘이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저자 고경태는 10여 년의 편집장 생활을 비롯해 29년간 매체를 만들면서 가슴을 졸이고 비탄에 빠졌던 고비의 날들과 변화가 주었던 감동과 경탄의 날들을 회고한다. '고유의 DNA를 창조했다'는 상찬(賞讚)과 함께 논쟁에 휘말렸던 [한겨레] 토요판 탄생 드라마가 그 시작이다. 이곳에서 가장 길게 편집장으로 일했고 압도적인 경험이었고 가장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어 기획에 관한 관점과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지난 이야기지만 웃기고 고통스러웠던 사고뭉치의 기억들, '쾌도난담' '직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등 특별한 기획물의 역사를 펼쳐 보인다. 가장 최신의 토요판 기사 중에서 의미와 사연을 지닌 커버스토리 10가지와 기억에 남는 연재기획물 10가지를 추려 보여주기도 한다. 그때의 취재와 기획 대부분은 대한민국 일간신문 역사상 최초의 시도들이며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는 그 어떤 뉴스보다 흥미진진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매력적이고 용맹한 4명의 편집장(오귀환, 이충걸, 김종구, 김도훈) 인터뷰를 실어 또 다른 편집장의 세계를 경험케 하는 한편, 편집장의 뒤안길까지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22세기의 편집장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매체는 어떻게 진화할까 물음을 던지며 이 책에 무게감을 더했다.

콘텐츠 리더로 한 단계 성장하게 할
'운명적인 영감서(靈感書)'


이 책은 종이의 성시였던 시대부터 종이의 파시인 현재까지 30여 년 '재미'와 '새로움'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종이 미디어의 시대는 지났다고. 4차 혁명의 시대, 신기술로 언론과 미디어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오히려 미래 콘텐츠를 논해야 하는 건 아니냐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엔 과거를 반영하지 않은 미래란 없다. 천지가 개벽해도 여전히 정보와 뉴스와 이야기는 중요할 것이다. 콘텐츠를 유통하는 방식과 독자와 관계를 맺는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뿐, 최소한의 기술까지 꿰뚫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분명 필요할 것이다.

[굿바이, 편집장]은 궁극적으로 통찰력을 갖춘 콘텐츠 리더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촉(기획력)'을 발견하고 계발해나가도록 독려한다. 지금 이 순간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엇을 쓸지, 기획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기자, 편집자, 편집장의 실전에 작은 도움을 주고, 그들의 시선과 감수성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고 어디론가 뛰어들게 하는, 콘텐츠 리더로 한 단계 성장하게 할 '운명적인 영감서(靈感書)'임이 틀림없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추천사에 밝힌 것처럼 편집자는 '바람직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창작자들이고, 한 사회의 판관이자 최고의 지식인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정보, 뉴스,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매체마다 통찰력을 가진 '글'을 제대로 다루는 사람들이 필요해지고 그 위상이 증대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경태의 30년 그 시간의 기록 [굿바이, 편집장]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날에 던지는 인사가 아닌,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으로 써 내려간 글이었기를 한 명의 독자로서 바라본다.

"가장 멋진 편집장은 자기 멋대로 하는 편집장이었다.
멋대로 하는데, 결과가 멋지게 나오는 편집장이었다.
멋대로 하는데, 그게 독선으로 비치지 않는 편집장이었다.
멋대로 하면서도, 독하게 밀어붙이는 편집장이었다.
나도 그랬을까?"


'Part 1 토요판의 탄생'은 스트레이트 뉴스 중심의 관성에서 벗어나 피처 뉴스 위주로 전체 지면을 바꾸는 과정에서 일어난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우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던 토요판이 거대한 반전의 역사를 쓰게 된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중 제돌이 보도는 '그깟 돌고래'의 '잉여 읽을거리'가 아니라 인간 존중으로 확장하는 기초적 동물권에 대한 의미심장한 담론을 만들어냈다.

'Part 2 기획은 별이다'에서는 '귀찮은 일거리' 기획의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지, 기획자의 기초는 무엇인지, 그리고 촉이란 무엇인지 그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알려준다. 저자는 '하던 대로'보다 모험을 하더라도 '하지 않던 대로' 하려고 했고, 그렇게 하여 새 길을 트는 일에 보람과 재미와 자부심을 느껴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는 것, 후회보다 자부심을 위한 것이었다.

