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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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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영건
  • 그림 : 정희우
  • 출판사 : 알마
  • 발행 : 2017년 02월 20일
  • 쪽수 : 20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59920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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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강원도 속초에는 삼 대째 이어오는 서점이 있다. 바로 '동아서점'이다. 1956년부터 현재까지 60년 넘는 시간 동안 동아서점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에는 그 말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저자 김영건 매니저는 서울에서 비정규직 공연기획자로 일하다 고향 속초에 왔다. 계약 기간도 끝나가고, 다시 이곳저곳 입사 원서를 쓰자니 대책 없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버지 김일수 씨의 서점 운영 제안을 얼떨결에 승낙했다. 아버지 김일수 씨도 비슷했다. 할아버지 김종록 씨에게 '어쩌다가' 서점을 물려받았고, '어찌어찌하다' 사십 년 동안 서점 일을 했다.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흘렀다.
김영건 매니저는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며 비관하지만, 끝내 '서점'이라는 없어져선 안 되는 공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로소 '서점 사람'이 된다. 이 책은 김영건 매니저의 글과 정희우 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져 속초의 바닷가처럼 먹먹하고 따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출판사 서평

속초에는 뭐가 있어요?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답할 것이다.
닭강정이랑 동아서점요.


서점에서 일하면 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을까?
책도 된장찌개처럼 제값 받고 파는 시대가 올까?
기능과 아름다움은 왜 공존할 수 없을까?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동아서점만큼이나 알차고 정갈한 글들을 읽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 고요서사 차경희
강릉이 커피로 유명해졌듯이 속초는 책으로 유명해질 것 같다. - 땡스북스 이기섭
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온기가 가득한 그곳. '동네 서점'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 마음책방 '서가는' 성미옥
서점인에 의한, 서점인을 위한, 서점인의 이야기. 게다가 재밌기까지 하다. - 미스터 버티고 신현훈
서점 일을 맘껏 나눌 수 있는 동지를 만났다. 신난다. - 북바이북 김진양
바닷바람 쐬고 감자전 먹고 동아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 몇 권 골라 돌아오는 겨울 여행. - 사적인 서점 정지혜
시들시들 시든 책방이 생기발랄하게 바뀐 비밀! 여기 달큼한 사람이 있다. - 이음책방 조진석
그는 속초 앞바다만큼이나 깊고 푸른 영혼으로 서점과 책을 이야기한다. - 진주문고 여태훈

