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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 알래스카와 참사람들에 대한 기억

원제 : FIFTY MILES FROM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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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숨결을 만나다

날짜변경선에서 동쪽으로 불과 80km 떨어진 곳, 알래스카 코체부. 이 책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이누피아트의 이야기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자연을 경외하며 함께 힘을 모아 살아가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이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철된 현대인에게 진정한 삶의 숨결로 다가온다. 미 정부의 극심한 통제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원주민들의 토지권을 보장 운동을 주도해 나갔던 저자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개인의 일대기가 아닌 고유의 삶과 문화를 지켜내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간직한 이누피아트, 그들 모두에 관한 기록이다.

출판사 서평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 지점에 있는가?”
이 행성의 맨 꼭대기 지역 알래스카,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그곳에서 살아가는 ‘참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일만 번의 여름이 알래스카에 왔다가 갔다. 그곳 사람들은 또 한 번의 겨울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연어를 말려 훈제하고, 물범기름을 정제하고, 사냥한 북미순록고기들을 말리고, 풍성한 베리 열매의 수확을 기대하면서. 이누피아트 족(백인들이 흔히 에스키모라고도 부르는 이누이트가 극북지역에 사는 모든 이를 총칭하는 말인 반면, ‘참된 사람들’을 뜻하는 이누피아트는 알래스카 북부의 이누이트 사람들을 뜻한다)이 사는 알래스카 북부의 겨울은 아홉 달이나 계속된다. 그리고 한겨울이면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밤만 계속된다. 기운 없는 싸늘한 태양은 지평선 위로 고개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버리고 만다. 겨울철에는 거센 바람이 자주 불어 밖에 나갈 엄두도 낼 수 없는 날이 많다. 이누피아트 족은 그런 날을 ‘이트랄리크’라 부르는데, 그건 ‘살점이 떨어져나갈 만큼 혹독한 추위’를 뜻한다. 알래스카 땅이 공식적으로 알래스카 주가 된 것은 불과 오십 년 전의 일. 그러나 누가 자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든 상관없이 그 땅은 늘 얼음으로 뒤덮인 광대한 자연 속에 뭇 생명을 품어왔다.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의 저자 이레이그루크는 북부 알래스카,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코체부에 해안선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따라 신흥 도시인 놈에서 빈곤하게 살다가 외가 쪽 친척 집에 양자로 들어가 전통적인 이누피아트 족의 방식에 따라 살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의 원주민 조상들이 수천 년간 영위해온 반유목민적인 생활로, 추위와 끊임없는 노동이 수반된 삶이었지만 이레이그루크와 가족들은 자연이 제공해주는 풍성한 산물을 누리며 살아간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알래스카의 겨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이레이그루크는 자연이 지닌 힘들을 경외해야 함을, 낭비가 큰 적임을 배운다. 더불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꼭 필요한 일임을, 오로지 더불어 일함으로써만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나날의 삶은 모험이었고 우리 모두는 아니그니크, 곧 삶의 숨결을 즐겼다. 많은 이들이 간간이 죽을 고비를 겪기는 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큰 기대감을 갖고서 하루를 맞았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몇 마리의 뇌조를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있을까? 운 좋게 몇 마리를 쉽고도 빠르게 잡을 수 있을까? 여우가 덫에 걸렸을까? 농어 그물을 다시 들여다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가 개들을 데리고 가서 가문비나무 단을 실어 오는 일을 맡을까? 양식과 생필품을 들여놓기 위해 마을에 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를 서양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교사들의 의식 속에는 겸허함, 협동, 가족애, 고된 노동, 인생살이에서의 유머 같은 인간적인 가치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만여 년간 땅과 바다, 강과 하늘과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체득된 우리 이누피아트 족의 모든 지혜를 창밖에 내던져버렸다.

아아리가아 이누우루니! 나쿠우루크 마니 누나!(살아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여기는 좋은 곳이야!)

이 책에서 이레이그루크는 알래스카 원주민 소년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에 모처럼 흠뻑 젖어들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지금까지 알래스카와 그곳 원주민들에 대한 책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그조차도 하나같이 외지인들, 곧 개척자들이 썼다. 또는 여행의 관점에서 쓴 책뿐이어서 이누피아트의 어린 소년 이레이그루크가 툰드라에서 생활한 일들의 직접적 기록은 우리에게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시각과 감동을 열어준다.

