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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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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어령
  • 출판사 : 열림원
  • 발행 : 2015년 06월 04일
  • 쪽수 : 40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0637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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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상 모든 딸과 아버지에게 보내는 이어령의 고백록!

너는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준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딸을 가진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어령의 고백록!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암으로 딸을 잃은 이어령의 통한과 지극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딸을 향한 편지이지만 이어령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 이어령. 평론가에서 언론인, 교수, 문화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의 지적 활동은 여전히 왕성하다. 100여 권이 넘는 책을 써왔고 수많은 강의와 강연, 대담을 해온 그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의 글과 사뭇 다른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아버지의 그늘에 평생을 가려 있던 딸 이민아. 2012년 53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이민을 간 미국에서 검사와 변호사로서 성공했지만 이혼과 자식의 죽음, 암과 실명의 위기를 수차례 겪으면서 기독교에 귀의했고, 2009년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고 땅끝 아이들을 도우며 살다가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사랑은 하나님을 모르는 땅끝 아이들부터 시작되었고, 그 사랑의 힘으로 평생 무신론자이자 이성주의자였던 아버지 이어령까지 영성의 문지방을 넘게 만들었다. 그를 하나님 앞에 세운 것은 딸의 실명이었다. 그는 일흔다섯의 나이에 기독교도가 되어 세례를 받았고 딸 이민아의 남다른 사연과 함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기독교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해왔던 그였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이렇게 인생의 커다란 전환기에 나온 책이었고,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은 딸의 존재였다.

영성이라고 하면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들은 누구나 사랑의 기적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합리주의 세계에서 이성은 있지만 영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주위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신비로운 것처럼 우리의 생명은 그 자체로 기적이다. 자식과 부모로 태어나 귀한 인연을 맺는 것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전부 이성으로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것이 영성이라고 이어령은 말한다. 영성은 늘 우리의 곁에 머물러 있다.

딸은 그에게 기적이고 천국이며 자신의 전부라는 걸, 그는 딸의 죽음을 통해 뒤늦게 깨달았다.[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지난 2012년 딸 이민아 목사가 세상을 떠난 이래 가슴속에만 묻어놓았던 아버지 이어령의 못다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글쓰기와 지식인으로서의 글쓰기를 통합한 창작 행위를 통해, 딸을 잃은 슬픔을 세상의 모든 생명을 품에 안는 사랑으로 승화해내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위안과 희망의 이야기"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딸을 가진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 시대의 대표 지성 이어령의 고백록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이 시대의 대표 지성 이어령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딸을 가진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안과 희망의 이야기이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딸 고(故) 이민아 목사의 3주기를 맞으면서 펴낸 이 책은 단순한 추모 산문집이 아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아버지로서의 글쓰기와 지식인으로서의 글쓰기를 통합한 창작 행위를 통해, 딸을 잃은 슬픔을 세상의 모든 생명을 품에 안는 사랑으로 승화해내고자 한다.

한창 읽고 쓰는 일에만 골몰하던 아버지 이어령의 삶 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딸의 유년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 아버지의 굿나잇 키스를 기대하고 서재 문 앞에서 그를 불러도 일에 몰두하던 아버지는 등을 돌린 채 딸을 돌아보지도 못했었다. 이제 아버지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뒤늦게나마 글로써 딸을 향해 ‘굿나잇 키스’를 보낸다. 천국에 있는 딸을 향한 ‘우편번호 없는 편지 모음’이랄 수 있는 이 책은 귓속말로 속삭이는 듯한 어조로 씌어졌으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비디오로 되감듯 선명하게 재생하고 있다. 동시에 생명과 가족의 가치가 변질되고 고령화, 저출산 등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는 오늘날 이 시대에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시 성찰하게 함으로써 생명과 가족애라는 주제를 사회적으로 현실적으로 재조명하게 한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의 이 특별한 스토리텔링은 그의 어떤 스토리텔링보다도 더 절실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딸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겪고서 진짜 아버지로 거듭난 구체적인 사건으로부터 태동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의 전체적 구성은 ‘딸의 죽음은 씨앗처럼 추억의 땅에 떨어져 오늘 싹이 나고 내일은 꽃이 피고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다’는 저자 이어령의 생각에 기반하여 딸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따라간다. 1부 [살아서 못다 한 말]은 에세이 모음으로, 딸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아기집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들이다. 처음 아내의 입덧을 보고 체한 줄 알고 활명수로 아기를 맞는 축배를 들 뻔했던 이야기 등 초보 아버지로서 딸을 양육하면서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경험한 갖가지 흥미로운 일화들이 재구성되었다. ‘거룩한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을 어째서 변소에서 구역질하는 소리로 시작해야 하는가’라고 생명의 순리에 의구심을 갖던 초보 아버지는 이제 입덧이야말로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자신과 어머니의 몸을 보호해달라고 세상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어머니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표현임을 이해한다.

