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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승리 : 자본주의의 세계사 1860~1914[양장]

원제 : The Anxious Triumph: A Global History of Capitalism 1860-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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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자본주의는 똑똑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정의롭거나 고결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대신해야 할지를 생각할 때면 극도로 당황하게 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자본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이 책의 서사는 1860년 무렵부터 1차대전에 이르기 전까지의 시기에 주로 초점이 맞춰진다. 자본주의가 하나의 체제로서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세계화를 이룬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일이다. 저자 도널드 서순은 자본주의의 첫 번째 세계화가 이루어진 이 시기 이후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잠시 세계화의 흐름이 주춤했다가 20세기 후반에 두 번째 세계화와 더불어 현대 자본주의가 등장했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긴 역사 가운데서도 오늘날의 세계와 판박이인 19세기 말에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도널드 서순은 세계 역사에서 되풀이해서 등장하는 신화로서 황금기인 ‘벨에포크(좋은 시절, La belle epoque)’의 시절을 다루며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여러 제도와 일상생활까지를 샅샅이 훑는, 산업혁명의 중심지 서유럽만이 아니라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 동유럽과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와 동아시아까지를 포괄하는 풍부한 묘사와 통찰로 자본주의의 총체적인 역사를 서술하였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본주의는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거대한 소비시장과 교역망을 구축하는 과정으로서의 자본주의보다 훨씬 광의의 의미로 정의된다. 여기에는 교통망과 통신망 같은 기반시설 구축, 노동자 창출, 도시화와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 해결, 자본가들의 무정부적 경쟁을 조정하는 산업정책 마련 및 조세와 치안과 행정체계 확립, 국가 내부의 참정권 확대와 대의정부 수립, 민족공동체 건설, 대외적으로는 식민지 개척과 수탈이라고 하는 과정들이 결합되어 있었다.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로 모아져서 자본주의체제가 세워졌다고 본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그려지는 자본주의의 역사는 동시에 민주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의 역사이며 근대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다.

승승장구하는 자본주의와 메리 앤의 후손들
『자본』의 인상적인 한 장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분노어린 필치로 과로에 시달리다 죽은 20세의 여성용 모자 제조공 메리 앤 워클리의 상황을 고발한다. 이제 현대 ‘선진’세계에서는 메리 앤의 후손들인 오늘날의 서구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번영을 누린다. 수명도 길고, 노동시간은 짧으며, 휴가를 누리고, 교육을 받는다. 문화(텔레비전, 음악, 인터넷)를 향유하며, 연금을 받고, 의료보험을 이용한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사회의 토대를 위협하기는커녕, 메리 앤의 후손들은 사회의 전형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그런데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민주화 과정 덕분에 그들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으로 변신했다. 또한 경제성장 덕분에 소비자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오늘날 서구에는 여전히 빈민들이 존재하지만, 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패자로 낙인찍힌 그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무기력한 처지 탓을 하거나, 불운의 탓으로 돌리거나, 외국인 이민자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탓을 하지는 않는다. 언뜻 보기에 자본주의는 다수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자본주의의 승리는 소비의 민주화로 더욱 공고화되었다. 구소련이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몇몇 공산주의 경제는 산업사회의 토대를 닦는 데 성공을 거두었지만, 현대 소비자 자본주의가 이룩한 업적에는 그 어떤 공산주의도 필적하지 못했다.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일부 미디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동구와 서구를 가르는 장벽이 무너진 틈을 처음 비집고 넘어간 이들이 상점으로 달려갔다고 보도했다. 1989년 11월 11일자 『뉴욕타임스』는 ‘동구의 아우성, 베를린의 환호성, 축하와 동시에 약간의 쇼핑을 위한 날’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 책 『불안한 승리』의 제목처럼 자본주의는 ‘승리’한 것 같다.

