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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종족

원제 : THE FEMALE OF THE SPE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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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오 헨리 문학상, 내셔널 북 어워드, 브램 스토커 상, 페미나 외국문학상 수상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조이스 캐럴 오츠의 아홉 여자 이야기

조이스 캐럴 오츠는 일흔둘 고령의 원로로 미국 문단에서 가장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담보하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거장은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해 오면서 다양한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고 2004년부터 해마다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여자라는 종족The Female of the Species]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인 아홉 편의 중·단편을 담은 오츠의 단편집이다. '여성과 성적 폭력'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오츠는 이 단편집의 아홉 여자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병들고 일그러진 단면과 그 속에서 여성이 교묘하게 억압받고 희생되는 얼룩진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성이 그 현실을 탈피하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과 그 충격적인 결말이 오츠의 탁월한 상상력과 예리한 표현력, 섬세하고 생생한 심리 묘사,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이야기 전개, 건조하고 차분하고 세련된 문체만큼 공포의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반전을 통해 섬뜩하고 냉혹하며 담담하게 펼쳐진다.

'여자'라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향연
남자들보다 더 치명적인 여자들에게 도사리고 있는 섬뜩한 공포!

어린 소녀부터 아이의 어머니, 가난한 창녀부터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마나님까지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여성이 잔혹함과 아름다움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현대 사회의 얼룩진 단면을 다채롭게 변주하며 만화경처럼 보여준다. 오츠는 '여성'이라는 특정 종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녀들이 잔혹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통렬하게 꼬집으면서 남성이 개입하지 않아도 여성만으로 더욱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공포를 만들어낸다.
오츠의 아홉 여자들이 만들어내는 아슬한 풍경은 마치 선혈이 낭자한 흑백영화를 바라보는 듯하다. 붉은 피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흑백으로 처리하듯 오츠는 잔혹한 장면에서도 결코 감정이 과잉되는 법 없이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여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녀들은 오츠의 짱짱한 언어의 힘과 밀도 있는 전개 속에서 섬뜩한 생명력을 얻는다.

하늘에 맹세코

어린 부인 루크레시아에게 '확인 불가'라는 익명의 음란하고도 집요한 장난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한다. '확인 불가'는 루크레시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루크레시아는 '확인 불가'의 전화가 남편 피트먼이 확실한 것 같기도 하고, 피트먼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동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부유한 계층의 응석받이 외동딸로 자란 순진한 루크레시아는 부모를 저버리고 열네 살의 자신을 사로잡은, 가난한 계층의 위험한 매력을 내뿜는 피트먼을 선택한다. 지극한 사랑이라 믿었던 것은 그저 매혹이었을 뿐, 피트먼은 점점 집착하고 폭력적으로 변해 가며 루크레시아는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짙은 어둠의 분노가 무섭고 외로움에 사무친다. 마침내 루크레시아는 '확인 불가'의 음탕한 전화에 음란하게 맞서는데...

밴시, 죽음을 알리는 요정

낸터킷 해협의 헤지 섬, 빅토리아풍 삼층 저택에 어린 여자아이가 있다.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아이를 떠나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고, 엄마는 화려하게 단장하고는 새 남자친구와 다른 친구들에 둘러싸여 날마다 파티에 정신이 없다. 아빠가 다른 남동생인 아기와 아이는 엄마는 물론 어른들의 관심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아이는 파티를 즐기는 이 많은 어른들 사이에 아빠가 자신을 보러 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기를 안고서 아빠를 찾기 위해 점점 저택의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시작하는데....

인형, 미시시피 로맨스

'인형'이라는 이름의 소녀와 (의붓)아버지 아이라 얼리는 미시시피 강줄기를 따라 '열한 살 어린 소녀'에게 매료되는 교육받은 고위층 점잖은 X씨들을 상대로 매춘을 한다. 얼리는 인형이 '열한 살'에 머물도록 사춘기를 막아줄 약을 먹이고 DNT(Do Not Touch, 접촉 불가) 원칙을 세워놓았다. 또 다른 X씨를 만나러 모텔에 들어서는 두 사람. 방에는 인형만 들어간다. 이번 X씨는 볼품없는 외모의 중학교 선생이다. 그 앞에서 어린 척 능청을 부리던 인형에게 X씨는 이런 생활에서 구해주겠다며 실언하는데....