딸의 출생으로 인해 땅을 보고 달리는 ‘속물’ 아버지로서 책임을 짊어진 이야기, 어린 딸을 가슴에 안고 여름 바다로 여행하면서 딸의 심장 뛰는 소리에 무한한 생명력의 감동을 체험한 이야기, 유치원에서 의자 뺏기 놀이를 하고 시험을 치르면서 제도권과 경쟁사회로 들어가는 딸의 모습에 아버지로서 안타까워하고 혼란스러워한 이야기, 딸의 첫사랑과 결혼식을 보면서 아버지로서 배우고 느낀 이야기, 딸이 어머니가 되고 자신이 할아버지가 되면서 지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여성만이 이룩해낼 수 있는 생명 창조의 과업을 이해하고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이야기, 딸의 투병으로 영혼의 눈을 뜨게 된 이야기, 딸을 잃고서부터 글쓰기의 테마가 생명의 문제, 죽음의 문제로 전환되고 ‘생명자본주의’라는 것과 새롭게 씨름하게 된 이야기 등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로 전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더 이상 이어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연대기를 따라 소개되고 해석되는 문화적, 학술적 담론과 일화들은 개인의 이야기를 거대한 사회의 보편적인 장으로 옮겨놓아 우리가 천착해야 할 삶과 죽음의 주제들을 환기시킨다.

2부 [오늘만 울게 하소서]는 산문과 또 다른 울림으로 전해지는 이어령의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3부 [빨간 우편함의 기적]은 이어령뿐만 아니라 딸 이민아와 부인 강인숙이 서로에게 써보낸 편지 모음, 이민아를 인터뷰한 기사가 실려 가족애의 생생한 실체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 간증서를 펴낸 이민아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살아온 삶과 이어령의 딸로서 겪은 행복과 상처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아기집에서 세상의 집으로, 세상의 집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가는 이민아 목사의 생애를 그려내면서 우리가 간과해왔던 삶의 순간들을 새로운 의미를 담아 돌려준다. 영문학도에서 변호사, 검사, 목사로 살다가 마침내 땅끝 아이들을 품고 암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소외된 젊은이들과 함께하기를 추구했던 이민아의 기적 같은 힘은 아버지인 이어령에게도 오랫동안 의문이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투병 기간이었음에도 어디에서 그 힘이 나오는지, 그는 이미 세상에 없는 딸에게 특유의 비유와 아포리즘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문화적 학술적 스토리텔링과 더불어 딸의 생애를 재구성하는 가운데 마치 점묘화법처럼 그 답을 추구해간다. 그렇게 그림을 완성하면서 답을 추구해가는 과정의 감동이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전반을 흐르는 분위기이다.

저자 이어령은 주지되었다시피 열두 가지 이상의 직함이 따라다니는 대한민국 대표 지성, 대표 석학이다. 문학평론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희곡작가, 시인 등 문인으로서의 이름 외에도 대학교수, 기호학자, 언론인이자 일본이 배우기를 자처할 정도로 저명한 일본 연구가이고, 초대 문화부 장관이며, 서울 올림픽과 월드컵 등 주요 국가 행사의 기획자로서도 역량을 떨쳐왔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한 명의 남편이자 자식을 둔 아버지, 나아가 할아버지인 이어령의 민낯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딸을 잃고 난 뒤에야 고통 없이는 사랑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드디어 진정한 아버지 자격을 얻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 딸들과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달의 한 면밖에 볼 수 없다. 지구를 떠나 우주선을 타고서야, 망원경으로도 관측할 수 없었던 달의 뒷면,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게 된다. 이어령이 글을 써온 6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이면을 우리는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통해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우리 자신들의 이면까지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에는 이른바 평범하면서도 귀중한 가치가 포함된다. 널리 알려진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라는 사랑의 가치에 덧붙여지는 ‘로드리게스’, 즉 가정애가 그것이다. 핵가족을 넘어서 싱글 족들이 넘쳐나는 가족 해체의 시대에 아버지 이어령은 딸 이민아 목사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읊조림으로써 궁극적으로 생명과 죽음, 그리고 온 세상을 이끌어가는 가족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죽음이 결코 인간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하는 위안의 책이다. 오히려 죽음 뒤에 미처 하지 못한 말들과 배움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로부터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 "저녁 노을과 아침 노을을 누가 분간할 수 있겠는가. 지는 저녁 해는 바로 내일 떠오르는 아침 노을의 그 태양 빛"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굿나잇 키스’는 새로운 아침이 온다는 희망을 품은 인사말이다.