아메리카 본토 원주민과는 다른 길을 간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운명과 도전
알래스카 정신의 발랄하고 생동하는 힘을 매혹적으로 증언하는 책


이레이그루크가 태어난 곳은 베링 해의 바람과 파도에 의해 형성된 곳이다. 알래스카 지도에서 그 지역은 ‘코체부에’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몇천 년 동안 대대로 거기 살아온 이들은 ‘작은 섬’이란 뜻의 ‘퀴키크타그루크’라 부른다. 그곳은 버드나무들과 풀밭과 사시나무로 둘러싸인 길이 5킬로미터가량의 해변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해변에 떠밀려 오는 부목들은 땔감으로 쓸 수 있고, 다양한 물고기와 연어는 풍성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준다. 각종 푸성귀와 뿌리채소, 흰돌고래, 물범, 바다코끼리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여름철이면 야생딸기, 각종 식물과 뿌리, 뇌조, 토끼, 들오리와 거위, 갈매기 및 그 밖의 새들의 알을 구할 수 있다.
이레이그루크가 태어날 무렵, 그곳에는 삼백 명 가량의 주민이 살았으며, 대부분은 이누피아트였다. 소수의 ‘날로우르미트’도 섞여 살았는데, 그들은 백인들을 그렇게 불렀다. 물범을 뜻하는 날로우크의 상앗빛 피부를 연상시키는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선교사, 교사, 정부 관리, 장사꾼들이었다.
알래스카는 빙하로 뒤덮인 광막한 자연환경으로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곳에 펼쳐진 원초의 청정한 강들과 호수, 삼림, 빙하,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광활한 대지에 매료된다. 그 땅덩어리의 넓이는 3억 6천5백만 에이커(약 150만 제곱킬로미터)로 텍사스 주 넓이의 두 배가 넘는다. 어떤 이들은 그곳의 엄청난 자원, 곧 믿을 수 없으리만치 풍부한 아연, 금, 목재, 야생동물, 어류, 석유 같은 것들에 끌린다. 하지만 이레이그루크에게 알래스카는 본질이자 본향이요, 삶의 이유이자 목적에 해당하는 장소이다.

나는 사향뒤쥐와 늑대 가죽들로 만든 모피 파카 대신에 고어텍스가, 물범가죽 장화 대신에 스노부츠가, 우리가 물고기를 낚기 위해 1.5미터 두께의 얼음장을 뚫을 때 사용했던 재래식 투우크 대신에 휘발유 동력 드릴이 등장하기 전 시대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스노머신이 등장하기 전, 에스키모개들이 썰매를 끌고 싶어 안달이 나서 허공을 향해 길게 울부짖곤 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보트 외부에 장착하는 외장 엔진이 등장하기 전에 카약과 우미아크(가죽배)가 수면 위를 고요히 미끄러져 가곤 하던 시대에, 양초와 콜맨랜턴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빛을 제공해주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사람들이 겨울철이면 매서운 추위와 강풍을 막아주는 60센티미터 두께의 뗏장과 흙바닥으로 이루어진 뗏집에서, 여름철이면 우리를 나른한 잠의 유혹으로 끌어들이는 단조로운 파도 소리와 아비(물새의 일종)나 갈매기 울음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자유로이 넘나드는 텐트 속에서 지내곤 했을 때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전화기가 등장하기 전이라 사람들이 직접 만나고서야 비로소 자기네의 삶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절에, 텔레비전이란 게 생겨나 사람들이 가족들의 연대기와 전설들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걸 방해하기 전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태어날 즈음 알래스카 문화는 이미, 그들이 ‘바깥세상’이라 불렀던 곳에서 알래스카의 매력과 흡인력에 이끌린 사람들이 몰고 온 파괴적인 영향력을 목격하고 있었다. 외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전염병도 따라 들어왔고 그 때문에 원주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외지인들이 대규모로 펼친 고래 사냥은 고래들 덕에 먹고살았던 원주민들을 어려운 처지로 내몰았다. 이 책은 1899년 초봄, 실업계의 거물이요 철도회사 중역이었던 에드워드 해리먼이 알래스카 해안 지방을 답사한 기록을 전한다.

통제되지 않은 데다 통제할 수도 없는 백인들이 이미 알래스카에 떼로 몰려들어 에스키모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다. 백인들은 에스키모 여자들을 차지했고, 술로 에스키모 남자들을 타락시켰다. 백인들은 과거 그 지역에 없었던 이상한 질병들을 들여왔다. 그 때문에 우리가 목격했던 그 건전하고 친절하고 활달한 사람들은 조만간 파멸의 운명에 처하거나 존재가 희미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문명과 야만의 충돌은 불가피하고, 그 두 세력이 접촉하는 곳마다 약자들은 도태되고 말 것이다.