삼 대째 서점
강원도 속초에는 삼 대째 이어오는 서점이 있다. 바로 '동아서점'이다. 1956년부터 현재까지 60년 넘는 시간 동안 동아서점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에는 그 말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저자 김영건 매니저는 서울에서 비정규직 공연기획자로 일하다 고향 속초에 왔다. 계약 기간도 끝나가고, 다시 이곳저곳 입사 원서를 쓰자니 대책 없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버지 김일수 씨의 서점 운영 제안을 얼떨결에 승낙했다. 아버지 김일수 씨도 비슷했다. 할아버지 김종록 씨에게 '어쩌다가' 서점을 물려받았고, '어찌어찌하다' 사십 년 동안 서점 일을 했다.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흘렀다.
김영건 매니저는 아버지 김일수 씨와 함께 서점을 재정비했다. 이만 권의 책을 반품하고, 그보다 많은 책을 들여놨다. 마치 빵을 굽는 것 마냥 밴딩기(일종의 포장기계) 앞에서 책을 포장했다. 한기가 가득한 서점에서 부자(父子)는 조용히 책을 진열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투닥거리며 깨달은 것은 '서점 일'이 그들에게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는 거였다.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을 '예술'로 분류할지, '정신분석학'으로 분류할지, '철학'으로 분류할지 고민하며 한국의 서가 분류법에 의문을 품었고, 동아서점만의 분류로 사소한 실험을 하며 인터넷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 갈 이유들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어설픈 손글씨 안내문을 써붙이기도 했고, 신간 배본을 받지 않고 각종 일간지에 소개된 책정보 등을 참고하며 서점에 들여놓을 책들을 정성껏 골랐다.
김영건 매니저는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며 비관하지만, 끝내 '서점'이라는 없어져선 안 되는 공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로소 '서점 사람'이 된다.
이 책은 김영건 매니저의 글과 정희우 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져 속초의 바닷가처럼 먹먹하고 따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서점 사람들
이 책에는 옛 동아서점 사진 몇 장이 실려 있다. 1960년 중반, 속초 동아서점은 책뿐만 아니라 각종 문구품, 우표, 수입인지 등도 취급했다. 또한 [주부생활]대리점을 겸했다. 1960년 후반에는 취급 물품을 더 넓혀 배구공과 농구공 등을 들여놓았다. 1986년에는 서점 건물이 증축됐다. 서점 옆에는 오랫동안 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끝내 문을 닫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떤 가게가 60년 넘도록 살아남는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다. 특히 '서점'은 더욱 그러하다. "서점 업계가 불황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이 같은 불평을 할 여유가 없다.
속초 동아서점을 거쳐 간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연애편지에 베껴 적을 시집을 사기도 했고, 내기 바둑에서 기필코 이기고자 바둑 책을 사기도 했다. 또 동네 아이들은 축구공을 사서 동네를 한바탕 어수선하게 만들기도 했다. 속초 동아서점에는 이 모든 것이 새겨져 있다.
한 할머니는 김영건 매니저의 옷자락을 잡고 아버지 김일수 씨를 찾는다. "그 아저씨가 있어야 책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김일수 씨가 오자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김일수 씨를 따라 책을 고른다. 김영건 매니저는 단골손님들이 고를 만한 책들을 '나 홀로 예약'하고, 그 손님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책을 진열한다. 서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김영건 매니저는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 앞으로도, 앞으로도 부디
아버지 김일수 씨의 꿈은 '백 년 서점'이다. 기력이 다할 때까지 김영건 매니저 옆에서 그의 일을 돕는 것이다. 그는 다짐한다. 그동안 여러 가지 부족했거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늦은 이제부터라도 잘해보고 싶다고. 무엇보다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김영건 매니저는 아버지 김일수 씨에게 미안하다. 머리가 굵어진 이후 아버지를 으레 '기성세대' 취급하며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점을 함께 운영하며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오직 '서점'에 관해서만 쓰고자 했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 김일수 씨에 대해 쓰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배를 탄 아들, 아들이라는 배를 탄 아버지. 이들이 앞으로도 부디 '동네서점'을 지켜주길 바란다.

에필로그 중에서
아버지, 저는 이 책에서 서점과 그 둘레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그 못지않게 저는 아버지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만일 당신께서 이 책을 읽게 되신다면 다소 민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제 나름의 주관이 확고해진 이후 저는 당신을 설득하거나 당신에게 설교하려 들었고, 그게 잘 안 될 때면 당신을 으레 '기성세대' 취급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하였습니다. 제사에서부터 정치까지, 밥 먹을 때 습관에서부터 무심코 내뱉는 말버릇에까지, 우리의 견해차는 제정祭政을 막론하고, 일상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무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아버지. 서점을 새로 가꾼 후에 당신과 함께 일하며, 때로는 깨끗하고 반짝이는 서점 안에 서 있는 당신을 보며 어색해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럴 때마다 저는 당신과 우리 서점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것만 같다고 느꼈습니다. (...) 부끄럽게도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서점과 그 안에 짙게 고인 세월을 등에 짊어지고 제가 바라본 것이라곤 고작, 다가오는 세월 앞에 선 당신의 묵묵한 헌신에 대한 계면쩍음에 불과했습니다. (...) '서점'이라는 세월 앞에 강을 건너고, 간극을 넘어서야 하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라는 배를 타야만, 당신의 존재를 제 몸에 지녀야만 그 간극을 넘어 비로소 서점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이렇게 뒤늦게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입니다. (...) 아버지. 앞으로도 부디 오랫동안 서점에 계셔 주세요.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 주세요.

