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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너즈

원제 : The Hon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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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영국 언론과 독자의 주목을 받은, 숨 쉴 틈 없는 스릴러 걸작!

영국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작가로 평가받는 팀 클레어의 데뷔작 『디 아너즈』. 원고지 2천 매에 육박하는 분량의 대서사시이지만, 저자의 기괴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음울한 세계가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공연 예술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판타지 스릴러로서의 박진감 넘치고 속도감 높은 스토리를 전개하는 한편 시적인 문장 또한 놓치지 않음으로써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1935년 노퍽. 전쟁이 다가오고 있는 영국, 스톡햄 가문의 대규모 사유지에 속한 저택 ‘앨더베렌 홀’에는 의심과 편집증이 가득하다. 방화범으로 몰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아버지 기디언 베너와 어머니 앤 베너가 엘리트만이 모이는 협회에 가입하면서 ‘앨더베렌 홀’에 머무르게 된 열세 살 델핀 베너는 저택에 입성한 첫날, 전쟁을 모의하는 스파이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다.

수상한 협회의 음모와 비밀을 밝혀내려 저택과 광활한 사유지 지하에 이어진 비밀 통로를 탐험하던 중, 델핀은 자신의 상상보다 더욱 거대하고 어두운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소녀는 사냥터 관리인 가포스 씨에게 사격을 배우며 내면에 잠든 전사의 힘을 일깨우고 숲속을 가득 덮은 치명적인 적들과의 전쟁을 준비하는데…….

출판사 서평

영국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작가, 팀 클레어 화제의 데뷔작!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 쉴 틈 없는 판타지 스릴러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인다.” -네이선 파일러(《달빛 코끼리 끌어안기》 저자)
“빈틈없이 탁월하다.” -매트 헤이그(《휴먼: 어느 외계인의 기록》 저자)
“최고의 판타지 소설이다.” -[가디언]

영국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작가로 평가받는 팀 클레어의 데뷔작 《디 아너즈(The Honours)》가 알에이치코리아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1935년을 배경으로 한 ‘스팀 펑크’ 장르의 판타지 스릴러로, 발표와 동시에 ‘최근 몇 년간 가장 흥미로운 판타지 소설’(리스트), ‘숨 쉴 틈 없는 스릴러 대걸작’(헤럴드)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영국 언론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열세 살 소녀 델핀은 학교에서 방화범으로 몰려 퇴학당하고 정체 모를 ‘협회’에 가입한 부모님을 따라 ‘앨더베렌 홀’에 도착한 첫날, 이곳에 모인 엘리트들이 전쟁을 모의하고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된다. 이후 이 수상한 협회가 꾸미는 음모를 밝히려 저택 곳곳을 탐험하던 델핀이 지하에 숨겨진 더 크고 어두운 비밀과 마주하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자그마치 원고지 2천 매에 육박하는 분량의 대서사시이지만, 작가의 기괴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음울한 세계는 독자로 하여금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며,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한다. 특히 공연 예술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작가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판타지 스릴러로서의 박진감 넘치고 속도감 높은 스토리를 전개하는 한편 시적인 문장 또한 놓치지 않음으로써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국제 스파이 조직, 암호, 영국 침략, 광견병 걸린 거대 박쥐……
비밀을 밝히려는 소녀 전사 델핀의 전쟁이 시작된다!

‘소녀는 총을 들고 웅크린 채 기다렸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장르문학에 최근에는 주목할 만한 여자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있다. 19세기 빅토리아시대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14세 소녀 페이스의 여정을 다룬 프랜시스 하딩의《거짓말을 먹는 나무》(RHK, 2017), 20세기 초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보안관보들 중 한 명인 콘스턴스 콥과 그 자매를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리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문학동네, 2017) 등이 그 예다.
이 책 《디 아너즈》의 주인공인 열세 살 델핀 베너 역시 ‘독창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의 여주인공 델핀에게 주목하라’(인디펜던트)는 언론의 찬사대로, 전쟁사에 빠삭하고, 조국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스파이에 맞서기 위해 총 쏘는 법을 배우며, 폭탄을 설치해 적을 함정에 빠뜨리는 등 종횡무진 활약하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택의 수많은 방부터 지하에 숨겨진 터널까지 천방지축으로 오가던 델핀이 전쟁 트라우마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보호하려 노력하고, 혹시 그 병이 유전일까 걱정하며 어머니에게 프로이트의 책들을 선물하는 모습에서는 그 어떤 어른보다 뛰어난 인격과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절체절명의 위기마다 기지를 발휘하는 델핀의 어머니 앤 베너, 제1차세계대전 때 버스를 운전했으며 저택의 대소사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해그스트롬 부인,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행동하는 악역 페이션스 등,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가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1935년 전쟁의 위기가 드리운 영국,
인간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절박한 싸움

