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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학 : 주권론에 관한 네 개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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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주권’ 개념으로 현대 법과 정치의 본질을 파헤치다!
―민주주의의 한계지대를 관통하는 문제적 고전[정치신학]!!


슈미트는 라반트 이후, 즉 1870~1880년대 공법 및 헌법의 논설들을 작성했던 저자들 이후, 가장 위대한 독일 공화주의자입니다. 근대 민족국가는 슈미트에게서 그 가장 고도의 건축물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운동](Mouvements) 37호에서의 인터뷰, 2005.

독일의 법학이론가·정치사상가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 나치 시대 독일 법학의 이론적 지주라는 이유로 이제껏 ‘악마’ 같은 자로 묘사되었다. ‘법치’를 무시하고 ‘주권자의 독재’를 주장한 그의 법학은 파시즘을 정당화했다는 평결을 받아 왔으며, 일본 파시즘과 한국의 독재정권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안토니오 네그리, 에티엔 발리바르(?tienne Balibar),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샹탈 무페(Chantal Mouffe), 슬라보예 지젝(Slavoj ?i?ek)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들이 슈미트를 다시 불러내고 있으며, 비판적 독해를 통해 그를 넘어서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미 시효소멸 판결을 받은 이 법학이론가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악마의 형상을 한 ‘독재’의 이론가를 위해 남겨진 어떤 변론의 여지가 있는 것인가?
그린비출판사에서는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 주권론에 관한 네 개의 장](Politische Theologie: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nit?t)을 ‘크리티컬 컬렉션’ 12번째 도서로 출간하였다. 1922년 초판 출간 당시부터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근간에서 위협하고 있는 정치적 사건들을 사유하는 데 있어 중요한 원천으로 다시 한 번 부상한 논쟁적 고전이다.
우리가 슈미트를 읽어야 하는 것은 그가 현대 정치와 법의 본질을 한계지대까지 파고들어 사유한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법의 근저에 무엇이 놓여 있으며, 부르주아적·자유주의적 ‘법치주의’가 어떤 한계를 갖는지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슈미트 사유의 본령이었다. [정치신학]은 이러한 슈미트의 사상을 가장 압축적이면서도 심층적으로 담고 있는 저작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그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16쪽)라는 문장으로 주권의 본질을 논쟁적으로 정의하고, 근대 국민국가의 자유주의적 법치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하며, 나아가 자신이 주적(主敵)으로 간주한 무정부주의·사회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그리고 박멸을 주장한다). 많지 않은 분량(128쪽)에도 불구하고 [정치신학]에는 ‘주권’, ‘독재’,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등 슈미트의 핵심 개념이 모두 녹아들어가 있으며, 그 개념들이 응집해 하나의 단단한 건축물을 구성하고 있다.
이 책의 옮긴이는 저서 [말하는 입과 먹는 입](2009)과 역서 [예외상태](조르조 아감벤, 2009) 등을 통해 슈미트 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추적해 온 소장학자 김항(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이다. 그는 현재 슈미트-벤야민-아감벤으로 이어지는 지성사의 새로운 대결구도/성좌를 가시화하려 노력하고 있는 연구자이다. 슈미트에 관한 깊은 이해를 보유하고 있는 옮긴이에 의해 새롭게 번역된 [정치신학]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슈미트 사유의 정수뿐 아니라, 현재의 커다란 지적 흐름과 슈미트 사이의 연결고리도 확인시켜 줄 것이다.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 선언’: 주권의 정의에서 독재의 요청까지