'Part 3 재미와 충격'은 [한겨레21] 기자로 일했을 당시 기획했던 연재물에 관한 얘기다. '김규항 김어준의 쾌도난담'은 괴상한 장르였다.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하는 대담 코너는 종이 매체와 인터넷,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은 [한겨레] 1면에 편집국장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고,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는 대중적 역사 연재물의 시조가 되었다. 저자 고경태는 한홍구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는 단순히 한 사람의 필자가 아니었다. 역사와 사회를 보는 눈높이를 키우는 데서, 더 나아가 에디터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데서 큰 영감을 준 어드바이저였다."

'Part 4 메뉴판의 비밀'은 [한겨레] 토요판 시절의 이야기로 어떤 마음, 어떤 계산으로 기획을 했는지와 가장 기억에 남는 연재물,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로 가득 채웠다. '구자범의 제길공명' '노환규의 골든타임' '창간기획들' '문유석의 미스 함무라비'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 '조세영의 외교클럽' 등 그 당시 독보적이었던 기획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4년 4개월 편집장으로 총 213번 만들었던 토요판 1면 중 의미와 사연을 지닌 커버스토리도 만나볼 수 있다. 최필립 보도, 영원히 남을 해피엔드의 서사 '제돌이의 운명',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강서구 재력가 피살사건, 간첩 조작 특별판,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관한 기사, 김정은 이야기 등 추려낸 10가지의 주제는 '지금도 스크랩해서 보관하고 싶은' 기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Part 5 내가 만난 편집장'에서는 선후배 혹은 취재원으로 인연을 맺었던 편집장들을 만나 '편집장'에 관해 물었다. 첫 번째 만난 편집장은 오귀환이다. [한겨레21]의 주요한 설계자였던 그의 경험과 식견은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두 번째 만난 편집장은 [지큐]의 이충걸이다. 그는 '자존심'과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집장이었다. 세 번째 만난 편집장은 김종구다. 그는 [한겨레21]만의 색깔을 더 진하게 하면서 안정궤도에 올린 편집장이었다. 네 번째 만난 편집장은 김도훈이다. 그는 디지털매체 [허포코]의 편집장답게 신세대며 6년간이나 장수하고 있는 편집장이었다.

'Part 6 무서워, 찌질해'에서는 편집자의 뒤안길을 곱씹어본다. 편집자와 필자와의 관계, 짠 내 나는 원고료 이야기, 경력 차별, 언론계의 젠더 의식, 인사 관리, 마감 스트레스부터 편집권까지 언론사 내부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다소 거칠게 펼쳐진다.

추천사

나는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좋은 사회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과일 뿐이다. 한 사회의 운명은 '절대적으로' 편집자의 안목에 달려 있다. 이들이 '바람직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창작자들이다. 글을 '쓰는' 행위보다, 더 본질적인 임무는 쓴 글을 제대로 '다루는' 일이다. 편집자는 한 사회의 판관이자 최고의 지식인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수험서가 대부분인 한국 사회의 출판 현실에서, 모든 편집자의 착목(着目) 지점에 유토피아가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고경태 기자'는 내가 아는 한 우리 시대 최고의 편집자, 공공재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정희진 / 여성학자, [정희진처럼 읽기] 저자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광고회사 다니던 시절, 매주 눈에 들어와 박히던 [한겨레21] 카피는 일주일의 교과서였다. [한겨레] esc는 신문에서 처음 만난 '고리타분함이 낄 틈이 없는' 섹션이었다. 그는 [한겨레]의 강력한 안티에이징 성분이었다. 카피라이팅 강의를 할 때 나는 [유혹하는 에디터]를 필독 도서로 꼽곤 했다. 후속작인 이 책은 너무 늦게 왔다. 당시에 품었던 참신함의 선명도가 이제는 바래 보이는 곳도 있다. 그러나 가장 아끼는 사자성어로 '예측불허'를 꼽는 사람이 일해온 이야기라면 재미가 없을 수 없다. 이것은 신문이나 잡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펄떡이는 아이디어를 꼼꼼한 디테일의 그물로 잡아채어 도저히 반박 불가하고 허를 찌르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영웅담들이다.
- 김하나 / 카피라이터, [힘 빼기의 기술] 저자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어느 봄날의 현기증 - 2005년 3월의 옥상
당신이 편집장이라면 - 더 멋대로, 멋지게, 독하게

PART 1 토요판의 탄생
"이건 신문이 아니다" - 우려를 우려먹기
그놈의 스트레이트 - 파일명 ; 우려의 결정판
백지냐 괴물이냐 - 잡종 탄생 전야
미스터리, 히스토리, 휴먼스토리 - 1면, 사람이 뉴스다
두려움의 끝, 새 DNA - 거대한 반전과 환대
그깟 돌고래 이야기 - 어색한가? 제돌이의 운명
제돌이를 탈출시키다 - 돌고래의 자유가 의미하는 것
-에디터란 무엇인가-편집자? 부장? 편집장?

