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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품의 분류

책소개

시간은 흐르는 것이지만 흘러간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시간을 파는 상점]이 출간되었다. 작가 김선영은 추리기법을 차용하여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들뢰즈, 유동의 철학]이라는 책을 통해 ‘시간’이라는 관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작가는 어렵고 관념적인 내용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나간다.

주인공 온조는 온라인 상에서 ‘시간을 파는 상점’을 오픈한다. 시간의 경계를 나누고 관장하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라는 아이디로 다양한 사람들의 의뢰를 받기 시작하는데...

시간은 흐르는 것이지만 흘러간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시간의 힘. 분명한 것은 시간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절망의 시간을 우리는 희망을 속삭이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청소년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릴 디딤돌!
시간의 양면성을 재미있게 엮어낸 소설, 그 마법 같은 비밀은…

작품 소개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선영 작가의 [시간을 파는 상점]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의 열다섯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지난해(2011년 연말)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응모작 중 단연 돋보임으로써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작품이다. 당선작은 우리나라 청소년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이 작품은 흐르는 시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다분히 철학적이고 관념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놀랍도록 편안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추리소설 기법을 살짝 빌려다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데, 그 흐름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은 물론이거니와 펼쳐지는 문장과 어휘의 선택은 청소년 독자에 대한 배려,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사유와 책임감이 느껴진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큰 의미가 있어 눈에 띄는 작품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하지 못하는 것, 그런 이야기들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되새김질한 다음 자기만의 색깔을 입힌 훌륭함에 심사위원들은 우리 청소년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릴 디딤돌이라고 평했다.

스스로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절망의 시간은 희망을 속삭이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작가 김선영은 [들뢰즈, 유동의 철학]이라는 책을 통해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의 상호 침투와 상호 연쇄, 우리가 보낸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사유할 때, 때마침 신문에서 예쁜 중국 여자의 사진과 함께 ‘제 시간을 팝니다’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또한 그때 한 아이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되었다.
“제 아들과 같은 또래였죠. 야자가 끝날 무렵 도난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에게 선생님은 ‘내일 보자’라는 말로 시간을 유예시켰던 모양입니다. 그 아이는 밤사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 날 스스로 죽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들한테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냉장고 앞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그 시간이 견디기 힘들었을까요. 결국 앞에 놓인 또는 더 멀리 놓일 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꽃다운 아이들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버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발 죽지 마라, 외치고 있었습니다. 다시 제가 생각하고 있던 ‘시간’과 교차되는 느낌이 들었고, 그 사건은 강력한 실타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야기는 구성되었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여 4개월 정도 걸린 듯합니다. 쓰는 동안 등장인물들이 살아 나와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연대하여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으니까요.”

줄거리

주인공 온조는 인터넷 카페에 ‘크로노스’라는 닉네임을 달고 ‘시간을 파는 상점’ 을 오픈한다. 고대의 신 크로노스는 턱수염을 다보록하게 달고 있는 노인이다. 등에는 커다란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지만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하르페로 거세하고, 제 능력보다 뛰어난 아들이 태어난다는 말에 레아가 낳은 자신의 핏덩이를 심장부터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신이다. 시간의 경계를 나누고 관장하는 크로노스야말로 온조가 생각했던 물질과 환치될 수 있는 진정한 시간의 신이었다. 시간을 분초 단위로 조각내어 철저하게 계산된 시간 운용은 반드시 생산적인 결과물을 낳아야 하는 이 시대에 딱 맞는 신이었다. 훌륭한 소방대원이었지만 젊은 나이에 죽은 아빠의 못다 이룬 뜻을 이어받은 온조는 손님들의 의뢰를 해결해주는 ‘시간을 파는 상점’의 주인, 크로노스가 되었다.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지만, 흘러간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

30만 베스트셀러 [시간을 파는 상점]작가 김선영의 기대작!
각 세대들이 겪는 우리 生의 가려운 이야기!

