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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3 세트 :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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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또 하나의 필생의 역작 [그리스인 이야기] 완간!
서양 문명의 원형 고대 그리스 세계를 향한 大여정 마쳐!
최고의 역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
세밀한 검증과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리스의 역사를 심도 있게 탐색하다!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역사 저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시오노 나나미. 그가 민주주의의 원류이자 세계화의 선구자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모두 3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저자는 [로마인 이야기]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인의 사상·인생·정치·문화·사회·외교의 전모를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펼쳐낸다.
그중 첫째 권인 [그리스인 이야기 I: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에서는 태초 신화와 고대올림픽에서 시작해 활발한 해외 식민도시 건설과 민주주의 실험, 도시국가들 간 경쟁・갈등・협력과 국운을 건 두 차례의 페르시아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의 역사 속에서 부침하는 여러 리더와 시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휘몰아치는 전쟁의 격랑과 그 저변에서 꿈틀거리는 민주정치의 태동과 발전, 이 두 가지 축을 씨줄과 날줄로 절묘하게 교차시킴으로써, 그리스인이 꿈꾸고 실현해나간 세상을 손에 잡히듯 생생히 그려낸다.
둘째 권인 [그리스인 이야기 Ⅱ: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는 정치·사회·경제·군사·문화·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절정기를 이룬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조망한다. 또한 아테네의 국운을 결정지은 펠로폰네소스전쟁과 아테네의 쇠퇴 등 그리스 세계가 이른바 내전으로 급변하는 모습도 그린다. 저자는 그리스 세계를 양분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각축전을 배경으로 민주정치의 발전과 한계, 그리스인의 이상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마지막 셋째 권인 [그리스인 이야기 Ⅲ: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에서는 그리스 변방에서 새롭게 웅비한 마케도니아의 대왕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와 이집트를 제압하고 거대한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써내려간다. 그리스인이면서도 그리스의 인습, 즉 ‘배타적 민족주의’를 뛰어넘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최초로 동서융합을 이룬 세계화의 선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가 단숨에 세계제국을 건설한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저자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위대한 영웅 알렉산드로스의 혁신적인 리더십과 인간적 면모를 면밀하게 파헤친다.
인류 역사상 누구보다 먼저 세계화를 지향하면서 지정학적 결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사람들.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고 해양 대국을 건설하는 한편 끊임없는 정치 실험과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나간 그리스인. 2,500여 년 전 이들의 고뇌와 노력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 우리의 지향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이야기](전 3권)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교훈을 선사한다.

제1권
주인공 - 테미스토클레스
주요 적(敵) - 다리우스 1세
주요 전쟁 및 사건 - 페르시아전쟁

제2권
주인공 - 페리클레스
주요 적(敵) - 아르키다모스
주요 전쟁 및 사건 - 펠로폰네소스전쟁

제3권
주인공 - 알렉산드로스
주요 적(敵) - 다리우스 3세
주요 전쟁 및 사건 - 동방 원정(이소스전투 등)

출판사 서평

시오노 나나미 [그리스인 이야기] 전 3권 완간!
민주주의의 창시자, 세계화의 선구자
그리스인을 둘러싼 거대 역사 스펙터클

로마 이전에 위대한 그리스가 있었다!
리더의 국가 경영, 시민이 지켜나갈 민주주의 공존해야!