“군인이 적의 눈을 바라볼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델핀의 사격 코치이자 저택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사냥터 관리인 ‘가포스 씨’는 총 쏘는 법을 알려달라는 델핀에게 이렇게 묻는다. ‘두려움 없음’, ‘아무것도 없음’ 등의 오답을 내놓던 델핀은 험난하고 긴 여정의 끝에서 그 답을 깨닫는다.
《디 아너즈》 속 인물들은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로 저마다의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다. 델핀의 아버지 기디언 베너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고, 앨더베렌 스톡햄의 아들 아서 스톡햄은 전쟁터에서 전사했으며, 스톡햄가 주치의 닥터 랜슬리는 보청기 없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한편 협회에 가입한 ‘엘리트주의자’들은 노화와 질병에 맞서 영원한 삶을 꿈꾸며 우스꽝스러운 체조를 하기도 하고 전쟁을 옹호하기도 한다. 또한 한때는 인간이었으나 인간성과 불멸성을 교환한 존재들은 자신들의 우월함을 자랑하며 열등한 인간을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낸다.
결국 인간성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존재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델핀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제2차세계대전의 위협 아래 놓여 있다.
테러와 혐오로 점철된 오늘날의 세계에 작가가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델핀이 찾아낸 답에 있지는 않을까. 델핀의 성장을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줄거리]
1935년 노퍽.
전쟁이 다가오고 있는 영국, 스톡햄 가문의 대규모 사유지에 속한 저택 ‘앨더베렌 홀’에는 의심과 편집증이 가득하다. 방화범으로 몰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아버지 기디언 베너와 어머니 앤 베너가 엘리트만이 모이는 협회에 가입하면서 ‘앨더베렌 홀’에 머무르게 된 열세 살 델핀 베너는 저택에 입성한 첫날, 전쟁을 모의하는 스파이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다.
수상한 협회의 음모와 비밀을 밝혀내려 저택과 광활한 사유지 지하에 이어진 비밀 통로를 탐험하던 중, 델핀은 자신의 상상보다 더욱 거대하고 어두운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소녀는 사냥터 관리인 가포스 씨에게 사격을 배우며 내면에 잠든 전사의 힘을 일깨우고 숲속을 가득 덮은 치명적인 적들과의 전쟁을 준비하는데…….

[책속으로 추가]
딩동.
“문 열지 마세요!” 델핀은 새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밖에…… 뭐가 있어요. 박쥐예요.”
해그스트롬 부인은 먼지떨이를 내리고 못마땅하고도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소처럼 코를 힝힝거렸다.
뭔가가 문을 쾅쾅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베너 양……”
딩동.
쾅쾅.
“여기 있으면서 초인종 소리를 못 들은 척할 순 없어.” 부인이 흑백의 네모 무늬 바닥을 지나 문으로 걸어갔다.
(중략)
해그스트롬 부인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을 꽉 쥐더니 다시 펴고 델핀을 보았다.
“난 네 편을 들어준 몇 명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럼 제 말 들으세요!” 땀투성이 손에 든 병이 점점 무거워졌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저택으로 뭔가가 오고 있다니까요.”
“뭔가라.”
딩동.
델핀은 호흡을 했다. “괴물이에요. 바보처럼 들리겠지만 정말로……”
해그스트롬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베너 양.” 그녀가 문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내가 지식이 뛰어나진 않지만 내가 알기로 ‘괴물’은 초인종을 누르지 못해요.”
“안 돼요! 이거 떨어뜨릴 거예요!” 해그스트롬 부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빗장이 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악! 악! 문 닫아요! 빨리 문 닫아요! 맙소사! 도대체 왜 이렇게 늦게……” 헉헉대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마이클 교수였다. 부인이 서둘러 문을 닫고 빗장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있는 거 봤어요? 박쥐예요! 수백 마리도 넘어요!” 또 헉헉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나게 커요. 마치…… 마치……”
델핀의 뒤쪽 복도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1층으로 오라고 하세요!” 델핀이 소리쳤다. “총기실로 가야 해요!”
사방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우박이 내리듯 타다닥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까만 누더기 같은 것이 그레이트 홀 출입구에 몰아쳤다. 해그스트롬 부인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괴생명체들이 날개를 치고 날아오르면서 들이찼다. 쉿쉿거리고 탁탁 소리를 내면서 불탄 종잇조각처럼 빽빽한 나선형으로 돔 모양 천장을 향해 솟아올랐다. 교수는 짧고 뻣뻣한 수염이 난 턱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 보였다. 해그스트롬 부인은 교수의 스웨터를 꽉 붙들고 아래로 홱 잡아당기려고 했다.
델핀은 입이 딱 벌어졌다. 얼굴이 있었다. 나팔 모양의 벨벳 같은 귀 사이에 자리한 담비 같은 날카로운 털투성이 얼굴.
-pp.361~363 2막 20장 헛된 희망 중