말만 많고, 절대 말 안 듣는 중2 아이들과
덮어놓고 열정만 많은 도서관 선생님의
한판 가려운 이야기!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법이 아녀.
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갈 수 있는 겨."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불안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불안은 잊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불안을 넘어서게 할 수 있을까? 작가는 불안한 우리의 모습을 중닭에 비유했다.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자라야 하니께 만날 가려운 겨. 미치도록 가려운 거지. 부리고 날개고 등이고 비빌 곳만 있으면 무조건 비비대고 보잖어."
수산나고등학교에서 성공적으로 도서관을 꾸려가던 수인은 울창한 수풀 속에 방치해둔, 낡은 목조 건물의 도서관이 있는 형설중 사서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았다. 수인에게는 이 사회 상위 1% 엘리트에 속하지만 늘 불안에 쫓기는 연인 율이 더 나은 스펙을 쌓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것도, 관행에 젖어 있는 새 학교의 시스템과 동료 교사들도,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과의 좌충우돌 학교생활도 감당하기가 벅차다.
저마다의 꿍꿍이속으로 독서반을 지원하여 도서관에 모여든 아이들... 가려워 몸살을 앓지 않는 아이가 없다.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전학 다녀야만 했던 도범은 일진 생활을 정리하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가락을 짓찧고, 끝까지 도범을 괴롭혀 일진에 돌아오게 하려는 양대호 일당과 가방 속에 망치를 넣어 다니는 해명(해머), 성적 스트레스로 불안에 매몰된 희곤, 책이 말을 한다는 이담이의 가려움.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수인의 어머니는 듬성한 깃털을 땅에 대고 날개와 목과 부리를 연신 비비는 이상한 짓을 하는 중닭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했다.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법이 아녀. 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갈 수 있는 겨. 애들도 똑같어. 제일 볼품없는 중닭이 니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일 겨. 병아리도 아니니께 봐주지도 않지, 그렇다고 폼 나는 장닭도 아니어서 대접도 못 받을 거고. 뭘 해도 어중간혀. 딱 지금 니가 가르치는 학상들 아니것냐. 그 애들이 지금 을매나 가렵겄냐.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어디가 가렵구나. 그래서 가렵구나 알어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녀? 말 드세빠지게 안 듣는 놈일수록 가려운 데가 엄청 많은 겨.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아, 저놈이 어디가 몹시 가려워서 저러는 모양인가 부다 하면 못 봐줄 거도 없는 겨."
수인의 어머니마저도 긴 세월 방치해둔 가려운 곳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이해 안 될 것도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스펙을 만들기 위해, 뭔가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훌쩍 떠나버린 율마저도.
이 소설은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 청소년 베스트셀러는 물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간을 파는 상점]김선영 작가 특유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섬세한 문장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 청소년과 어른, 모두가 한결같이 앓고 있는 가려움, 불안에 대해 조명한다. BR>첫 번째 의뢰인의 닉네임은 ‘네곁에’. 온조의 옆반에서 일어난 PMP 분실 사건을 의뢰한다. 훔친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달라는 부탁. 작년 온조네 학교에서는 MP3 도난 사건이 있었다. 훔친 친구는 야자 시간에 바로 들통이 나고 말았고, 그 사실을 안 선생님은 내일 보자는 말로 시간을 유예시켜 버렸다. 선생님의 내일 보자는 그 말은 어떠한 협박보다도 더한 폭력이 되었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밤사이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 MP3을 잃어버린 아이는 바로 전학을 갔고, 학교도 가족도 모두 이 사건을 덮어버렸다. 온조는 또다시 일어난 도난사건에 또 한 명의 친구가 그와 같은 죽음을 맞닥뜨릴까봐 몸서리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맛있게 식사를 해달라는 엉뚱한 의뢰이다. 물려받을 유산을 미리 정리하여 미국으로 이민 간 강토네는 결국 가정이 붕괴되기에 이른다. 아들 내외에게 유산을 정리해준 할아버지는 혼자서 자유롭게 세계 여행을 다니다 미국으로 아들내외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시간, 한국에서 가족 모두가 돌아올 집을 지키던 할머니는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다. 강토 아버지는 바쁘다는 이유로 죽은 어머니를 냉동고에 넣어 달라고 하고, 아들에게 분노한 할아버지는 아들을 검찰에 고소하고유학 비용을 포함한 정착금을 모조리 청구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강토는 결국 한국에 남기로 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독립한 생활을 한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 맛있게 식사하는 것이 꿈이었던 할머니의 소원을 대신하여 할아버지와의 맛있는 식사를 온조에게 의뢰한 것이다. 강토가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에게 마음을 열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남편을 잃고 씩씩하게 온조를 길러온 엄마는 환사고(환경을 사랑하는 교사모임)에서 새 동반자를 만난다. 온조의 담임 불곰 선생님이 바로 그다. 불곰의 염려 가운데 시간을 파는 상점은 온조 개인 상점이 아닌 우리의 상점이 되어가며 더욱 단단해진다.
시간을 잡아두고픈 간절함으로 천국의 우편 배달부가 되어 달라는 의뢰, 자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는 가네샤의 의뢰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PMP 분실 사건으로 죽음에 이를 뻔한 친구가 밝혀지고 온조와 친구들에게 예상치 못한 위기가 또다시 찾아온다…….
위기에 내몰리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답을 찾아가던 아이들은 깨닫는다.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시간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절망의 시간을 우리는 희망을 속삭이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온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용서하고 할아버지와의 식사 자리에 온조를 초대한 강토와의 만남도 먼 미래의 어느 시간에 맡겨두기로 한다. 시간이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다…. 언제나 새롭게 맞이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인가.

