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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4 : 요세미티 스타일을 만든 초기 등반가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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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요세미티 스타일을 만든 초기 등반가들 이야기

1960년대,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계곡은 암벽등반 세계의 중심이었다. 등반가인 저자 스티브 로퍼는 60년대 대부분을 흥미로운 캠프4 거주자들과 함께 요세미티 계곡에서 살았다. 이 책에는 당대 최고의 등반가들과 그들의 성취가 미친 영향에 대한 그의 해석이 담겨 있다. 그리고 볼트를 경멸한 로열 로빈스, 재미를 추구하는 거벽 전문가 워런 하딩, 자유등반가 프랭크 사슈러, 다재다능한 척 프랫, 장비개발의 대가 이본 취나드, 불운한 마크 파월과 같은 등반가들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사실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요세미티에서 초창기 중요한 등반을 개척한 1930년과 1940년대의 “원로 등반가들”에게도 지면을 할애하며,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은 전설적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등반과 가장 매혹적인 논쟁을 다루고 있으며, 이전에 출판된 적 없는 50개가 넘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진자료들을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요세미티 황금기를 증언하는 결정적인 연대기

이 책은 전설적인 거벽등반 초등이 이뤄진 1960년대 요세미티 황금기를 다룬 등반 역사서로 1994년 밴프 산악도서전 수상작이다.
이 책의 진가는 10년간 저자가 직접 요세미티 캠프4에 체류하며 겪은 생생한 경험담과 증언, 자료를 바탕으로 당대를 풍미한 등반가들과 주요 루트개척 과정에 얽힌 진실과 논쟁들을 진솔하고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는 데 있다. 캠프4에서 함께 생활하고 등반한 동료들과의 경험을 반추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중요한 초등 기록과 사실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에피소드와 흥미로운 서사를 성찰적 논조에 버무려 놓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요세미티 등반에 관한 모든 것, 즉 초창기 루트개척의 역사와 빅월 등반의 시작과 경이로운 초등 이야기, 포위전술 등반과 속도등반, 볼트 사용 문제, 장비의 혁신과 등반기술의 발달, 그리고 요세미티의 독특한 바위성질과 등반 난이도 체계와 등반문화는 물론 탁월한 등반가들과 요세미티의 변화상들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

이 책은 요세미티 초창기 역사 중에서도 특별히 1960년대 요세미티 등반에 집중하고 있다. 1960년대는 이른바 요세미티 등반의 황금기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암벽등반 흐름을 이끌었고, 등반 철학과 장비, 기술이 독자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흐름을 이끈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개성 강한 등반가들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무엇보다 요세미티를 지극히 사랑했던 등반가들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요세미티 등반은 하나의 삶의 방식이자, 철학이며, 기쁨이었고, 등반가들은 이 행위를 통해 영적인 충만감을 느끼면서 가장 멋진 나날들을 보냈다. 이본 취나드, 로열 로빈스, 척 프랫, 에릭 벡과 스티브 로퍼 등 1년에 몇 개월간 요세미티에 머물렀던 등반가들은 그곳에 소속감을 느꼈으며, 그곳은 곧 그들에게 정신적 고향이 되었다. 그들은 평화를 느끼며 소박하게 살았고, 등반을 통해 겸손함, 평정심,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감을 얻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등반은 영혼에 이로운 행위였고, 무모한 본성을 진정시켰으며, 열반의 세계로 인도했다.

목차

서문
소개

1. 깊은 심연 (1933~1946)
2. 기술등반 시대 (1947~1957)
3. 세공된 다이아몬드 속으로 (1957~1958)
4. 체류형 등반가들 (1957~1959)
5. 너바나(열반) (1960~1961)
6. 포위전술 논쟁 (1961~1962)
7. 도롱뇽들 (1961~1964)
8. 삶의 방식 (1963~1964)
9. 수직의 순례자들 (1964~1969)
10. 황금기의 종말 (1970~1971)