PART 2 기획은 별이다
그것은 귀찮은 일거리다 - 기획 본능에 관하여
영감자, 영감기 - 자극을 주는 사람과 시간
아이디어에 관한 아이디어 - 가뭄 속 단비를 부르는 실마리
언제 차나 한잔? 제기랄 - 기획자의 기초
촉이란 무엇인가 - 나의 역사, 나의 관계
접근하는 법 - 기획하는 자의 각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후회가 아닌 자부심을 위하여

PART 3 재미와 충격
세기말, 괴상한 장르의 탄생 - 쾌도난담 1. 김규항과 김어준의 만남
"니 입장은 뭐야?" - 쾌도난담 2. 웃기는 질문의 역사적 가치
김훈이 말했다. "김훈, 너 집에 가라" - 쾌도난담 3. [시사저널] 편집국장 사표 사건
희극... 동시에 비극 - 쌍욕의 추억, 직설 사태
어느 역사학자의 역사 칼럼의 역사 - 한홍구, 파워라이터의 탄생

PART 4 메뉴판의 비밀
"뭐 그냥 어쩌다 보니" 너머 - 나는 어떻게 메뉴판을 짰나
민망합니다, 일간신문 역사상 최... - 나의 토요판 연재물 10
재미냐, 정의냐 - 토요판 커버스토리 10
방울토마토를 꺼내오는 느낌 - 나의 잽, 뉴스룸 토크
470만 원은 언감생심 - 망한 기획, 자서전 스쿨
-어떤 필자 1, 2 이야기-"당신은 안 착해서 매력적이야"
-모두의 안목을 위하여-좋은 필자 알아보는 법 10

PART 5 내가 만난 편집장
"포착하지 못하면 독수리는 사냥을 못하는 거야" - 오귀환
"기사 잘 쓰는 에디터보다 예의 바른 청년을 더 좋아한다" - 이충걸
"난 너무 보편적이라서 안 돼, 스스로에게 주술을 걸었지" - 김종구
프라다를 입은 악마는 지나간 시대의 리더십 - 김도훈
-편집장 위의 사주, 장기영과 한창기-"멋대가리가 없다, 우리가 선수를 치자"

PART 6 무서워, 찌질해
질투와 복수, 편집된 죽음 - 편집자와 필자의 관계를 생각하며
독자를 찾아간 연쇄살인마 -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
원고료, 짠 내가 납니다 - 600원에서 10만 원까지
기수 정리라굽쇼? - 멋진 기억, 후진 기억
폭력의 역사 - 남성 시대, 여성 시대
"개새끼들" - 인사철의 비명
편집장 스트레스 3, 2, 1 - 마감에서 편집권까지

에필로그
22세기 편집장? - 새로움과 두려움 사이

본문중에서

편집자에서 동그라미 하나 그리면 편집장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편집장을 이렇게 정의한다. "편집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로서 편집 업무 전체를 관할하는 사람." 동그라미 하나의 차이는 무섭다. 편집장은 우두머리다. 취재에서 사진까지 최종결정권을 쥔 두목이라는 뜻이다. 끝없이 결정하고 승인한다. 표지 기사(커버스토리) 아이템을 A로 할지 B로 할지, 기사와 제목을 이대로 둘지 말지, 사진과 디자인을 무엇으로 선택할지 마지막 키를 쥐었다. 기자들은 묻고 또 묻는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편집장은 잡지 제작 실무의 모든 사항을 결정하고, 모든 책임을 진다. 나는 현기증을 느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2005년 봄, 내 '편집자' 인생에서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렸다. '편집...장'이 됐다.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
(/ pp.17~18)

왜 사람인가. 맨 앞에서 썼듯이, 사람이야말로 뉴스이기 때문이다. 그냥 뉴스가 아니라 가장 생동감 있는 뉴스이기 때문이다. 뉴스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를 둘러싼 사건을 '보고서'가 아닌 '이야기'의 틀로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서사다. 영어로는 '내러티브(narrative)'라고 한다. 나는 '서사'라는 말의 감촉을 더 좋아한다. 서사는 1면을 넘어 토요판 전체를 꿰뚫는 핵심 단어였다. 물론 사람은 불완전하다. 기억력도 엉성하다. 거짓말도 한다. 인터뷰 땐 맹신을 경계하며 인터뷰이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사람을 취재하되, 사람만 취재하면 안 되는 이유다.
(/ p.57)