추천사

심사평1.
이 작품이 우리나라 청소년문학 동네에서 작은 언덕 하나를 넘어서는 디딤돌이 될 수 있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우리 옛말을 잘 구사하면서도 요즘 청소년들의 언어를 적절하게 배합을 시켰다. 거기에다가 작가가 오랫동안 사유해서 토해내는 문장들이 조화롭게 배치가 되어 있다.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유를 하였는지 알 수가 있었다.
- 이상권 / 소설가

심사평2.
[시간을 파는 상점]은 추리 기법을 차용해서인지 시작부터 눈길을 끌었다. 추리라는 숨김과 드러냄 전략이 잘 세워져 있고, 청소년 주인공을 내세워 다루기엔 만만치 않은 시간이란 주제를 무난하고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문장 하나하나, 사건들 하나하나에 부분과 전체 사이의 유기적인 짜임, 얽힘, 함의, 복선 등을 촘촘히 깔아놓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무엇보다 문장이 깔끔하고 잘 다듬어져 있으며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정확히 알고 있다. 사건 진행의 속도와 문장 호흡의 길이도 잘 어우러진다.
- 박경장 / 문학평론가

심사평3.
[시간을 파는 상점]은 다른 작품에 비해 압도적인 가독성을 보였다. 정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문장도 탄탄했을 뿐 아니라 작중 청소년들의 입말도 자연스러웠다. 극적 긴장감과 주제의식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나간 뚝심도 좋았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한 소녀의 근사한 성장담이었다.
- 박권일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장편소설로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선영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 유달리 예민한 작가이다. 자신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그는 온조라는 여학생을 내세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다시 말해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과 행동하는 주체의 실존적 결단에서 잉태되는 시간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의뢰인'들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세 번째 장편소설로 내놓게 된 ??미치도록 가렵다??에서 이 작가는 두 차원의 시간이 경계 없이 어우러져 생명 있는 존재들을 '미치도록 가렵'게 하는 모습들을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다. 폭력 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전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도범, 끼리끼리 뭉쳐 있는 동아리들 밖에서 배돌다가 책읽기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담, 말(언어) 대신 망치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해머', 그리고 스펙 쌓기의 강박에 사로잡힌 남자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여교사 수인 등, 이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들 나름의 가려움을 견뎌내며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수인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는 지독한 가려움을 가장 볼품없는 중닭에 빗대어 드러낸다. "가려우니께 땅에 대고 하도 비벼서 털이 빠져서 그랴." 이러한 가려움이 성장 또는 생명의 보편적 현상으로 의식될 때, 이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그들만의 특이성으로 빛을 발하게 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의 삶의 조건을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김선영은 이러한 성찰을 타자에 대한 공감 쪽으로 폭을 넓혀가면서 인간적 소통이 가능한 세계를 창조해가고 있다.
- 황광수 / 문학평론가

목차

여름의 막바지
목신들의 도서관
새와 해머 그리고 깡
헌책 파는 남자, 헌책 사는 여자
첫 대면
그가 떠나다
맞수
해머의 집
은하수의 빛무리를 따르는 쇠똥구리
호접지몽
손가락이 아프다
매몰
도서관의 역습
중닭의 비애
책과 노는 아이
to be continued

