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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 에프 모던 클래식

원제 : Close Range : Wyoming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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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애니 프루 문학의 정점!

퓰리처상을 비롯해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전미 베스트셀러까지 기록하며 작품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살아 있는 미국문학의 거장 애니 프루의 걸작 『브로크백 마운틴』을 11년 만에 기존의 오역을 바로잡고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만나본다. 오스카상과 골든글로브상을 휩쓸며 2006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과 함께 까다롭게 배치된 플롯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적막한 허무함이나 헛웃음과 함께 눈물짓지 않을 수 없는 11편의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마치 전설이나 무용담처럼 느껴지는 한편, 치열하게 묘사되는 사실적인 캐릭터들에 의해 마치 실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신이 어찌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상처 입고 몰락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얼마나 위대한 스토리텔러인지 깨닫게 된다.

출판사 서평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보다 더 위대한 원작,
독자와 평론가 양쪽 모두가 인정한
살아 있는 미국문학의 거장 애니 프루 단편집 출간!

오스카상과 골든글로브상을 휩쓸며 2006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 『브로크백 마운틴』이 f(에프)에서 출간되었다. 당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골든글로브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이 유력했지만 받지 못했는데,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른 작품에 상을 빼앗겼다는 후문은 무척 유명하다. 또한 원작의 작품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대다수의 영화와 달리, 원작자인 애니 프루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퓰리처상을 비롯해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전미 베스트셀러까지 기록하며 작품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살아 있는 미국문학의 거장 애니 프루. 그녀는 미국 내에서도 흔치 않은 소재와 배경으로 작품을 쓰며, 장편과 단편 모두에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거의 유일한 작가이다.
11년 만에 기존의 오역을 바로잡고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태어난 애니 프루의 걸작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리적 배경과 자연 환경을 인물보다 더욱 드라마틱하고 탁월하게 그려 내는 그녀만의 회화적 이미지들을 실감나게 옮겨놓았다. [뉴욕타임스]가 이 작품에 대해 ‘인생의 고통과 고독을 시적으로 비틀어 냈다’고 극찬한 이유이기도 한 자연과 배경에 대한 묘사는 각 단편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나란히 겹쳐지며 읽는 이의 내면에 강렬한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쪽빛의 산봉우리,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 평원, 몰락한 도시들처럼 떨어져 굴러다니는 돌덩이들, 너울너울 타오르는 하늘, 광활하고 거친 이 땅의 자연은 절로 인간의 영혼에 전율을 일으킨다. 이는 마치, 느낄 수는 있지만 귀로 들을 수는 없는 깊은 저음과도 같다. 내장에 박힌 날카로운 발톱 같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의 도입에서 묘사되는 와이오밍의 대자연은 ‘위험하고도 무심’하다. 눈보라와 강풍이 몰아닥치기 무섭게 뜨거운 햇볕만 내리쬐는 날들이 이어지고, 폭풍우가 치다가 어느새 우박으로 탈바꿈하더니 토네이도가 모든 걸 날려 버린다. 와이오밍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이 인간의 삶에 끊임없는 폭정을 되풀이하는 곳이다. 그 속에서 생존할 수만 있다면, 인간사의 비극은 그저 보잘것없고 유한한 시간 안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덧없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살아남았다는 것은 광폭한 자연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상징이 되며, 척박한 환경에서 맨손으로 삶을 일구어 내는 것은 최고의 가치가 되어 와이오밍 사람들 특유의 자부심이자 삶을 대하는 바탕이 된다.
애니 프루는 그러한 와이오밍을 형성한 공간적, 사회적, 문화적 특유성에 대해 ‘사람이 만든 것은 뭐든 유한의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중요한 건 오로지 대지와 하늘이다.’라고 결론짓는다. 11편의 작품 모두를 관통하는 이 선언적인 작가 의식은 바꿔 말하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고정된 질서나 변하지 않는 가치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의식과 달리 와이오밍으로 표상된 진짜 세계는 그렇게 자유롭지 않다.
와이오밍은 개척 정신의 승리라는 고정된 관념과 로데오로 대변되는 거칠고 강인한 남성성의 신화로 이루어진 곳이고, 외부에서는 그것을 모험과 낭만, 자유의 이미지로 소비한다. 애니 프루는 그렇게 굳어진 고정관념과 환상에 구체적인 사람의 표정을 새겨 넣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표정에서 마초적인 상남자로 여겼던 카우보이들이 관습의 희생양이 되고, 삶에 대한 확고하고도 독선적인 가치관은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협박과 폭력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작품집의 표제작이자 미국 지성인들의 잡지로 유명한 [뉴요커]에 연재된 「브로크백 마운틴」은 물론, 개리슨 케일러가 뽑은 ‘1998년 최고의 미국 단편 소설’이자 존 업다이크가 뽑은 ‘금세기 최고의 단편’으로 평가받은 「가죽 벗긴 소」, 오 헨리 단편소설 상을 수상한 「진흙탕 인생」 등 총 11편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와이오밍의 날씨만큼이나 통제 불가능하다. 그 인물들이 대책 없이 거칠고 수소만큼 고집이 억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미치는 외부 세계의 영향력이 그만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상처 입고 몰락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전설이나 무용담처럼 느껴지는 한편, 치열하게 묘사되는 사실적인 캐릭터들에 의해 마치 실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까다롭게 배치된 플롯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적막한 허무함이나 헛웃음과 함께 눈물짓지 않을 수 없는 11편의 단편들은 애니 프루가 얼마나 위대한 스토리텔러인지 깨닫게 만든다.

