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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보이 ECHO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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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SF와 미스터리 스릴러와의 만남, 2115년을 배경으로 '인간다움의 표상'을 그리다

인간을 완벽히 닮은 첨단 기계 ‘에코’가 인간들의 일을 대부분 대신하게 된 2115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첨단 과학 기술의 지나친 발전을 경계하던 부모님이 오작동을 일으킨 ‘에코’에게 살해당하고, 마음속에 깊은 ‘에코 공포증’을 갖게 된 15살 소녀 ‘오드리 캐슬’이 겪은 이야기를 기록했다. 오드리는 특별한 에코 소년인 '대니얼'을 만나게 되면서 잔인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100년 안에 이러한 첨단 기기들이 실제로 등장할지, 소설 속 인류의 재앙이 현실이 될지 예측하면서 미래 세계에 대해 상상해 보자.

출판사 서평

영국 아마존 '킨들 스토어' Teen&YA의
미스터리 스릴러 SF 분야 1위!


[에코 보이]는 대단히 만족스럽고 깊이 있는 작품이다. 무척 흥미롭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SF와 미스터리 스릴러와의 환상적인 만남!
인간을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인간을 완벽히 닮은 첨단 기계 '에코'가
인간을 대신해 온갖 일을 하는 2115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15살 인간 소녀 오드리와 에코 소년 대니얼이
'인간다움의 표상'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파격적으로 풀어낸 매력적인 문제작!


외계인의 눈으로 인간들의 삶과 사랑, 죽음을 돌아본 2014년 에드거앨런포 상 노미네이트 작 [휴먼 - 어느 외계인의 기록]을 쓴 영국의 인기 작가 매트 헤이그의 최신작 [에코 보이]가 출간되었다. 인간을 완벽히 닮은 첨단 기계 '에코'가 인간들의 일을 대부분 대신하게 된 2115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첨단 과학 기술의 지나친 발전을 경계하던 부모님이 오작동을 일으킨 '에코'에게 살해당하고, 마음속에 깊은 '에코 공포증'을 갖게 된 15살 소녀 '오드리 캐슬'이 지난 2주간 겪은 모든 일들을 미래형 블로그인 '마인드 로그'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부모님을 잃은 오드리는 유럽 최대의 첨단 기술 기업이자 에코 생산 기업인 '캐슬 산업'의 대표 '알렉스 삼촌' 집에 살게 되고, 다른 보통 에코들과 달리 생각을 말할 수도, 고통과 감정을 느낄 수도 있는 특별한 에코 소년 '대니얼'과 만나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고통스럽고 끔찍한 현실과 직면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오드리는 점점 부모님의 죽음에 가려져 있던 잔인한 비밀에 한 발짝 가까워지게 되는데....... 인간 소녀 오드리와 아주 특별한 에코 소년 대니얼을 기다리는 결말은 과연 무엇일까?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오드리와 대니얼의 마지막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에코를 사자고 했다.
결정적 한 표를 쥐고 있던 내가 에코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모든 사건은 주인공 오드리가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아빠에게 '우리 집에도 에코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첨단 기술 회의론자로 유명한 아빠는 에코 구매를 끝까지 반대했지만, 결국 오드리의 의견에 따라 집에 최신형 에코인 '알리사'를 들인다. 그러나 5주 뒤, 알 수 없는 오작동으로 오드리의 아빠와 엄마가 알리사에게 살해당하고,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해 죄책감을 느끼는 오드리 앞에 유럽 부자 서열 3위이자 유럽 최대 첨단 기술 기업의 대표인 삼촌 알렉스 캐슬이 나타난다. 그렇게 삼촌의 보살핌을 받게 되지만, 오드리는 삼촌 집에 가득한 각종 첨단 기기와 수많은 에코들이 그저 불편하기만 하다. 특히, 이 유난스런 에코, 대니얼이 가장 신경 쓰인다. 에코는 생각을 말할 수도, 감정과 고통을 느낄 수도 없는데, 대니얼은 삼촌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은 물론, 오드리에게 '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에 내가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대니얼은 오드리의 부모님을 죽인 진짜 범인은 '알리사'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말을 전한다. 오드리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낸다.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대니얼은 어떻게 진짜 범인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대체 왜, 이 별난 에코 대니얼은 자기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인지.

대니얼은 어깨에서 무엇인가 타오르는 듯한 고통에 눈을 떴다. 탱크 안이었다. 가까스로 탱크 밖으로 나왔지만,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공포를 느꼈다. 어떤 여자가 가까이 다가와 대니얼에게 수상한 물체를 주고 귀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귀에 그 물체를 넣자 신기하게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에코라는 사실, 이름은 대니얼이라는 사실. 그리고 에코는 두려움과 절망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사실.......