목차

프롤로그

서점이 뭐라고 - '조만간'이라는 녀석은 참!
어쩌다 보니 책이다 -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아버지의 서점 - 거기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책과 나 - 그럼 책은 원 없이 읽었겠네요
양가감정 - 책도 된장찌개처럼
삼 분의 이 - 속초에 뭐가 있는데요?
나의 서점 탐방기 - 기능과 아름다움은 왜 공존할 수 없을까?
반품의 맛 - 이토록 많은 책이 왔다가 간다는 것
개업 전 철야 작업 - 마치 코끼리라도 삼킨 것처럼
서가 분류법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눈물의 캘리그라피 - 어차피 예쁘자고 한 건 아니니까
책을 꿰뚫는 맛 - 새로 나온 책 있어요?
검색대가 없는 서점 - 도서 위치의 미학
서점과 문학상의 관계 - 이거 정말 축하할 일이군!
납품 - 어찌 됐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
서점발 베스트셀러 -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다
추천의 기술 - 고작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직거래와 도매상 -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짠한
나 홀로 예약 - 정말로 해드릴까요?
독립출판물 - 우리 서점에 오는 한 가지 이유
도시의 공원 - 얼토당토않은 무언가
아버지의 자리 - 그 아저씨 어디 있어요?
옛날 손님 - 저 지금 잘하고 있습니까?
언제까지라도 - 저 역시 침이 고입니다
명문당 - 곧 오시겠지
고요서사 - 없어져선 안 되는 서점
꼰대와의 투쟁 - 내가 너만 했을 때
아내 - 벌써 여름이구나
아내 - 함께 일한다는 진실의 무게
여행자의 책 - 누구나 멋진 사람
시 쓰기의 바이블 - 시 언어 책 있어요?
포켓몬 고 - 포켓몬문고
마지막 책 - 인생이 농담을 하면 우리는 책을 산
속초에서의 겨울 -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와 서점 - 나의 작은 손등과 빛바랜 책

에필로그

본문중에서

정말 내 얼굴을 보고 책이 연상된다면, 이 직업이 내게 꼭 맞는 옷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활동하기에 불편하지 않고 내게도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프롤로그' 중에서 / p.6)

아버지는 삼십 년 넘도록 속초에서 작은 동네서점을 운영했다. (...) 사람들이 서점에 줄 서서 책을 구매하던 풍경, 하루가 꼬박 다 가도록 쉴 새 없이 장부에 뭔지 모를 숫자를 적던 아버지의 모습도 희미하게 기억나는 한편,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돼서 분류도 상태도 엉망인 책장, 힘없이 목을 늘어뜨린 채 졸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도 내 기억 속에 또렷했다.
('서점이 뭐라고 - '조만간'이라는 녀석은 참!' 중에서 / p.19)

나는 '어쩌다 보니 서점을 하기로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당시 하던 일의 계약 기간도 끝나가고, 더 일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 싶은지 확신도 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곳저곳 다시 입사 원서를 쓰자니 대책 없이 막막한데, 서울에서의 먼 미래를 그려보니 아찔하고 아득하기만 하던 처지에, 아버지로부터 서점 제안을 받고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승낙해 버린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책이다 -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중에서 / pp.22~23)

아버지가 졸고 있을 때 서점을 방문한 손님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대부분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한다. 손님은 계산하기 위해 주인을 깨워야 해서 여간 못마땅했을 수도 있고, 찾는 책을 물어보지 못해 찾다 찾다 그만 포기하고 가버렸을 수도 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경우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다 조용히 나가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아버지는 졸고 있었으므로, 당신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나 다름없었다.
('아버지의 서점 - 거기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중에서 / p.25)