토요판 DNA의 핵심은 '스토리페이퍼'였다. 단발성 뉴스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스토리. 섹션의 차원을 넘어 하루치 신문 전체를 관통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퍼뜨리는 고정 플랫폼. 이는 신문의 호흡을 바꾼다는 뜻이었다. 긴 호흡! [한겨레] 토요판은 길게 숨 쉬는 뉴스 생산자의 어떤 원조가 되었다. '스토리페이퍼'가 전부는 아니었다. 토요판 출발과 함께 잇따라 터뜨린 특종을 빼놓을 수 없다. 앞의 [기자협회보]가 언급했던 첫 호와 둘째 호의 이수자, 최필립 인터뷰는 모두 단독보도였다. 다른 언론들이 이를 인용해 보도했다. 토요판의 미덕이 형식 파괴나 상대적으로 한가한 취재 뒷이야기에만 있지 않음을, 현실 세계에 자극과 파동을 주는 매체 파워가 작동함을 과시한 기사였다.
(/ pp.75~76)

제돌이 보도는 '그깟 돌고래'의 '잉여 읽을거리'가 아니라 인권 존중으로 확장하는 기초적 동물권에 대한 의미심장한 담론이었다. 제돌이를 바다로 탈출시킴으로써 기어코 성공한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제돌이는 동물과 인간을 기계로 여기는 세상에 구멍을 낸 동물이 되었다. 또 어떤 동물이 구멍을 낼 것인가. 또 어떤 언론이 이런 보도에 앞장설 것인가. 또 어떤 언론이 기를 쓰고 반대할 것인가. 비극 속에서도, 논쟁과 해피엔드는 계속되어야 한다.
(/ p.100)

당신의 운명적 영감자는 누구인가. 그렇게 묻는다면, 즉답을 머뭇거릴 듯하다. 글쎄, 나에게 그런 영감자가 있었나. '운명'이라는 거대한 수사에 부담을 느끼며 몇 명을 떠올려본다. 고마운 영감자는 많았다. 순간순간 여러 사람에게 받았던 영감이 쌓이고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 영감자란 내 삶과 일에 힌트와 자극과 통찰을 주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깨뜨려주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늘 깨어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해주는 사람이다. 나를 어디론가에 뛰어들게 하는 사람이다.
(/ p.120)

추상력과 상상력의 근육은 오랫동안 뉴스 콘텐츠를 기획하며 성공과 실패를 두루 겪어본 이들도 기를 수 있다. 시사주간 지 편집자로서 10년 넘게 잡지의 광고카피를 쓰면서, 또 10년여 간 편집장으로 여러 매체의 기획을 책임지면서 늘 던졌던 질문이 "한마디로 뭐냐"였다. '한마디'가 멋지고 새롭게 잘 빠져야 기획에 자신감이 붙었다. 신문의 1면이나 잡지 표지의 카피를 뽑을 때도 묻고 또 물었다. "한마디로 뭐지? 한마디로 말해 봐." 강박에 가까운 주문이자 주술이었다. 신영복 선생은 이를 '추상력'이라고 표현했다.
(/ p.140)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는 대중적 역사 연재물의 시조가 되었다. 그 뒤 수많은 신문과 잡지들이 앞다퉈 유사한 연재물을 내보냈다. 나 역시 [한겨레21]을 떠난 뒤 다른 매체에서 다른 필자들의 역사 연재물을 기획하고 내보냈다. 개성이 강한 훌륭한 글들이 많았다. 그래도 아직 의미와 재미의 두 가지 날개로 한 교수만큼 독자들의 인기를 끈 글은 만나지 못했다.
(/ p.217)

주방장의 자존심 중 하나는 메뉴다. 편집장의 자존심 중 하나도 메뉴다. 차림표를 일별하며 그 식당의 맛을 짐작한다. 차림표를 훑어보며 그 매체의 맛과 신선도를 추정한다. [한겨레] 토요판 시절 차림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뭐 그냥, 어쩌다 보니" 너머에 관해 쓰려고 한다. 굳이 토요판을 중심에 놓은 이유는 내가 마지막으로 취재·편집·사진·디자인 부문을 아우르며 매체를 만들었던 때라서다. 어떤 마음, 어떤 계산으로 기획을 했는지와 가장 기억에 남는 연재물,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전하고자 한다. 뒤에서는 토요판 이후 신문부문장 시절에 했던 기획과 '폭망'했던 어떤 프로젝트에 관해서도 다룬다.
(/ p.226)