마네킹이 된 여자

돈은 엄청 많지만 부인에게 무관심한 남편의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알 수 없는 G부인은 남편의 재력으로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온몸에 휘감고 다닌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는 정중히 미소를 지으며 귀부인 대접을 해주지만 뒤에서는 그녀를 한껏 비웃는 사람들의 뒷말에 갈팡질팡한다. 무엇보다 패션 감각이 없다는 험담에 민감해진다. 이날도 G부인은 이런저런 모임을 장신구와 소품을 사려고 아침부터 쇼핑에 나선다. 아무리 많은 명품 가게를 강박적으로 둘러봐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 점점 초조해지던 부인은 마지막으로 티키 매장에 들르게 되는데....

떠나지 않는 울음소리

엄마와 오빠 캘빈과 함께 셋이서 살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메리베스. 메리베스 가족은 어느 날 폭력적인 아버지가 의문투성이로 사라진 후 아무도 그들을 모르는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새 집에서 엄마는 점점 명랑하고 젊어지고 예뻐진다. 그런데 밤마다 지하실에서 토끼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와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엄마도, 캘빈도 모른 척 메리베스를 바보 취급하며 화만 내는데....

허기

케이프코드 바닷가에 위치한 부유한 휴양지. 친지의 초대로 그곳을 방문한 크리스틴은 어린 딸아이 쎄시와 함께 이른 아침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다리를 절뚝이는 낯선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그 이국적인 남자는 장난치며 달리다가 넘어질 뻔한 쎄시를 붙잡아주고 몇 마디 말을 나눈다. 아름다운 남자에게 매료된 크리스틴은 어느 파티에서 '장-클로드'라 소개되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길 없이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 크리스틴은 부유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완벽하고 멋진 남자이지만 자기 사업에만 빠져 사는 나이 많은 남편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젊고 매혹적인 장-클로드에게서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평화로운 휴양지에서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크리스틴은 장-클로드를 의심하는 마음과 의심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데....

용서한다고 말해 줄래?

2000년 10월, 뉴욕의 양로원에서 일흔 살 노파가 살아서는 차마 고백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딸에게 편지를 쓴다. 그녀는 사십 년 전에 딸이 시체를 발견하도록 등 떠밀었던 적이 있다.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말하기 위해 그녀는 과거로 돌아가, 몹시 사랑했던 아버지의 자살과 그 이후 위안이 되어준 애인 버드 비첨, 그리고 비첨의 의문사에 연루된 아무것도 모르는 흑인 소년 하이럼 존스의 죽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분노의 천사

패트리어트 공원에서 마주친 카트리나, 아기가 탄 유모차를 밀며 지나간다. 몇 번 마주치자 이제 그녀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눈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파란 눈동자의 아기가 나를 본다. 녀석도 알아보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랑하는 그녀를 보호하려고 지켜보는 '분노의 천사'인 나, 길리드를 그녀는 스토커로 취급한다. 미혼모인 카트리나는 자기 주위를 맴도는 길리드를 질색하며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그녀가 쏜 무허가 총에 길리드가 맞게 되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길리드에게 뭔가를 부탁하는데....

자비의 천사

볼품없는 외모에 결혼은커녕 남자 친구조차 없었지만 명문 간호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아그네스 오드와이어는 '저주받은 도시(신경외과 병동 11층)'의 '자비의 천사'로 가장 훌륭한 간호사였다. 전설적인 그녀는 의문의 암호가 포함된 간호 일지를 남기고 1974년 4월에 죽은 이후 '저주받은 도시'를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1999년 4월을 살고 있는 R―은 역시 명문 간호학교의 우등 졸업생으로 '저주받은 도시'에서 햇병아리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아그네스 전설에 코웃음을 치면서 가장 훌륭한 간호사가 되는 데만 몰두하던 R―은 자동차 사고로 엉망진창이 된 '마커스 로퍼'라는 부잣집 도련님을 간호하게 된다. 마커스를 돌보면서 R―은 간호 일지를 쓰면서 아그네스의 암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는데....