에필로그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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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깊은 심연
요세미티 계곡 최초의 등반가로 기록된 사람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원이자 목수였던 조지 앤더슨George Anderson으로 하프돔Half Dome - 미국에서 가장 멋진 바위 조각 작품 - 을 초등했다. 그는 1875년 일주일 동안 고리볼트용 구멍을 뚫어, 계곡 밑에서 보이지 않는 45도의 동쪽 경사면에 고정로프를 설치했다. 하프돔의 경사면은 아주 가파르진 않지만 미끄럽고 홀드가 없어 겁이 나는 곳이기에 앤더슨은 요세미티 최초의 기술 등반가라는 명성을 얻을 자격이 충분하다. 앤더슨이 설치한 피톤과 로프(강철 케이블은 나중에 설치되었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하프돔을 오른 사람은 1931년까지 아무도 없었다.
앤더슨이 하프돔을 오른 이후 수십 년 동안 어떤 초등도 이뤄지지 않았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에 살던 여러 명이 요세미티의 외진 곳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숙련된 목공예가였던 윌리엄 캣William Kat은 4급의 바위와 노출이 심한 여러 곳을 올랐고,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바윗길 두 곳이 있다. 요세미티의 우체국장인 찰스 마이클Charles Michael과 그의 부인 에니드Enid는 당시 유명한 리지등반가로 손꼽혔다. 특히 에니드는 뛰어난 조류 관찰자이자 최초의 여성 등반가였다.---p.30

기술등반 시대
로빈스는 요세미티에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1952년경 하이어스파이어의 어려운 첫 피치를 등반하면서 루트를 벗어났는데, 난이도 5.9의 힘들고 무서운 변형 루트는 나중에 로빈스베리에이션Robbins Variation으로 불리게 됐다. 자신감을 얻은 로빈스는 캘리포니아 남부 출신인 돈 윌슨, 제리 갤워스Jerry Gallwas와 함께 1953년 센티넬 북벽에 있는 스텍-살라테 루트에 도전해 두 번째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해 어느 날 패기만만한 돈 윌슨은 캠프4에서 지나가던 스텍을 붙잡고 등반에 대한 세부내용을 물었다. 스텍은 잘 알지도 못하는 데다 그저 애송이에 불과한 그가 루트를 진짜로 오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대충 설명해줬다. 그러나 세 사람은 테니스화를 신고서 이틀 만에 완등을 해냈고, 그레이트침니
에 새로운 피치까지 만들었다. 그들은 침니 바깥쪽 벽을 이용해 오른 다음, 1950년 살라테가 우회했던, 폐쇄공포증을 일으키는 터널 같은 ‘내로스’를 꿈틀거리며 등반했다. 1956년(1954년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1956년이 정확하다) 로빈스는 캘리포니아 남부 출신의 재능이 뛰어난 등반가 마이크 쉐릭Mike Sherrick과 함께 센티넬 북벽에 또다시 도전해 1박 2일 만에 오르면서 제3등을 기록했다. 이로써 로빈스는 멀티데이 루트를 반복해서 오른 최초의 요세미티 등반가가 되었다.---p.97

세공된 다이아몬드 속으로
요세미티의 암벽등반은 이제 변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첫째 ‘불가능’의 벽이 정복되었고 등반가들은 그 과정을 지켜봤다. 아직 등반이 되지 않은 거대한 ‘불가능’의 벽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아찔한 수직의 벽에서 12일을 지낼 수 있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아울러 하딩의 등반에 대한 엄청난 홍보 덕분에 대중은 곧 이 신종 스포츠를 알게 되었다. 엘캡 등반 뉴스가 새로운 등반가들의 갑작스러운 유입 효과를 견인했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몇 년 사이 캠프4는 족적을 남기고 싶고, 등반을 외부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렇다고 엘캡 모험이 소비주의를 부추겼다고 비웃으며, ‘우리’가 암벽에 자주 다녔다고 우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후 우리가 굴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 사건은 진화의 또 다른 단계에 불과했다. 스포츠는 오랫동안 그 상태로 머물 수 없다. 그래서 변화한다. 변화가 ‘좋다’ 또는 ‘나쁘다’라고는 종종 단언하기 어렵다. 특히 처음에는. 그러나 호의적/비호의적 홍보는 항상 참가자를 늘리고, 이후 혼잡스러움과 분개를 낳고, ‘예전의 좋은 시절’에 대한 갈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차츰 스포츠의 격과 위상이 높아진다.---p.140~141