과연 자신의 삶은 자신이 개척하는 것일까?
환경이 숙명이 되고, 숙명이 삶이 되는 곳에서
생존과 폭력의 친밀한 상관관계가 들추어내는 삶의 아이러니

자신을 ‘역사 애호가’라고 말하기도 한 애니 프루는 이 책에 실린 11편의 단편들 가운데 「가죽 벗긴 소」, 「블러드 베이」,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을 민간 설화와 회고록, 역사책에 실린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 애니 프루는 역사적 사실을 소설화시키는 동시에, 역사가 되지 못한, 혹은 있었을 법한 삶을 소설화시킴으로써 ‘와이오밍’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성의 본질을 드러낸다.
난폭한 자연이 지배하는 와이오밍은 냉담하며 무표정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다. 애니 프루가 책 머리말에 인용하고 있는 ‘보통의 현실은 이곳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은퇴한 와이오밍 목장주의 말처럼, 척박하고 무자비한 땅인 와이오밍에서 ‘목장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현실과 직면하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자기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못할 일이 없다. 그곳은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돌보는 것’이라는 성문화되지 않는 방침이 존재하며, ‘생존’만이 판단 기준이 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그 질서를 따르지 못하는, 혹은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배제되고 희생된다.
각 단편의 주요 인물들은 대개 남자인데, 그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파악하기도 전에 주도적이고 자유로운 서부 개척 시대의 강인한 남성성이라는 신화를 본능적이고 맹목적으로 따른다. 심지어 「가죽 벗긴 소」에서처럼 와이오밍을 떠나 자신만의 것을 찾고자 할 때조차도 장소만 바뀔 뿐, 기존의 질서와 정해진 권위를 따르며 생존을 위해 그 가치들을 쟁취한다. 그리고 그런 생존의 방식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파멸에 이르게 한다. 각자 처한 상황과 이야기만 다를 뿐 11편의 단편 속 인물들 누구도 그런 아이러니한 인간의 숙명에서 예외가 아니다.
「진흙탕 인생」의 주인공 다이아몬드는 로데오 대회에서 소를 타는 카우보이가 되려고 한다. 엄마의 만류에도 키가 작고 동정인 다이아몬드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멋진 남성성을 얻는 데에만 혈안이 된다. 하지만 로데오의 세계에서 다이아몬드는 사회가 선전하는 이미지와 달리 어떤 전문성도 키우지 못하고 부상과 실패, 폭력과 조롱만 남는 진흙탕 인생을 경험할 뿐이다. 「세상 끝자락의 레드월 목장」과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아버지’로 존재하는 모든 인물들은 거의 야생에서 볼 수 있는 수사자와 다름이 없다. ‘목장’이라는 한 왕국의 우두머리가 된 아버지들은 지극히 가부장적이며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가족들과 소통은 당연히 부재하고, 온갖 폭력과 혐오감으로 자식들이 차지해야 할 입지를 없애고 상처 입힌다.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은 부조리한 세계의 질서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굳센 의지와 강인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목장을 일군 던마이어 일가는 자신들의 가치관이 권력이 되어 남성적이지 못한 틴슬리 일가의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인식은 일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인식은 서부 개척 시대 이래로 성문화되지 않은 와이오밍 사람들의 호전적 생존 방식과 다를 바 없음을 독자들은 점점 눈치채게 된다. 굳어진 관습과 지배적 질서에 조금의 의심도 품어본 적 없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주도했다고 말할 수 없다. 변하지 않고 무자비한 힘을 가진 와이오밍의 자연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비록 인위적이지 않다는 면에서만 다를 뿐, 생존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이 빚어내는 수직적이며 폭력적인 인간 세계의 질서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고칠 수 없는 일이라면 견뎌야지 어떡해.”
끊임없이 지속되는 비참한 삶, 하지만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죽음만이 삶의 유일한 탈출구인 곳

