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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학 기행 : 방민호 교수와 함께 걷는 문학도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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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학의 시선을 통해 서울을 만나다!

서울이 남긴 문학, 문학이 남긴 서울을 연구해온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지난 1년 반 동안 서울 곳곳을 다니며,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열 명의 작품을 연구해 펴낸『서울 문학 기행』. 저자는 이 책에서 서울의 공간에 켜켜이 쌓여간 문학과 삶의 시간을 깊고 넓게 드러내 보인다. 한국 문학사 대표 작가들이 남긴 시와 소설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작가와 맺어온 관계를 한 겹 한 겹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나아가 장소가 작품에 갖는 의미 또한 동서양의 문학과 철학 개념에 근거해 한국문학연구자의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따라 찬찬히 걷다 보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학의 생명력을 만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이상, 윤동주, 박인환, 김수영, 박완서…
불멸의 문인들이 사랑한 도시, 서울을 걷다!

서울에 쌓여간 삶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다.
이어령 추천! “한국문학의 뛰어난 연구자 방민호 교수의 새로운 삶의 독법!”

서울은 어떤 이야기를 낳았는가.
시와 소설의 사연 깃든 문학의 길을 걷다!

서울이 남긴 문학, 문학이 남긴 서울을 연구해온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지난 1년 반 동안 서울 곳곳을 다니며,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열 명의 작품을 연구해 『서울 문학 기행』을 펴냈다. 이 나라의 문화가 가장 찬연하게 살아 숨 쉬는 도시 서울에는 한국 사람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아름다움, 인내의 이야기가 압축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방민호 교수는 문학의 시선을 통해, 서울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장소의 한 축을 설정하고 이곳에 쌓여간 삶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삶의 독법을 보여준다. 서울을 단순히 ‘물질의 공간’이 아니라 ‘영혼의 공간’으로서, 인간 본질을 들여다보는 투시적 시선으로 도시 이면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날개」에서 주인공이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하고 외친 장소는 현재 ‘소공동의 신세계백화점’의 옥상이며,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최초로 전입되었던 상징적 공간이다. 윤동주의 서촌 ‘누상동 9번지 하숙집’은 다섯 달 남짓 열 편의 시를 남길 정도로 정신적으로 충만한 시기의 작품의 산실 역할을 했으며, 이광수의 ‘홍지동 산장’은 민족주의자의 자존과 변절자의 유혹 사이에서 평생을 우유부단하게 살아갔던 삶을 상징한다. 박태원이 구보라는 인물의 시각으로 바라본 ‘경성역’은 조선인의 세계를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며, 임화에게 ‘종로 네거리’는 사랑하는 조선과 사랑하는 민중을 상징하는 향수의 세계다.
이렇듯 한국 문학사 대표 작가들이 남긴 시와 소설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작가와 맺어온 관계를 한 겹 한 겹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나아가 장소가 작품에 갖는 의미 또한 동서양의 문학과 철학 개념에 근거해 한국문학연구자의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따라 찬찬히 걷다 보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학의 생명력을 만날 수 있다.

문학의 눈으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새롭게 알게 될 것이다!

불멸의 문인 열 명의 작품과 서울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저자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끝내 마주하게 되는 질문은 ‘그들이 운명에 대처했던 태도는 어떠했는가?’라는 것이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의지의 순간을 채록한 문학 작품이야말로 삶에 대한 지침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내밀하면서도 적확한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촌의 누상동 9번지는 윤동주가 순수의 시인으로 거듭난 문학의 공간이다. 이 시기 윤동주의 하숙집은 문단의 소왕국이었다. 희곡작가이자 소설가였던 집주인 김송을 찾아 드나드는 문인을 통해 문단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윤동주의 창작열은 깊어갔을 것이다. 누상동 시절에 직면한 식민지 조국의 운명을, 완벽하고도 감당하기 어려운 순수의 시로 승화시켜낸 것을 두고 저자는 ‘젊어서 말년에 이른 완전한 순수’로 명명한다. 일본 유학을 위해 불가피하게 창씨개명을 한 뒤 참회의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윤동주, 무한의 순수를 추구했기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쓸 수 있었던 윤동주의 내면세계는 절대 순수라는 가치를 지향한 초인적인 노력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김수영의 생전 마지막 거처는 마포구 구수동 41번지다. 김수영의 구수동은 외부에서 내부를 비판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이해된다. 비판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과 거리를 둔 김수영의 부릅뜬 눈에서 우리는 그 도저한 ‘불온’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박인환의 문학은 시대를 앞서간 탓에 시대의 제약에서 오히려 자유로웠다. 저자의 지적대로 제도와 생활을 버린 박인환은 명동의 동방살롱에서 첨단 시론을 읊었고, 이념과 이윤의 논리에 병든 현대사회를 투시했다. 그러나 견자의 세련과 우울이 ‘불모의 문명’을 딛고 서고자 노력했던 장소인 동방살롱은 현재 완전한 상업시설이 되어 박인환을 배반했다.
반면, 이광수의 홍지동 별장은 지식인의 변절과 문학인의 재능이 일장춘몽처럼 서린 곳이다. 시대의 제약이 이광수에게는 약속된 기회가 되어버렸지만, 저자의 전언대로 이광수가 처절하게 문학을 갈구하는 삶을 살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파란만장한 봄을 살다간 이광수의 삶과 문학은 아름다움과 고통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들을 통해 드러낸 ‘서울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낳은 이야기’는 곧,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인 ‘우리 보편의 삶’이 나아가는 방향과 맥을 같이한다.