작가의 말

첫 번째 의뢰인, 그놈
축 개업, 시간을 파는 상점
잘린 도마뱀 꼬리
크로노스 대 카이로스
지구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
어머니를 냉동실에 넣어주세요
천국의 우편배달부
자작나무에 부는 바람
가네샤의 제의
불곰과 살구꽃
일 년 전에 멈춘 시계
망탑봉 꼭대기에서 뿌려주세요
시간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바람의 언덕
미래의 시간에 맡겨두고 싶은 일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심사평 : 이상권, 박경장, 박권일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당선 소감 : 김선영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 이상권, 김선영

본문중에서

도서관 목문 위에는 한자로 창창울울(蒼蒼鬱鬱)이라고 조각되어 있다. 현판에 글자들이 그야말로 울울창창하게 들어차 있다. 숨이 막혔다. 지식과 감성의 숲으로 우거져 푸르고 무성했으면 하는 어떤 사람의 처음 마음이 읽히긴 했지만 아이들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 같은 버거움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 같아 좋게만 보이지 않았다.
현판만큼이나 뻑뻑한 목문을 밀며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천장까지 닿은 서고가 눈앞을 막았다. 역시나 머리 위부터 짓누르는 위압감이 드는 배치였다.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이미 도서관을 점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 서면 주눅이 들어 누구든 저절로 움츠러들 것만 같았다.
주변의 신설학교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장서가 꽤 되었다. 신설학교는 한정된 예산 때문에 한꺼번에 장서 확보가 안 돼 도서관이랄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한데, 오래된 학교라 그런지 장서가 꽤 축적되어 있는 편이었다. 장서의 상태가 문제일 것이다.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좀이 슬거나 좀벌레가 기어 다니는 책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
이 학교에서 가장 후미진 곳,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는 보도블록 사이에는 물이끼가 파랗게 오를 정도로 음습한 곳. 오래된 나무에 둘러싸여 햇볕도 들지 않아 학교의 괴담 시리즈가 가장 많이 서려 있을 법한 곳, 가방 속에 망치를 넣고 다니며 괴이한 짓을 일삼는 아이들의 아지트 정도로 쓰일 법한 곳, 눈곱만큼도 마음이 가지 않는 이 도서관 서고 사이에서 눈물이 터질 줄은 몰랐다.
(/ pp.45~47)

"걍 때려, 새끼들아. 달게 맞을게."
도범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각목 중 하나를 집어 들고 소리쳤다. 상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든 채 거들먹거리며 걸었다. 도범은 치러야 할 것은 빨리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간 겪은 일로 훤히 아는 바였다. 도범은 각목을 준비했다. 선고라도 내리듯 강북팸 앞에 각목 꾸러미를 내던졌다. 저수지 쪽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이 선듯했다. 밤산책을 하는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흘낏거렸지만 누구 하나 참견하지 않았다. 눈알만 되록되록 굴리는 강북팸에게 도범은 말없이 각목을 나누어주었다. 서울서 여기까지 온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살가운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들도 어느 정도 짐작하리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지만 인사도 없이 전학을 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의사표현이 된 거라는 걸, 알 만한 아이들은 다 안다. 손을 씻으려면 돌림빵은 각오해야 한다. 통과의례이니 저항하지 않고 장렬히 맞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세계의 미풍양속이다.
"이제 재미없다. 이해해주라."
도범은 무릎을 꿇은 뒤 각목 세례를 기다렸다.
"뭐래~, 왜 저래? 깡? 진심이야?"
강북팸 사이에서 도범은?'깡'으로 통했다. 짱이라고 불렀다가 광고하고 다니냐고 도범에게 늘씬하게 맞은 놈이 생기자, 성을 따서 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깡은 짱보다 더 강력한 넘사벽 같은 존재로 강북을 넘어 강남까지 고유명사로 굳혀가던 중이었다.
상배가 가래침을 뱉은 뒤 담배를 빼물었다. 라이터에 불이 붙지 않자 상배는 라이터를 패대기치며 소리쳤다.
"됐다고 했잖아 새꺄."
상배가 귀찮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글고, 너 여기서 문제 만들면 어떻게 되겠냐? 생각해줄 때 받어 새꺄! 이게 너와 나의 마지막 우정이다 씨바."
상배가 적선하듯 말을 던졌다.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면......, 도범은 맥이 딱 풀렸다. 막다른 길에 들어선 듯 숨이 막혔다.
그래도 여기서 끝내야 한다. 도범은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각목을 내리쳤다. 빡, 소리가 났고 이마에서 뜨듯한 것이 흘러내렸다.
"아주 돌았구나, 씨바. 됐어 새끼야. 괜찮다고~, 아 진짜."
상배가 소리쳤다.
상배가 문제가 아니다. 멋모르고 상배를 따라나선 무리들이 문제다. 그들에게 상배가 봐준다는 낌새를 흘리면 안 된다. 지난번 순범이가 나갈 때 어땠는가,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순범이는 걸레가 되도록 돌림빵을 당했다.
(/ pp.47~49)