[그리스인 이야기 I] 서두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 그리스인이 훗날 서양의 패자가 되는 로마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예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고대 서방 세계의 대표주자는 단연 그리스인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는 실제로 결점이 많은 나라였다. 국토가 바위투성이 산악지대여서 자체 생산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한 나라가 아닌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이 무수히 난립한 형태였는데, 도시국가들끼리는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이런 그리스가 어떻게 서양 문명, 나아가 현대 문명의 모태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은 무척 흥미진진하고 신선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 그리스에서 민주정치가 싹트고 발전해간 까닭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단언한다.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이 요구하는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개혁은 귀족정치를 타파한 솔론의 금권정치로 시작해서,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치, 클레이스테네스의 실력주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전시 위기관리 체제, 그리고 아테네 민주정치의 황금기를 이끈 페리클레스 시대로 이어진다. 각 단계마다 ‘계급 간 갈등 해소’ ‘체제 안정’ ‘경제력 향상’ ‘국난 극복’ 등 다양한 현실의 요구, 즉 ‘필요’가 존재했고, 이에 발맞추어 나름의 색깔을 더하며 아테네 민주주의는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이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고매한 이데올로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필요성 때문에 태어났다. 냉철한 선택의 결과다. 냉철하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지배하던 시대의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작동했던 것이다. 민주정치가 이데올로기로 변한 시대에 도시국가 아테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쇠퇴뿐이었다."
민주정치의 확립과 더불어 그리스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큰 과제는 국난 극복이었다. 바로 제1차, 제2차 페르시아전쟁이 그것이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키루스 대왕의 정복 전쟁을 시작으로 대제국으로 성장하고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왕 중의 왕’을 자처하기에 부족함 없는 나라가 되었다. 반면 그리스의 군사력은 페르시아의 군사력에 턱없이 못 미쳤다. 더욱이 여러 도시국가의 연합체인 그리스는 일체감이 부족하고 구심점이 부실했다. 하지만 이 불리한 전황을 극적으로 타개한 인물이 등장했으니 바로 아테네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다.
그런데 영웅 한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시오노 나나미는 그것을 ‘질(質)’, 다시 말해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지적한다. "페르시아(동방)는 ‘양(量)’으로 압도하는 방법으로 공격해왔다. 그리스(서방)는 ‘질’로 맞서 싸웠다. 이때 ‘질’이란 개개인의 소질보다는 모든 시민이 지닌 자질을 활용한 종합적인 질을 의미한다. 즉 한데 모아서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승리했다. 보리 한 줌에 불과했지만 대제국을 상대로 이긴 것이다."
그리스인은 페르시아전쟁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자질에 눈을 떴고, 이는 이후 유럽 정신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유럽은, 고대 그리스인이 페르시아로 대표되는 동방과 차이를 만들었던 바로 이때,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의 최대 적은 그리스 자신이었다!
황금시대를 맞이한 아테네를 붕괴로 이끈 것은
민주정치에 둥지를 틀고 있는 포퓰리즘이었다!


기원전 492년~기원전 461년까지 아테네의 발전은 눈부셨고 민주주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실현된 일이 없을 만큼 원활하게 작동"했을 정도로 최고조에 달했다. 아테네는 어떻게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황금시대’를 맞이하며 번영과 풍요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리스인 이야기 Ⅱ]는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성장 원동력과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인 이야기 Ⅰ]에서 아테네의 개혁이 다양한 현실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갔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노력은 [그리스인 이야기 Ⅱ]가 그리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비로소 완성에 다다른 셈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테네인들의 현실적 요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과제다. 이 책을 통해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발전상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내일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페르시아전쟁이 끝난 뒤 48년간 그리스인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는데, 특히 아테네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발발하였고,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무엇보다 강제로 민주정치를 포기하고 과두정치로 이행해야 했다.
아테네가 100년 동안 유지해온 그리스 세계의 패권과 민주정치를 상실하고 쇠락한 것은 한순간의 결과가 아니었다. 단순히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패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아테네의 추락을 아테네만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그리스 전체가 패했다. 자기들이 쌓아 올린 가치관을 스스로 붕괴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연 아테네와 그들의 민주주의는 어떤 과오와 한계를 지니고 있었을까?
기원전 430년 페리클레스가 스트라테고스에서 해임되고 다음 해 세상을 떠나자 아테네의 정계에는 선동자(데마고그)들이 득세하면서 우중정치가 시작되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민주정치의 리더는 민중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유도’하지만, 우중정치의 리더는 민중의 마음속 불안을 ‘선동’한다"고 분석했다. 아테네의 국정은 이 선동자 그룹에 의해 좌우되었고, 발전적인 비전을 내놓기보다 비판만 일삼았으며,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은 없었다. 선동자들은 아테네 정계 근처를 배회하며 시민의 불만과 불안을 자극해 잘못된 고민과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 시대를 두고 "형태는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로는 혼자 통치했다"고 평가했다. 어떤 점에서는 독재와 비민주의 요소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아테네는 장기적인 발전 과제를 두고 힘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 시대 이후의 아테네는 그러지 못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스파르타와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향해 공세를 펼쳤다. 특히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공격하는 스파르타를 여러 방면으로 원조했고,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테네의 병력을 빼오기를 서슴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대목에서 "그리스인의 민족정신이 약화되었다"고 보았다.
결정적으로 아테네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가치관의 근간을 포기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페리클레스 시대 이후의 그리스 세계를 두고 "아테네인뿐만 아니라 그리스인 전체가 양식이 없는 사람들로 변해버렸다"며 한탄한다. 제1권에서 이미 예고한 대로 "민주정치가 이데올로기로 변한 시대에 도시국가 아테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쇠퇴뿐이었다." 결국 그리스의 중심이자 ‘본보기’였던 아테네는 ‘본보기’이기를 포기한 채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스인 이야기 Ⅱ]가 그리고 있는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쇠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 세계와 민주정치에 드리운 그림자, 즉 선동정치와 우중정치, 그리고 포퓰리즘은 우리가 항상 경계하고 지양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왕 알렉산드로스, 그리스의 한계를 초월하다!
세계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의 ‘힘’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혁신에 있었다.


