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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는 여성에게는 남성 지배의 정치고 유색인에게는 백인의 정치이며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족에게는 특정 민족의 정치이며 배우지 못한 자에게는 식자의 정치일 뿐이다. 소수의 정치 주제들을 차이로 인식하고 어떻게 이들을 현대 정치의 주체로 끌어들일 것인가, 나아가 그러한 노력에 한계는 없는가에 대해 논했다. 더불어 그러한 논의에 철학적, 논리적 기반을 제시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는 선(善)이자, 전부라는 등식이 불문율처럼 관철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또한 정치 지형도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곧잘 배제시켜왔다. 여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족, 동성 양성애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이젠 그들을 '차이'라는 정치 주체로 인식하는 입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세계화의 진행과 유럽을 선두로 한 지역 통합의 가속화 이후, '차이'가 각국의 정치 지형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사회에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정치적 태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44번 《차이의 정치 이제 소수를 위하여》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낙후된 정치 현실에 '차이'의 목소리를 싣고 있어 주목된다. '차이'로 인식되어온 여러 주체들이 이젠 당당히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은 그러한 주장이 가능할 수 있는 여러 철학적 논리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더불어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민주주의란 현대 정치의 주체인 다양한 주체들을 무시함으로써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현대 정치는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차이'는 우리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차이는 우리 사회 도처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매우 익숙한 현상이며, 따라서 차이가 우리와 무관하다는 생각은 기득권이 보장되는 집단의 편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저자는 의심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정치적 주체로 당당히 존중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득권 측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반란 또는 위기의 조짐이겠으나, 한 사회의 전체 지형도를 조감했을 때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한 사회가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졌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이를 정치 주체로 인식했을 때 한국 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다수결원칙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 끈끈한 유대를 자랑하는 민족적 동일성과 정치 지형의 폐쇄성을 지닌 한국 사회의 전체주의적인 폐해가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우선 '차이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 관점을 세우는 데 있어 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시즘의 일부 이론이 해답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1장에서 저자는 '차이의 정치'란 무엇인가, '차이의 정치'의 주체는 누구인가 등을 밝히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차이가 갖는 정치적 함의와 다양한 차이의 정치 주체를 알게 한다. 나아가 개인이 정치의 주체이자, 개인의 평등을 전제로 성립된 기존의 정치 체제가 정당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까지 논의를 확장시킨다.

제2장에서는 기존 정치 체제인 대의제 민주주의가 개인의 평등을 존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 집단을 정치에서 배제시키게 되는 논리를 설명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이론적으로 보완하고자 했던 협의 민주주의 역시 대의제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배제적 속성이 있음을 밝힌다. 나아가 차이가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차이를 수용하는 다양한 관점들 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 어떻게 차이를 수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제3장에서는 차이의 정치를 이론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측면에서 두루 살펴본다. '정치와 정치적인 것', '차이 또는 결사 권력의 양도 불가능성' 등의 소제목 아래 각론을 펼치고, 그런 다음 실제로 차이의 정치가 현실에 적용되고 있는 캐나다의 경우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차이의 정치가 여러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못지않은 단점이 있음을 거론한다. 차이는 각기 다른 입장을 대변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사회 공통의 척도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극단적 해체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차이의 그러한 속성이 혼돈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계하며,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타자성 수용, 공공선 모색을 제안한다. 그 둘은 타자를 수용하면서도 현존 정치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정치는 도덕도 규범도 아니다. 정치는 권력을 다루는 것이고, 권력에는 선도 악도 없다. 권력을 장악한 자가 누구냐에 따라 권력의 선과 악이 정해진다.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권력을 말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의 자세가 아니다. 차이의 정치, 차이의 주체에게 요구되는 것 또한 권력에 대한 진정한 욕구이다. 그래서 차이가 정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지배 집단의 복지 혜택을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 국민의 이익을 조정하고 대표하는 자가 되는 것임을 뜻한다. 여성은 여성의 이익을 대표하고, 소수 민족은 소수 민족의 이익을 대표하고 동성 이성애자는 그들의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제2의 상원을 구성해서라도 실질적 평등을 구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공공선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와 추구가 뒤따라야 한다. 나아가 집단과 집단 간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정치 제도의 본질을 실현시키는 길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본래 지향했던 의미와는 달리 다양한 정치 주체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배제하고 있다면, 오늘 우리는 저자의 전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차이의 정치란 무엇인가

1. 차이의 정치

2. 여성. 유색인종. 외국인



배제의 정치. 차이의 정치

1. 배제의 정치 - 대의제 민주주의

2. 또 다른 배제의 정치 - 협의 민주주의

3. 차이의 정치의 지형도



차이의 정치 또는 동지와 적의 정치

1. 정치와 정치적인 것

2. 차이 또는 결사 권리의 양도 불가능성

3. 차이의 정치의 지향점

4. 캐나다의 차이의 정치



차이의 정치의 한계와 극복

1. 차이의 정치는 실현가능한가

2. 새로운 정의론을 모색하라

''차이''는 우리와 무관한 문제인가. 대부분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페미니즘이나 차츰 조직화 양상을 보이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조선족, 인권은커녕 노동의 대가도 받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또 어떠한가. 그렇다면 차이는 우리가 날마다 현실에서 접하고 있는 익숙한 주제가 아닐까. 차이가 우리와 무관하다는 생각은 차이를 애써 눈 감아버림으로써 기득권이 보장되는 집단의 편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차이는 엄연히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다만 이에 대한 성숙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우리 현실 속에서 차이가 정치의 주체로 성장하지 못했을 뿐이다. 차이가 중요한 정치 결정자로서 제 목소리를 내고 정치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개개인이 타자성을 수용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또한 국가는 동일화 전략에 의해서 차이를 길들이려 하지 말고, 오히려 차이가 발현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와 같이 차이가 정의의 가치로 상승했을 때, 대의제 민주주의가 초래한 배제의 정치에서 소수를 위한 정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