난로 앞쪽에서 가포스 씨가 지도를 펼쳤다. 한쪽 끝에 머그잔을 놓았다.
“앨더베렌 홀의 설계도다.”
“그건 저도 알아요.”
그가 충혈된 눈을 가늘게 떴다.
“말 잘 듣겠다고 했잖아.”
“저번에 다 얘기했잖아요.”
“지금 또 해야 돼.” 그가 지도를 쳤다. “넌 여기로 들어가는 거야.”
1층과 2층은 꼭 아령 같았다.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방과 복도 들이 네모난 동쪽과 서쪽 건물을 연결했다. 하인 숙소와 지하는 좀 더 작은 건물이었다. 하단 오른쪽 모서리에는 혼자 떨어진 마구간과 발전실이 있었다.
“그다음에 여기를 통과하고.” 가포스 씨가 와인 저장실의 문과 그 계단 아래 복도를 나타내는 까만 선을 톡톡 두드렸다. “여길 따라서.” 그의 손가락이 동쪽으로 선을 그으며 총기실과 사냥감 저장실을 지나갔다. “그들이 갇혀 있다.” 그가 부엌방을 나타내는 옅은 색 상자에 대고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우리 아빠도 거기 있어요?”
그의 손이 지도에서 떨어졌다.
“그러기를 바라자꾸나. 신사들이 발견한 인질들은 모두 거기에 있었다더군.”
“인질이 몇 명인데요?” 난로의 열기에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많아. 다들 묶여 있다. 방 안에서 베스페리 셋이 보초를 서고 복도를 순찰하는 놈들은 더 많아.”
“거길 어떻게 뚫고 가죠?”
“밤 9시에 작은 신사들이 발전기를 끌 거야. 나머지는 너한테 달렸다. 총기실로 가려고 시간 낭비만 하지 마라.”
“총기실의 총을 모두에게 나눠주면 되잖아요. 그럼 저택을 되찾을 수도 있어요.”
“네가 혼자 가는 이유는 빠르고 덩치가 작기 때문이야. 정면으로 붙으면 우리가 진다. 군대를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거야. 네 목숨도 포함해서. 넌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란 사실을 잊지 마라.”
-pp.423~424 3막 25장 파라벨룸 중

추천사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인다.”

목차

프롤로그 1935년 9월 12일

1막. 12월-6월
1장 불의 설교 9개월 전, 1934년 12월
2장 공기와 어둠의 여왕이여 1935년 3월
3장 변신 1935년 3월
4장 불의 재판 1935년 3월
5장 난 총을 견딜 수 없거든 1935년 4월
6장 버림받은 불행한 두꺼비 1935년 4월
7장 스톡햄가의 저주 1935년 5월
8장 지하세계 1935년 6월
9장 알 수 없는 쿵 씨 1935년 6월
10장 얼간이가 되느니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 1935년 5월

막간 1 1935년 6월

2막. 7월-9월
11장 현세와의 균형 1935년 7월
12장 하늘이 내린 말썽쟁이 1935년 7월
13장 거대한 사냥감 1935년 7월
14장 당번병 1935년 7월
15장 사랑이 피 흘리며 누워 있다 1935년 7월
16장 한때는 더 좋은 단어를 알고 있었던 훌륭한 작가들 1935년 8월
17장 추락 1935년 9월 11일
18장 낭비하는 자들을 위한 재판
19장 잠든 이성
20장 헛된 희망
21장 짐승 같은 것들
22장 오래된 거짓
23장 작은 신사들
24장 염습지 작전은 이것으로 끝

