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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빛 : 로맹 가리 장편소설

원제 : Clair de fe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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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로맹 가리 만년에 탐닉한 사랑의 모습
하룻밤 새 벌어지는, 급조한 사랑의 실패기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택시에서 내리던 남자가 길을 지나던 여자와 부딪친다. 여자가 놓친 물건을 주워주던 남자는 택시 기사의 재촉에 못 이겨 때마침 여자에게 택시비를 빌리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수표책을 사이에 둔 채 인연을 터간다.
미셸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아내(야니크)를 둔 남자다. 아내는 죽음에 굴하느니 오늘 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미셸은 아내의 부탁대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카라카스로 떠나려 했지만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다시 아내에게 돌아가던 길이다.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하기에 그 공백을 한시도 버틸 수 없다. 한편 리디아는 반년 전 자동차 사고로 어린 딸을 잃었고 그 충격에 남편은 실어증에 걸렸다. 그녀는 딸의 죽음이 고통스러워 남편과 헤어지려 하지만, 이제 와서는 헤어짐의 이유가 고통에 있는지 식어버린 사랑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의 고통을 털어놓고,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고, 사랑을 사유한다. 곧 있을 아내의 빈자리를 급조한 사랑으로 대체하려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의 구애를 섣불리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 이 두 사람이 하룻밤 동안 벌이는 '밀고 당기기'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새날을 맞을까?

1977년 프랑스에서 첫 출간된 [여자의 빛]은 매력 있는 사십 대 남녀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지새우면서 벌이는 짧은 사랑 이야기다. 파리를 배경으로 사랑에 대한 사색과 사변, 유머를 적절히 혼합한 로맹 가리 만년의 재기가 돋보인다.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시간의 빛을 따라 파리의 장소들을 옮겨가며 차츰 감정에 깊이를 갖추는 성숙한 남녀의 애정 행각이, 설레고 초조하고 애틋하다가도 실망감을 느끼는 연애의 복잡다단한 양상을 잘 드러낸다. 여자를 꾀려는 궤변 같기도 하고 진심 같기도 한 말을 늘어놓는 주인공 미셸, 그리고 도덕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리디아, 이들 둘이 벌이는 기 싸움 혹은 관념 싸움이 로맹 가리의 언어에 실려 냉소적이고 역설적인 매력을 뿜는다. 사랑은 갖은 설득과 노력을 배반하고 이따금 우연한 곳에서 온다.
[여자의 빛]을 출간했을 때 로맹 가리는 이미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였고, 그 3년 뒤 세상을 떴다. 요컨대 [여자의 빛]은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던 로맹 가리의 애정관이 마침내 맺은 결실로도 읽을 수도 있다. 사랑을 표방하고 끊임없이 갈구하는 이 소설에서 작가 자신의 삶을 읽는 일이 즐거움을 더한다.
[여자의 빛]은 1979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연출하고 이브 몽탕, 로미 슈나이더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감독은 원작을 각색하면서 책에 나오는 대화를 거의 그대로 살렸다. 이 영화의 각본에는 밀란 쿤데라도 참여했다.

'불멸하는 것'으로 죽음의 조련에 맞서기
사랑 타령 이상의 사랑 소설

[여자의 빛]은 단조로운 연애 소설이기를 마다한다. 로맹 가리는 아픈 사연을 지닌 남녀가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간다는 고리타분한 설정을 애초에 배제하고,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을 맞닥뜨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개어 연애 소설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주인공 미셸은 딸이 죽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실어증에 걸린 남자, 가슴에 심근 경색이라는 죽음의 전조를 품고 초조하게 살아가는 남자 등 죽음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죽음에 굴복하지 않을 것, 불멸하는 것, 그러니까 사랑을 그토록 애타게 좇는다. 그에게 사랑이 건재함을 확인하는 일은 곧 세상을 뜨게 될 아내를 영원히 기리는 일이다. 완벽하던 자기 부부를 갈라놓는 죽음 그 무뢰한에 저항하기 위해 미셸은 사랑이 불멸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야니크,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여전히 흠 없이 처음 같지? 모든 게 퇴색하고, 모든 게 깨지고, 모든 게 진력이 난다고들 하던데.......'
'그건 퇴색하고 깨지고 진력나는 사람들만 그런 거야.'
'당신과 나의 문제는 뭐지? 커플이라면 으레 갖는 문제들, 그런 것들 말이야.'
'커플이 갖는 문제라는 게 뭔데? 문제가 있으면 커플이 아닌 거 아닌가.'
41쪽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를 잃었다는 이유로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해보게. 그건 사랑이 없는 거라네."
55쪽

