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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예술 :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삶의 불길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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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심보선
  • 출판사 : 민음사
  • 발행 : 2013년 05월 24일
  • 쪽수 : 27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37487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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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삶의 비참을 행복의 빛으로 바꾸는
꿈으로서의 예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용산 참사 이후 4년, 우리는 행복한가
일상의 예술, 범인(凡人)의 예술, 문맹의 예술,
공동체 속의 예술 등을 통해 행복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대중의 사랑과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을 낸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심보선이 첫 연구서이자 산문집인 [그을린 예술]을 ㈜민음사에서 출간하였다. 심보선은 이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맞이한, 예술의 위기와 삶의 비참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하며, 예술을 행하고 또 삶을 사는 당사자로서 체험하고 관찰하고 느끼고 사유한, 예술과 삶의 관계를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거대한 영향 아래 우리 삶은 피폐해졌고, 시장 논리에 잠식당한 예술은 죽었다. 심보선은 우리가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꾸는 꿈으로서의 예술을 꿈꿔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서 삶, 정치, 일상과 접속하며 우리 삶 속에 위태롭고도 생생하게 존재하는 예술, 자본주의의 격렬하고 성마른 불길 속에서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이러한 예술을 심보선은 ‘그을린 예술’이라고 명명하며, 껍데기 예술 신화에 갇힌 죽은 예술과 구분한다. 예술의 죽음과 새로운 예술의 꿈을 선언하는 [그을린 예술]은 연구실에 갇힌 사회학자의 꿈이 아니다. 심보선은 몇 년간 그을린 예술의 꿈을 탐구했고, 그 꿈이 출몰하는 장소를 방문했고, 그 꿈을 실행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처음 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한 여든 살 넘은 할머니의 시, 철거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살고 싶어서, 죽기 싫어서” 함께하는 예술 동호회의 모임 등을 목격했고, 시어를 해체하고 새로 조합하여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과 결과물을 탐색하는 예술 실험을 동료들과 직접 행하기도 했다.
[그을린 예술]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회학자의 뜨거운 연구서이자, ‘그을린 예술’의 출현과 현장을 포착한 일종의 르포이며, 공동체의 삶과 세계의 행복을 염려하며 저항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인의 진심과 열망이 담긴 산문이다.

우정으로서의 예술, 삶을 함께 나누는 기쁨과 행복으로서의 예술, ‘누구나’의 예술

치열한 경쟁과 낙오의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기쁨과 행복을 말하는 것은 안정된 지위를 갖추고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로 보인다. 나머지 사람들이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택하는 방법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개인적이고 ‘자기 계발’적인 차원에서 급하게 ‘힐링’을 소비하는 일뿐이다.
하지만 심보선은 보다 나은 존재로 스스로 갱신하고 고양하며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길은 타인과 삶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텅 빈 우정’의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서 ‘텅 빈 우정’이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우정이라고 이해하는 관계, 자기 몫을 키우기 위해 맺은 전략적 파트너십과는 다르다. 단지 “함께 살고 함께 존재하고 함께 지각하는 것, 그 자체가 좋고 즐겁기 때문에 맺는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말하자면 영화 「허수아비」(1973)에 나오는 두 패배자 맥스와 라이언의 우정과 같은 것이다. (우연히 만난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피츠버그에 세차장을 차리기로 하지만, 라이언이 어떤 사건으로 충격을 받고 의식불명에 빠진다. 그러자 맥스는 라이언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말한 후 피츠버그로 떠나는데, 맥스는 신발 뒤축에 숨긴 돈까지 탈탈 털어 기어이 왕복표를 산다. 심보선은 이 우정의 현실성이 실제로 돌아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왕복표를 사기 위해 신발 뒤축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신발 뒤축을 두들기던 그 궁색한 순간에 있다고 말한다.)
심보선은 예술 역시 ‘텅 빈 우정’, 또는 “삶 자체의 함께-나눔”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예술이란 창작(해석)을 통해 고유한 삶의 형태를 빚어내고, 이 삶의 형태는 일종의 우정을 통해 타인과 나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속물과 동물 사이에서 가까스로 자신의 길을 확보할 수 있는 경로라고 말한다.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창작과 해석, 친구-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각하고 나눌 때, 인간은 비범하고 위대해진다. 평범한 비범함, 궁색한 위대함이야말로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밝히는 인간적 실존이다.” 평범하고 궁색한 삶을 부정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타인과 나누는 ‘우정으로서의 예술’을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서 고양되며 가까스로 자유를 되찾고 비참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심보선은 이를 ‘69 작가선언’에 참여했을 당시의 경험, 두리반 철거 현장에서 자발적, 자립적으로 이루어진 문화 축제의 모습 등을 통해 확인한다.
심보선이 말하는,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 속에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이러한 행복의 가능성은 예술을 행하는 전문가 집단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 숭배 신화, 스타덤을 둘러싼 경쟁 체계, 승자 독식의 논리 아래에서 예술은 이미 마술적 힘을 잃었다. 예술이 되찾아야 할 마술적 힘은 오히려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예술에서 온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70대까지 문맹이었으나 나중에 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한 여든 살 넘은 할머니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낮에 농사를 짓는 할머니는 밤에 불을 밝히고 시를 쓰며 ‘행복한 피로’로 시간을 보내고, 시상이 자꾸만 떠올라 밭일에 몰두하지 못하기도 한다. 심보선은 이 할머니의 예를 통해 예술이란 “작품의 제작인 동시에 삶의 제작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한 몰두가 자아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사회질서가 자신에게 부과한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모험”이라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프로이든 아마추어이든 예술적 제작 활동을 하는 ‘누구나’ 그 순간 새로운 주체로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삶이 고양된다. 그 순간을 통해 우리는 자유와 해방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을 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그 모든 ‘누구나’의 열망과 의지와 몰두는 억압적 세계에 대항하는 투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살고 싶어서, 죽기 싫어서” 행하는 좀 더 생생한 삶을 향한 존재의 드러냄이다. 심보선은 이러한 예술의 꿈, ‘그을린 예술’의 꿈을 그리며, 또한 그을린 예술이 지금 여기에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하는지 이 책을 통해 증언한다.