당대 자본주의 세계 전체의 풍경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독보적인 책!
그리하여 도널드 서순이 광범위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방대한 정보량과 독보적인 서술 방식으로 시야를 넓혀 나가는 과정에서 온갖 질문이 등장하고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자본주의의 다층적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도널드 서순은 역사적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예를 들면, 제국주의(식민주의)가 과연 수지가 맞는 장사였는지 프랑스와 영국의 의회에서 벌어진 식민지 대논쟁을 통해 그 답을 찾는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마주친 나라들이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지도 밝힌다. 또한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간담이 서늘할, 1855년 중국 윈난성에서 처음 발생한 선페스트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전염병의 세계화의 행로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기대수명과 평균 소득을 한껏 드높인 자본주의의 눈부신 성공과 화려한 도시의 쾌락적 소비에 푹 빠진 대중의 모습과 나란히 광산과 공장에서 하루에 16시간을 일하다 과로사하는 노동자들과, 식민주의의 잔혹한 폭력에 속절없이 쓰러져간 서아프리카와 인도의 노예와 농장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당대에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이 벌인 논쟁과 현대 역사가들의 평가가 끼어들고, 때로는 소설과 시를 비롯한 당대의 문학 작품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체감한 사회 변화를 포착한다.

‘창조적 파괴’, 불안정이 불안한 승리를 낳는다
19세기 말의 수십 년 이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이 책에서 묘사한, 승승장구하는 ‘서구’ 자본주의와는 다소 다르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제조업의 동쪽으로의 이동, 초국적 기업의 규모와 범위, 금융서비스의 거대한 팽창, 국가의 경제적 역할 증대, 국제 자본주의의 주요한 수호자로서 미국의 중심적 역할, 공산주의의 붕괴, 중국의 주요 경제 강대국으로의 변신 등과 관련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 자체가 오늘날 그 미래를 위협하며, 끝없는 불안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도널드 서순이 말하는 것처럼, 이 만성적인 불안정이야말로 “체제의 결함이나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다”. 그리고 바로 이 불안정, 끊임없는 동요가 책 제목처럼 불안한 승리를 낳는다. 하지만 저자가 공감의 눈길을 보내는 쪽은 승리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19세기 말에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그리고 사회와 체제의 안녕을 고심하면서 기꺼이 개혁에 나선 자유당과 계몽된 보수주의자들이 그 역할을 했다면, 21세기 초에는 누구에게 희망을 걸어야 할까? 21세기인 오늘날의 자본주의 풍경의 원형이 만들어진 이 시기를 거울삼아 현재를 성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독자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불안한 승리��는 이 모든 질문과 그 시대에 관한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이 책은 역사학계의 거장으로서 경제사와 정치사, 지성사와 사회사를 넘나드는 도널드 서순의 걸작이다.

추천사

“박학다식을 자랑하는 탁월한 저자다. 그가 내놓은 <불안한 승리>라는 걸작은 변화를 야기하지만 불안정한 자본주의적 현상들의 진정으로 전 지구적인 역사를 읽기 쉽게 정리했다. … 이 책은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책이다.”
- 해럴드 제임스 / <파이낸셜타임스>

“어마어마하게 박식한 책. 누구든지 이 책에서 배울 게 있다.”
- 폴 콜리어 / <뉴스테이츠맨>

“서순은 매혹적인 세부사항들이 점점이 박힌 채 불규칙하게 뻗어나가는 지도를 펼쳐 보인다. … 기발하게 탁월한 책이다.”
- 애덤 투즈 / <가디언>

“오늘날 우리가 처한 곤경에 관한 매우 독창적이고 통찰력 있는 고찰. … 지은이가 풍부한 세부 묘사와 통찰로 지구 전체를 아우르면서 다루는 범위는 매우 인상적이며 / 그의 글쓰기는 속도감 있으면서도 쉽게 읽힌다.”
- 마틴 돈턴 /

목차

표 목록
감사의 말

서론

● 제1부 세계의 상태
제1장 신생 국가, 오래된 국가
제2장 사람들의 삶

● 제2부 근대화
제3장 동양의 서구화
제4장 산업의 매력
제5장 국가
제6장 조세
제7장 후발 주자와 선구자
제8장 러시아: 낙후를 원치 않는 후발 주자
제9장 미국의 도전과 자본 사랑

● 제3부 대중 끌어들이기
제10장 민족 건설
제11장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세계를 휩쓸다
제12장 ‘외부자’ 배제하기
제13장 참정권
제14장 사적 풍요, 공적 복지
제15장 자본과 노동의 관리
제16장 신과 자본주의

● 제4부 세계를 마주하다
제17장 유럽이 온 세상을 정복하다
제18장 식민지 대논쟁: 프랑스와 영국
제19장 첫 번째 전 지구적 위기
제20장 경제 보호하기

에필로그: 여전히 승승장구하나? 여전히 불안한가?