"모든 걸 다 쏟아부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쓰고 싶은 것은 다 써버렸다. 집중력을 계속 가지고 있을 체력도 없고, 좋은 남자는 다 써버렸다."(2017년 12월 25일자 일본 [마이니치신문] 인터뷰 기사 中) 익히 알려진 대로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 마키아벨리, 체사레 보르자, 게리 쿠퍼처럼 강한 남성상 또는 영웅상을 좋아한다. 이미 그녀는 이들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이제 저자는 생애 최후의 역사 에세이가 될 것이라고 밝힌 [그리스인 이야기]시리즈 가운데, 제3권에서 알렉산드로스를 마지막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두 주제 ‘그리스의 몰락’과 ‘알렉산드로스의 등장’은 마치 저자가 의도라도 한 듯 묘한 대비를 이룬다.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떤 면에 주목했을까? 역사상 국왕이 직접 정복 활동을 나서서 대제국을 이룬 사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최초일 것이다. 리더 알렉산드로스는 부하 장수와 병사를 이끌고 낯선 땅을 탐험하며 적군과 싸워야 했다. 늘 선두에 서서 모든 것을 홀로 지휘하고 홀로 판단했다. 부하들은 오로지 리더의 명령에 순종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스를 ‘폭군’은 아니지만 ‘독재자’로 보았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인간적인 면모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저자는 굳이 그것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능한 리더에게 결국 필요한 건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지 사람을 끌어안는 ‘인품’은 아니라고 내내 역설한 듯하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로스가 세계제국을 건설한 ‘힘’, 다른 말로 ‘원동력’은 무엇일까?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 즉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강했다. 이집트를 정복할 때도 나일강의 찬란한 문명에 감탄하며 발에 땀이 나도록 ‘여행’을 다닐 정도였다. 정복 활동의 루트도 늘 겹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새로운 생각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손 벌려 환영했다. 이집트나 페르시아만의 독특한 타 문화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저자는 알렉산드로스의 바로 이런 ‘혁신성’과 ‘열린 마음’을 높이 평가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스를 그리스인으로 ‘보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에게서 무예를, 아테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교양을 배운 뼛속까지 그리스인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제국을 건설한 이후 아시아 지역에 ‘헬레니즘 세계’가 펼쳐진 것만 보아도 그리스 문화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인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뛰어넘었다. 물리적으로도 넘어섰지만 정신적으로도 초월했다.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룰 만큼 고도로 발달한 정신문화를 이룩했지만, 그만큼 배타성도 짙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우월한 자의 교만이라 해야 할까!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을 소개한다. 최고의 철학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마저 그리스인과 이방인을 문명인과 야만족으로 구분 지었고 제자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철학은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 즉 지력(智力)을 기르는 학문 아니던가. 알렉산드로스는 스승에게 배운 지력으로 스승의 생각을 뒤집어버린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장면을 책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서술했다. 알렉산드로스의 혁신적 철학은 결국 헬레니즘 제국의 근간을 이룬 패배자 동화 정책, 즉 민족 융합 정책을 낳았다.
문명의 중심이라 자부하며 그 외의 것을 비문명 또는 야만이라 규정짓는 자문화중심주의, 다른 말로 ‘배타적 민족주의’는 문명의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야만’이자 ‘폭력’일 뿐이다. 오늘날 전 세계가 세계화를 부르짖는 듯 보이지만, 한쪽에서는 난민 문제나 자국우선주의, 브렉시트 등 새로운 형태의 국수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 역사상 누구보다 먼저 세계화를 지향한 알렉산드로스의 지혜와 전략은 다문화 다민족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나큰 예지와 비전을 제시한다.