목차

머리글 인칭이 없는 글

1부_살아서 못다 한 말(Essay)

0. preface
네가 없는 굿나잇 키스 | 목마를 타고 떠나다

1. 탄생, 그리고 시작
너는 멀리서 어떻게 왔니 | 사랑은 고통으로부터

2. 살고 싶은 집
아기집에서 세상의 집으로. | 세상의 집에서 영혼의 집으로 | 어둠 속에 몰래 우는 아버지

3. 여행의 끝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다 | 피아노, 환상의 악기
경쟁 사회의 문 | 첫 번째 시험에 들다

4. 딸이 첫사랑을 할 때
너의 첫사랑 | 네가 결혼하던 날
아버지의 주례사 | LA에서 온 타전 신호

5. 딸이 어머니가 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하지 못한 것 |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

6. 교토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
까마귀 울음이 멈출 때 | 운명의 갈림길
깁스에 구멍을 뚫어주는 마음 | 원수를 사랑하라

7. 영혼의 눈을 뜨다
운명의 진화 | 어떤 미소에 끌리는 힘

8. 노을종
너의 마지막 | 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그 모든 것
노을이 종소리로 번져갈 때

2부 오늘만 울게 하소서(Poems)

살아 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 | 오늘도 아침이 왔다 | 네버랜드로 가자| 달리다 굼 | 목숨의 깃발 | 숨겨진 수의 기적 | 죽음의 속도계 | 겨울이 아직 멀었는데 | 만우절 거짓말 | 사진처럼 강한 것은 없다 | 사진 찍던 자리 | 하나의 아침을 위하여 | 전화를 걸 수 없구나 | 기억 상자 | 네가 앉았던 자리 |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 네 생각 | 그 많은 사람들이 저기 있는데 | 돈으로 안 되는 것 | 죽음에는 수사학이 없다 | 무덤 | 지금 몇 시지 | 가나의 결혼식 하늘의 신부가 된 너의 숨소리 | 혹시 너인가 해서 | 바람 부는 저녁 |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3부 빨간 우편함의 기적(Letters)

망각, 진실의 반대말
빨간 우편함의 기적
너는 나의 동행자
우편번호 없는 편지
엄마가 민아에게

뒤에 붙이는 글-interview
이민아와 땅끝의 아이들
- [조선일보 why], 김윤덕 기자, 2011년 8월

본문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슬픔만 남는 것이 아니다. 흔히 자식은 땅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냥 묻어두는 것만은 아니다. 죽음은 씨앗과도 같은 것이다. 슬픔의 자리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떨어진 자리에서 열매를 맺는다.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우리의 삶을 더 푸르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추임새로 돌아온다.

딸을 잃었다. 처음에는 나에게만 닥쳐온 비극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겪는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딸의 3주기를 맞으면서 여유가 생긴 것일까. 나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을 쫓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당신도 그랬냐고. 그때 그 골목을 지나다가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느냐고. 그게 죽음인데도 오히려 그 애가 태어나던 때 생각이 나더냐고.

사람들은 남에게 자기의 우는 모습이나 눈물자국 같은 것을 보여주기를 꺼려한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자기 울음소리가 바깥으로 새지 않도록 수돗물을 켜놓고 울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마음속에 개켜두었던 글들이 급기야 이런 책이 되고 말았다. 마음과 행동이 항상 어긋나는 것이 인간들이 하는 짓이지만 이번에도 또 내 마음과는 다른 결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딸을 잃은 슬픔을 처음에는 독백처럼 썼다. 내가 나를 향해 쓴 들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독백은 대화가 되어 딸에게 이야기하는 글로 바뀌었다. 1인칭에서 2인칭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급기야는 내 마음과 생각들이 3인칭으로 변하게 된다. 하나의 산문이 되고 시가 되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 한 번도 너라고 당신이라고 불러보지 못한 사람들, 그 3인칭을 향해서 언어들이 쏠리게 된다.

내가 나에게 하는 소리인지, 이미 떠난 내 딸에게 하는 소리인지,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그러나 나와 똑같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글이었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낸다.