옮기고 나서
참고문헌
미주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사회의 경제체제가 유일하게 가능한 것임을 인정하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는 작동한다. 하지만 곳곳에 불만이 만연해 보인다. 정치인들은 경멸의 대상이다. 그들 자신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며(일부 정치인은 거꾸로 유권자를 경멸한다), 인기 있는 유명인을 흉내내고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며 미디어 활용을 촉진-내용에 대한 형식의 승리다-하는 식으로 다시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투표하는 유권자는 점점 줄어들고, 투표하는 사람들 가운데 점점 많은 수가 국민이 겪는 모든 피해를 이민자들 탓으로 돌리는 당에 표를 던진다. …… 한때는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 체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제에서 저주받는 현실에 좌절하기 때문이다.
(/ pp.29~30)

오늘날 민족주의 세력이 세계시민주의 세력보다 더 강하다. 정치는 여전히 민족 정치가 압도한다. 시민들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래도 다른 나라 정치인보다는 자국 정치인을 믿는다. 시민들은 자국 정부가 외국인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보호해주기를 기대한다. 세계화 시대에는 강한 국가에 속하는 것이 이점이라고 느껴진다. 물론 강한 국가는 또한 강한 적대감을 낳기 때문에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중동 어디에서든 미국인보다는 오스트리아인이 아마 더 안전할 것이다. 19세기가 민족주의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민족국가들의 시대였고, 민족주의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 pp.68~69)

1900년 ‘자본주의’ 유럽은 여전히 농촌이 압도했다. 2000년에 이르면 농민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잃을 것은 족쇄뿐이라 마르크스의 투쟁 호소에 따를 것으로 여겨졌던 세계의 노동자들은 『공산당 선언』(1848)이 쓰인 시점에는 수가 극히 적었고, 거의 전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있었다. 그런데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산업 노동자의 대다수가 ‘서구’가 아니라 ‘나머지 지역’에 있었다. 한때 제3세계라고 알려진 지역이었다.
(/ p.112)

물론 중간계급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나 농민, 빈민보다 오래 살았지만, 우리 기준으로는 오래 살지 못했고 편안하게 살지도 못했다. 중간계급은 오늘날 우리처럼 놀라운 의학 덕분에 생명을 이어가다가 퇴행성 질환으로 서서히 죽기보다는 보통 전염병으로 순식간에 죽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19세기에는 부자나 유명인조차 오래 살지 못했다. 1800년 당시 65세 이상의 사람들은 인구의 5퍼센트에 미치지 못했다. 유럽과 미국의 몇몇 유명 작가의 수명을 잠깐 훑어보면(일화적이고 비과학적인 방식이다) 그들에게도 인생이 짧았음을 알 수 있다.
(/ p.160)

천연두, 발진티푸스, 말라리아, 결핵 같은 살인 질병은 농촌보다 도시에서 훨씬 잘 퍼졌다. 다행히 19세기를 거치면서 예방접종으로 천연두 확산이 점차 제어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비교적 새로운 질병인 콜레라는 19세기에 세계 곳곳의 도시를 유린했다. 갠지스강 삼각주에서 발원한 콜레라는 치명적인 여정을 계속해서 1820년대에 러시아에 도달한 뒤 서유럽까지 퍼졌다. 무역이 팽창한 덕분에 중국까지 다다랐고 계속해서 남북아메리카로 퍼져나갔다. … 콜레라는 살인 행진을 계속해서 파리에서 2만 4000명을 죽인 뒤 브뤼셀로 이동했다. 1847년에서 1851년 사이에 러시아에서 100만 명이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 이 전염병이 유해한 것은 콜레라 균 자체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주거와 빈약한 위생시설, 원시적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하수도 때문에 야기된 질 낮은 위생 환경과 인구 대부분의 허약한 건강 상태 때문이었다.
(/ pp.165~166)