[해외 언론 리뷰]

기존에 흔치 않았던 유형의 여주인공들을 내세운 조이스 캐럴 오츠의 단편집을 한동안 멀리하기란, 또 그들이 어떤 섬뜩한 결말을 맞고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궁금증을 뒤로 미루기란 불가능하다. 이 책은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조이스 캐럴 오츠의 단편소설이 지닌 특별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내러티브의 밀도, 놀라운 다양성과 눈부신 창의력, 그리고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짱짱한 언어의 힘.... 오츠의 미스터리는 오늘날의 미국 문화를 구성하는 고약한 악취미를 교묘하게 드러낸다.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

조이스 캐럴 오츠는 특유의 명료하고 정교한 문장으로 모든 여자마다 위험을 품고 있으며 아무도 안전하지 않은 세계를 창조해 낸다. [라이브러리 저널]

조이스 캐럴 오츠는 사십 년 동안 한계에 내몰린 인생들의 삶을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그려냈다. 범죄 심리를 풀어내는 실력은 [여자라는 종족]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간통부터 살인까지 이 단편집에 묘사된 여자들은 악의와 악덕의 치명적인 결합을 보여준다. 오츠의 문장은 빛난다. [북리스트]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이번 단편집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조이스 캐럴 오츠의 상상력은 여전히 왕성하고 열정적이며 섬뜩하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제 와서 이럴 줄 몰랐다고 발뺌하면 곤란하다.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능력은 감탄을 자아내는데, 멋진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능력을 의미한다. 오츠는 여러 화자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엮어낸다. [산 호세 머큐리 뉴스]

[여자라는 종족]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조이스 캐럴 오츠와 다를지 모르지만 통렬한 문체와 오싹한 장면 속에 독자를 던져 넣는 능력은 여전하다.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뉴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 단편집은 캐릭터만으로도 독자라면 시간을 투자하여 읽고 작가라면 연구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더 스테이트](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콜롬비아)

조이스 캐럴 오츠는 재능 있는 작가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그녀의 언어는 과연 화려한 수상 경력을 지닌 작가답게 빛을 발한다. [로키 마운틴 뉴스](덴버)

조이스 캐럴 오츠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내러티브를 구사함으로써 소름 돋을 만큼 직접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미네아폴리스 스타 트리뷴]

조이스 캐럴 오츠는 매끈한 문장을 통해 이성의 벼랑 끝으로 달음질쳐 여자라는 차갑고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여자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비밀스러운 열정부터 감정이라는 허약한 구조를 뒤흔드는 순수한 아이들의 충동까지, [여자라는 종족]에 실린 단편들은 섬뜩하고 오싹하다. curledupwithagoodbook.com

목차

하늘에 맹세코
밴시, 죽음을 알리는 요정
인형, 미시시피 로맨스
마네킹이 된 여자
떠나지 않는 울음소리
허기
용서한다고 말해 줄래?
분노의 천사
자비의 천사

본문중에서

그렇게 시작된다. 마치 탁구를 하듯. 그가 왜 친구가 필요하냐고 묻고 나는 그야 외로우니까 그게 이유이지, 라고 말한다. 그가 뭘 입고 있냐고 묻고 나는 이 옷에는 단추가 하나뿐인데, 이름 하여 배꼽 단추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너무 웃겨서 황동 침대의 머리판이 흔들리도록 웃는다. 짙은 자두색 럼주를 배에 쏟을 것처럼 웃는다. 자칭 내 친구라는 수화기 너머의 남자도 웃고 있다. 그 배꼽 단추 옷을 봤으면 좋겠다면서. 나는, 실은 지금 막 목욕탕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여기에 나 혼자뿐인데, 지금 막 목욕을 마쳤다고. 그는 몸을 말려줄 사람이 필요하냐고 묻고 나는 말한다. 아니이이이. 뭐, 어쩌면. 그러자 그가 말한다. 일의 순서를 정해야지. 찌찌. 찌찌부터 시작해야 해, 자기야. 자기 젖꼭지. 나는 숨이 가빠오는 느낌에 어찌나 심하게 웃었는지 옆구리가 칼에 찔린 것처럼 아프다. 그는 무슨 말인가를 더 하지만 나는 웃느라고 듣지 못한다. 인생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거야, 아이고, 루크레시아, 라면서 엄마는 울었다. 처박아도 내 인생이야. 제기랄, 내 인생. 엄마 인생 말고 내 인생. 그러니까 날 좀 내버려둬.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사람은 피트먼이야, 날 시험하는 거야. 날 죽일 거야.
('하늘에 맹세코' 중에서/ pp.48~49)