"책을 좋아하면 서점을 하지 말고 그냥 독자로 남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충고가 적어도 내겐 뼛속 깊이 와 닿는다. 느긋하게 앉아서 책 읽을 시간은커녕, 책 표지만 훑고 지나가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가장 큰 요인은 서점 일이라는 게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가는 일인만큼 가만히 앉아서 넋 놓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책과 나 - 그럼 책은 원 없이 읽었겠네요' 중에서 / pp.29~30)

도서정가제가 말 그대로 '정가제'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책도 된장찌개처럼 정해진 가격 그대로 판매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양가감정 - 책도 된장찌개처럼' 중에서 / pp.34~35)

속초엔 바다가 있지. 원할 때면 언제나 산책할 수 있지. 그리운 감자전과 도루묵과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지. 거리의 소음도 없지. 버스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부대낄 일도 없지. (...) 인구가 팔만 정도인데도 인구 밀도가 매우 조밀한 이 작고 이상한 곳. 바닷가를 따라 마을이 긴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언제 어디서고 조금만 방향을 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 어느 맑은 날, 시내를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울산바위가 어떤 거룩한 속삭임처럼 드러나는 곳. 바다와 이어지는 곳에 바다였던 옛 시간의 흔적이 무려 두 곳이나 호수로 남아 있는 곳. 걸어서 어디든 다다를 수 있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 근래에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생긴 곳. 사람들의 말투는 다소 거칠지만 대체로 친절한 곳.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의 서점을 다시 열었다.
('삼 분의 이 - 속초에 뭐가 있는데요?' 중에서 / pp.38~39)

물론 당시 한국에도 예쁜 서점은 많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의 방향성과 맞닿는 서점, 그러니까 '종합서점'이라는 정체성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는 서점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이라고반박한다면 할 말은 딱히 없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이 그렇고 그렇게 용인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잖은가. 서점의 외관부터 진열된 책의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서점은 지금껏 '사고 싶게 만드는 상품의 진열'이라는 사실을 줄곧 외면해온 것만 같았다. 기능과 아름다움은 왜 공존할 수 없을까?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나의 서점 탐방기 - 기능과 아름다움은 왜 공존할 수 없을까?' 중에서 / pp.42~43)

모든 책을 반품하고 새로운 책들로 서가를 다시 채운 일.그게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이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때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꿈에서 깨면 현실임을 여러 번 확인하면서도, 아직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확실한 건 그 일로부터 서점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한 가지를 배웠다는 것이다. 바로 이 많은 책이 대수롭지 않게 왔다가, 아무렇지 않게 가버리는 게 아니라는 것. 이 많은 책이 오고 가려면 내 작은 몸뚱어리 하나 주저앉도록 굴려야 한다는 것.
('반품의 맛 - 이토록 많은 책이 왔다가 간다는 것' 중에서 / pp.49~50)

이만 권의 책은 거대한 화물트럭에 실려왔다. 대형트럭 뒤에는 마치 코끼리라도 삼킨 것처럼 자기 몸집만 한 무언가가 천으로 덮여 있었다. 트럭에서 어렴풋이 바다 냄새가 났다. 대도시로부터 속초까지 오는 동안, 단언컨대 저 거대한 트럭 뒤에 실린 무언가가 책일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나 역시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큰 트럭에 다름 아닌 책이 담겨 있는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이 말을 아버지에게 전하자, 당신은 예전에 수없이 본 장면이고 수없이 겪은 일이라고 했다.
('개업 전 철야 작업 - 마치 코끼리라도 삼킨 것처럼' 중에서 / pp.51~52)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라는 얘기처럼,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무책임하고 자유분방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한 권의 책을 두고 어디에 꽂아야 할지 고민한다. 고민을 거듭한 그 책이 잘 팔리지 않았을 때 전보다 훨씬 더 마음 아프고, 반대로 잘 팔렸을 때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기쁨이 차오른다. 서가의 분류도 서점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인터넷 서점이 아닌 '서점'에 갈 최소한 한 가지 이유는 확보한 셈일 것이다.
('서가 분류법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중에서 / pp.60~61)