낭만주의에서 결단주의로: 저격수 슈미트의 탄생
1888년 독일 중서부 소도시 플레텐베르크에서 태어나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칼 슈미트는 신칸트학파의 지적 세례를 받은 인물로, 19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자본과 기술의 지배에 대항하는 낭만주의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19년의[정치적 낭만주의 출간을 계기로 낭만주의와 결별하고, 이후 [독재](1921), [정치신학](1922), [정치적인 것의 개념](1927) 등의 저작을 통해 자유주의·낭만주의·무정부주의·사회주의 등 당시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거의 모든 사상조류와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1928년경까지 그는 공격적이면서도 우아한 문체로 바이마르 공화국의―그가 그렇게 생각한―적들을 타격하는 데 집중한 일련의 ‘정치 팸플릿’들을 발표해 논단의 스타로 부상했으며, 이후 베를린 대학의 교수와 프로이센 추밀고문관으로 임명되어 나치의 어용 법학자로 위용을 떨치게 된다.
왜 그는 이런 과격한 입장전환을 단행했는가? 1919년은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직후였다. 종전 후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한 승전국들은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전쟁배상 명목으로 독일에 굴욕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슈미트는 자신의 공화국이 이런 위험에 처한 것이 영국·프랑스 등지에서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가 창궐한 탓이라 믿었다. 그는 낭만주의적 태도로는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고 판단해, 공화국의 적으로 간주한 온갖 사상들을 공격하면서 ‘결단주의’로 알려진 자신만의 정치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정치신학]은 그가 이 같은 전방위적 공격을 개시하고 고유의 개념들을 형성한 바로 그 시기에 출간된, 슈미트 사상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저작이다.

법학 전쟁: ‘예외’와 ‘결정’을 통한 ‘주권’ 개념의 재정립
예외상태에 관한 이론을 구축하려는 가장 엄밀한 시도는 칼 슈미트에 의해, 주로 [독재](1921)와 그보다 1년 후에 출판된 [정치신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두 저작은 말하자면 놀라운 예언력으로 하나의 패러다임(통치형태)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 패러다임은 현재진행형일 뿐 아니라 오늘날에야 비로소 완전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예외상태에 관한 슈미트 학설의 기본 명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조르조 아감벤, ([예외상태], 김항 옮김, 새물결, 2009,/ p.67)

슈미트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라는 문장으로 [정치신학]의 포문을 연다. 모든 것을 ‘규범’에 맡기는 당대의 ‘법치주의’와 달리 슈미트는 ‘주권자의 결정’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국가가 예외상태에 처했을 때, ‘규범’으로는 그것이 예외상태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며, 또 그 예외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슈미트에게는 ‘예외’야말로 정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예외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이 상황을 평정하기 위해 해야 할 일도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다. 주권자는 “통상적으로 유효한 법질서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속해 있다. 따라서 헌법을 완전히 효력정지시킬 것인지 어떤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1장 [주권의 정의]중에서/ p.18)

‘주권자의 결정’ 개념으로 슈미트가 비판한 것은 한스 켈젠(Hans Kelsen)이 대표하는 ‘법실증주의’와 오토 폰 기르케(Otto von Gierke)나 쿠르트 볼첸도르프(Kurt Wolzendorff)가 주창한 ‘협동체이론’ 등이었다. 이 이론들은 주권 문제에서 ‘주권자’, 즉 예외를 결정하는 ‘인격’을 제거하고 ‘추상적 규범’의 지배를 확립하려 했던 조류들로,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근대 법치국가를 법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이론들이다. 슈미트는 이들을 비판하면서, ‘규범’은 “결정이 내려져야 함을 말할 뿐 누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라고 설명한다(2장 [주권 문제, 그것은 법형식과 결정의 문제], 50쪽). 슈미트에게 ‘법질서를 근거 짓는’ 것은 주권자의 결정이다. 그런데 법실증주의·협동체이론은 법질서를 근거 짓는 이 최종심급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 슈미트가 이 이론들을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주권자란 존재해야 하며, 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신학’과 ‘독재’: 국가를 수호하는 데 필요한 것은 토의가 아니라 결단
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슈미트의 비판은 무시하지 못할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자유주의의 결함을 이렇게 드러냄으로써, 슈미트는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제기되어야 할 쟁점들을 확인하게 해주어 우리가 현대 민주주의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이보경 옮김, 후마니타스, 2007/ p.12)

