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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 맛, 향기, 빛깔에 스며든 인문주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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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탈리아 미식의 수도 볼로냐,
그곳에 스며든 맛의 기원을 찾아가는 음식 인문학 여행


미식의 수도, 뚱보의 도시, 붉은 도시, 현자의 도시.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 볼로냐의 별명은 오래된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다채롭다.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났던 저자는 동료의 추천으로 볼로냐에 머물면서 그곳의 매력에 푹 빠져든다. 처음에는 미식의 수도다운 풍성한 음식의 맛에, 사람들의 친절함과 도시의 개방성에, 맛의 기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문주의에 깊이 빠져든다. 저자는 ‘왜 볼로냐는 이탈리아의 도시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와도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가진 그 의문과 거기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로마,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가 아니라 왜 볼로냐로 갔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그 의문은 사라질 것이다. 볼로냐처럼 멋진 도시를 소개하는 책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책을 쓴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이 대학도시이자 미식도시 그리고 미술과 음악의 도시이기도 한 볼로냐에 대한 국내 여행자들의 관심을 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판사 서평

로마가 아닌 볼로냐로 간 기이한 이탈리아 여행자
그가 찾아낸 행복한 도시 볼로냐의 비밀, 모든 것은 맛에서 시작되었다


대다수 여행자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절정을 느낄 수 있는 밀라노-베네치아-피렌체-로마-나폴리를 다녀온다. 하지만 책의 서문에서 스스로를 기이한 이탈리아 여행자로 규정했듯이 이 책의 저자는 이런 고전적인 이탈리아 여행 루트에서 벗어나 볼로냐를 선택했다. 그가 볼로냐로 간 까닭은 요리학교의 스승과 동료들의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볼로냐에 머물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매력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미식의 수도다운 풍성한 음식의 맛에, 친절한 볼로냐 사람들에게 그리고 볼로냐가 지닌 에너지와 자유로움에 푹 빠져든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우리 속담처럼 볼로냐는 개방적인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도시이다. 저자는 ‘왜 볼로냐는 이탈리아의 도시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와도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가진 그 의문과 거기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볼로냐에 있을 때는 정작 볼로냐 사람들이 왜 늘 웃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와 비로소 볼로냐 사람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실마리는 역시 음식이었다. 미식의 수도답게 먹거리가 풍성한 덕분일까? 풍성한 먹거리의 바탕에는 햄, 치즈, 와인, 커피를 싼값에 먹을 수 있게 해주는 협동조합 시스템이 있다.
자유도시 볼로냐는 강대국의 거대자본에 대항하는 경제적 자치를 꿈꾸었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와인을 생산하는 리유니테와 같은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덕분에 볼로냐는 ‘협동조합의 수도’로 불리기도 한다. 볼로냐의 싸고 맛있는 데에는 도시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는 협동조합의 힘이 크다.
어디 그뿐인가. 시민들이 손을 잡고 교황과 황제에 맞서 자유를 얻어냈던 이 도시의 역사는 인류 역사에서 참 특별했다. 시민들이 왕을 쫓아내고 자치도시를 만들었고 도시의 깃발에 ‘자유’라는 단어를 새겨넣었다. 또 학생들은 스스로 대학을 만들었다. 볼로냐 대학에서는 근대 법과 근대 의학 그리고 천문학이 싹텄다. 현대 학문의 기원을 파고들면 많은 부분이 볼로냐의 붉은 벽돌 건물과 회랑에서 튀어나왔다.
작은 도시 볼로냐가 이처럼 특별한 성취를 이룬 것은 역사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미식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게 한 햄, 치즈, 와인, 커피, 붉은색 도시 볼로냐라는 별명을 얻게 한 도시를 뒤덮은 긴 회랑, 현자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한 근대 법과 의학의 성과 등을 하나씩 살펴가면서 저자는 우리를 볼로냐 인문학 기행으로 이끈다. 맛, 향기, 빛깔의 3가지 주제를 저자의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볼로냐에 깊이 스며든 휴머니즘(인문주의)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볼로냐는 왕이나 신이 아니라 사람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겼으며 볼로냐 사람들은 그 공동체에서 서로를 믿으며 서로가 빛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을.
그런데 저자는 볼로냐처럼 멋진 도시를 소개하는 책이 국내에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 무척 의아했다고 한다. 물론 이탈리아에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처럼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가 워낙 많아서 그렇겠지만, 볼로냐빠인 저자의 입장에는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저자는 이 책이 많은 별명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볼로냐에 대한 국내 여행자들의 관심을 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목차