"쟤, 쟤네들 중닭 뒷목이 왜 저래?"
수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가려

내 몸에 딱 맞는 옷, 청소년 소설

소설로 등단을 했다. 그것은 방황의 시작이었다. 소설집을 내고도 방황은 이어졌다. 소설이 과연 내게 맞는 옷인가, 때때로 물었다. 소설을 쓸 때 즐겁다기보다는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그지없이 넓은 들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무변광야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면 될 것 같았지만 막상 그 앞에 섰을 때의 막막함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때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 청소년 소설이다. 품이 딱 맞는 옷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 옷이 작다며 갑갑해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지금처럼 과감히 더 큰 옷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몸에 딱 맞는 이 옷을 입고 마음껏 놀아보리라 생각한다. 가파른 산도 오르고 파도치는 바닷가도 거닐고 고요한 호수도 걸으며 이 옷이 질릴 때까지 입어보리라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몇 가지 주문을 넣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 소설과 다르게 쓰자.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아보다는 나름의 자기 빛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것도 좋겠다. 무엇보다 철학을 녹여 넣어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이러한 나의 고집이 세상과 통할 수 있는 카드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내가 입은 그 옷이 참 잘 어울린다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나의 고집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당선 소감' 중에서)

크로노스 : 손님이 의뢰하신 이 일은 사실 제겐 첫 번째 일입니다. 이렇게 난감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상점이 이렇게 불온한 일에 쓰인다면 전 카페를 폐쇄하겠습니다. 제 의도는 카페 대문에도 밝혀놓았듯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제가 그 일을 함으로써 저에게도 금전적인 도움은 물론 정신적 보람까지 얻고자 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온전히 성립되지 않는다면 저는 절대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 p.10)

네곁에: 이 일을 빨리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제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더군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짝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두 번 다시 그 아득한 절망감과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문제의 PMP를 제 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아, ‘네가 하지 이걸 왜 굳이 나한테 시키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제가 할 수 있다면 했겠지요. 위에도 썼듯이 반 분위기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겨놓은 것처럼 빈틈을 볼 수 없었고 아이들은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을 뿐 급식 시간에 누가 교실에 있었는지 다 아는 눈치였습니다. 만약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을 실패한다 하더라도 전혀 뜻밖의 상황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크로노스 님이 필요했던 겁니다. 문제의 PMP는 크로노스 님의 사물함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 되도록 빨리 제가 지정해준 자리에 그 물건을 갖다 놓으면 크로노스 님과 제 거래는 끝납니다. 아, 위험부담 비용을 더 넣었으니 용기 내시길 바랍니다.
(/ p.15)

엄마는 온조를 보며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하는 성격은 꼭 빼다 박았다고 했다.
(/ p.28)

어느 순간, 시간은 돈이 될 수 있으니 시간을 팔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물리적으로 확 다가왔다. 어느 한곳에 매어 시급을 받는 것보다 일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시급도 올려 받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운영하는 오너가 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사갈까? 사람들마다 그들 앞에 놓인 시간의 모습은 그들의 수만큼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만날 시간도 그들의 다변적인 모습만큼 다채로울 것이다. 시간을 판다……. 생각할수록 묘한 끌림이 있었다.
(/ p.39)