막간 2

3막. 1935년 9월 12일
25장 파라벨룸
26장 날 용서하게, 전우여
27장 돌진하는 황소
28장 페이션스
29장 지구 한가운데로의 여행
30장 가면무도회
31장 일족 이상의 관계
32장 소리로 가득한 섬
33장 좋은 하인, 나쁜 주인
34장 끝까지 지켜보는 가포스 씨
35장 무기여 잘 있어라
36장 그저 사라질 뿐
37장 괴물과 싸우는 그녀
38장 말하세요, 아빠, 말해요 1935년 2월 5일과 1935년 9월 12일
39장 깨어나다
40장 형제여, 지체하면 죽을 것이다
41장 그녀가 피하려고 하는 것
42장 첫 나팔 소리
43장 독이 든 성배
44장 인간이 잠자는 사이
45장 뒤돌아보지 마

막간 3

에필로그 1935년 12월
감사의 말

본문중에서

소녀는 총을 들고 웅크린 채 기다렸다. 포플러 지대에 걸쳐 있던 검은 형체가 비스듬히 기울더니 염습지 위로 급강하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녀는 참호 안의 젖은 벽에 무릎을 단단히 댔다. 괴물은 도저히 믿기지 않게 생긴 검고 우둘우둘한 날개를 퍼 올렸다. 소녀가 총을 뺨 쪽으로 가져가면서 팔꿈치 아래 구불구불한 함초가 짓이겨졌다. 개펄에서 오래된 책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콩팥 모양의 웅덩이는 구릿빛과 금빛으로 반짝였다.
소녀는 오래전 가르침을 가포스 씨의 조용하고 일정한 어조대로 주문처럼 되뇌었다.
새를 죽이려면 먼저 새의 속도와 궤도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총부리로 새의 움직임을 쫓아야 한다.
소녀는 총구를 위로 기울여 목표물 뒤로 1미터가량 떨어진 지점을 좇기 시작했다. 녀석이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pp.11~12 프롤로그 1935년 9월 12일 중

“맙소사. 모든 게 엉망진창이군.” 딱딱하고 묵직한 어조였다.
방의 반대편에서 검은 구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의자를 마주 보고 섰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어.” 두 번째 남자는 느리고 가르랑거리는 목소리였다. 어떤 악센트인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첫 번째 검은 구두는 러시아인 같았다.
“당연히 일어나야지.” 의자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불가피한 일이야.”
“아니!” 슬리퍼 신은 두 발이 동시에 바닥을 쾅 치는 바람에 델핀은 움찔했다.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는 없어! 그건 변명일 뿐이야. 자네, 자네 쪽 사람들 전부…… 하느님, 맙소사! 그들은 대화할 마음이 있었어.”
“대화?” 검은 구두가 말했다. “물론이지. 하지만 협상할 마음은 없지.”
델핀은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떡하지?” 의자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이반? 이제 어떡하느냐고! 전부와 싸울 순 없어. 자네가 한 일이 밝혀지면 우린 끝장이야.”
“정말 그들이 침공을 계획한다고 생각해?”
“지금은 그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 자네가 그녀에게 완벽한 개전 이유를 줬으니까. 그들도 달리 선택권이 없어.”
가죽 구두는 세 걸음 만에 의자로 다가갔다. 델핀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순간적으로 그들이 벽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외국인이 목소리를 죽이고 다급하게 말했다.
“이게 네 결점이야. 순진함. 정의는 유리 방패일 뿐이야. 우린 현명해져야 해.”
슬리퍼를 신은 다리가 벌어졌다. 의자에 앉은 남자가 크게 세 번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계속할 수 있겠어?”
외국인의 검은 구두 굽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반질반질하게 닦인 구두 콧등에 주름이 생겼다. 의자에 무게가 더해져 삐걱거렸다.
“친애하는 친구여.” 검은 구두는 속삭이듯 말했지만 델핀에게는 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목이 메고 소름이 돋았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네는 날 믿어야 해.”
-pp.63~64 1막 2장 공기와 어둠의 여왕이여 1935년 3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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