SF적 상상력이 총 동원된 생생한 묘사로
100년 뒤인 2115년의 첨단 미래상을 미리 만나다


소설 [에코 보이]는 가깝지도, 그러나 멀지도 않은 100년 뒤의 미래를 15살 소녀 오드리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지극히 건조하게 묘사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오드리와 대니얼이 지난 2주 간 겪었던 모든 일들을 각자의 미래형 블로그, 즉 손으로 타이핑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머릿속 생각이 저절로 글로 옮겨지는 '마인드 로그'에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15살 인간 소녀 오드리의 눈으로 바라본 2115년의 세계는 상당히 흥미롭다. 오드리는 마인드 로그에 '우울하기로는 21세기 역사가 최고였지만, 기후학도 그에 못지않았다.'고 하며 22세기를 퍽 암울하게 묘사했다. 대홍수로 국토의 반 이상이 물에 잠기고 뉴욕이 사라졌으며, 유럽 전역에 콜레라 재확산, 2040년대의 연료 전쟁, 대기근, 내전, 심각한 가뭄 등....... (저자는 오드리의 기록을 빌려 22세기에 한국 전쟁이 한 차례 더 일어났다고 하는 등, 작품 속에 한국을 종종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 관심이 꽤 많은 듯하다.) 오늘날에도 왕왕 언급되는 이러한 사회?환경 문제들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독자들은 쉽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에도 소설 속 '살아남은' 인류는 도태되지 않고 첨단 기술의 진보로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는 점이다. 물에 잠긴 건물과 건물 사이, 방과 방 사이를 건널 수 있는 이동 수단 '레비보드', 인간을 대신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인공 지능 첨단 기계 '에코', 4D 화면으로 과거의 모든 역사적 순간으로 돌아가 그 상황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가상 현실 포드', 착용만 하면 각종 네트워크에 저절로 접속돼 원하는 모든 정보를 눈앞에 볼 수 있고 눈 깜빡임만으로도 사진 촬영부터 영상 촬영까지 가능한 '인포 렌즈', 기억이나 분별력은 건드리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고통만을 없애 주는 '신경 패치' 등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이 극대화된 첨단 기기들의 모습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100년 안에 이러한 첨단 기기들이 실제로 등장할지, 소설 속 인류의 재앙이 현실이 될지 예측해 보는 재미가 독자들이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각종 첨단 기기로 무장된 소설 속 미래 세계는 과연 장밋빛일까?

'첨단 기술의 진보'는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소설 속 가상공간 [복원 생물 보호 구역]에 비친 미래 세계의 명암