목차

[제1권]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제1장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올림픽
신들의 세계
해외로 웅비

제2장 나라 만들기의 여러 모습
리쿠르고스의 ‘헌법’: 스파르타
솔론의 개혁: 아테네
페이시스트라토스 시대: 아테네
쿠데타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아테네
도편추방
기권은? 그리고 소수의견 존중은?

제3장 침략자 페르시아에 맞서
페르시아제국
제1차 페르시아전쟁
마라톤
제1차와 제2차 전쟁 사이의 10년
정적 제거
전쟁 전야
테르모필레
강제 소개
살라미스로
살라미스해전
플라타이아이전투
에게 해, 다시 그리스인의 바다로

제4장 페르시아전쟁 이후
안전보장
아테네와 피레우스의 일체화
스파르타의 젊은 장군
델로스동맹
영웅들의 그날 밤

연표
도판 출처

[제2권]

제1부 민주정치의 황금시대

페리클레스 시대: 기원전 461~기원전 429년(33년)

제1장 황금시대 전기
기원전 461~기원전 451년(11년)
라이벌 키몬 / 숙적 스파르타 / 30대 페리클레스
연속 당선 / 무기는 언어 / 젊은 권력자들
페리클레스의 연설 / 단단한 기반 / 궁극적인 데모크라티아
키몬, 돌아오다 / 라이벌, 퇴장하다

제2장 황금시대 후기
기원전 450~기원전 429년(22년)
껍질을 벗은 페리클레스 / 칼리아스 강화 / 파르테논
아테네의 노동자계급 / 펠로폰네소스동맹과 델로스동맹
미래 그리스의 평화를 토의하는 회의 /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공존
사랑하는 사람, 아스파시아 / 변화하는 델로스동맹 / 새로운 시장 개척
사모스 섬 사건 / 에게 해의 북쪽 / 전쟁은 변방에서
확산되는 전선 / 전쟁이라는 악마 / 각 나라의 신중파
펠로폰네소스전쟁 / 테베, 움직이다 / 전쟁 첫해
페리클레스의 개전 연설 / 진심은 어디에? / 전몰자 추도 연설
역병의 대유행 / 탄핵 / 오랜만의 승리 / 죽음

제2부 우중정치 시대
페리클레스 이후: 기원전 429~기원전 404년(26년)

제3장 우중정치 시대 전기
기원전 429~기원전 413년(17년)
왜 우중정치로? / 선동자 클레온 / 스파르타의 태도
레스보스 문제 / 확대되는 잔혹함 / 스파르타의 패배
아웃사이더 등용의 시작 / 전선 확대 / 역사가의 탄생
스파르타의 제안 / 니키아스 강화 / 그리스인에게 평화란
젊은 지도자의 등장 / 소크라테스 / 청년 정치가 알키비아데스
4국동맹 / 만티네이아전투 / 올림픽 시상대 독점
플라톤의 [향연]/ 멜로스 문제 / 시칠리아 원정
헤르메스 신상 파괴 사건 / 출전 / 출두 명령 / 시라쿠사
시라쿠사 공방전 / 알키비아데스, 스파르타로
다시 아웃사이더 / 용병 도착 / 니키아스 홀로
니키아스, 집으로 편지를 쓰다 / 원군 파견 / 공방전 2년째
첫 번째 해전 / 두 번째 해전 / 원군 도착 / 월식
세 번째 해전 / 최후의 해전 / 탈출 / 종언

제4장 우중정치 시대 후기
기원전 412~기원전 404년(9년)
참화가 알려지고 / 재기 / 에게 해의 동쪽 / 다시 알키비아데스
정국 불안 / 해군 장군 알키비아데스 / 새로운 세금이라는 실책
트리에라르코스 / 연전연승 / 다시 민주정치로
사랑했다, 미워했다, 그래도 바랐다 / 리산드로스 / 알키비아데스의 실각
사령관들의 사형 / 바다에서 단 한 번의 패배 / 암살당한 알키비아데스
귀국하는 사람들 / 무조건 항복

연표
도판 출처

[제3권]

제1부 도시국가 그리스의 종언

제1장 아테네의 쇠락

자신감의 상실/ 인재의 유출/ 소크라테스의 재판

제2장 벗어날 수 없는 스파르타
승자의 내실/ 고정화된 격자/ 오로지 호헌/ 시민 병사가 용병으로
스파르타 브랜드/ 그리스를 페르시아에 팔아넘기다