이 같은 슈미트의 ‘주권’ 논의에는 신학적 분위기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현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다.”(3장 [정치신학], 54쪽) 그에게 ‘예외’는 신학에서의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며, ‘주권자’는 일종의 세속화된 ‘신’(神)이다. 하지만 근대의 도래와 함께 정치에서 신학적 표상은 (이른바 “내재표상”에 의해) 점점 설 곳을 잃었고, 이를 결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당대 유럽을 휩쓴 바 있는 1848년 혁명이었다. “1848년 이래 공법학은 실정적인 것이 되어, 통상 이 말 뒤에 숨어 스스로의 자기붕괴를 은폐해 버리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표현을 구사하여 모든 권력을 인민의 제헌권력에 귀속시킨다. 즉 군주제적인 정통성 관념을 대신하여 민주주의적인 정통성 관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3장 중에서/ p.72)

1848년을 기점으로 ‘유신론적·초월적 정통성’에서 ‘민주주의적·자연과학적 정통성’으로 이행이 일어난 것을 설명하면서 슈미트는 스페인의 반혁명 가톨릭 국가철학자인 후안 도노소 코르테스(Juan Donoso Cort?s, 1809~1853)를 소환한다. 도노소 코르테스는 1848년 혁명을 접한 뒤 더 이상 왕도, 왕정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위기를 타개할 방책으로 ‘독재’를 요청한 극단적 사상가이다. [정치신학]에서 슈미트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도노소 코르테스를 환기시킨 것은, 자신의 시대와 1848년 혁명기를 유사한 국면으로 파악한 가운데 코르테스가 부르주아지에 대한 가장 급진적 비판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노소 코르테스는 부르주아지를 ‘토의하는 계급’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신문’이나 ‘의회’를 통해 모든 것을 토의로 결정하려 하는 계급은 “사회적 투쟁의 시대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4장 ?반혁명 국가철학에 관하여?, 82쪽) 슈미트는 이 ‘사회적 투쟁의 시대’가 1848년 혁명기와 자신이 살고 있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당시나 지금이나 집권 세력인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토의’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르주아지는 언론·출판 자유의 계급인데, 얼핏 보면 이는 부르주아지의 진보성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결국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여 언론·출판의 자유에 과도하게 강조된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결정을 추방”하게 된다.(4장, 86쪽) 슈미트가 ‘결정’을 그토록 강조한 것은 부르주아지의 이런 무력함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슈미트에게 진짜 적은 따로 있었다. 슈미트가 자유주의·규범주의·법치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하고 독재를 요청한 것은 그들의 나약함이 무정부주의·사회주의의 약진―의회진출을 비롯한 세력 확장―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가장 위험한 적으로 삼은 세력은 바로 무신론적 무정부주의·사회주의였던 것이다. 그가 [정치신학]을 집필한 것도 무정부주의·사회주의가 바이마르 공화국을 붕괴시키려 하는 중요한 긴급상황에서 아무런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부르주아지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그는 도노소 코르테스를 따라서 ‘독재’를 요청한다. 오직 독재만이 무정부주의·사회주의라는 “근본적 악”(4장, 90쪽)을 한 번에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현재성: 현대의 법과 정치에 관한 근원적 성찰

비판적으로 대결할 가치가 있는 적(敵)
칼 슈미트는 극우 사상가들 중 가장 명석하며, 그래서 가장 위험한 사람입니다. 슈미트는 부정할 수 없이 일부 혁명적 사상의 교훈들을 끄집어냈습니다. 역으로, 혁명적 사상이 슈미트의 저작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슈미트가 내린 분석의 결론들을 억지로 승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가 내린 분석의 결론들을 그에 걸맞게, 아니면 그보다 더 잘 승인해야 할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 에티엔 발리바르, [반시대](ContreTemps)에서의 인터뷰, 2002년.