아내 야니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날, 미셸은 사랑의 불멸성을 입증하기 위해 아내의 권유대로 새로운 사랑을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길에서 우연히 부딪친 리디아와 하룻밤 여정을 함께하며 끊임없이 구애하고 아내의 사랑을 전이시키려 한다. 하지만 리디아는 왠지 이 남자의 태도가 미심쩍다. 사랑이 과연 설득하고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무리하게 사랑을 이루려는 데에는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닐까? 그는 그저 자기 아내의 대용품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런 암묵적 물음들이 두 사람 사이에 자리해 조심스럽고 사색적이며 때로는 대담한 애정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당신은 나를 지독히 대충 파악하고 있어요. 나에 대해 잔인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죠. 당신은 다시 한 번 사랑에 성공하려고, 다시 한 번 다른 여자를 사랑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낑낑거리며 대양을 헤엄쳐 건너는 당신을 보면 물속에 뛰어들고 싶어지죠. 당신이 익사하는 걸 막기 위해서요."
120~121쪽

'로맹 가리'와 가명 '에밀 아자르' 사이의 줄타기
가면 뒤에서 새어나오는 로맹 가리의 웃음


[여자의 빛]이 출간된 1977년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1975년 공쿠르상을 받은 [자기 앞의 생]을 포함해 이미 세 권의 소설을 출간한 뒤다. 그는 조카 폴 파블로비치를 에밀 아자르로 내세워 활동했는데, [여자의 빛]이 나왔을 때 비평가들 중에는 로맹 가리가 잘나가는 조카를 표절한다고 힐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컨대 [여자의 빛]과 [자기 앞의 생]에는 아래처럼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오. 사랑 없이 살 수 있소. 다만 그게 몹시 지루하다는 거요."
69쪽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
[자기 앞의 생]에서


이런 비판을 들었을 때 로맹 가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로맹 가리가 흘렸을 냉소를 짐작해볼 수 있다. [여자의 빛]을 쓸 무렵 로맹 가리는 비록 다른 필명이지만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이다. 거기에 세월이 가져다준 성찰을 얹어 [여자의 빛]을 완성했다. 여전한 필력, 여전한 반항 기질, 완숙한 성찰. 이미 예순 중반에 다다른 나이였지만 로맹 가리의 작품에서 여전히 젊고 진실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그 이유에서다.

본문중에서

‘당신과 나의 문제는 뭐지? 커플이라면 으레 갖는 문제들, 그런 것들 말이야.’
‘커플이 갖는 문제라는 게 뭔데? 문제가 있으면 커플이 아닌 거 아닌가?’
‘우리한텐 왜 커플이라면 으레 갖는 문제들이 없는지 알고 싶은 것뿐이야. 우리에겐 도대체 왜 문제가 없는 거냐고!’
‘세상에는 잘못 만난 사람들이 있어. 그뿐이야.’
(/ p.41)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를 잃었다는 이유로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해보게. 그건 사랑이 없는 거라네.”
(/ p.57)

“그렇소. 죽음은 사람이 혼자 있을 때를 기다려 들어온다고 하오.”
(/ p.67)

“나는 지금 당신에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오. 사랑 없이 살 수 있소. 다만 그게 몹시 지루하다는 거요.”
(/ p.69)

“불행한 여자는 어느 순간부터 고약한 여자가 되는 걸까요?”
(/ p.106)

“나는 그녀에게 모든 걸 주었고, 이제 그 모든 게 내 품 안에 남아 있다고 말이오. 사랑은 줄곧 풍요롭게 늘어나는 유일한 부富라오.”
(/ p.113)

“삶에서 모든 성공은 실패한 실패일 뿐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 p.119)

“『일리아스』를 영웅적 무훈시라고들 하지. 거기에 등장하는 무수한 영웅적 전투에 사람들은 감탄해.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평온하게 살아가는 커플들의 삶을 그리는 거야.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승리는 거기에 있어.”
(/ p.121)

“사랑은 기성품이 되어버렸어. 완전히 닳고 닳았어. 줄곧 반복되는 게 지겨워 메아리를 멈추고 싶지만, 뭔가 다른 걸 들으려면 먼저 성대를 움직여야 해.”
(/ p.122)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자신의 온 눈으로, 온 아침으로, 온 숲으로, 들판으로, 샘으로, 새들로 사랑했다면 그는 오히려 자신이 그 여자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법이오.”
(/ p.123)

저자소개

로맹 가리(Romain Gary)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14.05.08~1980.12.02
출생지 러시아 모스크바
출간도서 21종
판매수 11,913권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4세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 니스에 정착했다. 법학을 공부한 후 공군에 입대해 1940년 런던에서 드골 장군과 합류했다. 1945년 『유럽의 교육』이 비평가상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었고, 탁월하고 시적인 문체를 지닌 대작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같은 해 프랑스 외무부에 들어가 외교관 자격으로 불가리아의 소피아, 볼리비아의 라파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했다. 1949년 『거대한 옷장』을 펴냈고,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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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60~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현대 프랑스 문학과 영미 문학을 주로 번역해 왔다. 옮긴 책으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녹턴』, 『우리가 고아였을 때』,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슬픔이여 안녕』,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여자의 빛』, 『솔로몬 왕의 고뇌』, 『가면의 생』, 야스미나 레자의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 『함머클라비어』, 『비탄』, 『지금 뭐하는 거예요, 장리노』, 벨마 월리스의 『두 늙은 여자』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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