19세기 이전에 동양은 서양을 깔보거나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서양에서 배울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1400년 무렵까지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나라였다. 그런데 오랫동안 열등감에 시달리던 유럽인들이 마침내 형세를 뒤집었고, 유럽의 동경은 경멸로 바뀌었다. 유럽인들이 발견한 중국은 정체되고 퇴보하는 쇠락한 제국으로, 급상승하는 서양에 얼마간의 무역과 구원해야 할 약간의 사람들만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양은 중국이 쇠약해진 가운데서도 중국을 두려워했다. 19세기의 저명한 중국학자로 손꼽히는 외교관 토머스 웨이드 경은 중국어 로마자화(유명한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에 기여한 인물인데, 중국이 함대나 강한 군대를 보유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pp.209~210)

20세기에는 모든 나라가 미국을 우러러보게 되는데, 언제나 똑같은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하면 미국처럼 되지 않으면서 미국을 닮을 수 있을까?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 서양, 즉 서유럽과 미국에서 들어온 이데올로기적 수입품은 20세기에 지구 곳곳에서 벌어진 정치투쟁에서 변치 않는 요소였다. 가장 명백한 것은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 관념은 가장 쉽게 수입할 수 있는 품목인데, 19세기 후반기에 사람들은 이런 융통성 있는 상품의 전 지구적 교역이 번성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관념 수입자들은 대개 ‘후진’ 지역 출신으로 자신들의 후진성을 인식하고 당혹스러워하는 지식인이다. 이런 지식인은 관념이 사물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낭만주의적 신념에 집착한다.
(/ pp.230~231)

자본주의 기업들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에서는 보호주의자들이 우세했다. 다만 격조 높은 관념의 영역에서는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 지배했다. 자본가들은 자기들 위에 군림하면서 훈육하고 양육하며 소수를 죽여서 나머지를 구하는 국가를 필요로 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감독하는 진정으로 홉스적인 국가였다. 국가 없는 자본주의는 가망이 전혀 없었다. 미국 정신Americanism의 주요한 신화는 어린 고아가 시골에서 도시로 와서 힘들게 일하다가 놀라운 행운을 숱하게 만난 끝에 성공을 거둔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담은 허레이쇼 앨저의 대중적 ‘다임’ 소설[dime novel. 10센트 동전 하나로 살 수 있는 싸구려 소설.-옮긴이]에 구현되었다. 이런 ‘거지에서 부자로 변신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인 미국 이야기American Story가 되었다(거의 100편에 육박하는 소설이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
(/ p.402)

민족 건설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 배제를 요구한다.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동화가 언제나 선택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선택 가능하다고 해도 언제나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 종교를 수호하면서 근대에 저항할지 모른다. 이런 집단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에서 벗어나 다른 모든 사람과 같아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가령 유대인은 예나 지금이나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는다. 과거에 유대인이 자신들만의 공동체와 게토에서 격리 또는 자가격리된 채 모여 살 수밖에 없었을 때는 자신들만의 종교, 따로 떨어져 살고 싶은 바람, 주변을 둘러싼 반유대주의 때문에 하나로 뭉쳤지만, ‘해방’되어 권리를 얻게 되자 문제가 한층 복잡해졌다. 어떤 이들은 절실하게 동화를 원했고, 다른 이들은 계속 따로 떨어져 살기를 바랐다. 대다수는 중간을 선택해서 ‘세속적 유대인’이 되었다.
(/ p.478)

하지만 흑인과 여성이 마침내 선거권을 얻었음에도 미국 정당체제에는 어떤 유의미한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19세기와 20세기 내내, 그리고 21세기까지도 선거는 오로지 공화당과 민주당만의 싸움이었다. 어떤 진지한 제3당도 양당 독점에 도전하지 못했다. 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독점체제를 낳은 배후의 요인은 정당 이데올로기의 불안정성이었다. 19세기에 민주당은 주권(각 주의 권리)을 지지한 반면 공화당은 미국식 정치 어법으로 ‘연방주의’ 세력이었다.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양당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19세기에 산업 진보의 당이었던 공화당은 20세기 말에 이르면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로 변신했다. … 미국에서는 계급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지리적 위치, 종교, 종족, 금주법이나 일요일 휴업(그리고 최근에는 낙태, 총기 규제, 동성결혼) 같은 쟁점에 근거해서 표를 던졌다. 유럽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 p.548)