불멸의 문인 열 명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고,
새로운 ‘삶의 독법’으로 해석하다!

방민호 교수는 문학평론가 활동과 더불어 고등 문학교과서 책임저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국어교과서를 만들 때 박완서 작가의 인터뷰를 넣을 생각으로 구리 시 가는 길목에 있는 그의 자택을 방문했다. 거실에서 키우던 양란의 화려한 꽃이 보기 좋다는 저자의 인사말에 박완서는 “저것들이 저렇게 극성스럽게도 피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방민호 교수가 박완서의 『나목』을 통해 보여주는 1950년대 계동과 명동 일대는 바로 이 ‘극성스러운 생명력’이 일으켜 세운 세계다. 해방 이후 곧장 6·25전쟁을 거치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상흔을 딛고 일어나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런 모진 의지가 요구되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어도 살고자 한 욕망이 전쟁통에도 수도극장의 영사기를 돌렸고,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목’에 봄의 향기를 배게 했을 것이다.
손창섭과의 인연은 더 드라마틱하다. 방민호 교수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손창섭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해온 연구자다. 1973년에 일본으로 떠난 뒤 행방이 묘연했던 손창섭의 문학과 삶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추적해온 저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손창섭의 일본인 아내를 만나 말년에 그가 창작한 시조가 적혀 있는 수첩을 입수하기에 이르고, 이 책에 몇 편을 소개한다. 이는 손창섭이 일본에서 오래 머물면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했다는 증거가 된다. 한국인이되 철저한 아웃사이더로서 한국사회의 외부에 존재한 손창섭, 그가 1960년대 서울에서 기거한 곳은 흑석동이었다. 그곳에서 집필한 『인간교실』은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세태 소설로, 주인공 주인갑이 기거하는 곳 역시 흑석동이다.
이호철 또한 방민호 교수의 연구 편력이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운 작가다. 『서울은 만원이다』를 통해 저자는 하층민을 시민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도시개발의 음습한 이면을 종로3가라는 욕망의 거리를 배경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울 문학 기행』은 서울의 공간에 켜켜이 쌓여간 문학과 삶의 시간을 깊고 넓게 드러내 보인다. 그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바탕에 우리 삶의 행간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서울의 곳곳에서 발견하는 문학의 상상력과 생명력이 우리 삶의 계기가 되어줄 시간을 마주해보자.

[책속으로 추가]
김수영은 직업 갖기를 싫어했습니다. 체제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 것이지요. 당시 구수동 41번지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체제를 가장 변방에서 바라볼 수 있는, 바깥에서 거리감을 두고 볼 수 있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기어코 외부로 나가려 했던 것일까요? 김수영은 산문 「모기와 개미」에서, 지식인을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지요. 인류 전체의 문제에 골몰하는 한 개인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은 어딜까요? 바깥, 가장자리이겠지요.
―7장, 243쪽

그러니까 주인갑 씨의 집은 노량진에서 동작동 국립묘지 가는 길가의 언덕배기에 있어 한쪽으로는 한강을, 다른 한쪽으로는 노량진을 굽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이 집이 손창섭의 실제 흑석동 자택을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손창섭은 흑석동 효사정孝思亭과 원불교 서울회관 자리의 언덕쯤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손창섭의 집에서 한강이 내려다보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아래 잔잔히 흐르는 한강과 인도교와 노량진 길을 무심히 내려다볼 수 있는” 주인갑 씨의 집은, 한강과 서울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내부를 외부에서 건너다보듯 또는 내려다보듯 주시하고자 했던 손창섭의 작가적 시점을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 8장, 286쪽