[에코 보이]에 등장하는 여러 가상공간 가운데, 작품 속이나 작품 밖에서나 가장 논란이 될 곳은 단연 '복원 생물 보호 구역'일 것이다. 작품 내내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일관되게 주장되고 있는 이곳은 실제 영국에 존재하는 '리젠트 공원'에 가상의 이미지를 덧입힌 공간으로, 2115년의 리젠트 공원은 멸종한 생물들을 복원해 가두어 놓은 거대한 동물원이다. 동물원은 지금도 존재하는 공간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의아할 것이다. 문제는, 이 2115년의 복원 생물 보호 구역에 3만 년 전에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이 있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이 복원 생물 보호 구역 말고는 갈 곳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유가 없으면 죽는 게 낫다'며 죽어서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한다. 이 우리 안에 갇힌 네안데르탈인은 마치 조선 사람들을 '인간 동물원'처럼 전시해 둔 1903년 일본 오사카박람회와 1907년 도쿄박람회를 떠올리게 해 씁쓸함을 안겨 준다. 또한 이곳에서는 인간의 살과 피를 가졌지만 인간은 아닌 존재, 에코들의 살육까지 가차 없이 행해진다.
이 복원 생물 보호 구역의 중심에 바로 오드리의 삼촌, 알렉스 캐슬이 있다. 저자는 윤리적 고찰이 결여된 첨단 기술 발전의 극단적인 결과를 이 복원 생물 보호 구역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첨단 기술을 오직 돈으로만 생각하는 알렉스 캐슬을 비판함과 동시에 네안데르탈인 복원의 윤리적 문제를 방관하는 수많은 관람객, 즉 대중도 함께 비판한다. 첨단 기술에 익숙해진 대중은 이제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현실인지, 가상 현실인지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때문에 실제 일어나는 살육 현장도 스크린을 통해 보면 그저 단순한 구경거리처럼 느끼다가도, 바로 눈앞에서 살육을 목격하게 되면 그 참혹함에 고개를 돌려 버린다. 눈앞에 갇혀 있는 네안데르탈인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대중. 저자는 대중의 이러한 이중적인 폭력성까지 함께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지닌 에코 대니얼을 복원 생물 보호 구역에서 일하게 하여, '인간성'을 상실한 진짜 인간들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독자들에게 과학 기술의 발달이 진정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었는지를 지속적으로 묻는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은, 오드리의 삼촌 알렉스 캐슬이 숨겨 왔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 누구보다 인간다운 첨단 기계 '에코' 대니얼과
피도 눈물도 없는 극악무도한 '인간' 알렉스 캐슬.
과연 누구를,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청소년 독자들은 알렉스 캐슬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에, 이미 짐작했을 수도 있다. 오드리에게 하는 말과는 맞지 않는 알렉스 캐슬의 행동은 독자들이 그의 정체를 쉽게 의심할 수 있게 한다. 서서히 드러나는 알렉스 캐슬의 잔인함은, 오드리가 대니얼에게 마음을 열어 갈수록 깨닫게 되는 대니얼의 인간다움과 크나큰 대비를 이룬다.
진짜 심장과 피를 가진 삼촌의 행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하다. 자신이 가진 최대의 무기인 '부'를 이용해 사람을 사서 다른 이를 함정에 빠뜨린 다음, 다른 사람의 손을 더럽히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 낸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목숨을 잃어도 개의치 않는다. 아니,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자들은 인간이든 에코든, 모두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다.
이와 반대로 겉모습은 인간을 꼭 닮았지만 머리에는 진짜 뇌 대신 칩이 들어 있고 스스로 무언가를 배워 깨우치는 대신 '점화 장치'라는 물건을 몸속에 넣어야지만 깨닫는 첨단 기계 대니얼은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사랑하고,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인간을 부러워하는 기계.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갈 때 슬픔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목도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기계. 그 과정에서 비록 자신이 희생될지라도, 이를 감수하는 첨단 기계.
독자들은 알렉스 캐슬을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대니얼을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중 과연 누구를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삼촌을 피해 지구를 떠나 달로 향하며 인간의 삶을 포기하고 에코의 삶을 선택한 오드리, 그리고 일순간 깨달은 감정 하나만으로 인간 소녀와 평생 함께하기로 결심한 대니얼의 선택으로 그 판단을 대신한다.
인간이 에코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 에코와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이 꽤나 파격적이고 오싹하긴 하지만, 저자는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두려움과 사랑, 아름다움을 맛본 기계, 제거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것을 마음에 지닌 기계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인간이고 에코이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대신, 오직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소설 [에코 보이] 결말에, 청소년 독자들은 공감할 수도, 아니면 불쾌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전하고 싶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지금,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라고. 신의 영역에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이 커질수록, 결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가치를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이다.

본문중에서

오늘, 13살 이후 처음으로 마인드 로그를 쓴다. 정신을 집중해 생각을 기록하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싶다.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클라우드빌에 갔던 날, 마츠모토 부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의 사실.'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그날 있었던 사실이다. 어쩐지 속이 좋지 않다. 그날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한다.
(...중략...)
어쨌거나 그날은 여느 때처럼 습하고 우중충한 수요일이었다. 4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지만 그다지 상관없었다. 영국 북부에 살면 이런 비쯤은 개의치 않게 된다. 1년 중 4분의 3은 줄곧 물속에 잠겨 있었으니까.
부모님이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다툼이 아니라 서로를 괜히 트집 잡는 소리였다. 이유는 들리지 않았지만 보나마나 알리사 때문일 것이다. 알리사는 우리 집 에코다.
(/ pp.12~13)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보았지만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빠 서재 쪽으로 향했다. (...중략...) 아빠는 책상 옆 가상 현실 포드로 들어가 입구를 잠갔을 것이다. 창문을 조금 열어서 흙 내음 섞인 시원한 물 냄새가 흘러 들어오게 했을 것이다. 아빠가 좋아하는 냄새니까. 아빠는 정신없이 책을 쓰고 있을 것이다. 몇 주째 그 일에 매달렸으니까.
정말 그뿐이기를 얼마나 빌었던가.
"아빠?"
기묘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손, 손바닥을 펼친 손과 결혼반지가 보였다.
아빠의 손이었다.
그리고 아빠의 팔이었다.
(...중략...)
부모님이, 너무도 잔인하고 케케묵은 방식으로 살해되어 있었다.
도구는 칼이었다.
주방에서 가져온 칼이 틀림없었다.
아빠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자가 세탁 기능을 갖춘 엄마의 정장을 물들였다가 직물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피가 얼마나 흥건했던지 홍차나 커피쯤은 말끔히 처리하던 카펫조차 전부 흡수하지 못했다.
(/ pp.47~48)