참정권은 산업화 덕분에 늘어난 번영과 나란히 이동했다. 이전에는 투표 제한이 계급과 재산, 소득-다시 말해 재산 없는 대중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를 둔 반면 20세기에 이르면 그런 제한이 존재한다고 해도 연령과 국적, 종족과 성별에 근거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 참정권은 근대 정치의 모순적 성격을 악화시켰다. 정당들은 각 개인이 한 표만을 갖지만 욕망과 정체성-계급, 지역, 종교, 연령, 편견 등등-은 각기 다른 가운데 파편화된 유권자들에게 호소해야 했다. 또한 자본주의가 다수에게 조금이나마 진보를 보장해주는 듯 보였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지지해야 했지만,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가 유권자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줄 것인지 결코 확신하지 못했다. 19세기에 탄생한 선거 정치의 세계는 이후 20세기 정치인들에게 끝없는 놀라움을 안겨주게 된다. 새로운 근대에서는 경제나 정치나 고요한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다.
(/ p.550)

개별 노동자는 무력하다. 다른 노동자가 언제든 그의 자리를 차지해서 더 적은 돈을 받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교섭을 하고 개인이 아니라 단합한 세력으로 자본가와 대면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노동운동이 연대와 형제애의 언어를 선호하는 반면 친자본가 담론에서는 개인주의의 언어를 치켜세우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물론 과장이다. 자본가들도 사회주의자들처럼 조직과 협력을 필요로 했고, 기업 확장과 이윤 증대를 위해 기업 안에서 사람들이 함께 일할 것을 요구했다. 자본가들은 서로 경쟁했지만, 노동자들 또한 일자리와 임금을 놓고, 그리고 높은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고용을 제한하려고 서로 경쟁했다. 그리고 개별 자본가들은 언제나 노동자를 적게 고용하고, 기계를 도입해서 노동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하나의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계속 확대되는 소비자 시장을 필요로 했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계속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자본주의의 생산품에 돈을 써야 했다.
(/ pp.594~595)

노동조합의 힘은 사회주의 정당의 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처럼, 그리고 정도는 덜해도 미국의 경우처럼, 탄탄한 사회주의 정당이 전혀 없어도 노동조합이 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 그 자체는 자본주의에 전혀 도전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임무는 자본주의에서 나오는 이익의 분배를 수정하는 것이었다(지금도 그렇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는 정도만큼 기업은 비용이 늘어났다. 하지만 비용 상승은 또한 비효율적인 기업을 솎아내는 길이다.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창조적 파괴’의 일환인 것이다.
(/ p.609)

박애적 온정주의는 노동계급의 전투성에 대한 하나의 고전적 대응이었다. 노동조합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부르고뉴의 크뢰조 철강공장 소유주로 공장 설립자 외젠의 아들인 앙리 슈네데르를 예로 들어보자. 1897년 유럽 사회문제에 관한 주요한 탐사보고서 중 하나의 저자로 보수 성향인 『르피가로』에 기고한 사회주의자인 쥘 위레(2장을 보라)가 앙리를 인터뷰했다. 위레의 설명에 따르면, 르크뢰조에서 노동자들은 슈네데르 집안으로부터 주택 건설을 위한 담보 대출을(높은 금리로)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가 있었고, 학교를 졸업하면 슈네데르의 직업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철강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무상 의료로 치료를 받았고, 부상을 당한 노동자는 급여의 3분의 1을 받으면서 고용이 유지됐으며, 사망하는 경우에는 부인이 연금을 받았다. 일종의 기업 차원의 복지국가였다. 르크뢰조는 1만 6000명 정도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완전한 기업도시였다. 앙리 슈네데르 자신이 12년 동안 르크뢰조 시장을 지내고 이후 10년 동안 지방 하원의원으로 일했다.
(/ p.612~613)