온조는 아빠의 영정 사진을 보며 약속했다. 아빠가 바라는 대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아빠의우니께 땅에 대고 하도 비벼서 털이 빠져 그랴. 털이 나도 모자랄 판에 빠지니 볼품이 있겄어? 병든 닭처럼 보이지?"
"왜, 저렇게 비벼대?"
중닭 세 마리는 땅굴이라도 팔 기세로 몸을 문질렀다. 목덜미로 문지르다 성에 차지 않으면 날갯죽지로 비비다 두 발로 흙을 퍼낸 뒤 다시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자라야 하니께 만날 가려운 겨. 미치도록 가려운 거여. 부리고 날개고 등이고 비빌 곳만 있으면 무조건 비비대고 보잖어."
어머니는 마당의 닭들을 향해 무연히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법이 아녀. 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갈 수 있는 겨. 애들도 똑같어. 제일 볼품없는 중닭이 니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일 겨. 병아리도 아니니께 봐주지도 않지, 그렇다고 폼 나는 장닭도 아니어서 대접도 못 받을 거고. 뭘 해도 어중간혀. 딱 지금 니가 가르치는 학상들 아니것냐."
"아."
짧은 비명 같은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수인의 반응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애들이 지금 을매나 가렵겄냐. 너한테 투정 부리는 겨, 가렵다고 크느라고 가려워 죽겄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안 알아주고 가려워서 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몸부림치는 놈들한티, 대체 왜 그러냐고 면박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전딜 수 있겄냐."
수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어디가 가렵구나, 그래서 가렵구나 알어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녀? 너라도 알아봐줘야 하는 거 아녀? 말 드세빠지게 안 듣는 놈일수록 가려운 데가 엄청 많은 겨.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아, 저놈이 어디가 몹시 가려워서 저러는 모양인가 부다 하면 못 봐줄 거도 없는 겨."
어머니는 여전히 닭들을 향한 채 말했다. 수인은 어머니의 등 너머로 중닭을 찾았다. 수탉은 가끔 중닭 두 마리를 무섭게 쪼았다. 어미닭은 병아리에게나 신경 썼지, 중닭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중닭은 수탉을 피해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더니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후볐다. 그러다가 다시 수탉이 다가오면 다른 곳으로 달아나기 바빴다.
가려웠구나, 가려운 거였구나.
(/ pp.215~217)
제상 앞에 서 있는 온조의 손끝에서는 PMP를 제자리에 돌려놓았을 때의 손맛이 짜릿하게 살아났다. 온조는 열 개의 손가락을 옴지락거려 보았다. 미끄러지듯 제자리로 돌아간 PMP는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물해주었을 것이다. 온조는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움직였다고. 어쩌면 어떤 한 생명을 구했을지도 모른다고. 아빠처럼.
(/ p.44)

지나치게 빠르면 문제가 생긴다……, 아빠도 속도 때문에 사고가 생긴 것이다. 속도광 운전자가 타고 있던 스포츠카가 아니었다면, 아니 그 운전자가 조금이라도 속도를 줄였더라면 아빠는 지금 온조 곁에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
(/ p.62)

온조가 일 분 일 초의 시간을 조각내어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크로노스라면 할아버지는 카이로스였다. 행과 불행을 가르는 기회의 신으로 시간 너머, 의미를 관장하는 카이로스.
(/ p.65)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음악을 들으며 마주 보고 밥을 먹는다는 것은 묘한 힘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밥을 함께 먹는 친구는 따로 있다. 반이 달라도 급식실에서 기필코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다. 인간의 본능 중 행복한 행위를 함께 하고 싶은 욕구, 그게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 p.66)

시간은 그렇게 안타깝기도 잔인하기도 슬프기도 한 것인가. 삶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 같기도 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는 그렇게 애달파 하고, 싫은 사람과는 일 초도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그 치열함의 무늬가 결국 삶이 아닐까? 작은선생님의 에너지는 시간을 뛰어넘어 죽음도 저만치 미뤄놓는 힘이 있었다.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아빠와의 시간이 죽음을 넘어 지금 온조의 가슴에 오롯이 살아난 것처럼 말이다.
(/ p.106)