목차

프롤로그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다른 곳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삶 속에서, 삶의 불길에 그을린 채.

1부 동물과 속물 사이의 인간, 우정, 예술
우정으로서의 예술
환승, 인간적인, 가까스로 인간적인
1987년 이후 스노비즘의 계보학

2부 예술과 공동체
불편한 우정과 어떤 공동체
우리가 누구이든 그것이 예술이든 아니든
두리반, 자립 의지의 거점
예술가의 (총)파업

3부 예술의 죽음, 예술의 부활
저자,전자책, 전자문학
예술상(賞)과 예술장(場)
잔존하는 문학의 빛

4부 ‘누구나’의 문학과 정치
‘천사’에서 ‘무식한 시인’으로
‘누구나’의 얼굴을 보라

5부 예술과 민주주의

본문중에서

우리가 예술을 창작하고 해석할 때 행복한 이유는 자신의 평범하고 궁색한 처지를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고, 나아가 그것을 친구-타인과 함께 지각하고 나누면서 인간적으로 갱신되고 고양되기 때문이다. 이 행복감은 단순히 심리적인 위로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창작(해석)이 이루어지고 친구-타인과의 우정이 맺어지는 장소와 관계 속에서 현실화된다.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실행되는 이 희박하고 희미한 장소, 관계야말로 속물화와 동물화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적 현실에 대항하는 현실적 거점이다. 바로 이 거점에서 예술의 말과 행동은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수용하면서 거부하는, 증언하면서 저항하는 실천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예술은 겉으로는 모순어법처럼 보이지만, 생생한 현실성을 가진 감각과 신체를 구현한다.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창작과 해석, 친구-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각하고 나눌 때, 인간은 비범해지고 위대해진다. 평범한 비범함, 궁색한 위대함이야말로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밝히는 인간적 실존이다. 이 실존으로 인해 인간은 가까스로 타인과 함께 평등해지고, 가까스로 자신의 자유를 되찾고, 가까스로 세계의 비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 p.34)

나는 되묻고 싶다. 재능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서라도 창작에 매달리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사회학적으로, 경제학적으로 승자 독식의 논리가 문학장에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재능을 판단해 보건대 성공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 말은 아프게 들리겠지만 사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창작을 그만두지 않는, 혹은 창작을 그만두었다가도 언젠가는 창작으로 돌아오리라 결심하게 하는, 그리고 기어이 돌아오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어리석음인가? 집착인가? 과욕인가?
창작을 하는 모든 이에게, 프로건 아마추어건, 누구에게나 드리우는 빛이 있다. 그것은 숭배의 빛도 선망의 빛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문학적-예술적 제작, 즉 창작의 기쁨에서 오는 행복의 빛이다. 이 행복이야말로 창작자가 창작을 멈출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니체는 예술이 창작자에게 “행복의 약속”을 제공한다면서 “사심 없음(disinterstedness)”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칸트 미학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예술이 너무나 “사심 있는(interested)”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때의 사심이란 위대한 단독자로 숭배를 받고 싶다거나, 대중적 인기를 끌고 싶은 사심이 아니다. 니체에 따르면 그것은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아나 자신과 영원히 살았으면 하고 바랄 때의 간절한 소망 같은 사심이다. 창작의 기쁨은 창작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와 놀고, 싸우고, 씨름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그것에 질서와 형태를 부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과 마치 연인과도 같은 인격적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 pp.193~194)