프롤로그

1장 맛
파스타의 맛
나의 첫 파스타는 이탈리아 파스타가 아니었다 / 파스타를 모르면 이탈리아를 모르는 것이다/생면 파스타의 성지, 볼로냐 / 볼로냐에 간 것은 행운이야 / 소스는 짧고 파스타는 길다 / 후배에게 볼로냐를 맛보게 하라 / 볼로냐에서 파스타보다 더 많이 먹는 음식은 / 볼로냐의 소울 푸드, 꼬마만둣국 / 곳간에서 파스타 나고 토르텔리니 났다
돼지의 맛
식욕을 자극하는 구수한 향기의 정체 / 볼로냐는 11월부터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 / 와인과 햄을 한가득 받아드니 웃을 수밖에 /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 탈리에레 / 소보다 돼지를 높게 치는 이탈리아 / 소금, 바람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 뚱보의 도시에 오르게 한 1등공신, 모르타델라
토마토의 맛
토마토를 가장 먼저 음식에 넣은 사람은 누구일까? / 생긴 것도 맛도 남다른 나폴리의 토마토 / 이탈리아에서 소스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 이유 / 나폴리가 토마토를 먹었던 까닭은 가난 탓/ 미국 덕에 나폴리가 파스타 국가대표가 됐다? / “스파게티로 만든 볼로네제는 신고해달라” /토마토소스도 볼로냐가 만들면 다르다

2장 향기
치즈의 향기
교황이 왕에게 하사하던 이탈리아 치즈 / 이탈리아인의 골수, 우유와 치즈 / 나는 왜 로마 제국의 치즈에 빠졌나? / 볼로냐에서 맛본 이탈리아 치즈의 정수 / 이탈리아 치즈 맛의 비밀은 ‘고집’
와인의 향기
볼로냐빠의 볼로냐 와인 흉보기 / 바롤로에서 레드 와인에 눈을 뜨다 / 와인 대신 내 혀를 탓하다 / 현자의 와인, 람브루스코의 반전 매력 / 탄산 거품을 품은 고대 로마의 물, 람브루스코 /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은? / 이탈리아 요리 vs 프랑스 요리 / 가볍지만 무거운 거품, 그 모순의 비밀 / 이탈리아에 600여 종의 포도 품종이 있는 비결
커피의 향기
볼로냐 시내를 걷다 보면 흠칫 놀라는 이유 / 카공족이 머물 곳이 없는 도시, 토리노 / 책은 도서관에서, 커피는 카페에서 / 이탈리아인의 피에는 커피가 흐른다 / 볼로냐의 커피가 가장 맛있는 이유 / 왜 볼로냐 옆 로마냐에선 독재자가 나왔을까? / 붉은 이념 대신 노란 만두를 선택한 볼로냐

3장 빛깔
붉은색의 도시
겉도 속도 붉은 볼로냐 / 볼로냐의 성당은 붉고 밝다 / 볼로냐의 벽돌 사랑은 DNA 탓 / 붉은 볼로냐를 하늘에서 보는 두 가지 방법 / 기네스북에 오른 길고 긴 볼로냐의 회랑 / 회랑 가운데 가장 예쁜 산토 스테파노 성당 회랑 / 유독 진홍빛인 볼로냐 대학의 회랑 251
현자의 도시
나는 왜 볼로냐에 갔나 / 모든 법은 볼로냐로 통한다 / 법에 목마른 학생들이 모여 대학을 세우다 / ‘중세의 모스크바’는 어떻게 탄압을 피했나? / 볼로냐 대학의 또 하나의 횃불, 의학 / ‘현자의 도시’가 된 건 행운인가 실력인가 / 강철로 된 무지개를 밟다
미녀의 도시
나는 왜 볼로냐에 콩깍지가 씌었나? / 정말 친절한 볼로냐 여성들 / “한국어를 가르쳐 주세요” / 윙크의 도시, 볼로냐 / 인체 해부학, 볼로냐 여성에 의해 업그레이드되다 / 최초로 여성의 누드를 그린 볼로냐 여성 / 볼로냐는 왜 아마조네스가 되었나?