제3장 테베의 한계
테베의 두 사람/ 스파르타를 타도하기 위해/ 소수정예의 한계
양분된 그리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제2부 새롭게 웅비하는 힘

제4장 아버지, 필리포스

신들이 등을 돌린 땅/ 껍질을 벗은 마케도니아
새롭게 태어난 마케도니아 군대/ 인접 국가에 대한 대책
향상된 경제/ 올림포스 남쪽으로/ ‘우국지사’ 데모스테네스
그리스의 지배자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벌을 내리는 방법
이혼과 재혼/ 암살

제5장 아들, 알렉산드로스

생애 최고의 책/ 생애 최고의 친구/ 목숨을 맡긴 말
스파르타 교육/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첫 출전/ 20세에 왕이 되다
동방 원정/ 그 내실/ 아시아로 내딛는 첫걸음/ ‘그라니코스전투’
승리를 활용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소스로 가는 길
엇갈림/ ‘이소스전투’/ ‘해상 교통로’를 확립하다/ 티로스 공방전
이집트 정복/ ‘가우가멜라’로 가는 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가우가멜라전투’/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 바빌론, 수사, 그리고 페르세폴리스
스파르타의 몰락/ 중앙아시아로/ 타인보다 앞서가는 자의 비극
재개된 동방 원정/ 애를 먹인 게릴라전/ 인도로 가는 길
마지막 대전투 ‘히다스페스’/ 종군을 거부당하다/ 인더스강
미지의 땅을 탐색하다/ 패배자를 동화시켜 이루려고 했던 민족 융합의 꿈
알렉산드로스, 분노하다/ 마음의 친구가 죽다
서방 원정을 꿈꾸며/ 마지막 이별

제6장 헬레니즘의 세계
‘보다 뛰어난 자에게’/ 후계자 쟁탈전/ 알렉산드로스가 남긴 것

17세의 여름: 독자에게/ 역자 후기/ 도판 출처/ 참고 문헌

본문중에서

스파르타인에게 시민이란 리쿠르고스가 정한 것처럼 조국 방위에 생애를 바친 ‘전사’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존속에 필수 불가결다고 여긴 수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페리오이코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헬롯도 그들이 보기에는 ‘시민’이 아니었다. 그래서 페리오이코이나 헬롯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고 시민집회 참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편 아테네에서는 솔론의 개혁이 말해주듯이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나 상인, 농민 모두가 ‘시민’이었다. 그들은 수입의 많고 적음에 따라 피선거권에 차별이 있었지만 시민집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고 또한 그런 이유로 국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 당당한 시민권을 지닌 ‘시민’이었다.
('제1권' 중에서/ pp.104~105)

테미스토클레스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테네의 명문 출신이 아니었다. 아마 아버지는 수입별로 계급을 나눈 솔론의 개혁을 기준으로 보면 제3계급에 속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어머니는 트라키아인이어서 아테네인이 보기에는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아테네 내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연고도 없었다.
아테네에서는 정치적 야심을 가진 뛰어난 사람이 지명도를 높이고 정치적·경제적 지원 체제를 갖추기 위해 명문가 여자와 결혼하는 일이 있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나 크산티포스도 알크마이온 집안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그는 요직에 오를 수 있는 자격 연령인 30세가 되기 전에 이미 아테네의 서민 지구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자기 기반을 개척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그 지구에는 도기 제조업자들이 모여 살았다. 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도심에서 떨어진 교외에 있었다.
그곳에서 살게 된 청년 테미스토클레스는 항아리나 접시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도심에 있는 재판소로 출근했다. 그는 변호사, 그것도 민사 변호사를 맡고 있었다. 출퇴근도 그냥 하지 않았다. 도기를 만들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 직공들에게 일의 진행 상태를 묻거나 그들 의견에 귀 기울이고, 만약 법적으로 귀찮은 일이 발생하면 변호 일을 맡는 등 이른바 이동식 상담소를 운영했다. 이렇듯 테미스토클레스는 여기저기 들르는 출퇴근을 하면서 세력 기반을 구축하고 확장했다.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평판을 잘 활용한, 고대사회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정치가였다.
('제1권' 중에서/ pp.177~178)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페리클레스 시대에 대해 논평한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은 이것이다. "형태는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로는 혼자 통치했다." 이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혼자’ 지배하는 것이 가능할까?’ (중략)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에 따라 아테네의 영토인 아티카 지방 세 곳에 각각 분산되어 있었다. 오늘날처럼 선거구를 찾아가 유권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스트라테고스’는 선거를 통해 1년에 한 번 선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페리클레스는 33세에 처음 당선된 이후 32년에 걸쳐 계속 스트라테고스에 당선되었다. 그의 낙선을 기록한 사료는 없다.
('제2권' 중에서/ pp.37~38)