알래스카에 이주해 온 외지인들은 땅과 자원을 장악하면서 또 다른 부담도 함께 들여왔다. 그것은 바로 원주민들의 삶에 대한 정부의 과중한 통제였다. 외지 사람들의 지배와 더불어 그들의 강제적 요구도 따라 들어온 것이다 이레이그루크와 식구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사유재산에 대한 아주 색다른 개념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사회를 자본주의와 개인적 이익 추구, 개인의 선택에 기반을 둔 사회에 맞춰 나가야만 했다.
알래스카가 주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기독교 선교사들과 미국 정부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을 올바른 ‘미국인’들로 변화시키기 위해 합심해서 노력했다. 열다섯 살 때 저자는 타의에 의해 에스키모의 때를 깨끗이 씻어내고 미국 본토에 있는 기숙학교로 가야 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속한 민족과 역사를 뺀 나머지 것들을 공부했다.
이레이그루크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세계와 어렸을 때 자신이 영위했던 삶 같은 것들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앞서 인용한 에드워드 해리먼의 예견과는 달리 자신들은 여전히 그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정신도 맥맥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역사는 글로 제대로 기록이 되지 않은 데다 완벽하게 구전되지도 못한 탓에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지금 이레이그루크는 이누이트나 알래스카에 관한 자료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모아들이고 있다.
한편 이레이그루크가 열다섯 살이 되어 더 많은 교육을 받도록 테네시로 보내졌을 때 그는 거기서 과거 수천 년 동안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차지해왔고 사실상 소유해왔던 땅이 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이런 움직임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연어처럼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젊은 이레이그루크가 몇 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1971년, 미국 정부는 10억 달러에 가까운 돈과 17만 8천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제공해주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미국 본토의 원주민들과는 달리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그런 놀라운 결정이 하룻밤 사이에, 그리고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권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현실화한 이는 바로 이 책을 쓴 이레이그루크였다. 이 책은 그 생생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는 한 개인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고 알래스카 정신의 발랄하고 생동하는 힘을 매혹적으로 증언해준다.
자신이 ‘석기시대의 황혼’이라 부르곤 하는 어린 시절에 북극권의 황야에서 애정 어린 이누이트 가족과 함께 자란 이레이그루크. 그는 이 행성의 맨 꼭대기 부근 지역에 널리 퍼져나가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만여 년간 생존하고 번성해온 자기 부족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또 그에 따라 성장했다. 이 책은 그의 이야기이다. 더불어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지혜에 대한 흥미진진한 기록이다.

목차

머리말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1 코우그리룽가 , 최초의 기억들
2 이카투크 , 야영지에서
3 아치캉! , 아, 무서워!
4 퀴티크토우크투구트 , 우리의 놀이
5 우메이크파크 , 북극성 호
6 오우사크퉁가 , 외지로 나가다
7 누나부트 티구미이웅!,우리 땅을 지키자!
8 티굴루구! , 권리를 요구하자!
9 사쿠우크퉁가 , 열심히 일하다
10 나니카크투구트! , 우리에게는 빛이 있다!
11 이리츠이소우트 , 산의 끝자락
12 푸투크스리룽가 , 놈에서 찾아온 계시
13 퀴에이나크! 시부트문! , 울지 말고 나아가라!
맺는말 이누피아트 일리트쿠세이트 , 이누피아트 정신
감사의말 아토우치쿠오우크 , 하나가 되어
옮긴이의말 툰드라에서의 서정적 삶과 전투적 서사