울지마 아무것도 아니야.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이 부는 게지.
길가의 돌은 거기 있고
풀들은 가을이 오기 전까지 푸르지

울지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가는 거야. 뒤돌아다 볼 틈도 없이
바삐 사라지는 것들은 뒤통수만 보여

그러니 울지마.
조금 있으면 구름도 안 보이고
바람도 불지 않아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벌판에는 아무것도 없지

그때 지붕 위로 내리던 비
타다 만 휴지 조각

생각하지마
아무것도 아니야 처음부터 없었던 것.
울지마 그냥 가게 두는 거야.

유행가 가사 같아서가 아니다. 누구보고 울지 말라고 하는 글인지, 나인지 민아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글이다. 다듬고 수정하고 교정을 본 글들이 아니라 그냥 흘러나온 글이다. 내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는데 “요즘은 왜인지 자꾸 울음이 난다”는 구절을 읽었을 때 아마도 그 사람에게 위로의 말로 들려주려고 쓴 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내 딸에 대해서 쓴 이 글들이 출판되어 나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가시처럼 마음에 걸린다.
다만 이 글들이 나와 내 딸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딸을 잃은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세상 모든 이에게 바치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평창동 딸과 함께하던 그 봄날에
2015년 4월
이어령
(/ '작가의 말_인칭이 없는 글' 중에서)

만일 지금 나에게 그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그래 민아야,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 p.23)

네가 태어나던 날 나도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났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네가 태어나는 순간 나도 아버지가 된 것이니까.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누구의 아들이거나 누구의 남편이었다. 누구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여자는 아이를 잉태하는 순간, 어머니가 될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남자는 다르단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아버지가 된다.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가 되는 거지. 참 우습지 않니?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다들 잊고 있는 것 같구나.
(/ p.33)

쉽게 말해서 나의 통장에 작은 집 한 채를 살 돈이 들어 있었다면 과연 그런 글들을 썼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내 불만과 저항이 물질적 결핍에서 나온 것이라면 내가 쓴 그 글들이 저금통장의 무게만도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나는 그때 글을 쓰다가 펜촉을 부러뜨리면서 맹세했다. 네가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공간을 내 손으로 마련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다고.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그 유식한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더라도, 이따금 시골 머슴방에 등장하는 온몸에 털이 듬성듬성 난 촌스러운 도깨비라 할지라도,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영혼을 집 한 채와 바꿨을지 모른다.
(/ p.62)

너를 낳고 아버지가 된 순간 나는 글 쓰는 사람도, 교수도, 언론인도 아닌 한 아버지로 너와 함께 태어난 거야. 그때부터 아버지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 그래, 나는 앞으로 태어날 내 아이들을 추운 겨울날 방 안에서 떨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단다. 나에게 가족이 없었더라면, 네가 없었더라면 내가 쓴 모든 글은 아마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너로 인하여 나의 꿈은 항상 땅을 향해 있었어. 마치 그 전설의 새처럼 말이다. 눈은 땅을 보고, 꽁지는 하늘을 향해서 날아다닌다는 메롭스란 새, 하늘을 보며 나는 게 아니라 항상 땅을 보면서 거꾸로 비상하는 그 이상한 새처럼 말이야. 젊은 시절 그토록 경멸했던 ‘속물’을 자처하며 땅만 보며 달리는 소시민, 그게 너희들에게 주는 내 사랑, 온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89)

너를 가슴에 안고 내려다본 바다, 우리의 바다. 하얀 백사장과 초록빛으로 출렁이는 바다는 내가 여드름이 잔뜩 난 얼굴로 처음 보았던 그 바다보다 더 큰 파도 소리를 내며 출렁거렸지. 왜인지 아니? 널 가슴에 품고 동시에 바다를 품고 파도를 보았기 때문이야. 너의 작은 심장이 뛰는 그 생명의 소리가 파도의 진동으로 울리면서 바다 전체로 퍼져갔던 거야.
그게 바로 생명이라는 거야. 끝이 없는 것, 작은 파도와 큰 파도, 그리고 바람까지도 쉬지 않고 출렁거리는 것. 그 바람을 따라 모세혈관같이 가늘고 섬세한 네 머리카락 한 오라기가 내 볼을 스쳐 갔어. 네 작은 손은 놀라움이 커질수록 내 손을 꼭 붙들었지. 마치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처음 보는 바다의 경이로움에 조금은 겁을 먹었는지 넌 좀처럼 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어.
(/ pp.96~97)