처음 몇몇 장소에 손글씨를 써서 부착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한 한 커플이 웃으며 얘기하는 걸 그만 들어버렸다. 여기 손글씨 좀 봐. 순간 너무 창피해서 당장에 다 떼어버리고 싶은 걸 꾹 참고 견뎠다. 어차피 예쁘자고 한 건 아니니까.... 몇 번이나 나를 위로했다.
('눈물의 캘리그라피 - 어차피 예쁘자고 한 건 아니니까' 중에서 / p.65)

나는 서점 일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신간 배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엔 뭣도 모른 채 그렇게 했던 게 사실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수많은 책을 그저 왔다가 보내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았다. 반품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일까? 책을 속절없이 반품해야 한다는 것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일단 한 번 우리 서점에 입고된 책은, 그게 한 권이든 다섯 권이든 열 권이든, 어떻게든 다 팔아보자는 담대하고도 청순한 마음이었다.
('책을 꿰뚫는 맛 - 새로 나온 책 있어요?' 중에서 / p.67)

나는 다름 아닌 책의 '편집 진열'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때로는 책이 출간되는 경향에 의해, 가끔은 시국에 의해, 드물게도 어떤 날에는 책 표지 색깔이나 제목의 연관성에 따르는 등, 서점원 저마다의 고유한 맥락 속에서 책을 자유롭게 편집하여 배열하는 게 서점의 묘미이자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문제는 이렇게 책이 왔다 갔다 하는 만큼 책의 위치 데이터를 매번 수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책의 위치는 매입 시점에 단 한 번 정해지지만, 실제 책의 자리는 처음 정해진 위치로부터 하염없이 미끄러진다. 이러한 이유로 여전히 우리 서점은 도서 검색대가 없는 '희귀 서점'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검색대가 없는 서점 - 도서 위치의 미학' 중에서 / p.74)

결과적으로 행운인지 불행인지, 나 같은 게으른 인간에게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 결과는 꽤 복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상 소식을 뒤늦게 듣고 책을 주문하려고 보니, 아뿔싸. 출간된 책이 자서전 한 권밖에 없었다. 그렇다. 밥 딜런은 뮤지션이다. 노벨문학상 발표날이 지났는데도 서점은 작년과는 다르게, 하지만 그 전날과는 다름없이 잠잠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작지 않은 사건에서 책과 서점의 입지가 조금은 줄어든 듯하여 섭섭함이 느껴지는 한편, 당장엔 별다르게 분주할 것 없는 이 흐름에 씁쓸하게 몸을 맡긴다.
('서점과 문학상의 관계 - 이거 정말 축하할 일이군!' 중에서 / p.79)

도서 납품은 한 건에 커다란 규모의 돈을 서점에 벌어다 준다. 그 규모가 클 때는 한 달 매출액과 맞먹기도 하고, 그 규모가 작을 때조차도 하루 매상에 버금갈 만하다. 그렇다. 대체 왜 서점은 도서관 청구기호 생성법을 익혀야 하고, 왜 책에 라벨을 붙여야 하는지 따위의 질문은 고이 접어두자. 지금껏 쭉 그래 왔고, 따라서 하던 대로만 하면 약속된 금액이 고스란히 지급된다. 서점 업계가 불황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이 같은 불평할 여유가 있다면, 지금 당장 라벨을 붙이자. 그리고 도장을 찍자.
('납품 - 어찌 됐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 중에서 / p.84)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애석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내가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들은 대체로 전국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은 책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는 '서점발 베스트셀러'보다도 손님들로부터 '최소한의 답장'을 받는 일이다. 베스트셀러만 소개하고 잘 팔릴 것 같은 책들만 진열했다면 아마 묻혀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책. 그렇게 묻혀버리고 말기엔 아까운 책. 그런 책들을 손님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그들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이 목소리를 듣고 책을 펼칠 수 있을까?
('서점발 베스트셀러 -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다' 중에서 / pp.91~92)