본문중에서

“이레이그루크, 내 또 다른 영어식 이름은 ‘윌리엄 헨슬리’.”
나는 우리 집에서 태어났으며, 우리 이웃 중의 한 사람인 에이브러햄 링컨(우케일리에이크)의 아내 블랜치가 산파 역할을 했다. 백인 선교사들은 알래스카 원주민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면서 영어식 이름도 선사했다. 가끔 그들은 개종자들에게 자기네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어떤 때는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을 그냥 붙여주기도 한 것 같았다. 또 어떤 때는 유명한 미국인들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서 성장하면서 에이브러햄 링컨뿐만 아니라 조지 워싱턴, 로버트 E. 리(남북전쟁 때의 남군 총사령관)도 만났는데 이건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다.
개종자들은 흔히 그렇게 얻은 영어식 새 이름과 아울러 자기네의 이누피아크 이름을 함께 썼으며, 그런 식의 두 가지 이름을 대대로 물려주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누구나 다 일을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누구나 다 일을 했다. 물론 너무 어릴 경우에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나는 야생딸기를 따면 그냥 다 먹어버렸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도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간단한 일들에는 참여해야 했다. 세 살배기 아이도 땔나무를 아궁이 속에 집어넣는 일은 할 수 있었다. 나는 몸에 약간의 힘이 생기자마자 나무를 패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고, 연장들을 날라 오고, 배에 들어온 물을 퍼내고, 개들에게 먹이를 주고, 어망을 손질하거나 물고기를 말리기 위해서 매달아두는 일을 거들고, 심지어는 흰돌고래의 지방과 고기를 요리하는 일을 거들기까지 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큰 기대감을 갖고서 하루를 맞았다.”
나날의 삶은 모험이었고 우리 모두는 아니그니크, 곧 삶의 숨결을 즐겼다. 많은 이들이 간간이 죽을 고비를 겪기는 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큰 기대감을 갖고서 하루를 맞았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몇 마리의 뇌조를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있을까? 운 좋게 몇 마리를 쉽고도 빠르게 잡을 수 있을까? 여우가 덫에 걸렸을까? 농어 그물을 다시 들여다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가 개들을 데리고 가서 가문비나무 단을 실어오는 일을 맡을까? 양식과 생필품을 들여놓기 위해 마을에 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등잔불 아래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
전기가 들어오기 전 시대에 우리 어머니가 북미순록가죽 매트 위에 앉아서 희미한 등잔불에 의지해 꼼꼼하게 일하는 광경을 나는 수없이 많이 봤다. 어머니는 가죽에 바느질을 해서 벙어리장갑, 파카, 장화, 바지를 지었다. 같은 자리에서 어머니는 또 양말, 장갑, 토시를 지었고, 실내화와 장화에 달기 위한 정교한 구슬장식이나 파카에 달기 위한 예쁜 장식을 만들었다. 그 시절에 여성들이 어둠 속에서 일하면서도 시력을 잃지 않은 건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의 기도
우리 가족이 이브룰리크에서 겨울철을 지낼 때면 우리 어머니 노운라레이크는 온 세상이 싸늘하게 얼어붙은 미명의 어둠 속에서 일찍 깨어 일어나 한기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재빨리 파카를 걸쳐 입으셨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순록가죽 매트 위에 조용히 앉은 뒤 먼 곳을 망연히 응시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물론 그럴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여름철에도 어머니는 하루 온종일 우리를 부양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다 저녁나절이 되면 해변 가까운 곳에서 침묵한 채 만 건너편에서 기울고 있는 붉은 태양을 묵묵히 지켜보셨다. 이때도 역시 어머니의 정신은 일상세계로부터 멀리 벗어난 곳에 계신 듯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어머니가 기도를 하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머니는 코체부에에서 퀘이커교도들의 인도를 받아 기독교로 개종한 첫 세대에 속한 분이었으니 아마 기독교 신에게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또 우리말로 날씨를 창조한 자연의 힘들을 뜻하는 실라에 관해서도 말씀하시곤 했다. 이렇게 묵상하는 동안 아마 어머니는 이누피아트 우주의 영들인 위대한 영들에게도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땅과 바다는 우리 삶의 중심이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간 영위해왔던 전통적인 삶이자 반유목민적인 삶을 살았기에 늘 살아남아야 한다는 심각한 명제와 맞닥뜨렸다. 생존이야말로 우리의 최우선적인 관심사였다. 우리는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속에 빠질 수도 있고, 개썰매를 몰고 가다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발을 헛디뎌 치명적인 오발 사고를 저지를 수도 있고, 도끼로 나무를 패다가 제 몸을 잘못 찍어 중상을 입을 수도 있고, 칼로 짐승 가죽을 벗기다가 제 몸을 찌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맹렬하게 포효하는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보트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다. 곰의 공격을 받거나 성난 큰사슴의 뿔에 받혀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강추위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이 베풀어주는 풍요로운 결실을 거둬들였다. 우리는 바다에서 물고기들을 잡고, 산에서 짐승들을 잡고, 하늘에서 새들을 잡고, 툰드라에서 야생딸기들과 그 밖의 식용식물들을 채취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강추위 때문에 사냥을 하거나 낚시하는 일이 불가능해지고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식물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계절이 올 때를 대비해서 그렇게 거둬들인 모든 먹을거리를 잘 저장해두었다.
내가 새 가족과 합류했던 그 유년 시절에 내 뇌리에 깊이 새겨졌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땅과 바다야말로 우리 삶의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가족의 품 안에 있다는 것의 의미
이누피아트 세계에서 가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알래스카 너머의 지역들이나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접촉하기 전 시대에는 자기네 부족의 전통적인 경계선을 넘어갈 경우 그 당사자는 즉각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가족의 따뜻한 품 안에 안겨 있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극한의 세계 안에 온갖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할지라도 언제나 보호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 제공해주는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이었다. 미국에는 자기네 조상들이 몇천 년 전에 이곳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 그런 것은 강력한 힘을 지닌 정서다. 우리 조상들이 나와 같은 돌멩이들을 갖고 놀았고 같은 산들을 바라보았고 같은 강을 배로 가로질렀고 같은 모닥불 냄새를 맡았고 같은 사냥감을 추적했고 같은 여울목에서 야영을 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진한 소속감을 안겨준다. 개들을 잡아 묶을 기둥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다가 우연히 짐승 엄니(크고 날카롭게 발달한 포유동물의 이)로 만든 작살 손잡이나 부싯돌 같은 것들을 발견할 경우 그 사람은 자기 조상들이 몇천 년 전에 사용했던 유물과 맞닥뜨렸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백발의 할아버지에서 갓 태어난 갓난아기에 이르는 우리 대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는 아주 가까웠다. 우리는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내내 함께 지냈고,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먹을 것이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함께 추적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냄새
우리 같은 아이들에게 목욕이란 아주 생소한 개념이었다. 늘 목욕을 하는 바깥사람들이 우리를 만났을 때는 우리에게서 나는 끔찍한 악취 때문에 질색을 했을 것이다. 몸 냄새와 음식 냄새, 나무 땔 때 나는 연기 냄새가 진동을 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걸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사실 내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냄새들은 대개가 아주 근사했다. 대표적인 것은 바람과 습기, 풀, 새먼베리(북미 태평양 연안의 나무딸기), 크랜베리(넌출월귤. 진달랫과에 속하는 식물의 열매), 흙 같은 것들의 냄새가 혼합되어 이루어진 툰드라 냄새였다. 그리고 통 속에서 손으로 비비고 빨래판에 문질러 빤 뒤 맑고 차가운 대기에 널어 말린 옷들에서 나는 선연한 향기가 있다. 겨울철이면 빨래들이 꽝꽝 얼어붙었다. 그래서 우리는 얼어붙은 긴 바지를 손바닥 위에 세워놓고 균형을 잡는 장난도 칠 수 있었다.