『서울은 만원이다』는 한국 자본주의의 병리적, 퇴폐적 요소를 상징하는 종삼과 길녀로 대표되는 몸 파는 여성을 통해,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가 이러한 잉여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김현옥 전 서울시장의 행정과 통치자들의 도시개발 계획은 종삼으로 상징되는 세계를 폐지함으로써 한국사회의 병폐와 잉여들의 존재를 극구 감춘 것이지요. 구획 정리를 통해 그들을 보이지 않는 외곽으로 밀어냈던 것입니다. 종삼 사창가를 폐지한다는 내용의 1968년 9월 27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볼까요.
― 9장, 322쪽

PX와 고가 사이는 바로 수도극장이라는 의미 있는 공간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선 서부활극, 철 지난 남의 전쟁 그리고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가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이는 전쟁의 참상을 겪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즐기고자 하는 욕망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 욕망이야말로 『나목』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모든 것을 잃었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욕망을 지닌 이경, 그녀는 어떻게 이 상황을 뚫고 나갈 것인가? 이것이 소설의 주제지요.
―10장, 353쪽

『나목』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강렬하게 꿰뚫어보는 눈동자의 존재를 느끼게 합니다. 미군 PX에서 명동을 지나 쇼윈도가 펼쳐진 거리를 지나 수도극장에 이르고, 또는 을지로입구에서 전차를 타고 종로에서 계동으로 가는 동안 피부에 스미는 정적, 괴괴한 도시 풍경, 아직 피난민들이 다 돌아오지 않은, 인적이 말소된 공허한 서울의 모습.
도강 금지령 때문에 정적에 차 있으면서도, 끝내 삶을 이어가야 하고 꽃 피워야 하는 사람들은 그때 자기의 어떤 이야기를 매만지고 있었을까요? 박완서는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0장, 366쪽

추천사

이어령(문학평론가 초대문화부장관)
도시는 우리의 삶을 만들어주는 물질의 공간이자,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영혼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상에게 ‘경성’은 파격과 감시의 장소였고, 윤동주에게 ‘누상동 9번지’는 시의 산실이자 무한에 도전한 공간이었다. 서울은 그런 면에서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닌 야누스와 같다. 문학 속에서 서울은 욕망이 집결된 도가니였으며 슬픔이 짙게 배어 있는 투쟁의 장이자 생존의 터전이었다. 재능 있는 작가이자 한국문학의 뛰어난 연구자인 방민호 교수는, 한국 현대문학의 교두보이자 여전히 새롭고 수수께끼 같은 공간 서울에 쌓여간 삶의 시간을 깊고 넓게 들여다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탐구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은 서울이 어떻게 이야기를 낳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 장소들에 의미를 부여한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가 열 명의 기쁨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지층처럼 그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과거와 현재의 인과 속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것을 방민호 교수는 장소라는 흔들리지 않는 한 축을 설정하고 문학이라는 투시를 통해 새로운 ‘삶의 독법’으로 명징하게 밝히고 있다.

이용훈(도서관문화비평가)
서울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온 역사 도시다. 치열하게 산 사람들이 만들어온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작가들은 의미 있는 문학을 창조해냈다. 그런 이야기와 역사가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서울 구석구석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작가와 문학 이야기를 찾아내 우리에게 흥미롭게 펼쳐 보여준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찬찬히 걸어보면 여전히 펄펄 살아 있는 작가와 문학의 생명력을 만날 수 있다. 부지런히 신발 끈 동여매고 이 책과 함께 아름답고 따스한 문학기행에 나가 서울을 새롭게 만나보자.

목차

책을 시작하며 시와 소설의 사연 깃든 서울을 찾아

1장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극단의 시대를 통찰하다 이상―날개

2장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순수를 향한 처절한 고투 속에서 윤동주―서시

3장 이것이 선이오? 악이오?
욕망과 죄의식의 이중국적자 이광수―유정

4장 한 개의 기쁨을 찾아 걷다
서울의 호흡과 감정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5장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
불쌍한 도시 사랑하는 여인 임화―네거리의 순이

6장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삶의 허무를 깊이 호흡하다 박인환―목마와 숙녀

7장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참여의 시가 아니라 존재의 시 김수영―풀

8장 의리나 양심을 팔아먹고 사는 것들
한강 밖 제3자의 시선 손창섭―인간교실

9장 나도 이게 어엿한 직업이여
잉여를 배제한 도시 이호철―서울은 만원이다

10장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전쟁 페허에서 발견하는 생의 의미 박완서―나목