유럽 나라들과 미국의 여러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미국 정치 담론에서 종교가 확고히 존재하긴 해도, 미국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 교의(정교분리를 채택한 최초의 국가다)를 지키면서 줄곧 공공연한 종교 정당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 자체는 유럽보다 미국에서 훨씬 더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도 중요하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걸핏하면 하느님을 거론한다. 존 F. 케네디(1961)는 인간의 권리는 “국가의 관대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다고 단언했고, … 버락 오바마(2009)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고 “완전한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명제는 “하느님이 주신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2017)는 이렇게 선언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백성들이 똘똘 뭉쳐 함께 사는 게 얼마나 좋고 행복한 일인지 말해줍니다.”
(/ p.656)

오늘날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실제로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 뒤인 2009년에 BBC 월드서비스World Service에서 의뢰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27개국에서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인터뷰 대상자의 11퍼센트만이 자본주의가 순조롭게 작동한다고 생각하고, 규제 확대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느꼈다. 두 나라에서만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느끼는 응답자가 5명 중 1명 이상이다. 미국(25퍼센트)과 다소 의외로 파키스탄(21퍼센트) 두 나라다. 세계 전체적으로 보면, 조사 대상의 23퍼센트가 자본주의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으며, 새로운 경제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평균적인 수치였다. 프랑스에서는 반자본주의자가 43퍼센트라는 놀라운 비율이었고, 멕시코에서는 38퍼센트, 브라질에서는 35퍼센트, 우크라이나에서는 31퍼센트였다.
(/ p.814)

자본주의는 빅토리아 왕조의 영국에서부터 프랑스와 스위스의 공화국, 파시즘과 나치즘에서부터 전후戰後 유럽의 민주주의,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에서부터 동남아시아의 독재와 중국의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체제와 공존해왔다. 장래에 자본주의가 지구 전체 차원에서 외국인혐오자와 좌파, 포퓰리스트, 온갖 부류의 반세계화론자를 흡수하고/하거나 포섭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건을 만들어서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팔아야 한다. 2015년
반反긴축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시리자(Syriza.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에게 유럽연합이 조건을 부과하면서 받아들이도록 쉽게 강요한 것은 선거로 뽑히는 모든 정부가 직면하는 심각한 외부적 제약의 증거다. 어느 누구도 영원히 야당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지만, 종종 야당이 집권당보다 더 쉽다.
(/ p.824)

소비자 자본주의가 거침없는 행진을 시작하기에 앞서 다양한 경향의 이데올로기가 갈팡질팡하며 등장했다. 소비자 자본주의가 미국, 서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넘어서 일본, 그리고 결국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지역들까지 확산됨에 따라, 자본주의의 견고함은 상당한 물질적 토대를 획득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소속 구성원으로서 생활하고 노동하는 다수에게 높은 수준의 소비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체제가 존재하게 되었다. 유일한 경쟁자였던 공산주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심지어 기본적인 시민의 자유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시험, 즉 소비의 민주화라는 시험에서 비참하게 탈락했다. 공산주의가 이렇게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신자유주의가 제아무리 도전을 받고 불공평하다 해도 승리를 거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 소비자로 변모하고 있으며, 상품에 대한 수요를 통해 자신의 욕망과 선호를 나타낼 수 있다. 사람들은 선거에서 표를 던지지만, 무엇보다도 달러와 파운드와 유로를 가지고 매일같이 투표를 하면서 이런저런 제품을 ‘뽑음’으로써 소비자 사회의 시민권을 정치체의 시민권보다 더욱 소중한 것으로 만든다.
(/ pp.828~829)

저자소개

도널드 서순(Donald Sassoo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이집트 카이로
출간도서 10종
판매수 1,741권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지에서 공부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런던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대학교 퀸메리 칼리지에서 유럽 비교사 교수로 있다가 2012년 은퇴했다. 지은 책으로 [사회주의 100년One Hundred Years of Socialism] 외에 Strategy of the Italian Communist Party: From the Resistance to the Historic Compromise(이탈리아 공산당의 전략 : 저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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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E. H. 카 러시아 혁명], [미국의 반지성주의], [미국 민중사 1·2], [The Left],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핀란드 역으로], [나쁜 여자 전성시대],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좌파로 살다], [자본주의에 불만 있는 이들을 위한 경제사 강의], [학살, 그 이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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