삶의 조건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애니 프루의 이야기 속에서 그런 낭만적 해피앤딩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친 자연에 대항하며 생존을 위해 싸우는 강인함이라는 남성 중심적 가치는 지배 질서가 되면서 그와 같지 않은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는 폭력성을 키워 간다. ‘생명’에 대해 우리는 존엄성을 이야기하지만 ‘생존’에 대해서라면, 힘의 논리가 만들어낸 서열 중심적 질서에 대해 대부분 눈 감음으로써 부당한 구조에 복무한다. 그리고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해 개인의 책임이나 약자의 고통으로 축소시킨다. 이것은 비단 자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생존자들에게만 내재된 아이러니가 아니다. 모든 승리에는 그 승리를 신화화하고 유일한 가치로 삼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며, 그 욕망이 바로 아이러니한 인간의 숙명을 잉태한다. 그리고 언제나 희생자들은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의 라스처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웃음을 웃거나, 「외딴 해변」의 조제너처럼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게 스스로 사그라지게 둘 만한 것들도 통제 불가능한 대재앙’으로 만들어 버리며, 「브로크백 마운틴」의 에니스처럼 “고칠 수 없다면 견뎌야지”라고 체념한다.
애니 프루는 추악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비극적이라는 말로는 부당한 세계를 그려 보이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소리 내는 법이 없다. 작가는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관점에 얽매이기보다는, 열심히 살아도 가난밖에 남는 것이 없고, 무엇을 시도한들 패배만이 예정된 ‘열등한’ 인물들을 통해 아주 분명하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서열 중심적인 힘의 문화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한정짓고 억압하고 박탈하는지 드러냄으로써, 도시화와 문화를 덧입었을 뿐, 똑같은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이질적으로 채색된 리얼리즘의 세계를 비춰 준다.

추천사

뉴욕타임스
강렬하다. 절대적 진실성과 서부 사람들의 언어로 인생의 고통과 고독을 시적으로 비틀어 냈다.

보스턴글로브
오직 소수의 작가들만이 단편과 장편 모두를 편하게 쓸 수 있다. 부싯돌처럼 거칠고 때로는 숨을 멎게 만드는 이 단편들은 퓰리처상 수상작과 함께 애니 프루의 최고 작품으로 우뚝 섰다.

피플
애니 프루는 미국 서부에 대한 낭만적 이미지를 벗겨 내며 우리 중 어느 누가 인간의 본성을 넘어설 수 있는지 묻는다. 숨 막힐 듯한 이 작품은 그 질문에 대한 그녀의 치명적인 대답이다.

아웃사이드
정교하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 호소하는 풍부한 문체의 향연, 명확한 이야기와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은 미국 소설에서의 주요한 성취이다.

리안(영화감독)
마지막에 이르러 눈물이 가득 고였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는 알았다. 이 이야기를 놓쳐버린다면 남은 생애 내내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것을.

커커스 리뷰
사랑과 상실, 그리고 그 후의 결과까지 포함한 거칠고 억압적인 이야기들.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쓴 적이 없으며, 애니 프루보다 잘 쓴 적도 없다.

목차

가죽 벗긴 소
진흙탕 인생
경력
블러드 베이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
세상 끝자락의 레드월 목장
어느 박차 한 쌍
외딴 해변
와이오밍의 주지사들
다음 주유소까지 앞으로 90㎞
브로크백 마운틴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그러나 그는 누군가 숫자를 여덟까지 세고, 파이프로 난간을 두드려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릴 때까지 황소 위에서 버텼다. 그러고는 풀쩍 뛰어 두 발로 착지한 다음, 고꾸라질 것처럼 비틀거리긴 했지만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난간을 향해 달렸다. 마침내 멈춰 선 다음에도 그는 격렬한 움직임과 강렬한 흥분으로 인해 숨을 헐떡였다. 마치 대포에서 쏘아져 나온 느낌이었다. 난폭한 몸놀림에서 전해지던 그 충격 그리고 번개처럼 맞춰지던 몸의 균형, 소 위에 올라탔다기보다 자신이 소 자체가 된 것 같은, 그 강렬했던 힘의 감각은 어떤 두려움도 그리고 미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자신 안의 탐욕스러운 육체적 허기도 가득히 채워 주었다. 그건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하고 참을 수 없이 은밀한 경험이었다. -51쪽, 「진흙탕 인생」