너는 밤중에 파도 소리에 묻혀 가냘픈 목청으로 아빠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네 곁에 없었다. 어찌 그날뿐이었겠니. 네가 절망에 빠졌을 때, 절대 고독 속에 혼자 놓여 있을 때, 나는 네 곁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없었다. 너는 울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아빠를 불렀을 것이고 나는 너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깜깜한 바다, 끝이 없는 어둠의 공간이 널 삼켰다. 네가 이혼을 하고 빈방에 앉아 있을 때, 아이를 잃고 흙바닥에 앉아 있을 때, 병에 걸려 어둠 속에서 혼자 떨고 있을 때, 그 자리에 아빠는 없었다.
(/ pp.105~106)

훈우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익지 않은 파란 열매였어.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글에는 독기가 있었지. 아마 독자들은 내 글을 읽고 설사를 하거나 역겨워서 뱉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을 거야. 시고 단맛이 나는 매실 있잖니, 그것이 청매일 때는 먹으면 독 때문에 죽는 수도 있어. 이를테면 내 글은 청매와도 같은 것이었지.
그런데 훈우를 가슴에 품고 난 다음부터는 용서하는 법, 그리고 내가 저지른 과실, 남에게 상처를 주었던 손톱자국, 이런 것들이 다 보이는 거야.
내 글은 저항의 문학에서부터 시작되었지. 나는 세계를 향해 외치고자 했어. 마땅치 않은 것들, 냄새나는 것들, 거룩한 척하는 위선자들,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눈 뜬 장님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나 친구들까지도 나는 거부하고 또 거부하면서 그들의 가면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으로 손톱을 세웠지.
너를 낳을 때만 해도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두 손에 도끼를 들었고, 가정을 지키고 침입자를 향해서 사정없이 도끼를 내려치기 위해 도끼날을 갈고 있었던 거야.
(/ pp.178~179)

나는 잠시 하나님을 원망했다. 주님을 위해서, 훈우 또래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방황하는 땅끝 아이들을 위해서 아픈 몸으로 기도를 드렸던 너의 정성이 안타까웠던 거야. 병들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 사역해야 하는 너의 그 검불 같은 야윈 몸에서 무엇을 더 가져간단 말이니. 차마 애처로워 무엇을 더 네 몸에서 거둬 갈 수 있었겠니. 나는 잔인하다고 생각했어. 정말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너를 세상으로부터 데려갈 수 있겠는가. 아무리 성경을 읽고 또 읽어도 납득할 수가 없었어.
그 조용한 방, 새벽이 지나고 밝은 햇빛이 비치는 그 방에 30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정말 네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어. 그 속에서 너는 하늘의 신부로서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났어. 그때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비겁하다고 느꼈단다. 당사자인 너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늘의 신부 옷을 입고 지상을 떠났는데, 신앙심이 부족한 나는 주님에 대해 욕된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거야.
(/ pp.256~257)

나는 이제 더 이상 너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지 않아. 그만큼 죽음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어. 나에게 죽음은 더 이상 추상명사가 아니란다.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던지면 깨뜨릴 수 있는 유리그릇같이, 아주 구상적인 명사가 되었지.
우선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했어. 자기를 속이는 마지막 거짓말까지 덮어주며 사랑하는, 관대함과 동정 그리고 위로를 배웠지. 사실 나는 나를 참 많이 미워했단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 똑같은 방법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길에서 만난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설문조사를 받았던 적이 있어. 그때 나는, 보기 좋게 뺨을 때릴 거라고 대답할 정도였지.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어. 위험한 짐승을 기르는 것처럼 위태로운 내 마음 앞에서 떨고 있었지. 그러나 나는 나의 약점까지도 사랑하게 되어버린 거야. 불완전하고 깨지기 쉬운 인간이라는 생명을 사랑으로 끌어안는 방법을 조금 터득한 까닭이겠지. 이 단계를 지나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남도 사랑하게 된단다.
(/ pp.270~271)

지금 그냥 눈만 뜨면 되는 거야. 나는 단지 정서진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건 바로 정동진에 뜨는 아침 해의 노을인 거야. 너는 정동진에 있고 나는 정서진에 있는 그 차이밖에는 없어. 같은 노을이다. 나는 너를 위해서 울거나 또 너는 나를 위해 가슴 아파할 이유가 없다.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어. 나는 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의 노을을 아침의 노을로 바꾸어버리는 재생과 부활의 힘을 믿는 것이라고. 남들이 다 놀리더라도, 나는 그 힘이 네가 말하는 믿음의 힘이고 희망이고 빛이라고 생각해.
(/ p.28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34~
출생지 충남 온양
출간도서 98종
판매수 92,016권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이어령. 문학평론가, 언론인,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 전 문화부 장관 등 그를 규정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24세에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으며, 이후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또한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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