에코 소년, 대니얼.
대니얼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창문을 열라고 손짓했지만 나는 열지 않았다. 아무리 신경 패치를 붙였어도 창문을 여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쯤은 판단할 수 있었다. 대니얼은 알아볼 수도 없는 말을 입 모양으로 뻐끔거리더니, 창문 바로 옆을 지나는 금속 빗물관을 타고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강인한 몸으로 어떤 인간보다도 빠르게 벽을 타고 올라왔지만, 겁이 나지는 않았다. 내 뇌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차분했다. 마치 책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인 듯, 나와는 아무 상관없고 실제 내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듯, 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중략...)
대니얼이 나를 바라보았다. 주변이 어두운 데다 신경 패치를 붙였는데도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달랐다. 지금까지 본 에코들과 달리 위험하고 강렬했다. 알리사보다 더. 대니얼은 빗물관을 붙든 채 잠시 그대로 있었지만, 이내 빨간 머리 에코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대니얼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아래로 내려갔다.
(/ pp.80~81)

"도와주세요! 삼촌! 살려 주세요!"
돌풍에 온몸이 마구 날렸다. 바람은 내가 죽기를 바라는 듯했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삼촌이 있었다. 삼촌이 서 있었다. 빗줄기로 얼룩진 검은 형상. 삼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됐다, 오드리! 내가 잡았다, 내가 잡았어, 내가 널 잡았어."
그 말이 삼촌 손만큼이나 단단하게 나를 붙들었다. 삼촌은 아빠보다 몸집이 작고 힘이 부족했지만, 사투 끝에 나를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차에 올라 전속력으로 달렸다. 클라우드빌의 갱단도, 중고 경비 드로이드도 더는 우리를 방해할 수 없었다.
이제 세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첫째,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영 틀렸다. 둘째, 자살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세 번째, 더는 삼촌을 의심할 수 없었다.
(/ pp.117~118)

"내 말 잘 들어."
대니얼은 내게 바짝 다가들며 속삭였다.
"알리사는 너까지 죽이도록 되어 있었어. 네 가족 모두를 죽이려 했던 거야.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지. 네가 살아남았거든."
(...중략...)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너도 오작동을 일으켜서 날 죽일지 어떻게 알아?"
대니얼은 고개를 저었다. 초조한 몸짓이었지만 눈빛은 사람처럼 부드러웠다.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넌 벌써 죽었을 거야, 안 그래? 내 말 믿어. 오작동 따위는 없었어. 다만 네가 계획과 다르게 행동했던 거야. 넌 그 남자 생각보다 더 강인한 아이니까."
"그 남자? 알리사는 여자였어."
(/ p.201)

로셀라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거짓말을 하려 들거나 진실을 감추려 한다는 신호였다.
"뭔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군요. 저는 두려움을 느끼면 안 되는 거예요."
"네 말이 맞아. 에코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 보통은 그렇지."
로셀라는 조용히 나를 뜯어보았다.(1분 48초가 걸렸다.) 그러고는 방을 나갔다. 돌아왔을 때는 책 1권을 들고 있었다. 텅 빈 전자 종이에 이미지가 나타났다.
"뭐가 보이니?"
종이에는 매번 새로운 윤곽이 나타났고, 나는 대답했다.
"나비....... 나무....... 손....... 다리......."
로셀라가 책장을 넘기자 이번에는 문양이 나타났다.
"이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니?"
나는 눈앞의 검은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절망요."
로셀라는 뭔가 확실해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pp.222~223)

"사실 네가 대니얼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단다."
"그게 뭔데요?"
"대니얼은 다른 원형들과 달라. 엄청난 돈을 투자했지. 최고의 설계자가 만들었고. 뭐, 천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 한데 천재들은 툭하면 말썽을 부려. 때로는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밀어붙이기도 하지. 그러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탄생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하지.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단다."
"알리사처럼요?"
"뭐라고?"
(...중략...)
"그래서 대니얼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에코에 대해 잘 아는지 모르겠다만, 에코의 뇌는 인간과 닮았지만 사실 전혀 다르단다. 코드를 기반으로 작동하거든. 에코의 뇌에는 칩이 들어 있어. 칩에서 이런저런 지시를 전송해 뇌 곳곳을 움직이는거지. 그중에서도 후두부는 자유로운 사고를 담당한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니얼의 경우 상상력이 작동한 모양이야."
어리둥절했다.
"상상력이라고요? 그게 나쁜가요?"
"상상은 위험해, 오드리. 상상은 에코에게 호기심을 심어 준단다. 그 덕에 발전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커지지. 그런데 다행히도 그 칩은 바로 여기에 있단다."
삼촌은 머리 뒤쪽을 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제거하기 아주 쉬운 데다, 제거한 뒤에도 에코 기능에는 아무 이상이 없지."
기능에는 이상이 없다.
"대니얼은 기계가 아니에요!"
(/ pp.304~306)