책 추천하는 일에 대해서라면, 나는 여기에 한 가지 항목을 더 추가하고 싶다. 이 책, 정말 추천해도 되는 것일까? 이 책을 추천하고 나서도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추천하기 전에 마지막 한 번 망설이는 일.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한 번쯤은 멈춰서 망설이며 자문해보는 일. 거창하게 말해서 이것을 책 추천에 관한 윤리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추천의 기술 - 고작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중에서 / p.97)

강원도 어느 바닷마을 서점에서 책이 팔려봤자 얼마나 팔리겠느냐마는, 책 뒤에 새겨진 가격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눈에 어른거린다면, 책에 대한 당신의 그 애정 어린 마음 덕분에 우리 서점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직거래와 도매상 -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짠한' 중에서 / p.103)

그분이 분명 살 것 같은데.... 내 상상 속에서만 예약된 손님은 며칠째 발길이 뜸한데, 괜히 진열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된다.
눈에 잘 안 띄나? 더 잘 보이게 여기에 안내 문구를 써 붙여야겠군. 저 자리보단 이 자리가 더 좋겠다. 아니야. 두 곳 모두 진열해야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 각도 보다는 이 각도가 아무래도.... 마침내 오늘 기다리던 손님이 왔다. 브라보. 그분은 정말로 나 홀로 예약한 책을 샀고, 나는 표정에서 일말의 미동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책을 봉투에 담아 드렸다. '나 홀로 예약'한 사실에 대해선 결단코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았다. 이 괴상한 예약제도는 축하 방식 또한 괴상하다.
('나 홀로 예약 - 정말로 해드릴까요?' 중에서 / p.107)

제작자분들께 매달 죄송하고도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든 메일로 전해 드리려고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다. 여러분의 책은 여기에 아주 잘 놓여 있어요. 강원도 속초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어느 서점에서 환한 빛을 발하고 있어요.
('독립출판물 - 우리 서점에 오는 한 가지 이유' 중에서 / pp.112~113)

이 책은 현재까지 우리 서점에서 딱 한 권 팔렸다. 게다가 이 책은 장르를 분류하기가 영 애매하다. 심지어 가격까지 이만육천 원으로 비싸다. 나는 다소 확신에 가깝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두 종류의 서점이 있다면, 그건 [도시의 공원]이 있는 서점과 [도시의 공원]이 없는 서점이다.
('도시의 공원 - 얼토당토않은 무언가' 중에서 / p.116)

아버지는 올해 예순네 살이다. 손님을 앞에 두고 책을 계산하는 속도가 다소 느리고, 목소리마저도 희미해져 잘 들리지 않는다. 아버지를 찾는 손님이 다 있네요. 나는 짓궂게 놀릴 심산이었는데 아버지가 겸연쩍은 듯 자진하여 '자학의 시'를 읊는다. 거참. 살다 보니, 나를 찾는 분이 다 계시네. 이렇게 늙어빠진 나를.... 나는 웃어넘겼지만 못내 흐뭇했던 내 심정을 전하진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나에게도 할머니와 같은 손님이 생길까? 할머니와 가족들은 각자 고른 책을 계산하고 나갔다. 나는 잠시 그들의 컬렉션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리 - 그 아저씨 어디 있어요?' 중에서 / pp.124~125)

그들이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와 서가 곳곳을 걸어 다니며 책을 살펴보고 책을 골라 계산대로 오는 일. 슬로모션처럼 느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손님이 아닌 증인과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네가 모르는 세월 위에 너는 지금 서 있다. 그들은 그저 책을 고르고 살 뿐인데, 나는 시간의 심판대 위에 자진해서 나 자신을 올리고 만다. 그리고 묻는다. 저 지금 잘하고 있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으므로 나는 그들의 다음번 방문으로 대답을 유예한다.
('옛날 손님 - 저 지금 잘하고 있습니까?' 중에서 / p.129)