에필로그

본문중에서

볼로냐를 비롯해 많은 에밀리아로마냐의 도시에서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손으로 생면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소스인 볼로네제 라구 소스는 기계로 뽑은 스파게티에 얹어먹어서는 안 된다며 열을 올린다. 나는 볼로냐 사람들의 이 고집스러운 ‘면부심’이 재미있다. 볼로냐가 미식의 수도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그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볼로냐는 음식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끝을 생각했던 것 같다. 프로슈토도, 치즈도, 파스타도 그렇다. 서양 요리와 음식 문화의 정점인 와인에 있어서도 그렇다. 볼로냐는 언제나 이탈리아 음식의 시작과 끝에 서 있으려 한다. 그래서 볼로냐는 ‘뚱보의 도시’라는 별명과 ‘현자의 도시’라는 별명을 동시에 차지했나 보다.
-51쪽, 1장 맛 파스타의 맛 중에서

볼로냐 어딜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이 도마 안주의 주축은 모르타델라와 프로슈토로, 이 도시를 대표하는 햄이다. ‘음식’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볼로냐가 ‘미식의 수도’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은 이 햄들의 공이 크다.
프로슈토는 돼지 뒷다리를 바람에 말려 얇게 썰어 먹는 햄이다. 우리나라에는 스페인의 하몽이 좀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실은 프로슈토의 역사가 더 길다. 이탈리아의 프로슈토는 고대 로마 때부터 대중적으로 즐겨먹었으며 기원전에 이미 염장하는 방법을 기록으로 남겨두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음식이다. 모르타델라는 우리나라의 인기 반찬인 핑크빛 소시지와 비슷한데, 밀가루를 넣지 않고 훨씬 더 굵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살루미는 사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인 피자나 파스타보다 한 수 위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그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는 음식으로, 파스타나 피자가 중세 이후 외국과 교류하던 중에 자연스레 탄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파스타는 아랍에서, 피자는 대항해 시대 이후 토마토가 신대륙에서 들어온 뒤에 등장했다. 따라서 살루미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가장 오래된 이탈리아 음식의 대표 주자다.
-84쪽, 1장 맛 돼지의 맛 중에서

유럽 협동조합 가운데 매출이 가장 큰 상위 8개 기업이 이탈리아 협동조합이며, 이 가운데 에밀리아로마냐가 협동조합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볼로냐에 발달한 협동조합은 볼로냐의 생활물가와 실업률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전체 실업률은 물론, 30퍼센트에 육박하는 이탈리아의 청년실업률이 가장 낮은 곳도 볼로냐를 비롯한 에밀리아로마냐의 도시들이다. 더불어 여성의 취업률도 가장 높다. 볼로냐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의 친절함은 이런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볼로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넉넉한 풍경이었던 듯하다. 러시아의 작가 파벨 무라토프는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이미지》라는 책에서 볼로냐를 이렇게 찬양했다. “볼로냐는 복잡하지 않고 경쾌하며, 눈을 즐겁게 하는 가벼운 무언가가 있다.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하고 신체는 건강하다. 이곳은 기름진 곡창 지대와 유명한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풍성함과 다양함에서 볼로냐를 따라올 도시는 없다.” 볼로냐에 가면 100년 전 러시아 작가가 느낀 감정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127쪽, 1장 맛 토마토의 맛 중에서

볼로냐에 가면 음식 때문에 놀랄 일이 많은데 그중 하나는 파르미지아노만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다는 거다. 다른 도시에서는 보통 치즈를 살루메 등의 햄이나 올리브 절임 같은 식재료와 함께 판다. 그런데 볼로냐 시내에 가면 오직 이 파르미지아노만 파는 가게가 제법 있다. 내 생각에는 협동조합이 발달한 만큼, 아마도 치즈 협동조합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가게가 아닐까 싶다.
이 치즈 가게는 이탈리아 현지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이곳에서는 치즈를 덩어리째가 아니라 쪼개 팔아서, 10유로 정도면 굉장히 푸짐하게 살 수 있다. 다만 치즈를 살 때는 몇 년 숙성 제품을 달라고 꼭 말해야 한다. 숙성 정도에 따라 사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파스타에 뿌려먹는 것은 부드러운 1년산을, 샐러드 등 치즈 맛을 입히는 요리에는 2년산을, 와인 안주로는 3년산 치즈를 쓰는 것이 좋다. 심지어 5년 이상 숙성된 것도 판다. 치즈는 숙성 기간이 길수록 수분이 빠지고 아미노산이 응축된다. 이런 성분들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면서 다채로운 풍미가 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볼로냐에서는 촌놈 취급을 받는다.
-149~151쪽, 2장 향기 치즈의 향기 중에서