가히 ‘슈미트 르네상스’라고 일컬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이름이 자주 들려온다. 유럽과 영미,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슈미트 사상의 재평가가 한창이다. 어째서 이 위험한, 그래서 그동안 억압되어 왔던 사상가가 다시 귀환하게 된 것일까?
우선 현실적 이유가 있다. 21세기 초입에 벌어진 끔찍했던 사건 9·11과 그에 대한 대응으로 미 의회에서 가결된 ‘애국법’ 및 행정부가 선포한 ‘군사명령’(법률로 규정되지 않은 무제한의 전권을 통치권력에 부여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전 지구적 내전’ 등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재앙들을 정당화하는 논리 속에서 슈미트 사상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다(네오콘의 이론적 아버지인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가 슈미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예외상태’이며, 모든 법률의 효력이 ‘정지’되고, 오직 주권자의 ‘결정’만이 위기를 평정할 수 있다는 주장의 흔적 말이다.
반대편에서는 현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들이 슈미트를 소환해 이 현상들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에티엔 발리바르, 샹탈 무페,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 안토니오 네그리 등 사상계의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학자들이 슈미트를 진지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적과 동지의 구분’(무페), ‘정치신학’(지젝), ‘제헌권력’(네그리), ‘주권과 예외상태’(아감벤), ‘대지의 노모스’(발리바르) 등 슈미트의 개념이 현재 우리 체제의 이념, 즉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를 해명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슈미트와 비판적으로 대결하면서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발리바르의 말처럼 슈미트는 “위험한 사람”이지만, “적을 알기 위해서는 적의 나라에 가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대 법학과 정치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20세기 전반기의 ‘유럽의 내전’이라는 조건에서 가공된 주권에 대한 슈미트의 이론화는 ‘주권론’ 내지 ‘국민-공화주의’ 담론이 어떤 원천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서만이 아니라 헌법의 재구성 시도(올리비에 보)나 ‘권위의 신비한 토대’에 대한 해체(자크 데리다), ‘구성권력’의 유토피아적 투사(안토니오 네그리)나 반대로 ‘세계시민적 권리’의 현재화(위르겐 하버마스)를 해명하는 데에도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 p.322)

‘주권자’, ‘예외상태에 대한 결정’, ‘독재’와 같은 슈미트의 주요 개념들은 파괴적인 울림을 갖는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특정한 현실적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개념들은 현대 법학·정치학의 한계지대를 지시하는 단어들이다. ‘법은 무엇을 통해 제정되며 어떻게 존립할 수 있는가’, ‘어떤 상황이 위기인지 아닌지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위기상태에 이르렀을 때 통상적 법규는 어떻게 되는가’ 등의 질문들, 즉 법 외부에 존재하면서도 법 내부를 규제하는 난제들(지금도 해소되지 않은)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슈미트 사상은 현재에도 유효성을 갖는다.
‘탈영토화’, ‘전 지구적 내전’, ‘테러 시대’라는 수사들이 증명하듯이, 현재 우리의 체제는 흔들리고 있으며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위기의 시대야말로 이 사회의 질서가 어떤 원리에 의해 형성되었는지를 질문하게 되는 시기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사색한 슈미트를 우리가 다시 한 번 읽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슈미트의 편력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에게 돌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를 통과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슈미트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우에만 슈미트와 [정치신학]은 여전히 현재성을 갖고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논쟁적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슈미트를 읽는 이유는 철학의 정의(正義), 정의로서의 철학을 개시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그렇다. 즉 법과 정치가 무죄선고를 내려 정의에 대한 판단을 종료해 버린 그 지점에서 정의에 대한 물음을 재개하는 일, 이것이 슈미트와 마주하여 그의 침묵을 깨는 일의 의의인 셈이다.”
(옮긴이 해제 [칼 슈미트의 침묵과 철학의 정의]/ pp.96~97)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주권자의 결정’이 법질서의 원천이라는 주장으로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제적 고전이다. 이 책에서 그는 ‘결정’이라는 계기를 강조하는 독창적인 ‘결단주의적’ 법이론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당대의 법실증주의·무정부주의·사회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한다.
이 책은 나치 법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알려진 악명 높은 저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법치국가의 원리를 파헤친 고전으로서 우리 시대에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 근대의 법 외부에 존재하면서도 법 내부를 규제하는 난제들을 정면으로 다룬 [정치신학]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주권의 본질’에 관한 새로우면서도 강력한 설명을 보여 줄 것이다.