서점을 새로 가꾸며 나는 '매장에선 절대 음식 섭취 금지'라는 강령을 내세웠다. 일손이 허다하게 부족하여 식사 교대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 적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매장에서의 식사를 금지했다. 정 인원이 없을 땐 혹여나 방문할 손님에 대비하여 매장 바깥에 이 단짜리 구루마를 식탁 삼아 밥을 먹을지언정 매장 안에서는 결단코 안 되었다. 잠깐 마시는 커피조차도 손님의 눈에 띄게 하지 않으려고 뒤편에 숨겨두곤 했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면 쇠락의 길로 접어든 옛 서점의 기억을 잊을 수 있는 것처럼. 모두가 얘기하는 '서점 불황기'로부터 애써 고개를 돌릴 수 있는 것처럼.
('언제까지라도 - 저 역시 침이 고입니다' 중에서 / p.133)

현재까지도 깜깜무소식이니, 아마도 그는 앞으로도 서점에 오지 않을 것인지도, 마술사의 카드처럼 활짝 펼쳐진 만 원짜리 지폐와 그 뒤로 보이는 듬성듬성한 이가 숨김없이 드러나는 순박한 웃음을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점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어딘가에서 그를 마주치게 된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다. '명문당' 새 책들이 서점에 많이 들어왔어요.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는 작년 11월 돌아가셨습니다.
('명문당 - 곧 오시겠지' 중에서 / pp.137~138)

문학의 초입에 있어서든 문학에 진절머리가 나서든, 문학이라는 이름 앞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면, 고요서사에 가서 서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시라. 그는 당신에게 몰랐던 작품을 추천할 수도 있고, 새로운 작품 소식을 알려줄 수도 있으며, 만일 그것도 아니면 그저 당신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지도 모른다. '맞춤형 서점'이 서점이 나아갈 미래 중 하나라면, 그러한 표현은 고요서사처럼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동네서점에 특히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고요서사 - 없어져선 안 되는 서점' 중에서 / p.144)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경험을 반추하여 조금씩 다른 기준으로 '꼰대'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중에 공통으로 뽑아낼 수 있는 특징들도 꽤 있다. 말하자면 경향성 같은 게 있는 셈인데,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나이가 어려 보이면 반말부터 하는 사람. 조언을 구하지 않았는데 조언하는 사람. "내가 너만 했을 때"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서점원처럼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들에겐 더욱 다채로운 '꼰대'의 향연이 벌어진다. 직원한테 다짜고짜 반말하는 손님. 서점에 대해 얼토당토않는 조언이나 악담을 퍼붓는 손님.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이용하여 할인 및 기타 서비스를 요구하는 손님. 무엇보다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저 무례한 손님.
('꼰대와의 투쟁 - 내가 너만 했을 때' 중에서 / p.148)

그날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역시 분명하게 기억나는 건 빛이 환히 쏟아져 서점 안이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점 안에는 손님이 서너 명가량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멀리 떨어져서 조용히 책을 고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수북이 쌓인 신간을 정리하고 있었다. 얼굴에 땀이 맺혀서 안경이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러던 와중에 누군가 계산을 하러 계산대에 왔다. 손님은 민소매의 얇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옷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벌써 여름이구나. 나는 그 손님에게 첫눈에 반했다.
('아내 - 벌써 여름이구나' 중에서 / p.153)

아내와 함께 일하기를 망설였던 나의 첫 번째 이유, 그러니까 그가 서점에 싫증을 느끼면 어떡하느냐며 가졌던 두려움은 한마디로 괜한 걱정이었다. 실제로 그는 나보다 강인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토록 취약한 일과 삶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쉽게 기뻐하는 만큼 쉽게 지치는 나와는 달리, 그는 기쁨과 낙담, 그 모두로부터 얼마간 자신을 지켜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내 - 함께 일하다는 진실의 무게' 중에서 / p.159)

당신들은 대다수 사람과는 다른, 비범한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이다. 누구나 멋진 사람을 동경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을 존경한다.
('여행자의 책 - 누구나 멋진 사람' 중에서 / p.164)