토요판을 만들 때 지면에서는 단독이라는 이름을 절대 안 썼다. 단독 인터뷰, 단독 취재 같은 제목을 달지 않았다. 대신 '첫'이라고 했다. 첫 인터뷰, 첫 만남, 첫 고백, 첫 증언, 첫 취재. 그게 더 품격 있다고 여겼다. 요란을 떨기보다 잔잔하게 "사실 우리가 처음이거든"이라고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이는 게 더 승자의 느낌에 가까웠다.
(/ p.229)

재미란 무엇인가. 끌리는 모든 것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신문과 잡지를 만드는 사람에게 재미란 참신한 접근과 처음 만나는 팩트다. 정의로운 가치를 전파한다 하여 같은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으면 지겨울 뿐이다. 정의를 말할 때도 어떻게 효과적일지를 고민하는 것이 재미다. 재미라는 말에는 호기심의 이슬이 맺힌다.
4년 4개월간 편집장으로서 총 213번 만들었던 [한겨레] 토요판 1면을 다시 본다. 어떤 기사가 지금 봐도 재미있는가. 가치를 앞세운 '정의 과잉' 기사가 은근히 많이 눈에 띈다. 재미없다.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시의성에 목을 맨 기사도 그렇다. 총선이나 대선, 그 밖의 그때그때 발생 사건에만 맞춰 적당히 구색을 맞춘 기사들은 다시 보니 시시하다. 당시엔 난데없는 기획이라고 타박을 받았던 기사들이 몇 년이 흐른 뒤에 다시 봐도 빛난다.
(/ p.264)

수많은 필자를 접해보았다. 편집장을 하면서 수많은 후배 기자들을 겪어보았다. 재능이 출중한 필자와 기자들의 원고를 읽으며 질투의 화신이 되어본 적 있던가. 자신의 글쓰기 능력에 대한 과도한 자기도취와 인정욕구에 빠진 '친한 필자'한테 코웃음을 날린 적은 간혹 있었다. 그런데 질투라니. 기억에 없다. 필자의 원고가 좋으면 좋을수록,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울수록, 내 일처럼 기뻤다. 훌륭한 필자에게 질투심보다는 뿌듯함 또는 경외심을 느꼈다. 편집자로서 필자와 소통할 때는, 늘 편집자의 테두리 안에 사고하고 행동했다. 어떻게 하면 필자를 도드라져 보이게 할지 고민했다. 바보 같은 태도였을까. 아니면 내가 지금 너무 착한 척을 하는 걸까.
(/ p.404)

1990년대에는 거의 통용되지 않았던 '젠더'(사회적 성)라는 말은 이제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젠더 의식'은 깨어 있는 시민의 교양 필수다. 콘텐츠로 세상과 소통하는 매체 편집장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젠더 의식이란 내 식대로 정의하면 '불편함을 알아채는 힘'이다. 남성 중심의 시선,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무시하고 세상의 성별을 남녀로만 구분하는 기준과 어법('신사 숙녀 여러분' 같은 인사조차도)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것을 눈치채 는 능력이다. 그런 불편함이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모순이며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식견이다. 가령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30대 남성 김 아무개 씨에 의해 벌어진 20대 여성 살인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인가 여성혐오 사건인가. 편집장과 기자의 젠더 의식이 기사 가치판단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당시 [한겨레]는 이를 여성혐오의 관점에서 보도했다.
(/ p.432)

세상은 진화한다. 새로운 문제의식과 실천력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다. 낡은 것을 두드려 부수고, 온건한 방법으로 손질하고, 또는 그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속삭여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뜻밖의 물건, 뜻밖의 가치로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가슴을 적셔주는 이들 덕분이다. 현실의 부조리에 관해 비판을 하거나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는 미디어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편집장이냐 아니냐는 상관없다. 맞닥뜨린 문제마다 주인 의식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인생의 편집을 책임지는 편집장이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찍는 새로운 점 하나로 지구별은 멋지게 돌아간다. 오늘도 새로운 태양은 뜬다.
(/ pp.45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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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고경태(Koh, Kyoung-Ta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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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태어났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납활자의 향기를 맡으며 학보를 만든 일이 이후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한겨레21> 창간팀에 합류한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편집자/편집장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 쉼 없이 새로운 기획을 시도했고 매체 창간과 리뉴얼 작업에 참여했다. 《유혹하는 에디터》부터 《1968년 2월 12일》까지 5권의 책을 썼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편집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한베평화재단 이사로 있으며 ‘한마을 이야기 퐁니·퐁넛’ 기록전시회를 5개 도시에서 열었다. 2019년 11월 현재 블록체인 미디어 <코인데스크코리아>를 발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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