이 땅은 위험하고도 무심하다. 이 꼼짝도 않는 거대한 대지 위에서는, 제아무리 사방에서 불행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진대도, 인간사의 비극이라는 건 한없이 보잘것없어 보일 뿐이다. 작은 목장에서, 주민이 고작 세 명에서 열일곱 명에 지나지 않는 외딴 교차로에서, 무모하고 난폭한 광산촌의 트레일러 캠프장에서, 그 어떤 종류의 살육이 나 잔혹한 일이 벌어진대도, 그 어떤 사고나 살인이 일어난대도, 하늘에 떠오르는 여명의 빛을 늦출 수 있는 것은 없다. 울타리, 가축, 도로, 정제소, 탄광, 자갈 채굴장, 교통 신호, 육상 경기의 승리를 축하하는 육교 위의 요란한 낙서, 월마트 하역장의 말라붙은 핏자국, 고속도로 사상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볕에 바랜 조화 화환, 이 모두가 덧없는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만든 것은 뭐든 유한의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중요한 건 오로지 대지와 하늘이다. 매일 끝없이 되풀이되는 아침의 여명이다. 그렇게 당신은 그 이상 신이 우리에게 베풀어야 할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123~124쪽,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

새카만 한밤 중, 평원 위에서 모든 걸 완전히 태워 없애 버릴 기세로 치솟는 불길에 둘러싸인 집을 본 적 있는가? 당신 차에서 비추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방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밤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말이다. 그런 거대한 어둠 속에서, 엄지손톱만 한 환한 불꽃이 파르르 흔들린다. 집이 연소해 버리기까지 혹은 당신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그 광경을 보면서 당신은 그저 앞으로 계속 운전해 나아가다가, 한 시간 정도 지나 차를 길가에 세워 놓고 눈을 지그시 감거나 총알이 총총 뚫어 놓은 듯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때 당신은 불타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들이 계단을 찾아 허둥대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볼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내가 크레이지우먼크리크 유역에 있는 폐물 같은 트레일러에 살던 그해, 조제너 스카일즈가 딱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단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불타는 한밤중의 집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마도, 술 취하고 마약에 찌든 그 지역 풍토에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게 스스로 사그라지게 둘 만한 것들도 통제 불가능한 대재앙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마음속 잔디에 붙은 작은 불씨가 합해져 그런 게 아닐까 싶다. -255~256쪽, 「외딴 해변」

잭에게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굳게 자리 잡은, 너무도 갈망하는 기억이 하나 있다면, 까마득한 그해 여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에니스가 가만히 등 뒤로 다가와 그를 끌어안던 그 순간이었다. 욕망을 초월해 서로 간에 공유된, 허기짐을 채워 주었던 그 침묵 속 포옹.
그들은 그 상태로 모닥불 앞에서 꽤 오랫동안을 서 있었다. 붉은 파편을 내뿜으며 타오르는 불빛을 받은 그들의 그림자가 바위 표면 위에서 하나의 기둥으로 비추었다. 에니스의 주머니 안에 있는 회중시계에서 그리고 불에 타 숯이 되어 가는 장작개비에서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갔다. 별들은 모닥불 위에서 넘실대는 불줄기 사이를 비집고 반짝거렸다. 에니스의 숨결이 천천히 조용하게 다가왔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불꽃의 장단에 맞추어 몸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고, 잭은 그 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와 희미한 전기 같은 콧노래의 진동에 취해, 선 채로 잠은 아니지만 일종의 몽환적이고 나른한 가수면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에니스가 옛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 자주 들었던, 녹슬었지만 아직 쓸 만한 구절을 들먹이며 그를 깨웠다.
“이젠 잠자리에 들 시간이야, 카우보이. 난 슬슬 가야겠다. 자 어서, 말처럼 이렇게 서서 자면 안 되어요.”
그는 잭을 가볍게 흔들어 앞으로 살짝 밀어내고 어둠 속으

저자소개

애니 프루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지은이 애니 프루는 1988년 단편집 <하트 송과 단편들>로 등단했다. 이어 1992년 발표한 <포스트카드>로 1993년 PEN/포크너 상을 수상했다. 1993년 작 <서핑뉴스>는 그녀에게 '시카고 트리뷴'의 하트랜드상, '아이리시 타임스'의 인터내셔널 픽션 프라이스, 내셔널 북 어워드, 그리고 퓰리처 상을 안겨주었다. 1996년 발표한 <어코디언 크라임>은 전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1997년 애니 프루는 와이오밍에 대한 단편들을 쓰기 시작한다. 그중 <벌거숭이 소>는 개리슨 케일러가 뽑은 '1998년 최고의 미국 단편소설'과 존 업다이크가 뽑은 '금세기 최고의 단편'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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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림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한국교원대학교 영어교육과와 호주 맥쿼리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번역문학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빈센트 그리고 테오』 『패션 플래닛』 『파피』 『작가들과 반려동물의 사생활』 『퀸 오브 더 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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