크로노스: 그냥 친구가 되면 되는 거지. 그런 걸 의뢰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가네샤밖에 없을 거다.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거니? 솔직하게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드니?
(/ p.138)

불곰에게 시간을 파는 상점을 변호하다 그간 가물가물하게 잡히지 않던 것이 확연해졌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온조가 만든 작은 울타리를 넘어 훨씬 많은 것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온조 개인의 상점이 아닌 우리의 상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상점의 운영 방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 p.171)

불곰에게 시간을 파는 상점을 변호하다 그간 가물가물하게 잡히지 않던 것이 확연해졌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온조가 만든 작은 울타리를 넘어 훨씬 많은 것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온조 개인의 상점이 아닌 우리의 상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상점의 운영 방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강토에게 의뢰 비용을 되돌려보내자, 마음이 한결 가붓해졌다.
엄마는 돈이 개입되지 않으면 훨씬 더 좋은 경우가 있다고 했다.
(/ p.178)

옥상, 장물 사건, 네곁에…….
왠지 불길했다. 네곁에가 보낸 마지막 쪽지가 생각났다.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가 남아 있는 것처럼 찜찜하다는 말이 되살아나 거센 불길로 번졌다.
(/ p.181)

“이 자식이 새벽에 나한테 문자를 보냈어. 죽으러 간다고.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죽겠다고, 그래야 덜 무서울 것 같다고. 그 문자를 지금 본 거야. 영화 보러 가려고 막 나오려던 참에.”
(/ p.184)

장물 사건 이후로 나도 무척 힘들었어. 그 아이는 PMP를 제자리에 돌려놓은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 그 아이가 훔칠 때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나였고 그 사실을 알고도 발설하지 않았으며 그다음 바로 훔친 물건이 다시 없어졌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자기와 다를 게 없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PMP가 돌아온 날, 학교가 시끄러웠잖아. 그 아이가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하는 거야. 주객이 전도된 꼴이 되었지. 오히려 내가 그 아이한테 사정하는 꼴이 되었다니깐. 일이 복잡하게 될 것 같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자칫하다간 나는 물론 너까지 문제될 게 뻔하잖아. 하루만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자는 말로 유예를 시켰지. 그날, 그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너만 조용히 있으면
넘어갈 일인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거야. 누군가 목을 조여오는 것 같아 차라리 죽고 싶다는 거야. 그러면 애초에 왜 그랬냐고 했더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 거야.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더 자극적인 일을 찾게 되는데 그게 바로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일이었어. 물건을 훔칠 때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일종의 쾌감 같은 것만 남게 된다나? 그 순간 극도의 긴장감이 다른 심리적 불안감을 잊게 해준다는 거지. 고쳐보려고 여기저기 자료도 찾아보고 상담도 해본 모양인데 죽기 전에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며 절망감에 빠져 있더라.
(/ pp.191~192)

- 앞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날은 3만 일도 채 되지 않는다.
- 삶 전체를 24시간으로 본다면 우린 지금 몇 시쯤 됐을까? 아마도 새벽 다섯 시?
- 혼자가 아니다.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봐라, 거기 하늘만은 너와 함께 있다.
- 희망은 도처에 널려 있다. 발길에 차이는 희망, 그것은 기꺼이 허리 숙여 줍는 자의 것이다.
-네 절정은 지금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너의 절정이다.
(/ pp.203~204)

그 아이는 우리와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로 나온 발톱이 더 튼튼해지면 그때 돌아가겠다고 했다. 누구도 그 말에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정이현은 그 아이를 꽉 껴안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둘은 엉겨 붙어 있었다. 온조와 난주는 그 아이와 악수를 한 후 헤어졌다. 악수할 때 그 아이는 고맙다고 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 p.213)

아주 천 천 히. 먼 데서 숨 가쁘게 달려온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든 후 온조의 두 볼을 쓰다듬고 머리칼을 올올이 날렸다. 이 바람은 또 어딘가로 내달릴 것이고 그 자리에는 난생처음 맛보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시간이 늘 처음인 것처럼.
(/ p.22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6~
출생지 충북 청원
출간도서 18종
판매수 43,032권

소설가. 소설집 『밀례』와 장편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 『특별한 배달』 『미치도록 가렵다』 『열흘간의 낯선 바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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