하지만 속마음은 '시 언어'만을 모아 따로 수록한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아이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다른 모든 말과 마찬가지로, '시어' 또한 저마다의 맥락 안에서 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기에 그것만을 따로 떼어내어 지니고 다닌다는 것은 얼마간 '시'라는 장르 자체를 모독하는 편리한 소망이 아니냐고 힐책하고 싶었다.
('시 쓰기의 바이블 - 시 언어 책이 있어요?' 중에서 / p.168)

포켓몬도 잡고, 서점 구경도 하고. 그것은 메마른 서점 사람 마음에 불을 지폈고, 번져가는 불길은 이미 걷잡을 길 없었다. 거리를 방황하는 괴수들이 별안간 속초에 사람들을 불러들인 것이라면, 그것이 속초의 어느 서점인들 예외를 두겠는가. 어린 시절 학교 앞 슈퍼에서 스티커 하나 들어 있는 빵을 사기 위해 긴 줄로 늘어섰던 풍경까진 아니더라도, 이렇게까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면 지나가는 길에라도 서점에 들를 것 같았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무언가 사소한 채비라도 해두어야 할 터였다.
('포켓몬 고 - 포켓몬문고' 중에서 / pp.173~174)

때때로 나는 얼마나 서점에 가고 싶었는가. 서점에서 얼마나 책을 사고 싶었는가. 서점 사람이면 매일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을 텐데 대체 무슨 소리냐며, 틀림없이 어처구니없어할 테지만, 이것이 우리의 실제 모습이다.
('마지막 책 - 인생이 농담을 하면 우리는 책을 산다' 중에서 / p.177)

[속초에서의 겨울]은 소설이었다. 다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점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어로 쓰인 소설이 아니라는 것. 제목에는 '속초'라고 버젓이 적혀 있는데, 한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쓰인 소설이었다. 물론 프랑스인이 집필한 소설이었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았다. [파리의 사생활]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알자스] 등 한국인이 프랑스 지명을 제목의 일부로 삼아 쓴 책들. 주저할 것도 없이 매끄럽게 읽히는 이 제목들이, 왜 반대의 경우에서만 저리도 멋쩍었을까.
('속초에서의 겨울 -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중에서 / pp.181~182)

그날 아버지는, 내가 없는 곳에 가서, 나 때문에 울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손이 문 사이에 있는 줄도 모르고 문을 닫아버린 아버지가 미웠던 아이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아버지와 서점 - 나의 작은 손등과 빛바랜 책' 중에서 / p.189)

아버지. 서점을 새로 가꾼 후에 당신과 함께 일하며, 때로는 깨끗하고 반짝이는 서점 안에 서 있는 당신을 보며 어색해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럴 때마다 저는 당신과 우리 서점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것만 같다고 느꼈습니다.
('에필로그' 중에서 / p.197)

저자소개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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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에 있는 작은 동네서점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서점 호황기의 끝자락을 서점 창고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며 보냈고, 2000년대 이후 서점 불황기에는 서점 바깥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서점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다. r 발음과 [이방인]의 세계에서 읽고 떠들고 헤맸다. 내 삶이 어느 요절한 불란서 시인의 삶처럼 굳세고 강렬하기를 소망했지만, 졸업 후 공연기획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다. 매일 보도자료를 썼고 포스터와 소책자를 만들었으며, 이따금 소책자 등을 서울에 있는 몇몇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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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자주 이사를 다녀 고향이 없다. 살던 동네가 모두 내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래된 동네를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거기서 내 옛 동네들의 모습을 겹쳐 보며 그곳에 새겨진 시간을 그림과 탁본으로 기록한다. 재개발 현수막이 붙은 아파트도 탁본으로 남긴다. 아파트도 누군가의 고향이었으니까. 과거의 흔적과 기억이 담긴 장소가 빠르게 사라지는 게 아쉬워 그것들을 종이에 옮긴다. 지금 나를 둘러싼 풍경은 곧 그리운 과거가 될 것이다. 그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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