아이는 강아지를 원했는데, 대신 남동생이 생겼다. 슬그머니 들여다볼 때마다 아기의 촉촉하고 파란 눈이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 그런 모습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머릿속이 뒤엉키면서 골치가 아플 때만 빼면. 나는 아기였는데, 그러면 아기가 나인가?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 아니면 아기가 내 자리를 빼앗은 건가? 아이는 이걸 아빠에게 물어보려 했다. 아기가 나인데 내 자리를 차지했으면, 나는 어디 있어?
('밴시, 죽음을 알리는 요정' 중에서/ p.68)

〔오래전? 누구는 1970년대 초라 하고 누구는 1953년이라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아이라 얼리와 그의 (의붓)딸이 이 여행을 시작한 때는 대공황 이후인 1930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인형은 당황스럽다. 칠십 년 넘게 열한 살이었단 말이야?〕 인형이는 몇 살이니? E-Z 이코노미 모텔 22호실의 X씨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늘어선 다른 모텔의 X씨와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면 틀림없이 물어볼 것이다. 이 질문을 평생 들어왔더니, 이젠 농담이 아니라 정말 꼭지가 돌겠다. 아빠는 말한다.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라고. (무한하기 때문에) 소중한 상품이라면서. 아빠는 각본대로 하라고 말한다. 봐, 열 살이라고 하면 몸을 사릴 거야. 열두 살이라는 이야기는 듣고 싶어 하지 않지. 열세 살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건 일종의 합의 같은 거야
('인형, 미시시피 로맨스' 중에서/ pp.85~86)

아침 쇼핑은 식욕을 자극하고, 그래서 자기랑 똑같은 여자들을 만날 때가 많은데, 건너편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멋진 거울을 통해 바라보면 자매로 오해할 정도다. 날렵하게 자른 샴페인 블론드의 머리, 작은 태양처럼 번쩍이는 반지, 번들거리는 입술에 머금은 미소, 별안간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 엄밀한 의미의 친구는 아니더라도 G부인의 다정한 지인이라고 할 수 있다. G씨의 친구나 동료의 부인들, 혹은 자선단체를 통해 만난 여자들. 이를테면 뉴욕 공공 도서관의 친구들이나 모마의 친구들, 문맹 퇴치를 위한 친구들. 꼭 G부인 같은 여자들. 괴물처럼 구는 청소년기의 의붓자식을 두고, 유방에 보형물을 넣고, 남편의 친척들과 암암리에 갈등을 벌이며, 콜라겐 주사와 화장으로 가린 가면 같은 얼굴을 하고, 매혹적인 프랑스 향수를 뿌리고, 자낙스와 프로작과 세렌틸 같은 우울증 치료제 처방을 받고, 앙큼한 입주 도우미들과 툭하면 갈아치우는 마리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45킬로그램의 깡마른 체구에 활시위처럼 팽팽한 몸을 가진 부잣집 마나님들. 그리고 르 베르나댕과 샹트렐, 르 서크, 장-조르주처럼 세련된 레스토랑의 아연 테두리 거울 속에서 화들짝 놀란 해골이 씩 웃는다.
('마네킹이 된 여자' 중에서/ p.113)

엄마가 우리더러 내려가면 안 된다고 말한 지하실의 녹슬고 낡은 그 고약한 우리 속에. 지하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엄마는 말한다. 그 더러운 곳에 얼씬도 하지 마. 하지만 밤이면 벽을 통해 토끼 울음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구구구 소란스러운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칭얼대는 소리로 시작하다가 점점 커진다. 베개로 머리를 눌러도 여전히 들린다. 나는 그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심장이 아프도록 쿵쾅거린다. 우리에 갇힌 토끼들이 애원하고 있다. 살려줘! 풀어줘! 우리는 죽고 싶지 않아. 아침이면 학교에 가기 전에 엄마가 내 머리를 빗어주고 웃으면서 코끝에 입을 맞춘다. 아침이면 다시 나를 사랑하는 엄마가 된다. 하지만 지하실의 토끼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엄마의 표정이 바뀐다. 엄마가 말했지! 지하실은 텅텅 비었어. 지하실에 토끼 같은 건 없다고. 엄마가 보여줬잖아?
('떠나지 않는 울음소리' 중에서/ pp.134~135)