볼로냐의 슈퍼마켓에서 파는 가장 싼 람브루스코의 가격은 4유로 정도다. 리우니테 제품인데 딱 보기에도 아무렇게나 만든 것처럼 보이는 소박한 모양새다. 나는 처음엔 식초병이나 고량주 병처럼 보이는 이 외양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람브루스코가 이탈리아 최대의 와인 협동조합이 만든 와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이 와인의 평범함 속에 감춰진 비범함을 깨닫게 되었다. 갓 담근 듯 상큼한 맛이 나는 람브루스코에는 고대 로마에서부터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와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볼로냐라는 현자의 인생 역정이 걸쭉하게 농축되어 있다.
람브루스코의 색깔은 어떤 와인의 색보다 짙다. 거의 보랏빛에 가깝다. 그리고 잔잔하고 달디단 거품이 인다. 이 와인에는 프로슈토와 모르타넬라 한 점을 얹은 치아바타나 혹은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를 잔뜩 얹은 볼로네제 파스타가 안성맞춤이다. 이런 맛있는 음식과 멋진 와인은 혼자 즐기기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먹고 마셔야 제격이다.
볼로냐에서는 음식도 와인도 가격이 저렴해 도심 곳곳의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여럿이 둘러앉아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관광객인 것 같기도 하고 학생들 같기도 한 사람들은 푸짐하고 맛있는 볼로냐식 마른안주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왁자지껄 먹고 마신다. 나도 중세를 떠올리게 하는 볼로냐 광장에서 그들처럼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람브루스코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189쪽 2장 향기 와인의 향기 중에서

재미있는 점은 이 카페의 커피 메뉴가 100가지가 넘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메뉴를 적어와서는 다른 사람이 마시는 커피를 유의 깊게 살펴보았다. 물론 대부분이 에스프레소와 라테를 마셨다. 그런데 어느 비오는 날 노부부가 와서 ‘마로키노’라는 커피를 시켰다. 이 커피는 우유 대신 커피에 다크 초콜릿을 녹여서 올려주고 그 위에 초콜릿을 갈아준다. 우유가 들어가는 일반적 초콜릿라테와는 다른 레시피였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노부부는 바에 서서 함께 이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비가 올 때면 이 커피를 마셔요. 나중에 한번 마셔보세요.” 그들은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 독특한 커피를 추천해주었다.
나도 어느 비가 내리는 날, 이 노부부의 제안대로 마로키노를 시켜보았다. 바리스타가 초콜릿을 어찌나 정성 들여 갈아주는지 커피를 받을 때 황송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사람도 손재주가 좋다고 하는데 이탈리아인들의 손재주도 상상 초월이었다. 바리스타의 정성과 다크 초콜릿의 묵직함이 인상적인 커피였다. 이 카페가 한국에서 꽤 알려진 모양인지, 카페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가끔 만날 때가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는 크레미노였다. 이 커피는 맛도 맛이지만 모양이 근사했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고 그 위에 무지방 우유로 만든 크림을 살짝 얹어주는데, 크림에 설탕으로 단맛을 내서 부드럽게 마실 수 있었다.
-211쪽 2장 향기 커피의 향기 중에서