로셀라를 만나야 하는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알리사, 그리고 대니얼 때문에. 마지막으로 이곳을 탈출해 어디로든 떠나야 했기 때문에.
가상 현실 포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면 어떨까 싶었다. 이제 에코 공포증 같은 건 삼촌에 대한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구해 주고,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대니얼을 두고 지구를 떠나는 건 옳지 않았다. 그리고 달에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했다. 달로 여행을 가려면 누구나 정식으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내가 이 집을 탈출한다면 삼촌은 가장 먼저 지구를 떠나는 통로를 막아 버릴 게 뻔했다.
그때 가상 현실 포드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작았지만 틀림없이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더럭 겁이 나 외부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머리끝이 쭈뼛했다.
내 방에 마데어라가 들어와 있었다. 빨간 머리 에코 마데어라가 가상 현실 포드 밖에 서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데어라는 칼을 들고 있었다. 알리사가 우리 부모님을 살해한 바로 그 칼이었다.
(/ pp.396-~97)

"탈출 원한다. 자유 원한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
오리건은 내게 달려들어 팔을 꽉 움켜쥐었다. 인간보다는 힘이 센 듯했다. 루이스가 이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오리건은 다른 쪽 손에 날이 뾰족하게 선 부싯돌을 쥐고 있었다.
"도와줄 수 없어."
내 말에 오리건은 움켜쥐었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뚜렷한 자부심과 저항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 집 이곳 아니다."
루이스는 네안데르탈인에게 친절히 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설명을 해 주고 싶었다.
"안타깝지만 여기가 네 집이야. 넌 이곳을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넌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어. 나처럼 말이야. 인간이 아니면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 도망칠 수는 없어."
(...중략...) 오리건은 슬픔과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그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다른 도움을 청했다. 나를 가리킨 뒤 자신과 이제 잠에서 깨어나 두려움 가득한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피튜를 차례로 가리켰던 것이다.
"당신, 죽게 해."
"뭐라고?"
"죽여. 우리를."
오리건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면 우리는......."
오리건은 날카로운 부싯돌을 팔에 대고 누른 채 그었다. 피가 흘러나와 살갗을 타고 가늘게 흘러내렸다.
"그러지 마."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피를 닦아 낼 것을 찾았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이 나를 막아섰다.
"자유 없으면. 죽음 원한다."
(/ p.511)

"저, 로셀라 아주머니. 여기서 뭐든 다 하실 수 있죠. 그렇죠?"
"무슨 소리니?"
"에코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에코들은 전부 이곳에서 만들었죠? 그렇죠? 바로 여기에서요?"
로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대니얼은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알아차렸다.
"안 돼, 나처럼 되어서는 안 돼. 인간이 그럴 수는 없어."
나는 대니얼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 제 손에 표식을 새겨 주실 수도 있겠네요. E 마크요. 대니얼처럼요. 어깨에 고유 신원 표식도 찍어 주세요. 그러면 캐슬 상품인 척할 수 있을 거예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내가 하려는 말에 나도 겁이 났다.
"그러면 에코가 될 수 있을 거예요."
(/ p.550)

저자소개

매트 헤이그(Matt Haig) [저] 베스트작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75~
출생지 영국 셰필드
출간도서 12종
판매수 8,779권

“강렬한 존재감과 위대한 재능을 가진 소설가”로 평가받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동화작가. 기발한 상상력에 유머와 위트가 더해진 그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큰 공감과 위로를 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75년 영국 사우스요크셔주 셰필드에서 태어났다. 20대 초 절벽 끝에 서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던 순간, 자신의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깨달은 작가는 파트너와 가족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이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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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홍익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남들보다 먼저 읽고자 외국어를 배웠고, 익힌 언어를 십분 활용해 영어 강사 및 영어 도서 출판 기획자로 일했다.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독자들에게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낯선 언어와 쉼 없이 씨름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휴먼 - 어느 외계인의 기록] [한 권으로 읽는 구름책] [하이 파이낸셔] [환경을 지키는 영웅들] [핫 버튼] [우리 아기 첫 두뇌발달 놀이]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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