크리스틴은 눈을 감은 채 해변을 따라 절룩이며 걷는 남자의 실루엣, 얕은 물 앞에 주저앉아 손과 팔과 얼굴을 힘껏 문질러 닦던 남자,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다가 차츰 크리스틴과 쎄씨를 보고는 절룩거리는 걸음걸이를 숨기려 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게 8월 11일 아침이었나? 7시 30분쯤? 잘 모르겠다. 아닌 것 같다. 그 전날 아침이었다.... 그날 아침에 해변에서 봤던 다른 사람들, 개를 산책시키던 백발의 노인, 밀짚모자를 쓰고 쌍안경을 든 중년의 부부에게 혐의를 둘 수 없듯이 장-클로드를 살인 사건에 연루할 수는 없다.... 그녀는 어떤 조짐에 몸을 떤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너도 알잖아. 아니. 난 몰라. 이런 생각을 하다니 말도 안 돼.
('허기' 중에서/ p.175)

비첨에게,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들에게, 그가 단순히 아버지가 아니라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고. 그는 뭔가를 기대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채 그녀를 사랑했다. (...) 장례식에서 아버지의 시신과 구덩이 속으로 관을 내리는 모습을 봤는데도, 모든 색깔이 빠져나가는 일식처럼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봤는데도 여전히 현실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가 다니던 곳들을 헤매고 있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오는 늦은 오후, 저무는 해가 서쪽 하늘을 녹슨 것처럼 붉게 물들이고 유빌 강의 잔물결 위에 반사될 때면 특히 심했다. (...) 그리고 이때, 그 우울하던 어스름에 그가 이글 하우스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집에서 자기 딸 메리 린다와 함께 있었어야 했다.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어야 했다. 이젠 딸이 아니라 아내이고 엄마였어야 했다.
('용서한다고 말해 줄래?' 중에서/ pp.261~262)

보아하니 그녀가 낮에는 개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서둘러서 유모차를 밀고 가지만 개는 어김없이 일어나 번들거리는 이빨을 드러내며 맹렬하게 짖어댔고, 나중에 집으로 돌아올 때는 다른 쪽에서 다가오는데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피 냄새를 맡고 미친 것처럼 짖고, 짖고, 짖으면서 목줄을 끊을 태세로 달려들어 그녀를 질겁하게 만들고 아기를 울렸다. 그 모습에 길리드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분노의 천사가 나서야 해.
('분노의 천사' 중에서/ pp.288~289)

누가 자비의 천사인 그녀의 최초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건 오로지 아그네스밖에 몰랐다. 그러니 두 번째, 세 번째도. 모두 열여덟 번이었나? 아니면 일부 형사들의 주장처럼 무려 스물세 번? 심지어 그 이상? 자비의 천사 그녀는 죽은 후에 그렇게 불렸지만, 생전에는 (당연히) 천사로 통하지 않았고 그저 아그네스 오드와이어, 엄청나게 훌륭한 간호사였다. 살아생전에는 그렇지 않았고. 죽어서 나중에 그렇게 됐는데, 이제 그것도 거의 삼십 년이 되어갔다. 자비의 천사, 당신이 그런 걸 믿는다면. 수증기 같은 영혼. 병원 바이러스 같은. 유령이 아니라.
('자비의 천사' 중에서/ p.333)

저자소개

조이스 캐럴 오츠(Joyce Carol Oate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8~
출생지 미국 뉴욕 주 락포트 시
출간도서 27종
판매수 4,142권

1938년 미국 뉴욕주 록포트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처음 문학을 접했고, 열네 살 때 할머니에게 타자기를 선물 받으면서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시러큐스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열아홉 살에 「구세계에서」로 대학생 단편소설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 걸친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부조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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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를 졸업한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시스터스 - 우린 자매니까>, <모비 딕>, <마지막 기회라니?>,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신도 버린 사람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우리 시대의 화가>,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그랜드마더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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