목차

옮긴이 서문
2판 저자 서문

1장-주권의 정의
주권과 예외상태
보댕의 주권 개념 및 주권과 예외상태의 개념적 결합을 보여 주는 자연법적 국가론의 주권 개념
예외사례를 무시하는 자유주의 법치국가의 원리
다양한 학문적 관심이 던지는 규칙(규범)이냐 예외냐라는 질문의 일반적 의미

2장-주권 문제, 그것은 법형식과 결정의 문제
국가론에 대한 새로운 저술들: 켈젠, 크라베, 볼첸도르프
결단에 근거한 법형식의 특성(기술적 혹은 감성적 형식과 대비하여)
결정의 내용과 주체와 고유한 의미
‘결단주의적’ 사유의 예시로서의 홉스

3장-정치신학
국가론에서의 신학적 표상들
법학 개념의 사회학, 특히 주권 개념과 관련하여
한 시대의 사회구조와 그 형이상학적 세계상의 일치, 특히 군주제와 신학적 세계상과 관련하여
18~19세기에 일어난 초월표상으로부터 내재성으로의 이행(민주주의, 유기체적 국가론, 법과 국가의 동일성)

4장-반혁명 국가철학에 관하여?드 메스트르, 보날드, 도노소 코르테스
반혁명 국가철학의 결단주의
‘태생적으로 악한’ 인간과 ‘태생적으로 선한’ 인간이라는 대립하는 테제의 근저에 깔려 있는 권위주의적 이론과 무정부주의적 이론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입장과 이에 대한 도노소 코르테스의 정의
독재의 정통성에 관한 이념사적 발전

옮긴이 해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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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이 정의는 오로지 주권 개념을 한계개념으로 생각할 때만 타당하다. 왜냐하면 한계개념은 대중문학에서 통용되는 엉터리 용어법과 같은 혼란스러운 개념이 아니라 극한에 다다른 개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예외상태야말로 주권에 대한 법학적 정의에 본래적으로 적합하다는 사실에는 체계적이고 법논리적인 근거가 있다. 예외상태에 대한 결정은 그야말로 결정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정상 시에 유효한 법조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일반적 규범은 절대적 예외를 결코 파악하지 못하고, 진정한 예외상황이냐 아니냐에 대한 결정도 완전하게 근거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1장 [주권의 정의] 중에서/ pp.16~17)

1848년 이래 공법학은 실정적인 것이 되어, 통상 이 말 뒤에 숨어 스스로의 자기붕괴를 은폐해 버리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표현을 구사하여 모든 권력을 인민의 제헌권력에 귀속시킨다. 즉 군주제적인 정통성 관념을 대신하여 민주주의적인 정통성 관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안 도노소 코르테스가 1848년 혁명을 보고 왕정주의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인식에 다다른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다. 그는 결단주의 사상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 중 한 사람이자 격렬한 급진성을 내보이며 모든 정치의 핵심이 형이상학적인 것임을 의식했던 가톨릭 계열의 국가철학자였다. 더 이상 왕이 존재하지 않기에 왕정주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정통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코르테스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즉 독재밖에 없었다.
(3장 [정치신학] 중에서/ pp71~72)

오늘날 정치적인 것에 대항하는 투쟁만큼 현대적인 것은 없다. 미국의 경제인, 산업기술자,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자, 아나코-생디칼리즘적 혁명가가 모두 있는 그대로의 경제생활에 대한 정치적인 것의 인위적 지배가 배제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저 조직-기술적이고 경제-사회적인 과제만이 있을 뿐 정치 문제란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배적인 경제-기술적 사고방식은 정치적 이념을 파악할 능력이 없다.
(4장 [반혁명 국가철학에 관하여] 중에서/ pp.88~89)

저자소개

칼슈미트(Carl Schmitt)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88~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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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플레텐베르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1910년 지금은 프랑스의 알사스 주에 속하는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2년 첫 저서로 [법률과 판결]을 출간했으며, 1919년에는 뮌헨 상업전문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막스 베버의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1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 정교수로 취임했으며 이 해에 [독재]를 출간했다. 1927년 에른스트 윙거와 평생 지속된 우정이 시작되었으며, 1928년 베를린 상업대학 정교수로 취임했다. 1930년 여러 저서들과 평가서들을 통해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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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 연구교수. 지은 책으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2009)이 있으며,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2009)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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