서울 문학 기행 지도
참고 자료

본문중에서

「날개」의 주인공은 옥상에서 떨어져 죽지 않았습니다. 미쓰코시 백화점 문을 나서서, 결국 아내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현대의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생활 속으로, 그 피로한 세계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나’에게는 예술적 삶과 정열로 이 생활의 세계를 지양하고 초극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지를 다 잃어버린 지금, 현실 생활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느낄 때, 그때 ‘나’는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1장, 36~37쪽

새로운 거처로 옮기기 전까지 짧은 기간을 보낸 하숙집이었지만, 누상동 9번지는 여전히 문제적 공간으로 남습니다. 다섯 달 남짓 동안 열 편의 시를 쓸 정도로 윤동주 시의 산실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쓴 시의 총 분량을 고려하면, 하숙하는 동안 시 창작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김송의 집을 드나드는 문인을 통해 문단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창작열을 생성해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시기 동안 어떤 문학의 길을 가야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까요?
―2장, 59쪽

1941년 11월 20일에 쓰인 「서시」에는, 아시다시피 시대의 운명 속에서도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완벽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순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윤동주를 아마추어 청년 시인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등단해 문단에서 교류를 하지 않았고, 죽은 뒤에야 작품집이 나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누상동 9번지 하숙집 이야기나, 백석과 정지용 등 당대 제일의 문학에 깊이 심취해 연마를 거듭한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를 단지 아마추어 시인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그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2장, 84쪽

다시 이광수의 삶을 떠올려봅니다. 그 또한 얼마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가요.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 우여곡절을 겪으며 일제강점기를 보냈으면서도, 풍광 좋은 홍지동에 산장을 짓고 멋과 경치를 즐겼습니다. 고뇌를 겪으면서도 풍류를 놓지 않은 것입니다. 일장춘몽처럼 그 시절을 보낸 이광수는 1950년 6·25전쟁 이후 북한으로 끌려가 그해 10월 13일, 죽음을 맞이합니다. 탕춘대성 앞 벤치에 앉아 연산군과 이광수의 삶을 반추하며 생각했습니다.
―3장, 114쪽

경성역은 기차를 타기만 하면 부산으로, 부산에서 일본으로, 거기서 다시 태평양으로 떠날 수 있는 교두보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구보는 거기서 돌아서서 도회의 항구를 떠납니다. 이처럼 식민지 도시는 폐쇄적이며, 벗어날 수 없는 구심력을 갖고 있습니다. 도회의 항구라는 표현과 더불어 구보가 경성역에서 돌아서는 장면은, 병들고 음산한 세계를 쉽사리 떠날 수 없게 만드는 힘에 의해 우리의 산책자가 갇혀 있음을 의미합니다.
― 4장, 139쪽

자기 고향의 물상들, 사람들을 바라보며 병든 임화는 현재의 고통이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내일의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간절한 희구의 노래를 부르고자 합니다. 그는 지금 병든 몸을 이끌고 먼 남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옛날에 폐결핵은 일단 악화되면 살지 죽을지 알 수 없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임화는 자신의 ‘고향’ 종로 네거리를 향해 다음과 같은 마지막 노래를 부릅니다.
그에게 있어 종로 네거리는 곧 사랑하는 순이요, 사랑하는 조선이요, 사랑하는 민중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 5장, 182~183쪽

이제 저는 명동 거리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 명동의 동방살롱에서 박인환은 문인들과 만나 시대의 시적 주제들을 놓고 격렬하게 토론했겠지요. 그 골목 안 선술집에서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쓰기도 했습니다. 쓸쓸한 3월 초 어느 날 밤, 박인환이 쓴 시에 이진섭이 곡을 쓰고 임만섭이라는 테너가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마침 지나가던 소설가 이봉구와 김광주, 송지영까지 합세해 유명해졌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참으로 전설 같은 일화입니다.
― 6장, 220~221쪽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의 최후의 글들 가운데 하나겠습니다. 「목마와 숙녀」를 읽다보면 이 시도 인파 속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박인환에게 명동은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우리들에게도 삶과 문화가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을까요? 어둠 속의 등대 같이 빛나는 곳이었을까요? 바로 이 인파 속에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며 삶의 허무를 깊이 호흡하던 박인환이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의 큰 키가 저만치 인파 위로 불쑥 솟아오를 것 같습니다.
- 6장,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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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1965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1965년 충남 덕산에서 출생하여 공주와 대전에서 성장하였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및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다. 비평집으로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행인의 독법'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명주', 편서로 '모던 수필', '환상소설첩', '꽃을 잃고 나는 쓴다'와 '구보 씨의 얼굴'이 있다. 채만식과 관련된 저술로는 연구서 '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 '채만식 중ㆍ단편 대표소설선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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