볼로냐가 당시 아무리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에 속한다지만 수천 명의 유학생이 갑자기 몰리자 결국 심각한 주택난이 발생했다. 하지만 볼로냐인들은 이방인을 죽음과 폭력이 난무하는 성 밖으로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받아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성을 넓히고 집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인도 쪽으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새로운 건물을 올렸다. 그렇게 하면 집도 넓힐 수 있고, 길을 좁히지 않아도 되었다(이런 아이디어는 볼로냐 시민들이 아니라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내놓았다는 학설도 있다).
인도 위로 기둥을 세워 새로운 공간이 지어지면서 볼로냐 도심에는 아주 긴 회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볼로냐 구도심에서 회랑이 없는 건물은 볼로냐 역 앞과 마조레 광장 북쪽에 있는 쇼핑가 정도밖에 없다. 아주 짧은 구간을 제외한다면 볼로냐의 구도심에 차도를 낀 도로는 거의 대부분 끝없는 회랑으로 이어져 있다.
볼로냐의 회랑은 벽돌 건물을 더욱 더 고풍스럽게 보이게 한다. 회랑이 인도 안쪽에 있는 건물로 쏟아지는 빛을 적당히 가려줘 건물을 더 돋보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 회랑 안쪽에 있는 야외 테이블은 볼로냐 거리를 정감 있게 만들어준다. 또 볼로냐의 회랑은 볼로냐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볼로냐 대학이 시의 승인을 얻고 강의실과 교수에게 급여를 제공받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그전까지 볼로냐 대학은 별도의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회랑이 강의실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회랑에는 카페와 음식점의 야외 테이블이 놓여서, 사람들이 모여앉아 볼로냐의 맛있는 음식과 자유로운 공기를 즐겼을 것이다.
247~248쪽 3장 빛깔 붉은색의 도시 중에서

1088년 볼로냐에 대학이 생긴 계기는 이르네리우스에게 있었고, 그의 뒤에 로마법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볼로냐에는 대학촌이 형성되었는데, 교수와 학생이 숙식을 같이하며 고시 공부를 하는 기숙 학원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이 대학으로 정식 인가가 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대학 건물이 들어서고 대학가의 모습을 갖춘 것은 그 뒤로부터 무려 300년이 지난 14세기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볼로냐 대학이 ‘모든 대학의 모교’라고 불리는 까닭은 학생과 교수의 자발적인 공동체였다는 독특함 덕분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운영 방식은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흥미롭다. 일단 학생이 방을 구하고 돈을 각출해 명망 있는 학자를 불러와서, 수업료를 지불하며 강의를 듣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매일 새벽같이 수업을 시작해 함께 밥을 먹고 토론하다 잠자는 동고동락 생활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볼로냐는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외국인이나 외지인이 몰렸다.
중세의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외국에 유학을 오고 교수 급여를 댈 정도였으니 학생들은 각국의 유력한 가문의 자제이거나 종교인이었다. 이들은 학생이라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교수와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볼로냐 대학은 자치가 강한 특이한 대학 문화를 갖게 되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모임을 ‘유니베르시타스’(공동체)라고 불렀고, 이 단어에서 지금의 대학이라는 뜻의 유니버시티가 유래되었다.
270~271쪽 3장 빛깔 현자의 도시 중에서

13세기부터 볼로냐에 등장한 여성 박사와 여성 교수는 이탈리아 밖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여성의 역할을 단순히 남성의 보조적 존재로만 알고 있던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에서 온 학자와 학생들은 대학 강의실에서부터 학회에서까지 남성 학자 못지않게 활약하는 이탈리아 여성 박사들에게 대단한 관심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여성 박사와 교수를 배출한 곳은 볼로냐와 파도바, 살레르노Salerno 대학 정도밖에 없었다.* 17세기에 세계 최초의 여성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피스코피아Elena Cornaro Piscopia, 1646~1684는 베네치아에서 가까운 파도바 대학 출신이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여성 박사의 숫자나 질적인 측면에서 볼로냐가 압도적이었다. 볼로냐의 지성사뿐 아니라 페미니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은 베티시아 고차디니다. 1236년 볼로냐 법대를 졸업한 그녀는 처음에는 집에서 강의를 했다. 당시에는 여자가 학교에서 강의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여자 강사의 경우 자신의 집이나 살롱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나 강의가 너무 훌륭해 결국 볼로냐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301~302쪽 3장 빛깔 미녀의 도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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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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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막연하지만 장래 희망을 과학자나 기자라고 적었다. 그 덕분이었는지 대학 졸업 뒤 기자가 되어 20년간 국회, 행정부, 기업 등을 취재했다. 그러다 2006년 처음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면서 요리에 빠져 ‘기자 말고 요리를 하면서 살고 싶다’는 일탈을 꿈꾸기 시작했다.
셰프를 꿈꾼 지 10여 년 만에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일간지 기자를 그만두고, 쉰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요리학교(ICIF)’에 요리 유학을 다녀왔다. 많은 나라 가운데 이탈리아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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