나는 여기서 “누구나 글을 쓴다면, 등단하지 않더라도 시인이요, 소설가다.”라는 나이브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이란 창작자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최선의 결과를 낳으려는 간절한 소망에서 출발하며 그 소망을 이루려는 의지를 발휘함으로써 중단 없이 이어진다. 나에게 문학적 재능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그 소망과 의지를 끝내 행복에 다다르게 하는 집중력과 주의력을 뜻한다. 그토록 쉼 없는 집중력과 주의력을 요한다는 점에서 창작의 행복은 달성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창작의 행복을 달성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창작의 행복은 지배적 사회질서를 따라 노동력과 자원을 분배하고 작동시키는 제도적 장치들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자크 랑시에르를 따르자면 창작의 행복은 제도적인 장치들이 사회적 신체들에게 할당한 감각의 고정된 자리를 거스르고 가로지르며, 그것과 싸우며 성취되는 것이다. 요컨대 창작의 행복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행복, 즉 ‘그저’ 성공과 안정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며 어렵사리 지켜내는 것이다.
나는 문학 창작의 행복이 창작자 자신이 혼자서 느끼고 마는 자족적인 행복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창작자는 언제나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창작자는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으로 ‘나누어지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인정 욕망이다. 그런데 현대의 예술장, 혹은 문학장은 인정 욕망을 소수에게만 선망의 빛을 허락해 주는 승인(approval) 장치들을 통해 충족시키려 한다. 상승하는 세일즈 포인트와 문학상 수상, 메이저 신문과 잡지의 언급, 비평가의 심오한 해석 등이 불안한 창작자들을 임시적으로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인정(recognition)이란 무엇보다 ‘다시-알아봄(re-cognition)’이다. 인정이란 창작자가 제작 과정에서 작품에 투여한 열정과 의미를 독자가 다시 알아봐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인정은 외적인 척도들에 의해서 작품의 가치가 평가되는 ‘승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 pp.195~196)

나는 할머니 시인 한충자가 쓴 또 다른 시에 대한 이야기를 정혜윤에게서 들었다. 시의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어느 날 할머니는 밭일을 하러 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하루 종일 시 생각만 났다. 시가 쓰고 싶었고 시상만 떠올랐다. 그래서 밭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녀는 지평선의 노을을 헛헛하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딴 생각을 하다 정작 해야 할 일을 못 했다는 정도의 일화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에겐 무엇이 본 생각이고 무엇이 딴 생각일까? 할머니는 시를 쓰면서 원래 본 생각이었던 게 딴 생각이 되고 딴 생각이었던 게 본 생각이 되는 경험을 한 것이 아닐까? 할머니는 시를 쓰면서 평생을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했던 농사일로부터 비로소 해방된 것이 아닐까?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시를 쓰는 일이 자신에게는 피곤하고 남들에게는 하찮아 보일지라도 할머니는 시를 쓰면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 pp.233~234)

나는 예술적 제작 활동에 참여하는 ‘누구나’ 자신의 감성적 역량과 의지를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그럼으로써, 시인 김수영의 표현을 빌리면 “딴사람”이라는 주체로 갱신되고 고양된다는 점에서, 예술은 고유의 민주주의를, 평등의 정치학을 구현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이야기는 예술을 숭배하는 이들, 작품의 질을 따지는 이들, 예술가의 선지자적 역할을 믿는 이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정치와 민주주의를 사회구조의 조직화와 지배 체제의 개혁으로 보는 이에게도 나의 이야기는 낭만주의적 꿈 정도로 치부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의견이 제시하는 예술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의 기획들, 재능 있는 예외적 개인과 시스템의 효과적 통제가 좋은 사회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야말로 사실상 현대사회에서 매번 실패하고 우리를 끝없이 좌절시킨다. 반면에 스스로의 삶을 가꾸고 만들어 가면서,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자유를, 예속된 사회에서 해방을 추구하는 익명적 개인들과 공동체의 픽션은 모든 실패한 진보의 기획이 끊임없이 회귀하고 그로부터 재출발할 수 있는 장소와 관계들, 표정과 몸짓을 희미하게 밝혀 준다.
(/ p.235)

사실 농부이자 우편배달부인 슈발이 홀로 성을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피로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아마도 행복한 피로였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작가들 또한 이 행복한 피로를 고백했습니다. 카프카는 보험 회사의 직원이었고 말라르메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습니다. 그들은 낮에 일하느라 피로에 절은 몸으로 새벽까지 글을 썼습니다. 그들은 낮에 일하느라 글 쓸 시간이 모자라다며 불평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더한 피로를 감수하고 글을 썼습니다. 슈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의 몸 또한 농사일에 우편배달에 피로에 젖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성 쌓기를 멈출 수 없었을 겁니다. 최근에 ‘피로 사회’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과잉 성취욕에 젖어 끊임없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피로를 만연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슈발, 카프카, 말라르메의 행복한 피로는 피로 사회의 피로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피로 사회의 피로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와 재생산에 기여한다면 감성적 활동과 예술 제작의 피로는 자본주의 질서의 효율성과 생산성과 무관하거나 도리어 그것들에 역행하기까지 합니다.
(/ p.247)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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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수 0권

시인, 사회학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오늘은 잘 모르겠어] [눈앞에 없는 사람]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예술비평집 [그을린 예술]이 있다.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를 옮겼다.

- 김종삼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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