개와 이누이트의 삶
개들은 우리 삶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존재들이었으며 우리가 오지에서 생활할 때는 특히 더했다. 내게는 그들과 우리의 관계가 완벽한 거래 관계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들을 살려주고 그들은 우리를 살려주는 관계. 이런 관계는 우리 선조들이 만 년에서 만 이천 년 전에 베링 육교(빙하시대 베링 해협의 얕은 바다가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두 대륙이 땅으로 연결된 것)를 통해 시베리아에서 이 땅으로 건너오기 전부터 이루어졌다.
자질이 뛰어난 선도견은 아주 소중한 자산이었다. 이누피아트 사회에서는 좋은 개들로 이루어진 팀을 갖고 있을 경우 성공한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선도견이 낳은 새끼들을 여러 사람이 다투어 얻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주인에게 영예로운 일이었다. 그보다 좀 더 중요한 것은 선도견이 생사가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 주인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뛰어난 선도견은 거센 눈보라 속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거나, 엷은 얼음을 돌아가도록 이끌거나, 주인이 썰매에서 떨어졌을 때 무리를 멈춰 세우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개들은 주인의 성격이나 성향을 상당 부분 드러내주었다. 사람들은 개들을 사랑으로 다스리기도 하고 겁을 줘서 다스리기도 하고 그 두 가지 방법을 모두 구사하기도 했다.
(/본문중에서)

저자소개

이레이그루크(William L. Iggiagruk Hensley)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알래스카
출간도서 1종
판매수 435권

"알래스카는 나의 본향이요 본질이요 삶의 이유."라고 말하는 이레이그루크는 북극권에서 북쪽으로 46킬로미터,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베링 해의 바람과 파도에 의해서 형성된 코체부에 만 해안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석기시대의 황혼’이라 부르곤 하는 어린 시절에 이레이그루크는 북극권의 황야에서 애정 어린 이누피아트 가족 안에서 자랐다. 그는 이 행성의 맨 꼭대기 부근 지역에 널리 퍼져나가 인간이 살기 어려운 혹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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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빈방〉으로 당선. 옮긴 책으로 《희박한 공기 속으로》《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세상 끝 천 개의 얼굴》 《성난 물소 놓아주기》《그런 깨달음은 없다》《모든 것의 목격자》《켄 윌버, 진실 없는 진실의 시대》《늘 깨어나는 지금》 외 백여 권이 있다. 현재 부여에서 번역 작업을 하면서 파트타임 농부로 지속 가능한 자연생태 농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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