체류형 등반가들
1957년 마크 파월은 돈을 조금 모은 후, 몇 달간 캠프4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그는 요세미티에서 상주한 최초의 등반가였다. 그해 파월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데다 독신이었고, 따분해서 몸이 근질거렸다. 그는 조금 힘든 노동만 해도 먹고살 수 있어서 정규 직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세미티에서 지내는 데 드는 생활비는 저렴했다. 캠프사이트 사
용료도 없었다. 그럴듯한 텐트만 있으면 집도 필요하지 않았다. 정장과 넥타이도 필요 없었다. 자동차나 보험증서도, 심지어는 돈을 주고 머리를 깎을 필요도 없었다. 근처 요세미티 로지Yosemite Lodge에서 햄버거를 사먹는 대신 캠프사이트에서 해 먹으면 하루 1달러로 충분했다. 그리고 겨울에 일해서 몇백 달러만 모으면 6개월간 놀고먹을 수 있었다. 파월이 장기 체류하면서 일찌감치 깨달은 최고 장점은 일주일에 네다섯 차례 등반하면서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주말에만 등반하러 오는 이들에게는 불가능했다. 돌이켜보면, 체류형 등반가들의 출현과 함께 등반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147~148

너바나(열반)
1960년은 장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자유등반이 발전하고, 거대한 거벽 루트가 몇몇 탄생했지만, 그해 가장 큰 모험은 등반가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벽, 바로 엘캐피탄에서 감행되었다. 거의 2년간 어느 누구도 하딩의 노즈를 진지하게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9월에 피첸과 프로스트, 프랫, 로빈스는 고정로프에 의존하지 않은 채, 한 번에 치고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취나드, 캠스, 리어릭도 실력이 충분했지만 그 시점에 다른 일이 있거나, 도시에서 생계에 종사하거나, 가정을 돌보거나,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했다.)
등반가로서 명성을 얻은 로빈스는 고정로프 등반에는 모험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충분히 있고 결기와 함께 실력을 갖춘 등반가라면, 밑에서 위까지 늘어져 있는 탯줄을 이용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고정로프 등반은 성실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이것은 3년 전 하딩이 엘캡 등반 계획을 세울 때 가졌던 시각과 같은 것으로, 그 후 몇 년
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정로프가 좋다는 진영과 불필요하다는 진영 사이에 심각한 언쟁과 마찰이 이어졌다. 몇 년간 이런 대립으로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고, 몇몇 등반가는 환멸을 느끼고 산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캠프4와 다양한 매체에서 수많은 토론이 벌어졌다.---p.205

포위전술 논쟁
살라테월이 등반되고 나서 3주가 지난 후에 하딩이 포위전술을 이용해 리닝타워Leaning Tower 서벽 등반으로 즉시 반격에 나선 것은 분명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쉴 새 없이 벽을 탐색하던 하딩이 이미 10년 전에 착수했던 프로젝트였다. 리닝타워는 브라이들베일 폭포 옆 계곡 남쪽에 있는 엄청난 오버행 루트로 하단은 평균 경사가 110도에 이르렀고, 상단도 95도였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곳은 미국 최고의 오버행 바위였다. 벽은 가파른 만큼 잡을 수 있는 홀드도 없었다. 하딩은 볼트작업이 아주 많이 요구되는 이곳을 왜 주목했을까? 그는 말했다. “내가 정말로 해보고 싶은 곳이었어.” 이 단순하고 정직한 판단은 등반에 접근하는 하딩의 등반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멋진 벽을 찾고, 초보자를 몇 명 포섭한 다음, 많은 로프와 볼트를 운반한다.---p.228

도롱뇽들
정확히 말해 이곳이 비밀 장소는 아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등반가들이 캠프4에 체류했으며, 보르고프가 1962년 6월 『서미트』에 쓴 “도롱뇽과 봉봉”이라는 글에 등반가들의 캠프로 이곳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캠프4는 곧 전 세계에 알려졌으나, ‘4’가 아니라 여전히 ‘Four’ 또는 ‘Ⅳ’로 잘못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 보르고프는 캠프4의 등반가들을 묘사하기 위해 영리하게도 양서류라는 은유를 활용했다. “요세미티 도롱뇽들은 그들의 고유한 면모, 즉 미친 듯이 쉽게 홀드 없는 크랙을 재빨리 오르는 것을 직접 보기 전까지 무해하고 매력이 없다.” 보르고프는 등반가들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캠프4의 유명한 볼더Boulder를 보고도 큰 자극을 받았다. 볼더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로프를 매고 본격 등반에 나서기 전에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려고 놓여 있는 것 같다.” 물론 수개월간 캠프4에 체류한 도롱뇽들은 많은 짧은 루트를 완전히 익힌 상태였다. 하지만 보르고프가 암시한 바와 같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p.270