아테네는 계속 해군력을 증강했다. 언제나 보수적인 스파르타에서도 자기네 자랑인 육군 전력을 유지하는 데 반대하는 스파르타인은 없었다. 이로써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동맹’과 스파르타가 맹주인 ‘펠로폰네소스동맹’ 사이의 성공적인 ‘동거’가 50년 동안 이어졌다.
이것이 평화 유지의 참된 원인이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세력균형상태의 확립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스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두 나라의 ‘동거’는 50년이나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테네는 해군 국가였고 스파르타는 육군 국가였다. 아테네는 기지 건설에 대한 욕망은 있었지만 영토 확장에 대한 욕망은 없었다. 영토가 확대되어도 그곳에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충분하지 않았다. 스파르타도 일국 평화주의를 유지한 역사가 길었고 자국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만족하며 영토 확장에 대한 욕심을 갖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두 강국 간 이해관계의 충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테네의 1인자 페리클레스와 스파르타의 아르키다모스 왕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일어났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코르푸와 코린토스의 다툼으로 점화된 불길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통해 살펴보았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바깥으로 퍼져나가는데, 전쟁은 이와 반대로 변경에서 일어난 사태의 파문이 중앙을 향해 모이는 사례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펠로폰네소스전쟁’에 대해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매우 어리석을 정도로 소박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아테네의 주요 전력은 해상에 있고 스파르타의 주요 전력이자 유일한 전력은 육지에 있었다. 바다에 발판이 있는 나라와 육지에 서 있는 나라가 어떻게 전투를 벌였을까?
두 나라는 실제로 정면으로 격돌한 적이 있었을까? 상세한 서술은 앞으로 하겠지만, 우선 답하면 ‘없었다’. ‘없었기’ 때문에 27년 동안 승패를 가르지 못하고 전쟁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희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희극과 비극은 동전을 닮아서 앞뒤 관계다.
('제2권' 중에서/ pp.171~172)

하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단순한 우등생으로 끝나고 만다. 알렉산드로스는 달랐다. 스승이 말한 다음의 가르침에는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리스인은 동등한 친구로 대해도 좋지만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즉 야만족)은 동물이나 식물과 같다고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
페르시아로 갔을 때 알렉산드로스는 특히 이 가르침과는 정반대라고 해도 좋은 태도를 취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고 느낀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어쩔 수 없는 도시국가 시대의 그리스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달리 알렉산드로스는 도시국가를 초월한 그리스인이었다.
아무튼 스승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모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뛰어난 제자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철학 자체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3권' 중에서/ pp.222~223)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로스의 전기를 쓴 쿠르티우스 루푸스(Curtius Rufus)는 알렉산드로스가 이 말을 많은 사람 앞에서 했다고 기록했다. 다만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고는 쓰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장군과 병사를 차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병사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최고사령관이 없을 정도이다. 전쟁터에 늘 선두에 서서 누구보다 큰 위험을 안고 싸웠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의 상징이 된 투구 위에 나부끼는 하얀 깃털 장식을 보면서 장군뿐만 아니라 일개 병사까지도 왕을 따르겠다는 일념으로 싸우게 만들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생각하는 리더는 부하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솔선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신의 모델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존재여야 했다. 따라서 사령관이나 지휘관을 향해 "너희가 나를 사랑해준 것도 내가 이제까지 보여준 용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은 앞으로도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한 것이다.
('제3권' 중에서/ pp.370~371)

저자소개

시오노 나나미(Nanami Shiono)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7.07.07~
출생지 일본 도쿄
출간도서 141종
판매수 238,251권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유학차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해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첫 장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도 마이니치출판 문화상을 수상했다. 이해부터 이탈리아에서 거주 중이다. 198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했다. 1992년부터 한국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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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 박사. 저술가 및 번역가.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그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 종교 문화, 신화와 축제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화 읽어주는 남자』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그리스와 놀자』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황금과 교역의 나라 페르시아』 『인문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전 3권)를 비롯하여,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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