삶의 방식
취나드의 “요세미티 등반은 삶의 방식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우리는 이 말이 정말로 진실된 표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1963년에 로빈스, 취나드, 프랫, 벡과 나는 요세미티 밸리에 한 번 들어오면 몇 개월간 살았다. 우린 밸리에 소속감을 느꼈고, 이곳은 우리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도시와 책임감에서 멀리 벗어나, 우리 자신과 세계에 평화를 느끼며 소박하게 살았다. 우리는 등반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했고, 아마도 실제 그랬던 것 같다. 바위벽 앞에서 겸손해졌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우리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봐야 했다. 두려움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고, 벽에서 위험을 접하고 평정심을 유지하기위해 싸우는 것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몇 년 후에 깨달았다. 우리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멋지게 생각했다. 한마디로 등반은 영혼에 이로운 행위였고, 무모한 본성을 진정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정말로 등반은 우리 삶의 방식이었다.---p.301

수직의 순례자들
미국 내 최고의 암벽등반가 - 아마도 세계 최고의 암벽등반가 - 넷이 모여 요세미티의 가파른 미등의 벽을 오르려면 뒷말이 나지 않게 철저해야 했다. 네 사람은 10월 31일, 출발한 지 9일 반 만에 당시로는 가장 어려운 루트를 완성했다. 이 루트는 엄청난 고도감 때문에 노즈나 살라테월보다 훨씬 더 아찔했다. 그리고 확보물 설치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이들은 볼트를 단 38개만 설치하기로 하면서, 놀라운 인공등반을 해냈고, 힘든 펜듈럼과 트래버스를 해냈다. (쪼개지고 구조적 짜임새가 부족한) 섬록암지대는 요세미티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벽(엘캡)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착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엘캡 동벽에서는 흔들거리는 바위, 이상한 크랙 때문에 등반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무더웠으나 나중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을 예상했기에 등반팀은 그냥 한 번에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며 올라갔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대단한 등반이 이뤄졌다. 엘캡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던 취나드는 가장 힘든 인공등반 피치를 선등하면서 제몫을 해냈다.---p.344

황금기의 종말
우리는 점차 요세미티에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해가 갈수록 등반에 대한 집착도 줄어들었다. 우리 대부분이 멋진 등반을 해냈다. 꿈을 이룬 것이다. 엘캡의 여러 루트를 올랐고, 요세미티에서 최고의 등반을 해냈다. 취나드가 1963년도 『아메리칸 알파인저널』에 기고한 글에는 이런 점을 꿰뚫은 통찰력이 담겨 있다. 그는 거벽등반의 미래는 요세미티 밖의 전 세계에 펼쳐져 있다고 썼다. 그러나 우리는 외진 곳에 있는 눈과 얼음으로부터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톰 프로스트는 1회 이상 히말라야를 등반한 극소수에 속했고, 안데스에서도 등반하며 유명해졌다. 로빈스는 알프스와 캐나다, 알래스카에 잠시 머물렀지만, 아이거Eiger 같은 무시무시한 혼합등반은 결코 하지 않았다. 취나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종종 스코틀랜드에서 동계등반을 하고, 캐나다의 험준한 산을 오르고, 알프스에서 등반을 즐겼다. 고산등반 교육을 충실히 받은 크리스 존스Chris Jones는 예외였다. 그가 캐나다에서 개척한 멋진 루트들은 오늘날까지도 클래식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캠프4의 대다수(벡, 프랫, 프레더릭스, 에르브, 게러티, 켈시,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는 고산등반을 거의 하지 않았다.---p.392

저자소개

스티브 로퍼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41

1941년생으로 요세미티에서 400번(재등 포함) 이상 등반한 베테랑 등반가다. 그는 등반가로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로도 일가를 이뤘다. 앨런 스텍과 함께 『북미 클래식 등반 50선』을 집필했으며, 1967년 발행한 산악매체 〈Ascent〉 공동 편집자로 일했다. 또한 『요세미티 등반 가이드』를 포함해 다수의 가이드북과 기사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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